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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스는 속으로 욕을 하면서 혹시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김창이 정말 신을 죽인다면 이 세상은 어찌 될 것인가? 자신과 같은 승천자가 아니라 태초부터 스스로 존재하던 신을 죽인다면 과연 이 세상이 온존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각 개념을 담당하는 승천자가 죽으면 그 개념은 사라지고 만다. 당연한 말이지만 태양이나 죽음 같은 것이 사라지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지고 말 터다.
일개 승천자의 죽음조차 세상에 막대한 혼란을 초래할진대 세상의 근간이 되는 진짜 신은 어떨 것인가?
모르스는 지금껏 김창이 해온 일들을 알고 있다.
그는 승천할 자치고 과도할 정도로 많은 적을 죽여왔으며 그럴 때마다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미 승천을 해도 차고 넘칠 만큼의 신성을 가지고 있는데다 아직도 싸울 상대가 더 남아 있다.
김창이 모든 싸움을 끝내고 승천한다면 그는 다른 승천자들을 압도할 만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고 정말로 신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그와 싸워야 하나? 내가 저 무시무시한 칼잡이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어쨌건 싸우다 죽을 수 있으니 기꺼이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나의 죽음이지, 세상이 망하는 게 아닌데······.
“야.”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모르스가 상념에서 깼다. 그가 신답지 않은 멍청한 목소리로 답했다.
“으, 으응?”
“뭘 멍하니 있어. 문 열어. 나 돌아가야 해.”
모르스는 순간 김창을 그냥 보내도 될지 고민스러웠다. 죽고 나면 다 끝이니 세상이 어찌 되든 알 바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이라는 작자가 세상 망하게 그냥 둘 수는 없지 않나.
‘생각해보니 신이 딜루키둠 가문에 신탁을 내린 적이 있었지. 어둠이 오리라고, 그땐 그게 대악마나 그런 놈들을 말하는 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그게 아니라 이 녀석이었을지도······.’
확실히 김창 정도면 세상에 어둠을 몰고 올 만한 존재다. 이 녀석은 뭔가 이유가 있어서 신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그냥 게임 보스를 죽인다는 생각으로 신을 죽이려는 놈이지 않나.
“뭐해? 문 열라고. 아니면 내가 열고 나갈까?”
모르스는 잠깐 고민하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올지도 모르지. 변혁은 항상 파괴를 동반하는 법이니까.’
승천자는 신이지만 전지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다. 죽음의 신조차 이제부터 있을 일을 전부 알 수는 없었다.
수레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게 어디로 향할지는 몰라도 모르스가 막을 일은 아니었다.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잘 가라, 김창. 다시 보진 말고.”
모르스의 인사와 함께 김창의 영혼이 다시 제 육체를 찾아갔다.
* * *
“퉤.”
눈을 뜬 김창은 얼굴을 찡그리며 입 안에 들어간 모래를 뱉어냈다.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가 우주로 날아가면서 껍데기만 남은 몸이 얼굴부터 쓰러져 바닥에 처박혀 있던 탓이다.
그는 연신 퉤퉤 소리를 내며 침을 뱉다가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주변을 둘러보니 보이는 건 한 무더기의 재와 목 잘려 죽은 바르토시스의 시체였다.
승천할 자야 죽으면 신성을 주고 끝이지만 용은 그것 말고도 챙길 게 많지 않나? 단단한 비늘이며 두꺼운 뼈, 그리고 그 피까지 마법 연구에 사용할 수 있으니 버릴 것이 없다.
하지만 혼자서 그 모든 걸 가져갈 수는 없으니 일단 원탁으로 돌아간 뒤에 한석구에게 용의 시체를 챙겨가자고 말해야 할 터다.
“그래도 일단 심장은 챙겨갈까.”
용은 강력한 마법사고 그 심장은 강대한 마력을 머금고 있다. 그 왜 소설 같은 걸 보면 주인공이 용의 심장을 먹고 막대한 양의 마력을 얻게 되지 않나.
물론 김창은 마법사가 아니니 용의 심장을 먹어봤자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 값어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건 알았다.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무시무시한 싸움을 보고서도 감히 용의 시체에 손을 댈 간 큰 놈은 없겠지만 일단은 미리 챙겨두는 게 나을 듯했다.
김창은 바닥에 떨어진 칼 두 자루를 챙긴 뒤에 바르토시스의 몸에 꽂았다.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된 용의 몸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침입자를 받아들였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칼날이 용의 배를 가르고 그 안에 담긴 근육과 뼈, 그리고 장기들을 모두 잘라냈다.
용의 덩치가 워낙 큰 탓에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동굴 속을 탐험하는 느낌이었다.
김창은 벼락의 힘으로 주변을 밝히고선 바르토시스의 뱃속을 돌아다녔다. 대충 이쪽이겠지 하면서 몸 안을 난도질하고 다니던 그는 곧 심장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이건······.”
붉은빛이 보였다. 벼락보다도 더 밝게 빛나고 있는 그것은 두꺼운 근육 조직 속에 감싸여 있었는데 그걸 본 김창이 약간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심장이 아니었다. 붉게 빛나고 있는 그것은 주먹만 한 보석이었는데 그 아래에 진짜 심장이 있었다.
아무래도 용의 심장은 생명 활동을 위한 장기로서의 심장과 마력 창고 역할을 하는 심장이 따로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용 정도 되면 심장이 아주 클 텐데 그걸 전부 다 먹어 치우려면 상당히 배가 부를 것이다.
김창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붉은 보석을 뜯어냈다. 그걸 손에 쥐는 순간 갑작스레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이게 뭔······.”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하늘을 날고 있는 용들이 보였다. 창공의 지배자답게 거대한 날개를 힘차게 휘두르며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은 확실히 장관이었으나 김창으로선 당황스럽기만 했다.
‘심장에 공간 이동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건가? 그래서 심장을 손에 쥐는 순간 용들의 서식지로 날아가게 되는······.’
동족을 죽인 적을 위험에 빠트리기 위한 함정이라면 확실히 효과적이다. 그러나 김창은 이게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걸 곧 깨달았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용의 심장에 담긴 바르토시스의 기억이다.
‘끼아아아악!’
용들이 날아가고 있다. 정확히 말해서 그들은 도망치고 있다. 자신들의 뒤를 쫓는 무자비한 학살자로부터.
‘크아아아아악!’
도망치던 용들이 하나둘씩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동족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학살자와 맞서 싸우고 있던 용들은 끔찍한 비명과 함께 숨이 끊어졌다.
그 모습을 본 나머지 용들은 더 다급히 날갯짓했지만 학살자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다.
기어코 학살자가 용 한 마리를 남기고 모두 죽였다. 그리고 남은 용 하나도 아래로 떨어져 학살자의 발밑에 깔렸다.
‘이걸로 마지막인가. 용은 손이 귀하지. 어린 용들을 죄 죽였으니 이제 용의 혈통은 끊어진 거나 다름없다고 봐야 하나.’
학살자가 혼자서 중얼거리는데 바닥에 쓰러진 용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너는 원래 용기사가 아니었나? 인간 중에서 처음으로 용과 친구가 되어 함께 전장을 누비던······.’
‘한때 그랬지. 하지만 이젠 아니야.’
‘어째서?’
학살자가 웃었다.
‘용기사로서 용과 함께 싸우는 것보다 용을 죽이고 그 힘을 흡수하는 게 더 강하다는 걸 알아버렸거든. 들어라, 나는 이제 용기사가 아니다.’
콰직! 학살자의 창이 용의 목을 꿰뚫었다.
‘용살자다.’
목에 창이 박힌 용이 켁켁 소리를 내며 말했다.
‘긴 세월을 살아온 고룡과는 싸울 자신이 없어 어린 용들이나 학살하고 다닌 주제에······.’
학살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창을 뽑자 용의 목이 축 늘어지며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그리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기억 역시 거기서 끊겼다.
“이런 씹, 이건 또 뭐야?”
강제로 재생된 기억 속에서 벗어난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찼다. 기억 속에서 바르토시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이건 그의 기억은 아닐 터였다.
어쩌면 학살의 범인을 찾기 위해 그 장소의 기억을 마법으로 긁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이 기억이 언제의 것이냐는 거다. 용은 요정 이상으로 오래 살기에 만약 이 기억이 고대의 것이라면 김창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리 오래전의 기억이 아니라면? 아직도 용살자가 멀쩡히 살아있다면?
“남은 승천할 자는 둘.”
아무리 경험 적고 약한 어린 용이라고 해도 그걸 학살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는 승천할 자 외에는 없다.
만약 이게 먼 옛날의 기억이 아니라고 한다면 둘 중 한 명은 용살자일 것이다.
‘어린 용이라고 해도 용은 용. 저만한 숫자를 학살하고 힘을 흡수했다면 그 양이 상당할 것 같은데.’
용을 죽이면 신성을 얻을 수 있고 또 심장을 통해 강대한 마력을 흡수할 수 있다. 아무리 어린 용을 죽였다고 하더라도 저만큼 많은 숫자를 죽이면 용살자가 얻은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리라.
‘어쩌면 감옥 안의 요안니스를 죽였던 것도······.’
천 년을 기다려 신좌에 도전했던 반신 요안니스. 그는 김창에게 지고서 딜루키둠 가문의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딜루키둠 가문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감옥 속에 잠입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요안니스를 죽이고 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젠가 만나겠군.”
김창은 혼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손에 쥐고 있던 보석을 쳐다봤다.
아까까진 밝게 빛나고 있던 것이 지금은 빛 잃은 돌멩이가 되고 말았다. 이거 왜 이래? 김창이 두 눈을 부릅뜨는데 몸 안에서 기이한 열기가 느껴졌다.
마치 내면 안에서 용이 불꽃을 내뿜고 있는 것만 같다. 반신으로서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몸이 뜨거워졌다는 건 확실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열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테지만 김창은 버텼다. 흘끔 손등을 보니 거기서 김 같은 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거 뭐 갑자기 병이라도 난 건가? 김창은 당황하는 대신에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병에 걸린 건 아니다.
뭔가가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김창은 잠깐 눈을 감고서 내면의 불꽃을 진정시키려 했다. 불꽃은 용의 형상을 취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있었는데 손을 뻗어 그 모가지를 비트니 그제야 잠잠해졌다.
그 후로 몸에서 솟아오르던 김도 사라졌으며 영문 모를 열기도 가셨다. 김창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며 말했다.
“힘을 흡수한 건가? 하지만 난 마법사가 아니라서 마력이 늘어나봤자 별 도움이 안 되는데.”
김창은 칼잡이다. 영에 아무리 큰 수를 곱해봤자 결과는 여전히 영일 뿐이다. 용의 심장이 구하기 힘든 물건임을 생각하면 이건 확실히 낭비다.
원래라면 한석구나 김용걸에게 주려고 했던 물건인데 이런 식으로 날려 먹고 말았으니 입맛이 썼다.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차며 머리를 긁적일 때였다.
화르륵!
손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