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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구이 통닭이라고?”
갑작스러운 말에 서하연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겠군······.”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칼이나 들어.”
서하연이 입을 비죽거리면서도 김창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저 녀석을 상대할 방법은 있나? 너는 몰라도 난 저 위까지 올라갈 재주가 없어.”
김창은 무려 반신이지만 서하연은 그냥 일개 칼잡이일 뿐이다. 땅을 한 번 박차고 뛰어서 하늘 위까지 올라가는 건 반신이 아니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재주다.
그걸 알기에 김창은 그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는 서하연에게 그저 지금 자리나 잘 지키고 있으라고 말했다. 도망치지 말고서.
“그럼 너는?”
“나는 저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저 녀석을 떨어트린다. 그다음에는 뭘 해야 할지 알겠지?”
“깃털을 뽑고 내장을 빼내야겠군. 전기구이 통닭을 만들어야 할 테니 말이야!”
그건 그냥 농담 삼아서 한 말이었는데, 이 녀석 정말로 전기구이 통닭을 먹을 생각이었던 건가?
김창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서하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뭘 쳐다보는 거지?”
“아니, 아니다······.”
시시한 잡담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김창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서는 아까 그랬던 것처럼 자세를 낮추고 두 다리에 온 힘을 집중했다.
화신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싸움을 끝내기엔 충분했다.
김창은 마치 화살처럼 직선으로 쏘아져 나갔고 칼을 휘둘러 마하칼라인의 날갯죽지를 끊어버리려 했다.
“뻔히 보이는 공격을 하는구나! 내가 가만히 당하고 있을 줄 알고!”
마하칼라인의 입을 크게 벌리며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자 그의 복부가 불룩해졌다. 목구멍 너머에서 이글거리는 불길이 보였다.
김창은 아직까지 용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저 불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을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가 지상이라면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는 것만으로 충분하겠지만 애석하게도 여긴 공중이었다.
하늘은 날개 달린 것의 영역이고 김창은 날개 없는 불청객이었다. 그런 그가 정면에서 날아오는 용의 불꽃 숨결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거 통닭이 되는 건 저쪽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겠는데.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차면서 칼날에 벼락의 힘을 가득 담았다.
“죽―어―라!”
화르륵! 용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 숨결이 김창을 향해 날아갔다. 용의 덩치가 큰 만큼 불꽃의 크기 역시 거대했다.
만약 날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불꽃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할 듯 보였다. 불꽃 숨결은 그만큼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마하칼라인은 자신이 뱉어낸 불꽃이 김창의 몸을 집어삼키는 걸 봤다. 저 공격으로 김창이 죽진 않겠지만 그래도 치명상 정도는 입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금세 깨닫게 됐다.
꽈르릉!
귀를 때리는 우렁찬 우레와 함께 불꽃이 반으로 갈라졌다. 단지 갈라지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사이로 창백한 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저것은 칼날이다. 벼락으로 만들어진 칼날. 저것이 불꽃을 자르고 오히려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마하칼라인은 다급히 선회 비행을 했다. 용의 몸은 거대하고 튼튼하지만 그래도 아무 공격이나 다 맞아줄 수 있을 만큼 대단하지는 않다.
용도 결국 살과 근육, 그리고 뼈로 이루어져 있는 생물. 칼에 찔리면 고통을 느끼고 뼈가 부러지면 비명을 내지른다.
반신에 가까운 진짜 용조차 그러할 진데 겨우 대가리만 용을 흉내 낸 키메라는 말할 것도 없다.
“크아아악!”
용의 거대한 덩치는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반대로 크나큰 약점이 되기도 한다. 워낙 덩치가 크니 어디를 노려도 대부분의 공격은 적중한다.
진짜 용이 단단한 비늘을 갖추게 된 것도 그러한 약점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까마귀의 몸을 가진 키메라 용은? 겨우 깃털 따위로 벼락의 칼날을 막아낼 수 있을까?
“이 빌어먹을 개자식이!”
마하칼라인의 복부 쪽이 칼에 베인 듯 기다란 상흔이 생겼다. 불꽃 숨결을 가르면서 날아온 칼날은 충분한 위력을 가지지 못해 대악마의 배를 완전히 자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위력적인 타격이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대악마의 상처에서 흐른 피는 마치 비처럼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하칼라인은 신경질적으로 지상을 쳐다봤다.
그래서 김창은 그 녀석은 어디에? 어째서 지상에 없는 거지? 설마 그대로 타죽은 건 아닐 테고······.
“어딜 보냐.”
마하칼라인은 순간 온몸의 깃털이 바짝 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목소린 대체 어디서?
인간의 모습이었다면 금방 고개를 돌려 김창의 위치를 찾았겠지만 용의 몸은 너무 크고 육중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것만 해도 제법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었고 마하칼라인은 너무 늦게 김창의 위치를 찾아냈다.
“머리 위···?”
꽈르릉!
벼락이 내리치며 마하칼라인의 등뼈를 강하게 찔렀다. 용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고 그 소리에 지상이 떨릴 정도였다.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맞은 마하칼라인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대로 추락하진 않았으나 몸이 크게 휘청거리고 순간적으로 고도가 낮아졌다.
마하칼라인은 억지로 날갯짓하여 다시 본래 위치를 되찾았고 그대로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켜 김창을 등 위에서 떨어트렸다.
“마법이라도 익힌 거냐? 대체 뭔 수로 내 머리 위를?”
아래로 추락하면서 김창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칼.”
“···칼?”
“밟고 뛰었다. 별건 아니야.”
성의 없는 설명이었지만 마하칼라인은 그게 충분한 설명이었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아래로 추락하던 김창이 하늘을 나는 칼을 밟고서 다시 위로 뛰어올랐으니까.
“김―창!”
마하칼라인이 다시 한번 불꽃 숨결을 내뿜었다. 김창 역시 벼락의 칼날로 불꽃을 갈라버리고는 더 위로 올라갔다.
이번에도 등 뒤로 올라올 셈인가? 마하칼라인이 재빠르게 몸을 뒤집으며 하늘 위를 쳐다봤다. 만약 또 위로 떨어지려고 한다면 발로 붙잡아 뼈를 으스러트릴 생각이었지만······.
“내가 가만 보니 넌 덩치가 너무 커서 칼 좀 찌른다고 아래로 떨어질 것 같지 않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하자.”
김창은 마하칼라인의 몸 위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위로 올라갔다. 그가 올라탄 것은 용 못지 않게 거대한 덩치를 가진 생물이었다.
뼈 고래. 지옥의 생물답지 않게 몹시 온순하며 그저 한가롭게 하늘을 떠다니기만 할 뿐인 생물······.
“이걸 처맞고도 버티나 보자고.”
마하칼라인의 자신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지는 걸 봤다. 마침 뼈 고래가 자신의 몸 위를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꽈르릉!
“안 돼!”
머리가 부서진 뼈 고래는 동력을 잃고서 아래로 추락했다. 그럼 그 아래에는? 마하칼라인이 있다.
“크아아악!”
뼈 고래는 용 못지 않게 거대한 덩치를 가진 생물이다. 비록 뼈만 남긴 했지만 그래도 그 무게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게 심지어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면? 아무리 마하칼라인이라고 해도 그 무게를 버텨낼 수는 없다.
용은 추락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쿠웅! 마하칼라인이 지상으로 추락하면서 길거리는 완전히 부서지고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고 멍청이 있다가 마하칼라인의 몸에 깔려 죽은 악마들도 발생했다.
“이 빌어먹을 놈! 감히 나를! 감히!”
마하칼라인이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뼈 고래의 잔해를 털어내며 고성을 내질렀다. 그 순간에 그의 양 날개에 긴 사선이 그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도 전에 까마귀 날개가 쿵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날개 한 쌍을 잃은 용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날개도 잘랐으니 이젠 도망도 못 가겠지. 그럼 끝을 볼까.”
“먼저 깃털을 뽑아야 한다.”
마하칼라인을 두 명의 칼잡이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 봤다.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죽여버리겠다! 전부 죽여버리겠어!”
마하칼라인의 목구멍 너머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학습 능력이 없나?”
모든 걸 태워버릴 용의 불꽃이 공기를 달구는 것과 동시에 벼락의 칼날이 질주했다. 칼날이 불꽃을 자르고 흩어졌다.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인 거냐? 차라리 변신하지 말고 그냥 싸우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는데.”
김창의 조롱에 마하칼라인이 입을 쩍 벌려 그를 삼키려 할 때였다.
따끔한 감각과 함께 순간적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마하칼라인은 두 눈을 크게 뜨면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거기엔 자신을 향해 칼을 내지른 서하연이 있었다.
“용에겐 역린이라는 게 있지. 물론 넌 진짜 용이 아니니 그런 게 없을 테지만, 그래도 아까 변신하기 전에 김창에게 당한 상처가 아직 남았다. 그러면 여기가 네 역린이라고 봐야겠지!”
변신하기 전에 김창에게 베였던 상처. 거긴 용으로 변신하고 나서도 상처가 아물지 않아 상대적으로 약한 부위였다.
서하연은 거길 정확히 찔렀고 마하칼라인은 울컥 핏물을 뱉어내야 했다. 상처 안쪽으로 단단히 들어온 칼날이 온 근육을 옥죄는 듯해서 뭔가 말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잘 잡고 있어라, 개눈깔.”
뭘 잘 잡고 있어? 마하칼라인의 몸에 칼을 찌르긴 했는데 그가 상체를 드는 바람에 칼자루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있던 서하연은 김창의 자세를 보고서 뜨악 소리를 냈다.
칼집에 칼을 꽂고 자세를 낮춘 모습. 저 새끼 저거 나까지 날려버리려고?
“아니, 잠깐! 나는······.”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벼락의 칼날이 대지 위를 질주했다. 서하연은 다급히 칼을 버리고 아래로 뛰었고 마하칼라인은 반사적으로 하늘 위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러나 날갯짓을 하려고 해도 그럴 날개가 없었다. 이미 다 잘리고 난 후였으니까. 날개 없는 용은 결국 닭이나 다를 게 없다.
마하칼라인은 어쩔 수 없이 몸으로 공격을 막아내기로 했다. 그가 몸을 둥글게 말고서 머리를 몸 안쪽으로 숨겼다.
서걱!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깃털과 살점이 뭉텅이로 잘려 나가는 게 느껴졌다. 욕이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살았다. 마하칼라인은 아직 자신의 목숨이 붙어있다는 걸 알았다. 죽지 않았다면 다시 싸울 수 있다.
“김창! 네가 날 이겼다고 생각하나? 천만에! 나에겐 비장의 수가 있다! 내 목숨을 대가로 강력한 힘을 얻는 비술! 이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껴두려 했지만 지금······.”
꽈르릉!
마하칼라인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벼락 한 줄기가 떨어져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벼락은 두꺼운 머리뼈를 뚫고서 그대로 턱뼈를 박살 내고는 땅바닥에 단단히 박혔다.
뭔가 말하려던 마하칼라인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김창은 아직도 벼락의 힘을 머금은 채로 땅바닥에 박힌 칼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냥 한 번 해본 건데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나. 이러면 칼 열 자루쯤 들고 다니면서 벼락만 날려도 전부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겠는데.”
김창은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신성을 느끼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반신의 격에 올랐겠다, 그리고 신성의 양도 충분히 늘어났겠다, 이러면 칼 여러 자루를 한꺼번에 날리면서 벼락을 떨어트리는 것도 가능할 듯 보였다.
새로운 전투법은 언제나 환영이다. 김창은 벼락에 맞고 죽어 몸에서 김이 오르고 있는 마하칼라인을 가만히 쳐다봤다.
“이 망할 자식아! 나까지 죽일 셈이냐!”
용케 살아남은 서하연이 씩씩대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좀 이상했다.
원래 한 번 죽어서 영혼 상태였던 그녀는 몸이 약간 반투명했다. 그런데 지금은 완벽한 인간의 육체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머리 오른쪽에는 웬 뿔까지 하나 생겨 있었는데 누가 봐도 이상함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너 생긴 게 왜 그래?”
“새, 생긴 게 왜 그래? 갑작스럽게 인신공격은 너무하지 않나······.”
“갑작스럽게 모습이 변한 건 대악마의 힘을 흡수해 마족이 됐기 때문입니다.”
서하연이 당황하는 사이에 상황을 설명한 것은 레올이었다. 그는 마하칼라인이 죽음으로서 심신이 안정됐는지 안색이 한결 나아 보였다.
“마족이 됐다고? 이 내가?”
“본래 지옥의 영혼은 대악마의 힘을 나누어 받으면 마족으로 변합니다. 당신은 마하칼라인에게서 직접 힘을 받은 건 아니지만 그를 죽임으로써 힘을 흡수하여 마족으로 변한 듯하군요.”
“오, 오호······.”
서하연이 은근히 기뻐 보이는 건 마족이라는 종족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리라. 하여튼 중2병 환자 같으니라고.
김창이 쯧 하고 혀를 가운데 레올이 말했다.
“김창 님,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로 마하칼라인을 쓰러트리셨군요.”
“뭘 별거 아니었어.”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면 지옥에서 용무도 다 끝내셨으니 이대로 지상으로 돌아가신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겠습니다만······.”
레올이 말끝을 흐린 건 김창이 그러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 눈치 빠른 녀석이야.
김창이 말했다.
“살려줄 수도 있어.”
“누굴 말입니까?”
“너.”
“저는 만네르헤임 님의 기수입니다.”
“그래, 그럼······.”
김창과 레올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이미 시간이 충분히 지나 화신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레올이 김창을 이길 수 있을 리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레올은 김창과 맞섰다. 제 주인을 위해서.
“음, 전기구이 통닭은 안 먹는 건가······.”
서하연이 멍청한 소리를 하며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