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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먹잇감?”
용살자가 바닥을 구르고 있는 머리를 쳐다보며 아아 소리를 냈다.
“저것 말인가? 저게 왜 네 먹잇감이지? 내 알기로 넌 저 친구가 누군지도 모를 텐데.”
“누군지는 모르지. 하지만 뭐 하는 놈인지는 알아. 승천할 자 아닌가? 그리고 모든 승천할 자는 내 손에 죽어야 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지만 용살자는 비웃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하기야 그런가. 승천이라는 건 자기 손으로 움켜쥐어야 하는 것. 모든 승천할 자를 자기 손으로 죽여야만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흠, 과격한 소리긴 하지만 영 틀린 말도 아니군.”
김창이 대답하는 대신에 가만히 노려보기만 하자 용살자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정곡을 찔렀나? 난 비꼬려는 게 아니야. 그리고 오히려 화를 내야 하는 건 이쪽이 아닌가? 네 논리대로라면 난 오히려 너한테 내 먹잇감을 전부 뺏긴 셈인데. 그도 그럴 것이 너는 승천할 자를 셋이나 죽이지 않았나?”
김창은 거기까지 듣고서 입을 열었다.
“뭔 개소리야. 지금까지 싸울 자신도 없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숨어 있었던 주제에. 네가 정말 자신이 있었다면 진작 나한테 싸움을 걸러 왔겠지. 그런데 넌 내가 세 명이나 되는 승천할 자를 죽일 때까지 웅크리고만 있었다. 너에게 정말 그 셋을 죽일 용기가 있었나? 다른 두 명은 제쳐두고서, 반신 요안니스를 상대할 자신은 있었느냐고.”
용살자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창을 한 바퀴 빙그르르 돌리더니 창대 끝으로 바닥을 세게 내려찍었다.
단지 그뿐이었는데 바닥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알현실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서 아우스트 공이 허어 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는 저 남자의 얼굴을 처음 봤지만 그 정체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승천할 자. 인간을 초월하여 신이 될 자격을 얻은 존재. 소문으로만 들려오던 용살자.
다른 승천할 자와 다르게 자신만의 세력을 꾸리지도 않고 그저 은거하고만 있던 그가 이토록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뭔가?
하필이면 섭정왕 아슬란 죽은 이후에 제국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혼란스러운 제국을 강탈하기 위해서인가?
만약 그렇다면······.
“요안니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도 한마디 하지. 그건 내 먹잇감이었다. 그리고 네가 그걸 홀랑 처먹었고. 우리 서로 한 방씩 먹인 것 같은데, 그 이야기는 이쯤 하지 그래.”
김창은 그게 왜 네 먹잇감이냐고 따지지 않았다. 그래봐야 별 의미도 없는 짓일 테니까.
대신 그는 용살자를 쳐다보며 물을 뿐이었다.
“이름이 뭐냐.”
“통성명이라도 하자는 건가. 그래, 나쁘지 않군.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으나 지금의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될 테니 이름 정도는 알고 가야겠지. 내 이름은 케이네스다, 용살자 케이네스. 그쪽은?”
“김창, 그저 칼잡이.”
인사는 거기서 끝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더 알려고 하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이제부터 모든 대화는 서로의 무기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며 대화가 끝난 후에는 승천과 죽음이라는 각기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될 터다.
누가 승천할 것이며 누가 죽을 것인지, 그것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결과가 나오는 건 그리 먼 미래가 아니리라.
김창은 케이네스의 창이 자신을 겨누는 것을 봤다. 그걸 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을 죽이면 다 끝나는 건가?’
승천자의 규율에 따르면 승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명뿐이며 승천은 이 세상에 승천할 자가 단 한 명 남았을 때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케이네스를 죽이는 순간 이 땅에 남은 승천할 자는 자신 혼자만이 되어 곧바로 승천하게 될 것이다.
게임으로 치면 그대로 엔딩을 보는 셈이 되는 것인데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일까? 케이네스나 다른 승천할 자들은 천상의 비밀에 대해 모르기에 승천을 몹시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긴다지만 자신은 다르다.
지상의 인간들이 천상이라 부르는 곳이 실은 어둠과 별 외에는 없는 우주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 심지어 먼저 승천한 자들이 그곳을 감옥이라 부르며 길고 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미쳐버리기 직전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어찌 쉽사리 승천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인사는 다 나눴는데 슬슬 시작해도 되겠나?”
김창은 케이네스의 목소리를 듣고서 상념에서 깼다. 지금껏 자신만만하게 굴었는데 승천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싸움을 피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내키는 대로 살았는데 지금이라고 뭐 다를 것인가? 승천의 문제는 일단 케이네스를 죽이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덤벼.”
“흠, 그런데 네 무기는 어디 있지? 내가 알기로 너는 칼잡이인데 설마 맨손으로 싸우려는 건 아닐 테고.”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김창이 몸 안의 신성을 해방하자 우렛소리와 함께 눈 부신 빛이 번쩍였다. 벼락의 화신으로 변한 그의 손에는 무엇이든 벨 수 있는 한 자루의 칼이 들려 있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나가겠다는 것인지 곧장 벼락의 화신으로 변한 그를 보고서 케이네스가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그거 멋있군.”
“내가 재주가 좀 많아서.”
“호, 그것 말고도 할 줄 아는 게 있나?”
김창은 대답 대신 왼손에서 불꽃을 날렸다. 용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케이네스의 몸을 집어삼키려 했다.
“흠, 확실히 재주가 많군.”
창이 횡으로 움직이며 불꽃을 갈랐다. 성난 듯 날뛰었던 불꽃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작은 불씨로 변해 사라졌다.
방금 그건 마법사도 깜짝 놀랄 만한 위력의 불꽃이었으나 케이네스는 별 어려움 없이 쉽사리 받아쳤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방금 그것은 용을 죽이고 얻은 권능이며 케이네스는 용살자라 불릴 만큼 많은 용을 죽였으니까.
그런 그에게 용의 불꽃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김창 역시 고작 그런 공격으로 용살자가 죽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불꽃의 마법사도 아닌데 그런 재주에 매달려야 할 이유가 없다. 그에게 칼이 있으니까. 그것도 벼락으로 만들어진.
꽈르릉!
칼을 한 번 휘두르자 굉음이 울렸다. 벼락이 떨어지듯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공격을 본 케이네스가 두 눈을 부릅뜨고서 창을 휘둘렀다.
창날과 벼락의 칼날이 부딪쳐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케이네스는 벼락의 힘 때문에 손목이 저리는 걸 느꼈지만 무기를 버리진 않았다.
그는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서며 김창으로부터 공세를 잡으려 했다. 창날이 붉게 변하더니 거기서 불꽃이 피어올라 불씨를 흩날렸다.
벼락과 불꽃이 어지럽게 얽히며 서로를 잡아먹으려 애썼다. 시끄럽게 울리는 우렛소리와 사방으로 튀는 불씨를 보면 마치 세상에 종말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원치 않게 두 승천할 자의 싸움을 보게 된 아우스트 공은 구석에서 침을 꿀꺽 삼켰다. 옛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싸움이 이랬을 것인가?
벼락이 치고 불꽃이 흩날리며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분쇄하는 싸움은 그 어떤 강자라도 쉽사리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두 사람은 존재 자체로 전쟁이다. 혼자서 군대를 쓸어버리며 성을 부수고 국가를 멸망시킬 수 있다.
아우스트 공이 알기로 승천할 자인 섭정왕 아슬란도 강하지만 저들만큼은 아니다. 그럼 저들은 승천할 자를 넘어섰단 말인가?
일정한 경지를 넘어 그 이상으로, 신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쾅!
아우스트 공은 갑작스레 울린 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김창과 케이네스, 두 사람의 격렬한 전투 때문에 알현실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벼락과 불꽃이 맞부딪쳐 격렬히 반응하더니 서로 회오리치며 날아가 천장을 부쉈다. 뻥 뚫린 천장만 해도 당황스러운 일인데 두 사람의 묵직한 일격 때문에 바닥이 점차 부서지고 가라앉는 게 보였다.
아우스트 공은 자신 같은 범인이 이곳에 있어서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얼른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하며 부서진 벽으로 몸을 돌릴 때였다.
“크윽!”
커다란 굉음과 함께 불꽃이 벼락에 꺾였다. 용의 불꽃도 반신의 벼락을 이길 수는 없었는지 위에서 짓누르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점차 쪼그라들더니 곧 불씨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케이네스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자 김창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달려들었다. 분명 무기의 길이 때문에 창 쪽이 훨씬 더 유리할 텐데 케이네스는 그 이점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승천할 자를 넘어선 반신이지만 그래도 그 수준에는 약간이지만 격차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신에 더 가깝게 다가선 사람은 김창이었다.
그 사실은 모두가 인정했다. 케이네스조차도.
“후우······.”
벼락의 칼날에 가슴을 베일 뻔했지만 재빠르게 창으로 쳐낸 케이네스가 거리를 벌리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치명상을 입는 건 피했지만 부정확한 자세로 공격을 받아낸 탓에 손목에 통증이 생겼다. 반신으로서 앓는 소리를 낼 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욱신거리는 통증이 신경 쓰이긴 했다.
“확실히 강하군. 반신 요안니스를 죽였다기에 얼마나 강한 놈인가 궁금했는데 이 정도라면 궁금해하지 말 걸 그랬어.”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지만 김창은 여전히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덤벼. 시간 끌기냐? 아니면 따로 준비해둔 수라도 있는 거냐? 그런 거라면 빨리 해.”
케이네스는 김창을 가만히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비장의 수가 있느냐고? 그럼 있지.”
있어?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김창이 손안에서 벼락의 칼을 빙그르르 돌렸다.
“김창, 솔직하게 말하지. 난 널 이길 자신이 없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이길 자신이 없는데 아까의 그 자신만만한 태도는 뭐고 애초에 왜 나타났는데?”
“혹시나 해서 덤벼본 거지. 어린 용들을 학살하고 승천할 자 하나를 죽여 신성을 흡수하면 널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내 오판이었다. 넌 괴물이야. 네 몸 안에 담긴 그 엄청난 양의 신성은 대체 뭐냐? 하루도 빠짐없이 뭔가를 죽이고 다닌 게 아닌 이상에야······.”
확실히 김창은 쉴 새 없이 뭔가를 죽이고 다녔다. 대악마며 승천할 자까지 안 죽여본 게 없을 정도다.
“그런 너를 이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말이야. 내가 요안니스와 같은 요정 왕족이었다면 천 년의 시간을 기다려 만반의 준비를 마치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일개 인간일 뿐. 반신이 되었다고 해도 정해진 수명을 어쩔 수는 없지. 그러니 나는 이번 시대에 신이 되어야겠다.”
나도 못 이기는 주제에 뭔 신이 되겠다는 거지?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차자 케이네스가 창을 등 뒤에 메고서 말했다.
“싸움에서 이기는 법은 여러가지가 있지. 꼭 전투에서 이겨 상대를 죽여야만 승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나한테 병법 수업이라도 하려는 거냐? 창은 또 왜 등에 멨어?”
“내 곰곰이 생각해봤지. 내 목적이 뭘까? 승천자가 되는 것. 그럼 승천자가 되려면? 이 땅에 승천할 자가 나 하나뿐이어야 해.”
다 아는 사실을 왜 구구절절 설명하나? 김창이 그냥 케이네스를 죽여버리려 할 때였다.
“그럼 이야기는 빠르지. 김창, 난 널 이길 수 없다. 그러니 널 이 땅에서 추방하도록 하지.”
“···뭐?”
“넌 원래 이곳 사람이 아니잖나? 멀고 먼 별의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이지.”
김창이 헛소리하지 말라고 말하며 한 걸음 움직일 때였다. 갑작스레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바닥이 무너졌다.
마치 바닥에 차원문이 생긴 것 같은 모양이었다. 김창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공간이 일그러지지 않은 부분을 붙잡고서 버텼다.
“누가 그러더군. 이방인이라는 건 너희가 원래 살던 세상의 신이 이쪽에 버린 쓰레기라고.”
가까이 다가온 케이네스가 빙긋 웃으며 김창의 손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면 안 되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면 쓰나. 그럼 김창, 쓰레기통으로 돌아가시게.”
김창이 아래로 떨어지며 무어라 소리쳤으나 들리지 않았다. 케이네스가 그를 향해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