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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67화 (16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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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이 성큼성큼 다가가자 헤이먼스 후작이 몸을 움찔했다. 그는 김창이 섭정왕 아슬란을 이긴 강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당연히 저 남자와 정면에서 맞붙는다면 이쪽에는 승률이 없음이 분명했다. 그러니 바보가 아닌 이상 김창에게 달려들어선 안 된다.

“죽어라, 황제!”

헤이먼스 후작은 자신을 방해하는 근위대를 날려버리곤 곧장 황제를 향해 달렸다. 어린 황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몸이 얼어붙어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후작의 손에서 반짝이는 불길한 빛이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움직이며 황제를 향해 날아갔다. 언뜻 검은 벼락처럼 보이는 그것은 연약한 어린아이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으리라.

“이걸로 끝······.”

황제를 향해 날아가는 검은 벼락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려던 헤이먼스 후작의 몸이 굳었다. 그는 빠르게 날아가던 검은 벼락이 누군가의 손에 붙잡힌 걸 봤다.

저건 일종의 마법이고 그 위력 역시 사람 하나를 분쇄해버릴 수 있을 만하다. 그런데 저걸 마법으로 막아낸 것도 아니고 손으로 붙잡았다고?

후작은 남자의 손아귀 속에서 발버둥 치는 검은 벼락이 힘없이 사라지는 걸 가만히 쳐다봤다.

그건 확실히 그의 실수였다. 그런 식으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됐다. 빠르게 공격을 이어나갔다면 황제를 죽일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갔을 텐데.

“머릿속으로 뭔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이는군. 이 녀석은 뭔데 맨손으로 벼락을 붙잡느냐고 생각하겠지?”

과연 그 말대로다. 이 새낀 대체 뭔데 저런 짓을 하지? 헤이먼스 후작이 당황스러워 하는 가운데 그의 얼굴에 묵직한 주먹이 꽂혔다.

“크억!”

이가 부러지고 입 안이 찢어져 피가 줄줄 흘렀다. 헤이먼스 후작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자신에게 주먹을 날린 김창을 쳐다봤다.

상황이 상황인데도 여전히 무심한 시선이다. 공허하다 못해 무기질적인 그 눈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약속을 어긴 정신 나간 놈. 뭐가 어쩌고 어째? 황제를 죽이겠다고 직접 말한 적이 없으니 의뢰를 받은 게 아니야?

그냥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주제에 뭔 개소리야. 헤이먼스 후작은 끓어오르는 분노 탓에 점차 몸이 뜨거워졌다.

마치 열병을 앓는 것처럼 뜨거워진 머리는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했고 오로지 분노에 몸을 맡기게 했다.

그는 퉤 하고 피와 함께 침을 뱉어내고선 주머니 속으로 손을 옮겼다. 그 안에서 작은 돌멩이 같은 것이 여러 개 만져졌다.

“덤비려고? 내 충고하는데 그냥 이대로 자수하는 게 나을 거다. 진심으로 하는 충고야.”

김창의 말을 들은 헤이먼스 후작이 이를 부득 갈았다.

“자수하라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런다고 내 목숨을 건질 수도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야!”

헤이먼스 후작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그의 손아귀에는 반짝이는 돌멩이 몇 개가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서 수상쩍은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물건의 정체를 바로 알아본 건 아우스트 공이었다.

“그건 마석? 헤이먼스 후작, 마법사도 아닌 네놈이 어찌 마법을 쓰나 했더니 그런 거였나?”

“잘 봐라, 늙은이. 진짜 마법은 이런 거니까!”

헤이먼스 후작이 주먹을 꽉 쥐자 손에 들려 있던 마석이 유리 깨지듯 박살 나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마석 안에 들어 있던 마력은 회오리치듯 헤이먼스 후작의 몸 주변을 배회하다가 그대로 입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영혼이라도 흡수하는 듯한 그 모습에 알현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헤이먼스 후작의 두 눈이 붉어지고 몸에선 불길한 기운이 사납게 휘몰아쳤다. 아우스트 공이 다급히 외쳤다.

“근위대! 황제를 데리고 도망쳐라! 얼른!”

그 말에 멍하니 있던 근위대의 병사들이 몸을 움직였다. 그들이 황제를 데리고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걸 헤이먼스 후작 역시 보고서 그쪽을 향해 마법을 날렸으나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인 아우스트 공 덕분에 허사로 돌아갔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 끝까지 날 방해하는군! 언제부터 그리 황제에 대한 충심이 넘쳤나?”

“이 어리석은 놈아······. 황제를 지키는 게 아니야. 아이를 지키는 거다.”

아우스트 공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쿨럭쿨럭 기침했다. 헤이먼스 후작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참 우스운 소리를 하는군! 됐다! 너부터 죽여주마!”

헤이먼스 후작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아우스트 공을 향해 마법을 날리려고 할 때였다.

쿵! 마치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헤이먼스 후작의 고개가 크게 돌아갔다. 그대로 목이 부러져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위력이었다.

“야.”

쿨럭쿨럭 기침하며 피를 뱉어내던 헤이먼스 후작이 억지로 고개를 돌려 김창을 쳐다봤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덤벼.”

“······그래, 내 상대는 너였지. 죽여주마!”

마석을 통해 얻은 강대한 양의 마력은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강해졌든 김창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마치 두려움이 거세된 광전사처럼 겁도 없이 달려들게 되었다.

“무기도 없는 놈이 뭘 할 수 있는지 한 번 볼까?”

김창은 지금 맨손이다. 칼잡이가 칼이 없으니 당연히 약해졌으리라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사고긴 했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는.

“내가 아까 충고한 걸 좀 오해한 모양인데.”

쾅! 묵직한 주먹이 검은 벼락을 부수고 헤이먼스 후작의 얼굴을 그대로 꽂혔다. 후작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다음 공격이 또 얼굴에 꽂혔다.

“내 말은 어차피 죽을 거 나한테 처맞고 반병신 되기 전에 자수하라는 소리였다.”

쾅! 쾅! 연달아 울리는 타격음에 헤이먼스 후작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덩이가 부어서 시야가 흐려지고 코뼈가 부러져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인간을 초월한 근력으로 후려치는 주먹은 아무리 마석의 힘을 흡수했다고 해서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겨우 몇 대 얻어맞았을 뿐인데 헤이먼스 후작의 몸은 이미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얻어맞다가 죽음의 공포에 몸을 떨었다.

이대로면 죽는다. 나는 아직 죽기 싫어······.

원래 죽음을 각오했다는 놈일수록 죽음에 민감한 법이다. 죽어도 배신하지 않겠다는 놈이야말로 제일 먼저 배신하는 게 상식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 어떤 사람도 죽음으로부터 초연할 수는 없으니까.

“그만! 그만! 자수하겠다! 그러니 목숨만은!”

헤이먼스 후작이 크게 외치는 걸 보고서 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소리칠 힘이 남은 걸 보니 더 때려도 되겠군.

그가 헤이먼스 후작의 허벅지를 힘껏 후려찼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헤이먼스 후작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마운트 자세를 잡듯 그 위에 올라타 허벅지로 허리를 꽉 조인 김창이 주먹을 머리 위로 들었다가 아래로 내리쳤다.

쾅! 헤이먼스 후작의 머리가 바닥을 부수고 아래에 박혔다.

“그만··· 그만해······. 황제 암살을 사주한 자의 정보를 주겠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목숨 구걸을 해봤자 그에게 남은 미래는 죽음뿐일 텐데 그래도 살려달라고 비는 걸 보면 목숨이 소중하긴 한 모양이다.

“안 궁금해.”

“어··· 째서······.”

김창이 그대로 주먹을 내리치려는 순간 아우스트 공이 소리쳤다.

“그만! 죽이지 마라! 정보를 얻어내야 해!”

아깐 죽이라며? 김창이 아우스트 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나 살려줬다고 돈 안 주는 건 아니겠지.”

“제발 정신 나간 소리 좀 하지 마라! 돈은 줄 테니까 죽이지 마!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김창으로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으므로 쓰러진 헤이먼스 후작의 몸 위에서 비켰다. 아우스트 공이 아직 자리에 남은 근위대에게 후작의 포박을 명령했다.

“후작, 네 배후에 있는 놈이 누구냐? 바른대로 말한다면 눈이 뽑히고 팔다리가 부러지는 선에서 끝날 수도 있어.”

그 정도면 그냥 죽는 게 낫지 않나? 김창의 생각은 그랬지만 헤이먼스 후작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얻어맞는 사이에 모든 마력을 잃어버린 후작이 입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처, 천문대······. 황금 천문대······.”

갑자기 천체 관측이라도 하고 싶어진 걸까?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는 헤이먼스 후작을 보고서 김창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아우스트 공은 천문대라는 말을 듣고서 뭔가 깨달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이럴 수가, 천문대라고? 점성술이 어쩌고 천체의 배치가 어쩌고 할 때부터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라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간악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내 실책이군. 황궁 내부에서 악의 싹이 자라고 있었는데 미리 찾아내지 못한 내 탓이야.”

“이보쇼, 영감. 나도 좀 알아듣게 이야기합시다.”

김창이 예의 그 시정잡배나 할 법한 말투로 말을 걸자 아우스트 공은 얼굴을 찡그렸으나 순순히 대답했다.

“황금 천문대는 표면적으로는 일부 귀족들의 사교 단체다. 하지만 그 실체는 웬 점성술사를 중심으로 별과 신비를 숭상하는 집단이지. 지금까진 자기들끼리 헛짓거리나 하고 다니기에 손을 쓰지 않았는데 설마 이런 일을 벌일 줄이야?”

그러니까 황금 천문대라는 사이비 종교 단체가 교주의 명령에 따라 황제 암살을 시도했다는 소리다.

헤이먼스 후작쯤 되면 고위 귀족일 텐데도 그런 것에 빠져든 걸 보면 확실히 맹목적인 믿음이 무섭긴 하다.

“김창이라고 했지. 어쨌건 고맙다. 네 덕분에 황제 암살을 막고 그 배후를 캐낼 수 있었으니.”

“어쨌건 고마운 건 뭐요?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될 것이지.”

“······내 마음 같아선 그 혀를 잘라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몹시 아쉽군.”

“나이도 먹은 분이 말 좀 곱게 합시다.”

아우스트 공이 쯧 하고 혀를 차더니 근위대에게 헤이먼스 후작을 감옥으로 데려가라고 시켰다.

사건 하나가 일단락됐으나 그걸로 끝이 아니라 사후 처리가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게 지금 헤이먼스 후작을 붙잡은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몰랐다. 물론 김창이 아니라 아우스트 공이 신경 써야 할 일이지만.

“이제 곧 소란을 눈치챈 제국 기사단이 올 거다. 뒷정리는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일단 자리를 옮겨서······.”

아우스트 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쾅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기사단이라는 놈들이 참 빨리도 오는군. 김창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였다.

“도, 도망······.”

피투성이가 된 기사 하나가 바닥으로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우스트 공과 김창이 바닥을 봤다가 다시 고개를 드니 거기엔 웬 남자 하나가 있었다.

아우스트 공은 초면일 테지만 김창은 그를 한 번 본 적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직접 본 건 아니고 어떤 용의 기억을 통해서.

“흠, 네가 김창이냐?”

온몸에 피를 묻힌 용살자가 손에 들고 있던 머리를 바닥에 툭 던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기사는 아니었다.

“이제 남은 승천할 자는 너와 나 둘뿐이다. 누가 승천할 것인지, 이젠 그 명암을 가릴 때가 왔다.”

용살자가 자신을 찾아온 건 그리 놀랍지 않다. 언젠가는 승부를 봤어야 하니까. 그런데 승천할 자가 이젠 둘뿐이라고?

내가 알기로 승천할 자는 나까지 셋인데? 그럼 방금 던진 저 머리는?

“···이 씹새가.”

김창이 전에 없이 분노하며 말했다.

“감히 내가 점 찍은 먹잇감을 홀랑 처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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