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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85화 (1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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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누구야? 황금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에 그 의문을 해결해줄 사람이 나타났다.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나타난 것은 마치 그을음이라도 뒤집어 쓴 듯 몸 곳곳이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남자였다.

처음엔 갑옷에 뭔가 오물이 묻은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몸 곳곳에 묻어 있는 검은색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고 때때로 성장하며 더욱 많은 부위를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 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주에서 날아온 기생 생물이 숙주의 몸을 빼앗는 영화가 떠올랐다.

황금성은 이 기괴한 생김새를 한 남자가 오른손에 창을 들고 있는 걸 봤다. 정확히 말해서 그건 창을 들고 있는 게 아니라 검은 생물이 손과 창을 억지로 접착시킨 것이었다.

확실히 밥 먹고 있을 때 만날 만한 놈은 아니군. 황금성이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이 녀석 설마······.”

“아마 맞을걸. 감히 겁도 없이 날 찾아올 놈이라면 세상에 하나뿐이야.”

김창과 황금성은 서로 같은 인물의 이름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린 용을 학살하고 이 땅에 거대한 죽음을 몰고 온 자, 이제는 승천하지 못한 자라 불려야 할 존재.

그의 이름은 용살자 케이네스였다.

“오랜만이다. 나 쫓아내고 그간 잘 지냈나? 얼굴 보니 그리 잘 지낸 것 같진 않군.”

김창이 이죽거리자 케이네스가 소리 없이 얼굴을 구겼다. 단순히 그를 놀리려고 한 말이 아니라 누가 봐도 케이네스의 얼굴은 흉측했다.

대체 뭘 잘못 먹었는지 얼굴의 절반쯤 검은 생물에게 집어삼켜져 있었는데 코를 기준으로 정확히 반을 나누어 먹힌 게 아니라 얼굴 군데군데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어 마치 이름 모를 피부병에 걸린 듯한 모습이었다.

“···얼굴 보니 그리 잘 지낸 것 같진 않다고? 네가 보기에도 그러나? 그럼 내가 왜 이런 꼴이 됐다고 생각하지?”

“그거야 네가 천상의 신좌를 날로 처먹으려다 식중독이라도 걸려서 그런 거겠지.”

“날로 처먹어? 흐흐······.”

스산하게 웃던 케이네스가 곧 으하하 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는 방향성을 잃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거친 분노가 담겨 있었다.

김창이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어째 키도 좀 큰 것 같다? 원래 키는 군대 가서도 큰다고 그랬는데 너도 뭐 그런 거냐?”

“······내가 이런 꼴이 된 건.”

케이네스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는 마치 짐승이 으르렁대듯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때문이다, 김창.”

“내가 뭘?”

“네가 뭘 어쨌냐고? 내가 왜 아직도 이 빌어먹을 땅에서 이딴 짓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는 거냐?”

“알지. 승천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신성이 부족해서 승천하지 못했으니 사람 싹 죽여서 승천하겠다는 생각은 대체 뭘 잘못 먹으면 할 수 있는 거냐? 나도 사람 제법 죽였는데 그딴 생각은 안 하는데.”

“너는!”

케이네스의 고함과 함께 거대한 마력이 주변을 강타했다. 휴식을 취하며 식사를 하고 있던 병사들은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모닥불이 꺼지고 식기가 날아다니는 광경을 봤다.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이 본 것은 핏발 선 눈으로 김창을 노려보고 있는 케이네스였다.

“내가 가졌어야 할 모든 걸 가져갔다! 내가 가졌어야 할 모든 신성! 대악마의 목숨! 승천할 자의 목숨! 반신 요안니스의 목숨까지도!”

김창은 픽 하고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게 왜 네 거냐. 애초에 요안니스를 이길 자신도 없어서 그 친구가 신성을 모두 잃고 난 후에야 나타난 주제에. 네가 정말 신이 될 생각이었다면 나보다 먼저 요안니스와 싸웠어야지.”

“······언제 싸우든 그건 내 마음 아닌가? 그건 언젠가 내가 죽였어야 할 적이었다! 내가 가졌어야 할 신성이라고! 왜냐면 나는 신이 돼야 할 자니까!”

참으로 지리멸렬한 논리였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어린애가 떼쓰는 것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었다.

원래의 케이네스라면 저딴 멍청한 소리는 안 할 텐데, 지금은 두 눈이 핏발 선 채로 꽥꽥 소리나 질러대고 있는 걸 보면 승천을 실패한 것 때문에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모양이다.

미친놈한테는 매가 약이지. 김창이 허리춤의 칼자루를 매만질 때였다.

“왜 날 괴롭히는 거냐? 왜 자꾸 날 못 살게 굴어?”

아깐 화를 내던 케이네스가 이젠 거의 울 듯한 얼굴로 김창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새끼가 드디어 정신을 놨나? 내가 괴롭히긴 뭘?

김창이 어이없어하며 답했다.

“내가 널 언제 괴롭혔는데?”

“내 승천을 막고 있잖아······. 내가 얻어야 할 승천을 모두 뺏어가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가 승천하는 걸 막으려고 다른 세상에서 오질 않나······.”

김창이 다른 세상에서 온 건 맞지만 그건 케이네스가 다른 세상으로 그를 추방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냥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것뿐인데 그게 왜 남 괴롭히는 일이 되나?

머리가 맛이 간 것인지 인과의 인식부터가 뒤틀려 있는데 저런 놈과는 대화를 해봤자 시간 낭비일 뿐이다.

불쌍한 놈. 승천에 실패해서 완전히 맛이 갔군. 하기야 세상엔 대학 떨어진 충격에 쓰러지는 사람도 있는데 승천에 실패했다면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이야 승천에 큰 욕심이 없으니 그 정도로 상심할 만한 일인가 하면 아닐 테지만.

김창은 허리춤의 칼자루를 꽉 쥐었다. 이젠 해야 할 일을 할 때였다.

“그래, 우리 케이네스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구나. 그럴 땐 칼침 한 번 맞으면 다 낫는······.”

“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어······.”

케이네스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감정의 변화라 천하의 김창도 오싹함을 느낄 정도였다.

저거 맛이 간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정신이 나가버린······.

“···다른 세상의 신에게 내 영혼을 판 순간부터, 나는 나로서 있을 수 없는 거야. 나는 이미 늦었어. 이 모든 게 끝나고 나면, 이 길고 긴 전쟁이 끝나고 나면 나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어깨를 떨고 있던 케이네스가 휙 하고 고개를 들었다. 김창이 순간 움찔하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는데 케이네스가 하늘을 쳐다봤다.

그의 눈은 하늘을 보고 있었지만 시선이 닿는 곳은 그 너머였다. 신좌가 있는 천상을 넘어 그보다 더 먼 곳으로, 그의 힘이 왔던 근원으로.

“그림자 군주야, 네 의무를 다해라.”

케이네스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였지만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마치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듯 멍한 얼굴이었고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그것만으로 놀랄 만한 일이었는데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까부터 생장을 반복하며 착실히 영역을 넓혀 가고 있던 검은 생물이 갑작스레 늘어나며 케이네스의 몸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러는 동안 케이네스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김창은 물론이고 황금성까지 당황하는 사이에 케이네스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자리에 남은 것은 거대한 덩치를 가진 그림자 괴물 하나뿐. 그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케이네스였지만 생김새는 아니었다.

그건 이제 그림자 괴물이었다.

“아니, 이젠 변신까지 하네?”

김창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황금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그림자 괴물로 변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아무리 케이네스가 다른 세상의 신으로부터 힘을 받았다고 해도 이런 일이 있을 수가?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레 울브 쪽으로 움직였다. 두 명의 시선을 받은 울브가 몸을 움찔했다가 케이네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크헥, 저도 이런 건 처음 봅니다요. 하지만 신은 저희가 살던 세상의 환경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존재이니 인간을 제 동족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요.”

이쪽 세상의 신이나 엘리아나가 있는 세상의 신은 별로 대단한 능력이 없는 것 같은데 울브가 살던 세상의 신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멋대로 세상을 바꾸고 종족을 바꿀 수도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위험한 놈인 게 분명했다. 어쩌면 이번에 그림자 괴물의 침략을 막아내더라도 다른 종족을 만들어내 다시금 침략에 나설지도 몰랐다.

“저쪽 세상의 신이 정말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확실히 위험한데. 그럼 이쪽 세상의 인간이나 요정을 죄 그림자 괴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좀비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좀비에게 물려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황금성은 아무래도 그런 장면을 상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김창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게 됐으면 진작 그랬겠지. 하지만 안 그랬잖아.”

김창의 반론에 황금성이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런가······.”

“뭐가 어찌 됐든 중요한 건 하나야.”

“그게 뭔데?”

김창이 턱짓으로 케이네스를, 이제는 그림자 군주가 된 용살자를 가리켰다.

“케이네스를 죽이면 전쟁이 끝난다는 것, 그리고 그 씹새가 바로 여기 있다는 것.”

황금성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럼 둘 아닌가?”

“······어쨌건 저 새끼 죽이면 다 끝난다. 손 좀 보탤 테냐?”

“굳이?”

황금성이 왜 내가 그런 귀찮은 일에 껴야 하냐는 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 모습을 보고서 김창도 마주 얼굴을 찡그렸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창.”

고개를 돌려보니 그림자 군주가 된 케이네스였다. 이 새끼 이거 그림자 괴물로 변하면서 자아를 잃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도 없는 놈이 말을 하는 걸 보니 참 신기하군. 전부터 생각한 건데 너희는 뭔 수로 말을 하는 거냐?”

“···내가 어찌 알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 말이나 들어라.”

그림자 괴물로 변했으면서 자기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건가? 김창이 어깨를 으쓱였다.

“유언이라도 남길 셈이냐? 그거 나쁘지 않지. 그럼 지껄여봐.”

“난 여기서 너와 싸우지 않는다.”

“···뭔 개소리야?”

케이네스가 비웃음을 흘렸다. 이제 얼굴을 볼 수 없게 됐지만 아마 그는 지금 몹시 건방진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기는 싸움만 한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너와 싸우는 건 내가 질 게 뻔한 싸움이지. 주변을 봐라. 나는 혼자고 너희는 여럿이니까.”

“나 혼자서 싸워도 너 정도는 그냥 이겨.”

“널 위한 무대를 마련해뒀다. 그곳에서 싸우자. 일시는 오늘로부터 일주일 뒤. 네 친구들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려주지. 나는 자비로우니까 말이야.”

“아니,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여기서 싸우면 된다니까. 쫄리냐?”

김창이 도발했지만 케이네스는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그런 허접한 도발로 날 화나게 하려 해봤자 소용없다. 지금의 나는 옛날의 내가 아니니까.”

질 것 같으니까 도망치는 주제에 뭔 개폼인가? 김창이 그냥 벼락이나 한 번 떨구려고 할 때였다.

“그리고 도발이라면 나도 하나 하지. 아무래도 너는 죽은 아슬란으로부터 황제를 부탁한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지? 귀족으로부터 황제를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결국 황제를 구한 걸 보면 말이야.”

이게 또 뭔 헛소리를 하려고? 김창이 얼굴을 찡그리자 그걸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케이네스가 껄껄 웃었다.

“황제는 내가 데리고 있다. 목숨이 아깝다면 경거망동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럼 일주일 뒤에 보자, 김창. 목 잘 씻고 기다려라.”

케이네스는 처음 나타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사라졌다. 김창이 그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황금성이 씩씩대며 말했다.

“저 새끼 저거 되게 치사하네? 인질을 잡아? 야, 황제는 우리가 알아서 구할 테니까 넌 걱정하지 말고 저 새끼만 조져. 알겠지?”

김창은 물끄러미 황금성을 쳐다봤다. 시선을 받은 황금성이 손가락으로 코를 훔치며 씩 웃었다.

“뭘 또 감동하고 그러냐? 힘들 땐 서로 돕고 살아야지, 안 그래?”

김창은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지금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황제를 구한 건 그냥 변덕이었고 딱히 걔 때문에 목숨 걸 생각은 없는데···라고 말하면 미친놈 소리를 듣겠지.’

이럴 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옳다. 김창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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