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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33화 (13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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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칼을 손에 든 나는 무적이다! 외눈의 마왕은 무적이다!”

서하연이 시끄럽게 웃으며 시체 병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본래 원탁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였던 만큼 시체 병사 따위는 손쉽게 죽일 수 있었다.

아까까진 비명이나 지르며 도망치던 주제에 칼을 쥐고서부턴 무시무시한 무용을 뽐내고 있는 서하연을 보며 레올이 허 소리를 냈다.

“아까 한 말이 정말이었군요. 저 정도 실력이라면 확실히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레올이 읏차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도끼가 박혔다.

쾅 소리가 나면서 바닥이 부서졌고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기습이 무위로 돌아가자 악마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쥐새끼 같은 놈!”

악마가 크게 소리치며 달려들었지만 어느새 날아온 칼이 그의 목을 찔렀다. 컥컥 소리를 내며 목을 부여잡고 있던 악마가 번쩍이는 빛과 함께 반으로 갈라졌다.

“여긴 잔챙이 말곤 없는 거냐! 더 강한 놈이 있다면 나와라! 외눈의 마왕이 상대해줄 테니!”

우렁차게 외친 서하연이 칼을 들고 적들을 향해 뛰어갔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레올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사람 성격이 저 정도로 휙휙 바뀌어도 되는 겁니까?”

“나도 쟤랑 칼 안 들고 대화해본 적이 없어서 저럴 줄은 몰랐다. 그래도 뭐 어때? 자기 혼자 신나서 우리 몫까지 대신 싸워주고 있는데.”

김창이 고개도 돌리지도 않고 뒤에서 달려드는 적의 배에 칼을 꽂았다. 복부에 단단히 꽂힌 칼을 다시 뽑자 하늘에서 칼이 하나 날아와 다른 악마의 목을 베었다.

굳이 직접 싸울 것도 없이 하늘을 나는 칼이 무자비하게 적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김창은 잠시 뒤에 있을 마하칼라인과의 싸움에 대비해 적당히 힘을 아끼고 있었다.

그가 전력을 내지 않더라도 레올과 서하연의 활약 덕분에 크게 위험해질 일은 없었다. 난 이제 반신의 격에 올랐는데 잔챙이들 상대까지 직접 할 필요는 없지.

김창이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갑작스레 서하연이 이쪽을 쳐다보며 눈을 부릅떴다.

“도둑놈!”

잘 싸우던 중에 갑자기 헛소리를 내뱉는 서하연을 보며 김창이 얼굴을 찡그렸다.

“또 왜?”

서하연이 싸우던 것도 멈추고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도 적들이 달려들었지만 날벌레를 쳐내듯 칼을 휙휙 휘두르자 목이 날아갈 뿐이었다.

“내 기술을 훔쳤잖아! 돈을 내라!”

“내가 훔치긴 뭘 훔쳐? 그냥 내가 알아서 배운 건데.”

“그게 훔친 거다! 도둑놈! 돈 내놔!”

저거 한 번 죽더니 겁이 없어진 건가? 김창은 보란 듯이 칼을 날려 보내며 말했다.

“이 기술의 원조는 네가 아니라 요안니스야.”

“요안니스? 그건 암흑 의회의 주인이었던······. 나조차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넌 그를 직접 만났다는 거냐?”

“뭔 멍청한 소리야. 암흑 의회가 말했던 요안니스는 그냥 걔네가 승천할 자 이름 사칭한 거고 내가 말하는 요안니스는 다른 놈인데.”

서하연은 암흑 의회의 진실에 대해 알기 전에 김창의 손에 죽었다. 그러니 암흑 의회에서 말하는 요안니스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김창은 멍하니 이쪽을 보고 있는 서하연을 향해 요안니스의 진실에 대해 설명했다. 간략한 설명을 듣고 난 서하연은 여전히 입을 약간 벌린 채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진실이었나? 하기야 원탁의 랭킹 3위나 되는 놈이 저보다 약한 놈들에게 속아 부하 노릇을 하다 죽었으니 충격적인 일이긴 할 터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조금 불쌍하긴 하군. 김창이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려고 할 때, 서하연이 얼굴을 확 구기며 말했다.

“난··· 난 멍청이가 아니다!”

“···뭐?”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난 멍청이가 아니야!”

화내는 게 그쪽인가? 이거 애가 한 번 죽더니 지능이 확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암흑 의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그런 건가? 어쩌면 이쪽이 개눈깔의 진짜 성격일지도 모르겠군.’

어느 쪽이든 바보 같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을 했다가는 이쪽을 향해 칼이라도 휘두를 기세였으므로 김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잡담은 그쯤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좀 위험한 상황인 것 같은데요!”

서하연과 김창이 대화를 하는 동안에 레올 혼자서 모든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만네르헤임의 기수라고 해도 도시의 전 병력을 감당할 능력은 없었으므로 점차 뒤로 밀리고 있었다.

김창은 자신의 칼을 날려 보냈고 서하연도 땅바닥에 떨어진 칼 하나를 발로 차서 위로 올렸다.

두 자루의 칼이 서로 속도를 경쟁하기라도 하듯 적들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저 칼을 떨어트려!”

“약한 놈부터 죽여라! 레올을 죽여!”

“레올부터 노려!”

악마들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레올을 향해 공격을 집중했다. 아무리 그래도 일개 악마 따위가 만네르헤임의 기수 노릇을 하는 날?

레올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저 악마들은 착시 현상에 걸린 게 분명했다.

실제로 자신은 전혀 약하지 않은데 김창과 서하연이 너무 강하니까 자신이 약해 보이는 착시.

그래서 김창과 서하연은 못 죽여도 자신은 죽일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것이다.

“그 불쌍한 착각에는 벌을 내려야겠지요.”

레올이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리더니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양손에 붉은빛이 맺혔고 그걸 칼처럼 휘두르자 바닥이 갈라지며 불꽃의 칼날이 날아갔다.

불꽃의 칼날이 질주하는 경로상에 있는 적들은 미처 도망칠 새도 없이 반으로 갈라져 쓰러졌다.

사방에서 고기 타는 냄새가 나고 매캐한 연기가 치솟았다. 일격에 수십의 적을 죽인 레올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적진 속에서 종횡무진으로 날뛰었다.

김창은 여전히 칼만 날려 보내고 뒤에서 지켜볼 뿐이었지만 서하연은 그에게 경쟁심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열심히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흘끔 이쪽을 쳐다보는데, 그 시선은 마치 내 실력이 어떠냐고 으스대는 것만 같았다.

“다들 비켜라! 저 녀석들을 우리가 상대하겠다!”

쿵쿵 소리가 나며 바닥이 흔들리고 악마들이 좌우로 비켰다. 전투의 흥분 때문에 씩씩대고 있는 악마들 사이에서 나온 건 그들보다 훨씬 더 큰 덩치를 가진 악마였다.

저건 누가 봐도 마하칼라인의 기수였기 때문에 김창은 저게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레올과 서하연 역시 드디어 올 게 왔군 하는 식으로 심드렁하게 있을 뿐이었다.

“저건 좀 써는 맛이 있겠군. 어이, 마족. 승부라도 할 테냐?”

“···굳이 그래야 할까요? 우린 서로 경쟁할 게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야 할 것 같은데요. 보아하니 김창 님은 우리를 도와줄 것 같지도 않고.”

“하! 멍청한 놈! 저 재수 없는 놈이 도움이 없어도 충분하다! 그래서, 승부할 거냐?”

“뭐······.”

레올은 항상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근본은 만네르헤임의 기수다. 당연히 호전적인 부분도 있고 경쟁심도 남들 못지 않게 가지고 있었다.

그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누가 빨리 끝내나 승부라도 해볼까요?”

“그래야지! 자, 그러면 숫자를 셋까지 세고 시작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하나, 둘······.”

“죽어라, 이 더러운 악마 놈!”

이 여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나? 숫자를 셋까지 세기도 전에 뛰쳐나가는 서하연을 보며 레올이 멍해졌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서 기수 악마를 향해 달렸다.

“확실히······.”

김창은 여전히 뒤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승부는 역시나 서하연 쪽이 더 유리했다.

아무리 레올이 강하더라도 상대는 원탁의 랭킹 3위 출시인 서하연. 그녀가 1초 먼저 싸움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서하연 쪽이 훨씬 더 강력하게 기수 악마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레올도 슬쩍 서하연을 쳐다보면서 자신이 그녀보다 뒤처졌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과욕은 금물이다.

그는 착실하게 기수 악마를 몰아붙이다가 결국엔 그 심장을 찔렀다.

“하하! 내가 이겼다! 외눈의 마왕, 완전 승리!”

자기보다 약한 놈 이겨서 참 기쁘겠다. 김창은 빈정거림을 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기, 기수님까지 당하다니······.”

“이 녀석들, 너무 강하다. 이건 우리 상대가 아니야······.”

단 세 명이 도시의 병력을 절반 넘게 죽이고 기수 악마까지 둘이나 죽였으니 악마들이 겁을 먹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악마들은 완전히 사기가 떨어져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나마 지성이 없는 시체 병사들만이 충실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이 악마보다 약하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별 도움은 안 될 터였다.

이 녀석들, 내가 전력으로 싸웠으면 진작 다 죽었겠군. 김창이 손으로 목덜미를 주무르다가 악마 하나에게 말했다.

“도망칠 거면 도망쳐라. 애초에 내 목적은 너희가 아니니까.”

“넌··· 인간이지? 그런데 인간이 왜 여기에? 그것도 만네르헤임의 기수와 함께? 게다가 저 영혼은 뭐냐? 영혼 주제에 저토록 강한 녀석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는······.”

“재잘재잘 말이 많군. 수다쟁이냐? 누가 너보고 떠들어도 된다고 했지? 살려줄 테니 이만 꺼져라. 더는 날 귀찮게 하지 말고.”

악마는 살려주겠다는 말에 안도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 대악마도 아니고 일개 인간 따위의 자비 덕분에 목숨을 건지다니?

이건 다른 악마가 알았다면 배를 부여잡고 웃었을 것이다. 악마는 주먹을 말아쥐었지만 그걸 휘두를 용기는 없었다.

그대로 도망칠 각오도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침묵이 감도는 대치가 이어지는데 김창이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저 날벌레 같은 놈은 뭐냐?”

날벌레? 악마가 재빨리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갑작스레 그의 눈이 커졌다.

“마하칼라인 님!”

마하칼라인? 저게 대악마라고? 김창은 하늘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대악마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그가 만난 대악마는 전부 이름 그대로 거대한 악마였다. 무시무시한 외모에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두꺼운 손으로 커다란 무기를 휘두르던 모습.

그런데 마하칼라인은 대악마면서 칼레드리온이나 헤인리히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통나무처럼 두꺼운 가슴과 왼쪽 어깨 위에 그려진 문신, 길게 뻗은 은색의 머리칼과 한 번 잘린 흉터가 있는 목, 투박한 손과 길게 뻗은 다리.

눈은 서늘하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흉흉하다. 그러면서도 그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악마가 아니라 천상에서 추락한 천사 같은 게 아닐까? 그 왜 신화 같은 것에 보면 자주 나오지 않나?

김창이 멍하니 마하칼라인을 쳐다보고 있는데 대악마가 드디어 지상에 착지했다.

그는 까마귀의 것을 닮은 날개를 접더니 이쪽을 향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기어코······.”

목소리에는 강대한 지옥 마력이 담겨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 누구든 복종하게 만드는 지배자의 음성이었다.

만네르헤임의 기수인 레올조차 마하칼라인의 목소리를 듣고서 심하게 몸을 떨었다. 그토록 강한 마족도 마하칼라인을 감히 쳐다보지 못하는데 주변의 다른 악마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들은 제 주인을 보면서 기뻐하는 게 아니라 이후에 있을 처벌에 두려워하며 몸을 떨었다.

김창은 마하칼라인은 가만히 쳐다보며 생각했다.

‘강하군.’

지금까지 싸웠던 대악마는 칼레드리온과 헤인리히스뿐. 둘 다 강하긴 했지만 자신의 본거지가 아닌 지상에서 싸웠기 때문에 김창이 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지옥. 대악마의 힘이 가장 강력해지는 장소. 방심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독이다.

김창은 칼자루를 세게 쥐었다.

“레올, 너는 뒤로 빠져라.”

“···죄송합니다.”

레올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김창은 슬쩍 서하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개눈깔, 너는 나랑 같이 싸워. 아까 외눈의 마왕이 어쩌고 하면서 막 설치던데······.”

“네? 저는 외눈의 마왕이 아니라 서하연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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