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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62화 (16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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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뭐야?”

김창은 자신의 손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멀뚱히 쳐다봤다. 처음에는 잘못 봤나 했는데 아무리 봐도 진짜 불꽃이었다.

자신은 이미 벼락을 다룰 수 있으니 몸에서 불꽃이 나온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당황스럽지 않나.

벼락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반신이 되면서 얻은 힘인데 그럼 불꽃은 뭔가? 용을 죽이고 심장의 힘을 흡수한 덕인가?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효과가 있긴 한 모양이군.”

하기야 바르토시스의 기억 속에 나왔던 용살자 역시 마법사는 아니었음에도 어린 용들을 학살하며 그 힘을 흡수했다.

마법사만 용의 심장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용살자는 굳이 어린 용들을 학살하고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을 죽임으로써 신성을 얻을 수 있다지만 들이는 수고에 비해서 그 양이 그리 많진 않을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대악마나 다른 승천할 자와 싸우는 게 더 많은 양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건 용의 심장을 취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휴먼 토치가 됐는걸.”

손에서 불꽃이 나간다니. 철없는 남자애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일이 아닌가. 어쩌면 벼락의 화신으로 변할 때처럼 불꽃의 화신으로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승천하여 신이 되면 벼락의 신이나 죽음의 신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이러면 벼락과 불꽃의 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창은 실없는 생각을 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검지 끝에서 불꽃이 타올랐다가 후 하는 입김에 도로 꺼졌다.

불꽃을 다루는 법을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벼락을 다룰 때와 비슷한 감각으로 접근하니 사용법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곤 성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이기셨군요!”

성문에는 원탁에서 돌아온 심민우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김창 역시 가볍게 손을 흔들고선 말했다.

“황금성은?”

“사제들이 상태를 보고 있어요. 많이 다치긴 했는데 워낙 몸이 튼튼해서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던데요. 혹시 몰라서 신전에 도움을 요청하긴 했는데 이번에는 받아줄지 모르겠네요. 이번에도 안 받아주면 정 선생님이 신전 찾아간다고 하긴 하던데.”

“그러냐. 그럼 일단 돌아가자. 한석구한테 보고할 일도 있으니까.”

“그럼 바로 차원문 열게요.”

심민우가 능숙하게 차원문을 열고서 얼른 들어가라는 듯 손짓했다. 바로 차원문을 통과하려던 김창이 문득 물었다.

“너는 안 가나?”

“전 국경 지대의 혼란을 수습해야 해서 잠깐 여기 머물러야 합니다. 황 선생님이 쓰러져서 지휘권의 공백이 생겼으니까요. 여기 있다가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래? 너도 참 고생이 많구나. 수고해라.”

김창이 대충 손을 흔들고서 차원문을 통과했다. 왕궁으로 돌아가자 한석구가 반겼다.

“빨리 왔네? 문제는 다 해결했고?”

“그래. 그런데 같이 있는 놈은······.”

집무실에 있던 건 한석구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던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자식아.”

“김용걸, 몸은 다 회복된 거냐?”

김용걸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래. 네가 정우신을 잡은 덕분에 해독제를 만들 수 있었다지? 내가 살다 살다 너한테 고맙다고 말할 날이 올지는 몰랐네. 존나 고맙다, 새끼야.”

진짜 고마운 거 맞나? 김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김용걸이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서 해독 마법 같은 걸 만들려고. 난 지금껏 게임 속 스킬만 써왔으니까 마법 만드는 법은 모르는데 그건 마탑 애들한테 도움 좀 받으면 되겠지.”

김용걸이 이번에 독에 호되게 당하긴 한 모양이었다. 정우신이 죽었으니 이제 그 정도로 강한 독을 다루는 사람은 없을 텐데도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그러던가.”

“석구한테 듣자 하니 네가 이래저래 고생이 많았다며? 이번에도 황금성 그 새끼가 싼 똥 치우러 갔다던데.”

김창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김용걸이 흐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난 지금까지 우리를 죽일 수 있는 건 우리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지? 황금성 그 새끼도 좀 치는 놈이잖아. 그런데 당했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세상은 넓고 강한 놈은 많네.”

“내 장담하는데 그 새끼 그거 쓸데없이 마력 중첩 10연속 같은 거 하다가 다 터져서 처맞았을걸. 그거 안 했으면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는 않았어.”

고점의 황금성은 강하다. 반대로 저점의 황금성은 누가 와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약하다.

아슬란은 강한 상대지만 황금성의 고점이 터졌다면 제법 할 만한 싸움이 됐으리라. 그런데도 아슬란에게 아무런 상처도 내지 못하고 쓰러진 걸 보면 쓸데없이 마력 중첩이나 하다가 진 게 분명하다.

“그런가? 뭐 어쨌든 이겼으면 됐지.”

김용걸이 어깨를 으쓱였다. 김창은 한석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원탁에서 놀고 있는 애들 있나? 사람 좀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왜? 국경 지대의 부상자 수습해야 해서? 그거라면 민우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그게 아니라 뭘 좀 옮겨야 해서.”

“뭘 옮기는데?”

“용.”

뜬금없는 소리에 한석구가 눈을 끔뻑였다.

“용? 드래곤? 하늘 나는 그거?”

“그래, 그거. 갑자기 그게 나타나서 까불길래 같이 죽였다. 내가 알기로 용의 시체는 돈이 제법 된다던데 가져오면 어디다 써먹을 데가 있지 않겠냐?”

“그것참 당황스러운 이야기네······. 갑자기 용이 왜 나타났는진 모르겠지만 어쨌건 그 시체가 돈이 되는 건 맞아. 부산물로 이것저것 만들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애들 시켜서 그거 가져오자고?”

“그래. 통째로 들고 올 수는 없으니까 거기서 부위별로 해체한 후에 가져와야 할 거다.”

“용 머리는 광장에 가져와서 걸어두면 아주 멋있겠는데. 그거 보면 사람들도 우리 왕국이 이 정도로 강하구나 하고 환호하지 않겠어?”

그딴 거 가져다 두면 다들 놀라서 광장 근처에도 안 갈 것 같은데. 김창이 그 말은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줄곧 가만히 있던 김용걸이 말했다.

“석구야, 용 시체 처리하는 건 내가 할게. 일꾼만 좀 많이 붙여줘.”

“네가 하게?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리 안 해도 돼.”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김창이 김용걸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말하는 거 보니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뭘 하려고 그래?”

“꿍꿍이가 있다니. 말이 좀 심하네. 그냥 내 개인적인 호기심일 뿐이야.”

“석구가 그런 말을 했으면 나도 별 신경 안 썼겠는데 흑마법사인 네가 그러니까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데.”

“아니, 흑마법사가 뭐 어때서? 검은 건 전부 악하다는 말을 하려는 건가? 그거 직업 차별이야.”

그 정도까진 말 안 했는데. 김창이 어깨를 으쓱이자 김용걸이 크흠 소리를 내며 말했다.

“날 의심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왕국과 원탁에는 절대 해가 없도록 할게. 내 맹세하지.”

김창이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자 한석구가 중재하러 끼어들었다.

“자자, 둘 다 그만하고. 용걸이가 저리 말하는데 알아서 하겠지. 나도 굳이 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고. 그럼 용걸아, 그 일은 네게 맡길게.”

“고맙다. 믿음에 보답하도록 하지. 그럼 나는 마탑 애들 데리고 국경으로 갈 테니까 그쪽으로 일꾼들 보내줘.”

김용걸이 다급히 차원문을 통해 사라졌다. 저거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김창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차원문을 보다가 한석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아직 할 말 남았는데.”

“또? 갑자기 용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인가?”

“어떤 면에선 그럴 수 있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민우가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제국의 습격자는 단 한 명이었다. 혼자서 황금성을 쓰러트리고 국경을 엉망으로 만들었지.”

한석구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참 놀랍군. 제국은 넓으니 그만한 실력자가 한 명 정도는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군대를 끌고 온 것도 아니고 정말 혼자였다고? 하지만 결국 네 손에 죽었으니 문제는 해결된 것 아닌가?”

“우리 문제는 해결됐지. 다만 저쪽의 문제는 복잡해졌고.”

“저쪽? 제국 말이야?”

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습격자의 이름은 아슬란이다. 제국의 황족이며 또한 섭정왕이기도 하지.”

“황족이자 섭정이 죽었으니 확실히 제국에 큰 혼란이 있긴 하겠군. 그래서?”

“지금의 황제는 아슬란의 조카다. 나한테 죽기 전에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던데 그건 신경 쓸 것 없고, 중요한 건 아슬란이 조카를 몹시 아꼈다는 사실이야.”

“그것도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볼 때 황제의 정치적 입지는 굉장히 불안정해. 어리고 병약한데다 아슬란이 억지로 만든 황제기 때문에 정통성도 부족하다. 그런 상황인데 후견인 역할을 하던 아슬란이 죽었다면?”

“이젠 황제의 입지가 굉장히 좁아지겠군. 뒤를 봐줄 다른 세력이 있는 게 아닌 이상은 말이야.”

“게다가 황제는 현재 병에 걸려 있다. 그 어머니 역시 같은 병으로 일찍 죽었으니 황제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되겠지.”

물론 지금의 황제는 죽음의 신 덕분에 수명이 크게 늘어난 상태였다. 하지만 병이 치유된 것은 아니라 여전히 병마로 고생하고 있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귀족들 입장에선 어리고 병약한 황제를 굳이 모시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승천할 자라 감히 건드릴 수도 없었던 아슬란이 죽고 없는 상황이 아닌가?

제국의 위기를 명분으로 제위를 갈아치우려 한다면 힘없는 황제가 어찌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그저 황제를 바꾸기만 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다행인 일이다. 보통 이런 식으로 끌어 내려진 황제는 혹시 모를 반역에 대비하기 위해 목숨을 잃는 법이다.

그런 결말이 나는 건 김창으로서도 기꺼운 일이 아니었다. 황제가 죽어버리면 대체 뭘 위해서 우주까지 날아가서 그 짓거리를 했단 말인가?

“그래서 하려는 말이 뭐야? 솔직히 말해서 내 입장에선 제국의 황제가 제위에서 내려오든 말든 상관없어. 더 심하게 말해서 황제가 죽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오히려 그건 우리 입장에서 기뻐해야 할 일이잖아. 왕국엔 원탁이 있지만 그래도 제국은 거대하고 강하니까. 그치들이 약해지면 우리로선 두 손 들고 환영해야 할 일이지. 아니면 너 설마······.”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참 낯부끄럽군. 하지만 필요한 일이니까 말이야. 그래, 나는 제국으로 갈 생각이다. 그리고······.”

“너 설마 제국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거기까지 먹어버리려는 거냐? 무서운 녀석······. 아직 나도 그 정도 생각까진 안 했는데. 지금 그거 처먹으면 배 터져, 인마.”

나도 그런 생각 안 했어. 김창이 뚱한 얼굴로 한석구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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