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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53화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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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이 잠깐 침묵했다가 말했다.

“내가 승천하길 바라는 사람이 그 정도로 많다고? 그것참 놀라운데. 하기야 내 인망이 좀 두터워야지.”

“···비꼬는 걸 모르는 거냐, 아니면 네가 한 번 더 비꼬는 거냐?”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서 살 이유가 있나?”

하기야 조금만 눈에 거슬리면 죄 칼로 죽여버리는 놈이니 인생이 얼마나 긍정적일까. 만네르헤임이 혼자 고개를 끄덕이는데 김창이 말했다.

“그리고 내가 승천하길 바라는 사람들한텐 좀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승천해야 할지 말지 잘 모르겠는데.”

만네르헤임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뭐? 왜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는 거냐? 너는 승천해야 한다. 이 땅의 모두를 위해서.”

그러면 그 뒤에는 뭐가 남나? 게임이야 엔딩을 보고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지만 이 세상은······.

“그 문제에 대한 답이야 나중에 알 수 있겠지. 일단은 나가자. 만네르헤임, 혹시 변신 같은 것도 할 줄 아나?”

“변신? 그거야 악마의 기본 소양 중 하나지. 그런데 그건 왜?”

“그 모습으로 지상에 나가긴 어려울 테니까.”

“흠, 그럼 새로 변신하도록 하지.”

왕에게 힘을 대부분 빼앗겼어도 새로 변신할 정도의 마력은 남은 모양이었다. 만네르헤임이 주문을 외우더니 곧 변신했다.

“아까 새로 변신한다고 안 했나?”

“왜, 새 맞잖아? 지옥의 새는 다 이렇게 생겼어.”

만네르헤임이 변신한 것은 그가 항상 보내던 눈알 모양 하수인이었다. 새로 변신한다길래 까마귀 같은 걸로 변할 줄 알았던 김창이 미간을 찡그렸다.

“네가 상처받을까 봐 줄곧 아무 말 안 했는데, 그것참 역겹게 생겼군.”

“이미 상처받았다.”

만네르헤임이 날갯짓하더니 김창의 어깨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자기가 무슨 내 하수인이라도 되나? 쫓아내려다가 그냥 두고서 지상으로 올라갔다.

왕궁을 나와 황금성이 있는 곳으로 갔더니 병사들 대부분은 싸울 의지를 잃고 도망치는 중이었다.

하기야 자신들이 믿고 섬기던 왕이 악마로 변했다가 죽은 후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대체 뭘 위해 싸워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왕에게 충성심이 넘치는 병사라고 해도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하긴 싫을 것이다.

“황금성.”

“오, 왔어? 볼일은 다 끝냈고?”

황금성이 해맑게 웃으며 주먹을 흔들었다. 그의 주먹에선 걸쭉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당연히 본인의 피는 아니고 지금껏 때려죽인 병사들의 것이었다.

그는 수많은 적을 상대로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과연 원탁의 랭킹 2위 다운 위용이었다.

김창은 바닥에 쓰러진 병사들을 가만히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아직 자리에 남은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나?”

병사 하나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냐고? 갈 리가 있나. 갑자기 웬 칼잡이가 나타나 병사들을 죄 썰어버리더니 왕은 또 악마로 변신했다가 죽음을 맞았다.

지금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그게 뭔 개소리냐고 말할 수준인데 이해가 갈 리가?

“이해가 안 가는 것 같으니 내 자세히 설명해주지. 거기 있는 놈들도 전부 이리 와.”

광장에는 병사들이 약간이지만 남아 있었는데 왕에 대한 충성심이나 왕국에 대한 애국심 때문에 이 자리에 남은 건 아니었다.

그들은 도망을 치긴 해야 하는데 두려움에 다리가 얼어붙어 이 자리에 남은 것뿐이었다. 당연히 저항 의지가 있을 리도 없어서 김창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한곳에 모였다.

그 숫자가 대략 오십 명 정도.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한 김창이 입을 열었다.

“다들 왕국이 원탁과 전쟁 중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그 싸움의 원인은 왕이 악마의 꾐에 빠져 타락했기 때문이다. 원탁은 왕국을 위해, 그리고 정의의 기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왕과 싸웠고 오늘 드디어 그 사악한 존재의 목을 잘랐다. 여기까진 이해했나?”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왕이 악마로 변신하는 걸 모두 봤기에 김창의 말을 진실로 믿었다.

물론 원탁은 왕국을 위해서 싸운 게 아니라 그냥 왕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뿐이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원탁은 왕국의 일원으로서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싸웠다. 원탁은 맹세했다. 왕국의 해방자로서, 또한 구원자로서, 너희 모두를 보호하겠노라고. 그러니 가서 전해라.”

나직한 목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이 땅의 진정한 구원자가 오리라고.”

병사들은 뭔가에 홀린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떠났다.

처음엔 오십 명이 떠들 테지만 그 후에는 원탁의 활약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늘어날 테고 몇 시간 뒤에는 왕도의 사람들 전체가 시끄럽게 떠들어댈 터다.

김창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황금성을 쳐다봤다. 그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그런 일이? 난 아무것도 몰랐네······.”

참 멍청한 친구로군. 김창이 쯧쯧 혀를 찼다.

“돌아가자. 한석구한테 전쟁 끝났다고 알리고 왕국 먹으러 가야지.”

“우리가 왕국을 먹는다고? 그래도 되나?”

“한석구의 지론에 따르면 일 못하는 깡패보다는 일 잘하는 깡패가 더 나으니까 그래도 돼.”

“그래? 그 깡패가 누군지는 몰라도 일을 참 잘하나 봐.”

김창이 황금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

“아니, 됐다. 이제 가자.”

“그래. 그런데 어깨의 그건 뭐냐? 이런 말하긴 그런데 참 역겹게 생겼네.”

“얘도 네가 말하는 거 다 알아들어. 괜히 상처 주는 말 하지 마.”

“하기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으니까······.”

그게 무슨 상관인데? 김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걷자 황금성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왕도를 나와 차원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는 동안 황금성이 실없는 소리를 자꾸만 지껄였지만 김창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무시했다.

“히야,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네.”

“이제부턴 바빠질 거다. 너 지난번에 영지 가지고 도박했었지? 이번에도 그러면 한석구한테 뒈지게 처맞을 테니까 그러지 마라.”

“걱정하지 마. 이번엔 무조건 딸 테니까.”

“하지 말란 소리다, 등신아.”

두 사람이 시답잖은 대화를 하며 차원문을 통과했다.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돌아왔네? 다 끝난 거야? 어, 그리고 황금성도······.”

차원문을 통해 돌아온 김창을 보고 반가워하던 한석구가 황금성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잔뜩 구겼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황금성이 도박 때문에 감옥에 갇히면서 원탁의 전력이 크게 줄어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김창은 한석구가 황금성을 때려죽이려는 걸 말리며 말했다.

“우리 할 일 많아. 이제 왕도에 차원문 바로 열 수 있을 테니까 정복자랑 다른 애들 데려와서 같이 넘어가.”

김창이 왕도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은 한석구가 허어 하고 탄식했다.

“왕이 악마로 변하기까지 했단 말이지? 그것도 병사들 다 보는 데서 말이야. 그럼 여론은 완전히 우리 쪽으로 기울었겠군.”

“아마 몇 시간 뒤면 왕도의 사람들 전부가 그 일에 대해 알게 될 거다. 내가 병사들한테 소문내고 다니라고 했거든. 아, 그리고 소개해줄 놈도 하나 있어.”

“갑자기 웬 소개?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설마 그 어깨 위의 역겹게 생긴 생물을 소개해주려는 건 아니겠지?”

“···역겹게 생겨서 참 미안하군, 한석구.”

만네르헤임의 목소리에 한석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만네르헤임? 뭐야, 살아 있었어? 대체 뭔 수로? 김창 저 녀석 성격이면 사지를 찢어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김창이 눈을 흘겼다.

“왕이 나 대신 죽은 덕분이지. 물론 그 탓에 이젠 난 일개 악마 수준으로 약해졌지만 그래도 살아남았으면 된 것 아니겠나. 그럼 한석구, 한동안 원탁에서 신세 좀 지도록 하지.”

“뭔 소리야? 왜 원탁에서 신세를······.”

김창이 대충 사정을 설명하자 한석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뭐······. 우리도 전후 복구하려면 인력이 많이 필요했는데 잘됐네. 일단 다들 여기서 잠깐 기다려. 다른 애들 좀 데려올 테니까.”

한석구가 차원문을 열고서 바쁘게 움직이더니 정복자와 산자이를 데리고 왔다. 두 사람 다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전과 달리 환히 웃고 있었다. 그들 모두 전쟁이 끝났음을 알게 된 덕이다.

“그럼 갈까.”

승자가 당당히 개선하듯 원탁의 사람들은 차원문을 통과해 왕도로 향했다. 광장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그들 모두는 긴장과 불안,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담은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감히 원탁을 향해 무어라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고 한석구를 필두로 한 원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

하지만 침묵은 영원하지 않았다. 구름처럼 몰린 인파 속에서 누군가 기습적으로 외쳤다.

“왕국의 구원자 만세! 원탁 만세!”

그건 김창이 미리 심어둔 끄나풀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원탁을 환영하는 지지자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외침이 긴장하고 있던 군중의 등을 떠밀었다는 건 확실했다.

우물쭈물하며 원탁의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원탁 만세! 만세!”

“사악한 왕을 죽이고 왕국을 구한 구원자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사람은 분위기에 휩쓸리는 법이고 분위기가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더욱 열정적으로 변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 그리고 왕이 실은 사악한 존재였다는 사실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며 원탁을 격렬히 환영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어디선가 꽃을 들고 와서 뿌리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원탁의 사람들 역시 얼굴을 풀고 웃었다.

그들은 여유롭게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종전의 기쁨을 함께 만끽했다.

선두에 선 한석구 역시 이리저리 손을 흔들거나 사람들과 악수했다. 인파는 많았고 성원은 열렬했다.

행렬은 아주 천천히 전진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신속히 움직일 수 없던 탓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에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간이 더 이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마법사님!”

새된 목소리는 한 아이의 것이었다. 꼬마의 작은 손에는 꽃목걸이가 들려 있었고 그걸 한석구에게 주길 원했다.

사인이나 악수를 요청하는 꼬마 팬을 만난 스포츠 스타처럼 한석구는 대단히 여유롭게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 멋진 꽃목걸이구나. 나 주려고?”

“네! 아버지한테 들었는데 원탁이 우리 왕국을 구했대요! 그럼 사악한 악마는 전부 죽은 건가요? 마법사님이 우리의 구원자인 게 맞으시죠? 정말 감사드려요!”

한석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는 얼굴 그대로 꽃목걸이를 받아 목에 걸었다. 그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건만 꼬마는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기쁘다는 듯 한석구를 향해 열렬히 손을 흔들었다.

한석구는 꼬마를 뒤로하며 왕궁으로 걸어갔다. 그가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구원자냐고? 아니, 새로운 지배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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