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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38화 (13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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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김창이 서하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지금 뭔 소리냐?”

“뭔 소리긴? 그냥 말 그대로잖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서하연이 어깨를 한 번 으쓱인 후에 말했다.

“간단히 말해서 만네르헤임이 널 여기 가두고 자긴 지상으로 올라간다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난 저 새끼 말대로 여기서 쭉 살아야 한다는 거냐? 그 빌어먹을 합의인가 뭔가 때문에?”

“아마?”

김창은 당황해서 아무 말도 없이 멍해졌다. 설마 만네르헤임이 이런 식으로 자기 뒤통수를 때릴 줄이야?

하도 당당하기에 뭔가 숨겨진 수가 있으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다.

하기야 김창은 이미 대악마 셋을 죽였으니 정면에선 상대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김창은 이 상황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만네르헤임, 너 실수하는 거야.”

“실수라면 네가 했지. 그냥 내가 지옥에서 왕 놀이나 하게 뒀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나. 너는 그깟 신성 때문에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그 왜 인간들이 말하는 칠죄종 중에 탐욕도 있지 않던가? 그러면 너는 지금 탐욕의 죗값을 받는 중이겠군.”

으흐흐. 사람 놀리듯 웃던 만네르헤임이 말했다.

“김창,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지상으로 나가려면 시간이 빠듯해서 말이야. 혹시라도 지상에서 지옥의 이변을 눈치채기 전에 나가야 하거든.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나서 반가웠다. 이젠 다시 못 보겠지만 말이야!”

만네르헤임이 크게 웃더니 그의 목소리를 전달해주던 눈알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건 마치 짓무른 과일처럼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찰박 소리를 내며 형태가 망가졌다.

김창은 그 눈알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뭘 어째야 하지?”

지금 이 상황은 김창으로선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수많은 강적과 싸워왔지만 만네르헤임처럼 도망쳐 버리는 놈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칼로 찌르면 죽는 법이지만 도망친 적을 상대로는 그럴 수 없다. 심지어 그 적이 쫓아갈 수도 없는 곳으로 도망쳤다면 더더욱.

“역시 마법사를 해야 했는데. 칼잡이는 이럴 때 뭐 도움이 되는 게 하나도 없네.”

김창은 자신과 똑같이 쓸모없는 칼잡이를 쳐다봤다.

“그 기분 나쁜 시선은 뭐지? 날 깔보는 건가? 날 바보 취급하는 건가?”

“그냥 쳐다본 거야.”

“날 바보 취급하는 건가!”

김창은 서하연을 무시했다. 그는 이미 죽은 레올의 시체를 보며 후회에 잠겼다.

‘죽이지 말고 살려둘걸. 그냥 반만 죽였으면 뭐라도 물어보는 건데.’

레올은 죽었고 마하칼라인의 부하들은 전부 도망쳤다. 뭘 물어보려고 해도 물어볼 수가 없는 상황이라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한숨 쉬지 마라. 복 나간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서하연을 보면서 김창이 얼굴을 찡그렸다.

“넌 지옥에 갇혔는데 아무 생각도 없는 거냐.”

“날 바보 취급한다는 건 알겠군. 하지만 대답은 해주지. 아무 생각 없느냐고? 당연하지. 애초에 난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마 이 녀석이 뭔가 방법을 알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김창이 미간을 좁힌 채로 쳐다보자 서하연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난 애초에 죽은 몸이다. 원래부터 지옥에서 살던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옥에 갇힌 걸 왜 걱정하나? 여기가 내 집인데.”

“그거야 확실히······.”

지상의 사람은 자신이 지상에 갇혔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거기 사는 사람이니까.

반대로 지옥의 영혼도 자신이 지옥에 갇혔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서하연이 아무 걱정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지금 나만 큰일이 난 셈이군. 난 지상으로 돌아갈 방법을 모르니까. 이러면 어째야 해? 그냥 돌아다니면서 악마들 죄 죽여야 하나? 그럼 한 놈쯤은 나 지상으로 추방하려고 방법을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걔네가 방법 찾는 것보다 네가 악마들 몰살하는 게 더 빠를걸.”

맞는 말이라서 김창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나? 지상에서 이변을 눈치채고 나 구해줄 때까지?”

“지상에서 너 도와줄 사람이라면 한석구 말고는 없을 텐데, 걔도 이번 일에는 별수 없을걸.”

“어째서?”

서하연이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

“집중력이 나쁘나? 학생 때 선생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흘리는 타입이었나 보군. 하기야 그러니까 여기 와서도 무식하게 칼질이나 하고 있지.”

학생 때 공부 안 한 거랑 여기서 칼질하는 게 무슨 상관이야? 그러는 저도 칼질하고 돌아다녔으니 제 얼굴에 침 뱉기 아닌가?

김창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 무식한 놈 칼침 맛 좀 볼래?”

“···만네르헤임이 말했잖나. 지상과 지옥 사이를 연결하는 문을 열 수 있는 건 대악마들이 만들어낸 합의 덕분이라고. 그리고 그건 모든 대악마가 합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순간 효력을 잃게 된다고도 했지.”

요점 정리를 잘하는 걸 보니 학생 때 공부를 잘한 모양이다. 김창이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얼굴로 말했다.

“근데?”

“···이해를 거부하는 거냐, 머리가 나쁜 거냐? 만네르헤임의 말대로라면 합의가 다시 이루어지지 않는 한은 지상에서 아무리 의식을 치르고 제물을 바쳐도 지옥의 문은 열리지 않으리라는 거다. 한석구가 아무리 잘나도 대악마는 아니니 그 문제는 어쩔 수 없을 테지. 지상과 지옥을 연결할 다른 방법을 찾는다면 또 모를까.”

“부정적인 의견 정말 고맙다.”

서하연의 말대로 이건 한석구도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그는 강력한 마법사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건 마법사 캐릭터가 강한 거지, 한석구 자체가 위대한 마법사인 건 아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한석구가 원래 캐릭터가 가지고 있던 마법으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건 잘해도 마법적 소양을 바탕으로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마탑의 도움을 받으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할 테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짧으면 한 달, 길면 일 년이나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김창은 그만큼 기다릴 수 없다.

“그러니까 정말 이곳에서 탈출하려면 지상의 도움을 기다릴 게 아니라 이쪽에서 방법을 찾아야 해.”

“그걸 누가 모르냐? 그 방법이라는 게 없으니까 이러고 있는 거 아니야.”

“왜 없어, 방법. 있는데.”

“있다고?”

김창이 놀란 듯 쳐다보자 서하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너는 정말 공부를 못하는구나. 원래 시험의 정답은 선생님 말씀에 다 들어있는 법이다. 아까 마하칼라인이 뭐라고 했지?”

“살려달라고 했던가?”

“······자신은 원래 승천할 자였다고 했다. 이걸 듣고도 생각나는 게 없다면 너는 유급 확정이다.”

김창은 원래 공부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듣고서 깨닫는 게 없진 않았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마하칼라인은 원래 대악마가 아니었지. 경쟁에서 밀려난 승천할 자였고 승천자의 뒤를 몰래 밟아 천상에 올라갔다가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했던가? 그런 그가 나중엔 대악마가 됐다는 건······.”

“그래. 대악마의 자리엔 노력 여하에 따라 악마가 아닌 존재도 오를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새롭게 대악마의 자리에 오른다면 정지된 합의의 효력을 다시 발생시킬 수 있을 테지.”

그럼 대악마의 합의가 다시 효력을 갖게 된다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시 지옥의 문을 열 수 있겠군. 나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 테고.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지상에서 지옥의 문을 열 방법을 찾는 것보다 이게 더 빠르겠어.”

서하연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었다.

“어때, 덕분에 살았지? 그래서 나한테 뭐 할 말 없나?”

“있지, 할 말.”

“할 말이 있다면 내 기꺼이 허락하마! 날 칭찬해도 된다!”

“자꾸 깝죽거리면 칼 맞는다. 너무 나대진 마라.”

“······.”

이게 도움을 받은 사람의 태도가 맞는 건가? 나 없었으면 의미도 없이 악마들이나 죽이고 다녔을 놈이······.

서하연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으나 김창은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 대악마가 되는 방법이라는 게 뭐냐?”

“···그걸 왜 나한테 묻지? 나대지 말라고 안 했나?”

“맞고 말할래?”

“···씨.”

서하연이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나라고 뭐든 아는 건 아니다.”

“그래서 모른다고?”

“그래.”

김창이 턱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모르면 지옥 생활 끝나나? 모르면 알아 와야지.”

“···장난해? 누구한테 물어보라고?”

김창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뭐 돌아다니다 보면 알 수 있겠지. 악마가 여기만 사는 것도 아니고 다른 데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어디로 가려고?”

“글쎄. 일단은 만네르헤임의 영지로 가볼까. 아무래도 이번 일을 꾸민 장본인이 있던 곳이니 뭐라도 정보가 있겠지.”

서하연도 그 의견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만네르헤임의 도시라면 어디인지 알고 있다. 여기서 노역 생활을 하면서 이리저리 들은 게 있거든.”

“다행이야. 길 가던 무고한 악마를 고문하지 않아도 돼서.”

“······그저 정말 다행이군. 그러면 저쪽으로 가자.”

“저쪽에 뭐가 있는데?”

“탈 것. 설마 걸어서 갈 생각은 아니겠지? 아, 물론 너라면 달리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지만.”

지옥에도 말이 있긴 한 모양이군. 김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하연의 뒤를 따랐다. 잠깐 걸은 후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웬 축사였다.

축사, 말 그대로 동물을 기르는 곳. 당연히 그 안에는 동물이 있었다. 지옥의 생물이라고 해서 뭔가 뒤틀린 생김새를 가졌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게 어쨌거나 말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늑대잖아.”

“지옥에선 늑대를 타고 다닌다.”

이곳의 늑대는 말만큼이나 커서 사람이 타고 다니기에 충분했다. 물론 악마가 타기엔 너무 작을 테지만.

아마 마족이나 시체 병사들이 타고 다니는 게 아닐까. 김창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늑대 한 마리를 골랐다.

“생각보다 얌전한데.”

“지옥 늑대는 자기보다 강한 존재에게 본능적으로 복종한다. 원래 그런 생물이야.”

늑대가 아무리 강해도 반신보다 강하지는 않을 테니 김창을 상대로 얌전한 강아지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일 터다.

“승차감이 나쁘지 않은데. 털이 아주 복슬복슬해.”

“나는 고양이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생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개도 나쁘지 않군.”

김창은 서하연의 쓸데없는 소리를 무시하며 고삐를 당겼다.

“이럇!”

늑대라고 해도 결국 말이랑 크게 다를 건 없어서 신호를 주자 빠르게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지옥 늑대는 강력한 근력과 지구력을 가진 생물로서 빠른 속도를 한참 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 서하연이 설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속도로 달려가면 아마 내일 새벽에는 만네르헤임의 영지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덧붙였다.

“거기 강한 악마가 많이 있어야 할 텐데······.”

달리면서 뜬금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서하연을 보면서 김창이 물었다.

“왜? 혹시나 강한 악마를 많이 죽여야 대악마가 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날 대악마로 만들려는 거면 별 의미 없는 짓 같은데. 왜냐하면 난 이미 대악마를 셋이나 죽였는데 대악마가 안 됐으니까······.”

만약 대악마를 죽인 자가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라면 김창은 진작에 대악마가 돼야 했다. 그것도 무려 셋을 죽였으니 대악마 정도가 아니라 지옥의 왕 정도는 됐어야 말이 된다.

그런데 마하칼라인을 죽이고도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대악마를 죽이는 건 새롭게 대악마가 되는 것과 아무 연관이 없음이 분명했다.

김창이 그 사실을 지적하자 서하연이 뭔 헛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대악마가 되는 건 당연히 강하고 아름다운 이 외눈의 마왕으로 정해져 있는 거 아냐?”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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