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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35화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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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이라고······?”

마하칼라인은 창백한 빛을 사방으로 발산하며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창을 보며 멍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분명히 신성을 모으는 걸 그만두라고 말했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말했는데, 그런데도 날 죽이려는 이유가 고작 돈 때문이라는 거냐?”

“왜, 그러면 안 되나?”

“어이가 없는 소리를 하는군! 네가 정말 돈을 원했다면 그냥 지상에서 칼이나 한 번 휘두르면 될 일이다! 그러면 모두가 너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황금과 보물을 바치겠지! 왜? 너는 반신이니까! 지상에 강림한 신이니까! 그런데 고작 돈 때문에 날 죽이겠다는 헛소리나 하고 있어!”

“내 말이 많이 어려웠나?”

“뭐?”

김창의 몸은 벼락 그 자체가 된 것처럼 어딜 봐도 창백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곳, 그가 멀고 먼 별의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이라는 증거인 검은 눈만은 여전히 제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하칼라인은 그 눈을 보는 순간 기이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저 눈, 별의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들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는 저 검은 눈.

저것은 어둠인가? 아니다, 저건 어둠 같은 게 아니라······.

“돈 때문에 널 죽이는 게 아니야. 돈을 받았으니까 널 죽이는 거다.”

“그게 뭔 차이가 있다고······.”

“아주 큰 차이가 있지. 돈이 필요했다면 너 말고 다른 놈을 죽여도 돼. 하지만 널 죽이라고 돈을 받았으면 반드시 널 죽여야 하지. 이제 알겠나?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건 권리지만 돈을 받고 누군가를 죽이는 건 의무다.”

그래서 그게 대체 뭔 소리인데? 저건 지상의 인간들 사이에서 새로 유행하는 철학적 명제인가?

마하칼라인은 한때 승천할 자였고, 지금은 오랜 시간 동안 지상에서 대악마 노릇을 해왔지만 그런 그의 머리로도 김창의 말은 얼른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자 줄곧 가만히 있던 서하연이 말했다.

“어이, 대악마. 저 녀석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원래 머리가 좀 이상한 놈이다.”

적어도 중2병 걸린 여자한테 그런 말 듣긴 싫은데. 김창이 서하연을 쳐다봤지만 그녀는 애써 시선을 무시하며 말했다.

“애초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느냐? 중요한 건 오직 하나.”

서하연이 씩 웃더니 기습적으로 칼을 날렸다.

“너와 우리,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것뿐!”

칼을 날려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건 서하연의 특기 중의 특기다. 비록 요안니스에 비하면 실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저게 무시할 수 없는 공격임은 분명했다.

마하칼라인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에 빠르게 반응했다. 그는 바람이 일어날 만큼 빠르게 날개를 접어 마치 갑옷처럼 몸을 감싸 서하연의 칼을 막아냈다.

팅 소리가 나며 칼이 튕겨 나가며 다시 공격할 틈을 노리는 사이에 마하칼리인이 접었던 날개를 빠르게 젖혔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숫자의 검은 비수가 서하연을 향해 날아왔다. 자세히 보니 그건 비수가 아니라 까마귀 깃털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깃털은 아닌지 몹시 빳빳하고 단단했다. 김창과 서하연이 빠르게 칼로 쳐내는데 날카로운 금속음이 연달아 울렸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고? 그럼 너희가 죽어라!”

한바탕 깃털을 쏘아낸 마하칼라인이 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날개로 몸을 감싼 채로 빙글빙글 회전하며 상승하던 대악마는 기어코 저 하늘 위까지 도달했다.

설마 이대로 도망치려고 하나? 마하칼라인은 원래 이 싸움을 하기 싫어했으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김창이 서하연을 쳐다보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바로 칼을 날려 마하칼라인을 노렸다.

두 자루의 칼이 하늘을 질주하며 대악마를 노리는데 갑작스레 검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칼을 날려 조종하는 것이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재주라고 해도 그게 무적의 기술인 것은 아니다.

마하칼라인이 공중에서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검은 깃털의 공격을 상대로 칼 두 자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기세에 이기지 못한 두 자루의 칼이 아래로 떨어지고 김창과 서하연은 남은 공격에 그대로 노출됐다.

“개눈깔!”

“알고 있다!”

우렁차게 외친 서하연이 호다닥 김창의 뒤에 숨었다.

“뭐야, 왜 내 뒤에 숨어?”

“왜 숨긴? 저런 걸 정면에서 맞으면 죽는다! 영혼이라고 해도 죽는다! 두 번 죽는 건 싫다!”

“이게 미쳤나······.”

김창은 욕을 하면서도 서하연을 등 뒤에서 끄집어내지 않았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짓을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쯧 하고 혀를 찬 김창은 재빠르게 칼을 휘둘렀다. 그의 등 뒤에 숨은 서하연은 고개만 빼꼼 내밀고서 김창의 칼질을 보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보이지 않아?’

원래 고수와 하수 사이에 실력 차이가 너무 나면 그 동작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다. 설령 보더라도 대체 무슨 원리로 행해지는 건지 이해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고.

지금 서하연의 경우가 그랬다. 분명 보여야 할 공격이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그녀가 본 것은 창백하면서도 어지럽게 반짝이는 수백 개의 선과 그 뒤를 따라 울리는 우렁찬 우레뿐이다.

그걸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나? 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은 그것조차 보지 못했을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원탁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던 강자인 내가 고작 그것만 겨우 봤다는 게 말이 되나?

서하연은 김창이 자신과 싸웠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칼질이 더 날카로워지고 움직임이 빨라지기만 한 게 아니다.

아까 웬 변신 같은 걸 할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그냥 강해지기만 한 게 아니라 아주 인간을 초월해버린······.

“내려와.”

김창의 나직한 목소리에 마하칼라인이 하 하고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내가 반신의 경지에 대해선 잘 모르긴 하지만, 지금 그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원시적 신앙을 기원으로 한 변신술이로군. 화신화라고 하던가? 자연 그 자체로 변하는 것이니 아주 강력할 거야. 눈 깜짝할 새에 내 공격을 전부 쳐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새끼야, 누가 너보고 줄줄 해설이나 하고 있으래? 그런 건 아무도 안 궁금해하니까 그냥 내려와.”

“난 궁금했다!”

“넌 닥쳐.”

마하칼라인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웃었다.

“그리고 화신화는······ 내가 알기로 오래 유지할 수 없지. 원시적 신앙이라고 해도 신은 결국 신. 아무리 반신이라고 해도 아직은 진짜 신이 아니야. 그러니 나는 그냥 이 하늘에서 깃털이나 날리며 시간만 끌면 되는데 내가 왜 굳이 내려가야 하지?”

김창은 요안니스와 싸우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그저 시간만 끌면 손쉽게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그건 어째서인가? 그에겐 긍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얻은 승리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창은 지금껏 승천할 자를 몇 만나지 않았지만 진정으로 신에 가까운 자가 오직 요안니스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걸 알기에 요안니스의 선택을 바보짓으로 만드는 마하칼라인을 그냥 둘 수 없다.

몸에서 틱틱 소리가 나며 불씨가 튀었다. 김창은 두 다리에 벼락의 힘을 집중하고서 자세를 낮췄다. 시선은 여전히 마하칼라인을 향한 채로 발바닥에 꾹 눌러 담은 벼락의 힘을 해방했다.

콰직! 바닥이 부서지고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김창은 말 그대로 벼락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 누구도 그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고 오직 길게 뻗은 빛의 선만이 흔적처럼 남았을 뿐이다.

“아니,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마하칼라인은 한 번의 도약으로 자신의 지척까지 다가온 김창을 보았다. 그가 벼락을 담은 칼을 휘두르려 하는 것도 보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자신은 이대로 죽는가?

그럴 리가.

“···라고 멍청한 소리라도 지껄일 줄 알았느냐, 김창! 나는 오히려 네가 이곳까지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하칼라인이 두 장의 날개를 접어 갑옷처럼 몸을 감쌌다. 하지만 벼락의 힘을 담은 칼날을 상대로 그건 강철이 아니라 종이나 다름이 없었다.

쐐액 하는 소리가 나더니 두 장의 날개가 모두 잘려 나갔고 곧장 마하칼라인의 육신이 드러났다.

벼락의 화신으로 화한 김창은 일 초의 시간에 칼을 몇 번이고 휘두를 수 있다. 그 말은 곧 마하칼라인이 뭔가 다음 수를 보여주기 전에 그의 목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는 감히 인식할 수 없는 아주 짧은 시간 속의 움직임. 그것이 벼락처럼 번쩍였다.

“붙잡아라!”

칼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공격은 마하칼라인의 가슴을 대각선으로 크게 베었다. 그러나 얕았다.

원래라면 근육과 뼈를 갈라버리고 그 안에 든 장기들을 모두 뱉어내게 해야 했지만 두꺼운 근육을 약간 찢는 데 그치고 말았다.

어째서 그랬는가? 방해자가 있었다.

“씹, 이건 또 뭐야?”

방금 잘랐던 두 장의 날개가 김창의 몸을 붙들고 있었다. 이게 촉수도 아니고 대체 뭔? 김창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 침착하게 벼락의 힘을 방출해 날개를 모두 태웠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김창은 자신의 몸이 천천히 추락하는 걸 느꼈다. 당연한 일이다. 날개 없는 것은 원래 추락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건 날개를 잃은 마하칼라인도 마찬가지일 터.

“···뭐야, 너 왜 아직 날고 있어?”

“날개 따윈 장식이니까. 내가 날 수 있는 건 내 능력일 뿐, 날개의 힘이 아니다. 애초에 직립 보행하는 생물의 등 뒤에 날개가 달렸는데 뭔 수로 직립해서 날겠나? 날려면 누운 채로 날아야겠지.”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새가 날 수 있는 건 날갯짓을 통한 양력의 발생 때문인데 날개가 몸의 좌우에 달려있어서 날갯짓하면 아래쪽에서 양력이 발생한다.

그에 비해 등 뒤에 날개가 달린 사람은? 날갯짓을 아무리 해봤자 전후로만 움직일 뿐 아닌가?

그러니 그 상태로 정말 날려면 일단 벼랑 같은 곳에서 한 번 뛰어내린 후에 누운 채로 날갯짓해야 말이 될 터다.

‘그럼 천사는 뭐야? 전부 사기다 이거야?’

어렸을 때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만큼의 충격이다. 김창은 아래로 추락하면서도 마하칼라인을 향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래서 뭐? 날개 없이 날 수 있든 말든, 넌 내 상대가 안 돼.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뭘 할 수 있냐고?”

마하칼라인이 큭큭 웃더니 몸을 움츠렸다. 저게 미쳤나? 이제 지상으로 떨어져 가볍게 착지한 김창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콰드득!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김창은 물론이고 서하연도 깜짝 놀라 마하칼라인을 쳐다봤다.

부러진 뼈가 살갗을 찢고 바깥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몸속에서 뭔가 튀어나오려는 것인지 마하칼라인은 한참 동안 거친 신음을 내뱉었다.

원래라면 저걸 멍하니 기다려줘야 할 이유가 없지만 마하칼라인은 공중에 있고 이쪽은 지상에 있었다.

올라가려면 다시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 전에 마하칼라인의 변신이 끝나고 말았다.

“키아아아악!”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음. 그건 사람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일부러 모으고 모아 만든 것만 같은 소리였다.

서하연이 얼굴을 찡그리며 귀를 막는 가운데 김창이 마하칼라인을 쳐다봤다.

이제 거기에 잘생긴 대악마는 없었다. 마치 용에 비할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가진 까마귀가 있었을 뿐.

아니, 그것 역시 정확한 설명은 아니었다.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한 덩치는 분명 까마귀의 것이 맞았지만 그 머리는 불을 뿜는 용의 것이었으니까.

“저런 걸 뭐라고 하더라? 키메라? 괴물 그림 그리며 노는 중2병 애새끼도 아니고 멋있어 보이는 건 다 갖다 붙였군.”

까마귀 몸에 용 머리는 좀 우습지 않나? 김창은 그리 생각했지만 서하연이 보기엔 저것만 해도 엄청난 박력이 있었다.

그녀가 뺨을 발그레 붉히며 중얼거렸다.

“까마귀에 용? 이건 멋있는 게 당연하잖아······.”

뭔 헛소리야?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야, 개눈깔.”

“으, 음?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됐고, 너 식사는 했냐. 안 했으면 같이 먹지.”

갑자기 뭔 뜬금없는 질문이래? 서하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에 김창이 벼락의 힘을 담은 칼로 마하칼라인을 겨누며 말했다.

“오늘 메뉴는 전기구이 통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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