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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60화 (15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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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자기를 죽이고 신이 되라고? 김창이 모르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보통 이런 식으로 거저 주는 걸 날름 받아먹으면 탈이 나던데.”

김창의 의심스러운 목소리를 들은 모르스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탈이 날 게 뭐가 있나? 너는 승천할 자를 넘어선 반신이고, 늦든 빠르든 결국 신이 될 텐데. 나는 그저 그 시간을 줄여주려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네가 그걸 왜 줄여주냐고. 너 나랑 친하냐? 얼굴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네가 왜 목숨 버려가며 날 돕느냔 말이다.”

“흠, 그러면 안 되나? 오늘 얼굴 처음 보는 신이 목숨까지 버려가며 널 도우면 안 되는 일이었나?”

“당연히 안 되지. 내 장담하는데, 별 이유도 없으면서 남 돕고 다니는 녀석을 제일 조심해야 해.”

“···대체 어떤 인생을 살면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흠, 그래서 날 죽이지 않겠다고.”

김창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모르스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이건 널 시험하는 게 아니야. 네가 날 죽이지 않는다고 해서 너는 욕심이 없는 자로구나, 신이 될 자격이 있다! 이딴 소리는 안 한다고.”

“이쯤 되면 오히려 궁금해지는데. 왜 자꾸 널 죽이라는 거냐? 왜 나보고 신이 되라는 거야?”

“왜겠나?”

모르스가 주변을 보라는 듯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건 여전히 광활한 우주뿐이었다.

“여긴 아무것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이 빌어먹을 어둠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먼 별뿐이지. 그러면 우리가 이곳에서 뭘 하며 지낼 것 같나? 그 잘난 신이라는 작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궁상이나 떨고 있을 뿐이야. 신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즐겁지 않아.”

김창이 말했다.

“내 알기로 보통 신은 지상을 내려보는 걸 낙으로 삼지 않나? 때때로 신탁을 내리고 화신을 부려 그들이 모험하는 걸 즐기는 걸로 아는데.”

“가끔 그러지. 너무 심심하다 못해 미쳐버릴 지경이 되면. 그런데 그거 아나? 게임은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게 더 재밌어.”

게임? 신의 입에서 나올 만한 단어는 아니다. 김창이 두 눈을 부릅뜨고 모르스를 쳐다보자 그가 하하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일개 필멸자에서 승천자가 된 몸이고, 전지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신은 신이야. 너희 이방인들이 이 세상에 들어옴으로써 나는 너희들이 가진 지식을 얻게 되었다. 나는 게임이라는 걸 해본 적은 없지만 그게 뭔지는 알아.”

그럴 수가 있나? 하기야 신이니까 영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의 입에서 게임이라는 말이 나오니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인류가 신화 속의 제우스나 토르 따위를 직접 만났는데 게임이 어쩌고 유튜브가 어쩌고 하면 참으로 당황스러울 것 아닌가.

그러나 모르스는 김창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할 말을 할 뿐이었다.

“인터넷 방송이라고 하던가? 개중에는 직접 게임을 하기보다는 방송을 보는 걸 즐기는 자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게임이라는 건 직접 할 때 더욱 재미가 있는 법이지. 나 역시 그러하다. 신탁을 내리고 화신을 부려 지상의 일에 개입하는 것도 물론 재밌어. 하지만 화신은 결국 내가 아니야. 그게 지상에서 활약하면 할수록 오히려 내가 지상에서 날뛰었던 때가 떠올라서 우울해질 뿐이지.”

“···우리 세상의 일에 대해서 잘 알아서 당황스러운데.”

“조금 더 덧붙이자면, 방치형 오토 사냥 게임은 게임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과 비슷한 거야. 그 왜 그건 게임이 아니라 사이버 분재라는 말도 있잖나. 화신을 부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건 그냥 내 캐릭터가 알아서 성장하는 걸 지켜보기만 할 뿐이니 그냥 분재 키우기랑 다를 게 없어.”

이게 신이 맞나? 김창은 모르스가 말을 하면 할수록 신이 가진 위엄이 차츰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거 우리 세상에 갖다 두면 매일 같이 게임으로 밤을 지새웠겠는데.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찬 뒤에 말했다.

“그래서 하려는 말이 뭐냐? 왜 나보고 자꾸 신이 되라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여긴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신탁과 화신으로 지상에 개입하여 그들의 모험을 보는 것뿐이지. 하지만 그것도 질릴 대로 질려버렸어.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지루한 일상에 미쳐버리기 직전이야. 그런데 더 끔찍한 일이 뭔지 아나? 나는 신이라서 미쳐버릴 수도 없다는 거지!”

반신의 격에 오른 김창은 자신의 육체가 일반적인 인간의 것과 다르다는 걸 안다. 겨우 반쪽짜리 신도 그러할진대 온전한 신은 어떨 것인가?

그들의 육신과 정신은 인간의 것을 초월하여 신격에 올랐다. 세상에 미쳐버리는 신은 없다. 미친 척을 하는 신은 있어도.

“그러니 제발 날 죽여다오. 날 죽이고 신이 돼.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겠지만 너에게는 해야겠다. 넌 날 죽일 자격이 있어.”

“신을 죽이는데도 자격이 필요하나?”

“너만큼 죽음의 신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내가 지금껏 여러 승천할 자를 봤지만 너처럼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죽이고 다니는 놈은 처음 봤다. 무슨 개백정도 아니고 죽음의 신인 나조차도 깜짝 놀랄 만한······.”

칭찬이야, 욕이야? 김창이 눈을 부라리자 모르스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어쨌건 넌 죽음의 신이 돼야 한다. 내가 죽으면 그 자리가 빌 테고 누군가는 내 역할을 대신해야 할 테니까.”

“만약 내가 널 죽이고 네 자리를 대신한다면, 그럼 너는 어찌 되지?”

모르스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신으로서의 미소가 아니라 인간의 미소였다. 그는 그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는 듯 가만히 웃고 있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의 신으로서, 진정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지. 망각의 축복 속에서 길고 긴 잠에 빠져들게 될 테야······.”

모르스는 그 미래가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듯 쭉 웃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창이 물었다.

“하나 묻겠는데, 네가 죽고 나면 내가 그 역할을 다 떠맡아야 하는 것 아닌가? 네가 말한 대로 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다른 신들과 궁상이나 떨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론 그러하지.”

“···그런데 내가 널 죽이고 신의 자리를 이으리라 생각하는 거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딴 소리를 듣고 네 부탁을 수락할 리가 없잖아. 아니면 뭐 황제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이라도 할 셈이냐? 미안하지만 난 일면식도 없는 황제를 위해서 날 희생할 생각은 없다. 그딴 걸로 협박해봐야 별 소용 없다는 뜻이야.”

“당연히 수락하지 않겠지. 그리고 난 황제의 목숨으로 협박할 생각도 없어. 황제의 수명은 이미 늘려뒀다. 다시 뺏을 생각도 없어.”

“그럼 왜 그런 말을 한 거냐? 내가 죽음의 신이 되길 원한다면 그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다 집어치우고 날 속였어야지.”

“왜 그랬냐고? 너에겐 선택권이 없으니까.”

모르스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김창과 똑같은 검은색 눈 안에 담긴 것은 지독한 허무였다. 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셀 수도 없이 긴 세월을 보낸 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허무.

“내가 아까도 말했지. 너처럼 쉴 새 없이 뭔가를 죽이고 다니는 놈은 처음 봤다고. 지금까지 네가 죽인 게 몇 명이었더라? 대악마를 셋이나 죽였고, 용을 죽였고, 승천할 자를 셋 죽였지. 심지어 그중 하나는 천 년 전의 승천할 자가 아니었나? 네가 없었다면 응당 신이 돼야 했을 강력한 승천할 자였지.”

확실히 요안니스는 강했다. 승천할 자를 넘어선 반신이었으니까.

“내가 한 가지 말해줄까? 보통 승천할 자는 끽해야 승천할 자 둘 정도를 죽이는 게 끝이야. 그 정도만 해도 신이 되기엔 충분하다고.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신이 됐지. 그런데 넌? 지금 모은 네 신성의 양이 얼마나 되는 줄 아나?”

“몰라. 좀 많나?”

“좀이 아니라 엄청 많지. 그 정도 양이면 진작 신이 됐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런데도 네가 신이 되지 않은 건 승천자의 규율 때문이야.”

“한 명을 제외하고 모든 승천자가 죽거나 신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그거?”

“그래. 아직 남은 승천자가 있기 때문에 네가 신이 되지 않았을 뿐, 너는 원래라면 신이 돼야 했다. 그러니 내가 뭔 말을 하는지 알겠나? 넌 결국 신이 될 운명이야. 그리고 이 우주 속에서 미치지도 못하고 영원을 곱씹어야겠지!”

모르스의 두 눈에서 불길이 일렁였다. 그건 길 잃은 분노였다. 화가 나지만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자의 분노.

김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모르스는 그 모습을 보고서 비웃음을 흘렸다.

“이제 네 처지를 알겠나? 우주라는 감옥 속에서 궁상이나 떨고 있을 각오는 됐어?”

김창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있었고 모르스는 성난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신들도 다들 기뻐하겠군. 너라는 새 친구가 생겼으니 말이야. 네가 있으면 한 백 년 정도는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백 년이라고 하면 길어 보이지만 우리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 우주에선 시간 감각도 이상해지거든. 내가 선배로서 하나 팁을 주자면 미칠 것 같을 땐 별을 세봐. 은근히 재미있거든.”

“하나 묻겠는데, 다른 신들도 다 너랑 똑같나?”

드디어 입을 연 김창을 보고서 모르스가 대답했다.

“다 나처럼 돌아버렸냐고?”

“그래.”

“돌아버린 놈도 있고 아닌 놈도 있고.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길면 길수록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어지는데 사실 그건 정신력의 문제라서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짧아도 맛이 가버린 놈도 있어.”

“그러면 그 신이라는 놈들 전부 필멸자 출신이라는 거군?”

“그게······.”

“내가 그놈들 죄 죽여봤자 별 소용없는 짓일 테고?”

모르스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신을 다 죽여선 안 돼! 우린 이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다. 사실 하는 건 별로 없지만······.”

“신을 다 죽이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나?”

“나는 죽음의 신이다. 날 죽이면 세상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이 사라지지. 그럼 아마 지상엔 시체가 득실거리게 될걸.”

“태양신을 죽이면 태양이 사라지겠군?”

“아마도? 어쩌면 낮이라는 개념이 사라질수도 있지. 나도 태양신을 죽여본 적은 없어서.”

“그럼 신을 죽이는 것만으론 안 된다는 건가.”

김창이 뭘 하려는 건진 몰라도 제대로 된 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모르스는 김창의 눈치를 보다가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실은 모든 신이 우리와 같은 승천자인 건 아니야. 필멸자에서 승천자가 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신이었던 존재가 있긴 해.”

“그런 게 있다고? 그게 누구냐.”

“그건··· 우리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그것이 스스로 존재하는 신이라는 것뿐이야. 엄밀히 말해서 우리는 신이 아니라 그 존재에 의해 신의 역할을 나누어 받은 거지.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신은 그 하나뿐이야.”

모르스가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세상에서 죽음을 없앨 수 있고, 태양을 없앨 수 있고, 온갖 종류의 개념을 없앨 수 있어. 그리고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킬 수도 있지. 이 세상은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변혁을 반복하는······.”

“뭔 소린지 이해했다.”

“뭘?”

“그러니까 요는 그 신이라는 양반을 죽이면 끝난다는 거 아니야?”

끝나기야 하겠지. 이 세상이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김창, 신이라는 건 칼 찌른다고 죽는 존재가 아니야.”

“이제부턴 칼 찌르면 죽는다. 알겠나?”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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