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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70화 (16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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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은 세롬과 차원문을 번갈아 쳐다보다 말했다.

“정말로 돌려보냈다고? 왜 그런 거지?”

세롬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왜 돌려보냈냐니? 그럼 싸우지도 못하는 사람을 굳이 데리고 있으란 말인가? 대체 뭐 때문에?”

하기야 틀린 말은 아니다. 칼 한 번 휘둘러 본 적 없고 마법을 쓸 줄도 모르는 사람에게 마왕과 싸우라고 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니까.

하지만 정말 돌려보냈을 줄이야. 김창은 당연히 세롬이 신검을 뽑지 못한 자들을 죽였으리라 생각했다.

“그럼 지하의 그 시체 썩는 냄새는 뭐냐?”

“우린 지금 마왕의 군세와 전쟁 중이라고 말했잖나. 언젠가 그 사악한 놈들이 지하를 통해 성안으로 들어오려 한 적이 있었지. 그때 아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많은 병사가 그 안에서 죽었다네. 자네가 맡은 시체 썩는 냄새는 그때 미처 다 치우지 못한 시체에서 난 걸세.”

김창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엘리아나를 향해 물었다.

“그럼 아까 그 띠꺼운 말투는 뭐고?”

“띠, 띠꺼운······?”

공주로서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을 엘리아나가 당황하다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아까 전의 추태에 대해서 말하는 거라면 사과드릴게요. 하지만 용사님, 제 심정도 조금은 이해해주세요. 우리는 지금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도박에 매달리고 있어요. 지금껏 수많은 용사를 불렀지만 그 누구도 신검을 뽑지 못했지요. 한두 번의 실패는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수십 번의 실패는 그럴 수 없답니다. 아까 전 제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엘리아나가 공손한 말투로 사과하자 김창은 상당히 멋쩍어졌다.

그러니까 세롬과 엘리아나는 지구에서 여러 사람을 불러들였다가 신검을 뽑지 못하면 그대로 돌려보냈는데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렸다는 소리인가?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살다 온 문명인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행태다. 김창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애니와 만화를 너무 많이 봤나? 거기서 보면 보통 이런 놈들은 쓰레기던데······.

“······오해가 있긴 했지만 잘 해결된 것 같으니 다행일세.”

세롬은 아까 김창에게 얻어맞은 탓에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문제가 잘 해결된 얼굴은 아니었기에 김창은 여전히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럼 용사님? 이제 집으로 돌아가실 시간이에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반가웠어요. 그럼 작별을······.”

엘리아나가 차원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얼른 들어가라는 듯 손짓하는 모습을 보며 김창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저 문을 통과하면 자신은 원래 살던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나?

‘저기엔 괴물도 없고 마왕도 없는데.’

아마 지구로 돌아가더라도 반신의 힘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몇 년간 실종됐던 사람이 돌아왔는데 손에서 벼락이며 불꽃을 뿜는 걸 보면 9시 뉴스에 나오는 걸 넘어 해외까지 그 소식이 전해지리라.

하지만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나? 벼락이며 불꽃을 다루는 힘이 있다고 해도 그걸 어디에 써먹어야 한단 말인가?

‘중2병 걸린 애새끼가 자주 하는 상상대로 마음에 안 드는 놈들 죄 조지고 다닐 것도 아니고······.’

힘이라는 건 휘두를 곳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지구엔 괴물도 없고 마왕도 없는데 이 힘을 가지고 있어 봐야 뭘 하나?

반신의 힘을 사용하여 한국의 왕이라도 될까? 아니면 한국을 넘어 지구의 지배자가 되는 건?

‘아무리 반신이라도 핵 맞으면 뒈질 것 같은데······.’

김창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세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집에는 안 간다.”

“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니?”

“케이네스라는 씹새끼가 말하기로 나는 애초에 지구가 뱉어낸 쓰레기라 저쪽으로 돌아가면 안 돼.”

“그게 뭔······.”

“대신 다른 곳으로 보내줘.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아까부터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만, 원한다면 그리해주지. 다만 차원문을 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걸세. 무한한 차원 속에서 자네가 원하는 차원을 찾아내야 할 테니까.”

“그건 상관없다. 그럼 기다리는 동안 무상 서비스를 좀 해주지. 내 미리 말하는데, 이건 두 번은 없을 기회야.”

“무상 서비스?”

“마왕 그 새끼 어디 있냐. 내가 목 따줄 테니 안내해.”

갑자기 마왕의 목을 따겠다는 발언에 엘리아나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 아니, 용사님? 마왕과 싸우겠다고요?”

“왜, 그러면 안 되나?”

“마왕은 아주 강해요! 대마법사라 불리는 세롬조차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이 양반 내 주먹 맞고 쓰러지는 거 보니 별로 안 강한 것 같던데. 그러니 마왕도 못 이기지.”

세롬이 입을 우물거리는 게 보였다. 입모양으로 볼 때 뭔가 욕을 한 것 같았다.

“···용사님의 마음은 알겠지만 마왕은 신검이 없으면 죽일 수 없어요.”

“왜.”

“신검으로 심장을 찌르지 않으면 다시 부활하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신검을 뽑을 용사를 찾고 있는 거구요.”

“지랄. 칼 찌르면 안 죽는 게 어딨나? 찌르면 다 죽어. 내가 대악마고 승천할 자고 다 죽여봐서 알아.”

대악마? 승천할 자? 엘리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김창이 말했다.

“그러니까 마왕 있는 곳 말해.”

“용사님, 아무리 그래도······.”

김창은 말 대신 손가락을 튕겨 벼락을 일으켰다. 굉음과 함께 눈이 멀어버릴 듯한 빛이 번쩍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엘리아나는 물론이고 세롬조차 깜짝 놀라 김창을 쳐다봤다. 그는 갑작스러운 빛 때문에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방금 그건?”

“내가 지구인인 건 맞는데, 너희가 지금까지 불렀던 놈들이랑은 좀 달라. 내가 이세계 2회차라서.”

“······크흠, 생각해보니 아까도 불꽃을 날렸지. 확실히 자네는 지금껏 불렀던 용사들과는 다르군. 전력이 되겠어.”

“세롬? 설마 이분에게 싸움을 부탁할 셈인가요?”

엘리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세롬이 답했다.

“차원문을 열 때까지만 함께 싸워달라고 할 생각입니다. 이 자는 우리의 생각보다 강한 듯하군요. 물론 신검을 뽑지 못했으니 마왕을 죽일 수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잠깐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다음 용사를 불러올 시간 정도는 벌어줄 테지요.”

“그런가요. 그럼 용사님, 너무나 염치없는 소리지만 잠깐만 저희를 도와주실······.”

“공주님!”

엘리아나의 말은 다급한 목소리에 의해 끊겼다. 공주가 헐레벌떡 지하실 안으로 들어온 병사를 보고서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일인가요?”

“바깥에, 바깥에······ 마왕군이 공격해왔습니다! 상당한 대군입니다! 이번엔 정말 끝을 보려는 듯한······.”

엘리아나가 곧바로 대답했다.

“바로 갈게요!”

“공주님, 저도 가지요.”

세롬이 엘리아나를 따라 움직이려 하자 김창이 손을 뻗어 막았다.

“가긴 뭘 가. 댁은 여기서 차원문 열고 있어. 그 전에 싹 끝내고 올 테니까 기다려.”

“음? 아아,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인데······.”

“긴급 상황이지. 마왕군한테 말이야.”

김창이 눈을 부라리며 여기서 나오지 말라고 세롬에게 경고했다. 늙은 마법사는 어쩔 수 없이 지하에 남아 차원문을 열기 시작했다.

“적은 어디냐.”

“동쪽 성벽인데 적의 숫자가 상당합니다. 지금은 어찌어찌 막고 있지만 시간을 더 끌면 위험할 테지요. 아니, 그런데 댁은 누군데······.”

한참 설명하던 병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자 김창이 답했다.

“칼잡이.”

용사도 아니고 칼잡이는 뭔가? 병사가 엘리아나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막아! 막으라고! 적이 성벽 위로 올라오면 다 죽는 거다!”

“사다리 밀어! 뜨거운 물 붓고 돌 던져!”

“이쪽 뚫린다! 아무나 붙어!”

김창 일행이 지하실을 빠져나와 동쪽 성벽으로 향하니 그곳에선 몹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병사들은 젖 멋던 힘까지 짜내며 적들과 싸우고 있었으나 그 숫자가 너무나 많았다. 김창이 보기에도 이건 확실히 불리한 싸움이었다.

전장을 내려다보던 엘리아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마왕군의 선두에 선 검은 갑옷의 기사를 보고 있었다.

“흑기사 브리온······.”

“저 새까만 놈만 죽이면 되는 거냐?”

김창이 불쑥 묻자 엘리아나가 깜짝 놀랐다가 곧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지만 흑기사 브리온은 아주 강합니다. 대륙의 이름난 기사들을 몇 명이고 죽인······.”

김창은 엘리아나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는 성벽 위에서 아래로 휙 하고 뛰어내려싿.

그 모습을 본 엘리아나가 비명을 질렀으나 금세 그쳤다. 김창이 너무나도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기 때문이다.

“크륵?”

성벽 위에서 뚝 떨어진 김창을 보고서 마왕군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다. 괴물들은 본능적으로 김창에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꽈르릉!

우렛소리와 함께 매캐한 탄내가 퍼졌다. 김창이 일으킨 벼락의 권능이 달려오던 괴물들을 일격에 죽여버렸다.

그는 한 손에는 벼락을, 다른 한 손에는 불꽃을 쥐고 휘두르며 괴물들을 쳐죽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괴물을 죽인 그는 바쁘게 고개를 돌리며 흑기사 브리온의 위치를 찾았다.

위에서 봤을 땐 금방 보였는데 아래로 내려오니 확실히 괴물들 때문에 시야가 제한됐다. 하지만 이토록 요란하게 날뛰고 있으니 흑기사 브리온이 곧 제 발로 나타날 터였다.

“웬 놈이냐?”

예상은 정확했다. 한참 괴물들을 죽이고 있는데 저쪽에서 검은색 거구가 나타났다.

흑기사라는 이름대로 검은색 갑옷을 입고 등 뒤에 사람 몸뚱이만 한 대검을 찬 기사가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네가 흑기사 브리온이냐?”

“그렇다면?”

“덤벼.”

김창은 긴말하지 않겠다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걸 본 흑기사 브리온이 크게 웃었다.

“건방진 놈이로고. 그 멍청한 계집년이 계속 용사 소환에 매달리더니 드디어 성공한 거냐? 그래서 신검은 어디 있느냐? 내 여기서 부러트려 주지.”

“그건 안 뽑았다.”

“···안 뽑았다고?”

“대신 다른 걸 뽑았지.”

“그게 뭐냐?”

김창이 움직였다. 순간 마법을 쓴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라 흑기사 브리온이 몸을 움찔했다.

“네 모가지.”

쾅!

벼락의 힘을 담은 주먹이 흑기사 브리온의 몸을 후려쳤다. 인간의 몸에서 나온 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한 위력이라 두꺼운 갑옷이 우그러지는 게 보였다.

흑기사 브리온이 다급히 다급히 등 뒤의 대검을 뽑으려 했지만 그 전에 날아온 불꽃이 손을 집어삼켰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발차기가 날아와 옆구리를 후려쳤고 우지끈 소리와 함께 갑옷이 구겨졌다.

순간적으로 숨을 쉬기가 힘들어져 색색 소리를 내는데 이번엔 허벅지가 부러졌다. 저도 모르게 자세가 무너져 고개가 아래로 향하는 순간 강렬한 충격이 정수리에 꽂혔다.

흑기사 브리온은 그대로 목이 부러져 얼굴이 갑옷 안쪽으로 박혔다. 투구 속에서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붉은 핏물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그걸 본 김창이 흑기사 브리온의 머리를 잡고 힘껏 당겨 목을 뽑았다. 그리고 쓰레기 버리듯 휙 하고 바닥에 내던졌다.

전장이 고요해졌다. 흑기사 브리온, 수많은 기사를 학살하고 수십 개의 성을 무너트렸던 자가 단 한 명의 인간에 의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참히 쓰러졌다.

모두의 시선이 김창에게 모였다. 그는 무심한 목소리로 한마디 할 뿐이었다.

“다음.”

선뜻 나서는 자는 없었다. 김창은 다시 말했다.

“다음.”

성벽 위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엘리아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거 용사를 소환한 게 아니라 마왕보다 더한 놈을 불러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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