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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86화 (18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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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식사도 얼추 끝낸 것 같고, 그럼 다시 출발해볼까?”

목적지인 제국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대륙 각지에서 일어난 군대는 케이네스를 무찌르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데 어쩌면 황금성의 군대가 케이네스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선 것일지도 모른다.

적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케이네스와 싸우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김창이 있는 지금은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케이네스가 위험한 건 그가 부리는 그림자 괴물 때문이기도 하지만 승천할 자로서 가진 무시무시한 힘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창은 그 위험한 케이네스보다 한 수 위의 강자. 황금성과 그 부하들이 괴물 군단을 막아주는 동안 김창이 케이네스를 쓰러트린다면 이건 확실히 해볼 만한 싸움이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케이네스는 지금 제도를 점령하고 있어. 아마 황제도 거기 있겠지.”

김창은 황금성의 군대를 따라서 제국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라면 국경 지대를 따라 길게 이어진 성벽 위에는 잘 훈련된 병사들이 있어야 할 테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케이네스가 제도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경을 지키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황금성은 국경 수비 병력이 아우스트 공의 제국군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국 각지의 병력을 충분히 흡수한 아우스트 공은 지금쯤 제도 근처에서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아마 내일쯤이면 도착할 거야. 그래서 작전 같은 건 있나?”

“있지.”

“뭔데?”

김창이 무심히 답했다.

“너희가 버티는 동안 내가 케이네스를 죽인다. 끝.”

참으로 간단하다 못해 성의 없는 작전이었지만 황금성은 장난치지 말라고 소리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작전이었으니까.

“그럼 잘 부탁한다. 우리도 가능한 버텨 볼게.”

김창이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에 병력은 진군하고 있었고 시간은 흘렀다.

하룻밤 야영을 하고 다시 출발한 군대는 점심쯤에 저 멀리 거대한 성벽을 발견했다. 김창도 한 번 본 적 있어서 저게 어느 성의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제국의 심장, 제도였다.

“다 왔군. 그런데······.”

분명 황금성은 제국군이 제도 근처에 진을 치고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발견한 것은 바닥에 널브러진 수많은 시체였다.

시체의 상태를 보면 이곳에서 한바탕 전투가 있었다는 건 명확했다. 부패 정도를 보면 그 전투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벌어진 것이고.

“···씹, 아무래도 케이네스 그 새끼 짓인 것 같은데.”

제국군은 제국 각지에서 긁어모은 병력이고 그 숫자가 어마어마할 정도로 많았다. 아무리 케이네스라도 한 번의 전투로 제국군을 궤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국군이 제도 근처의 진지를 버리고 후퇴해야 할 만큼의 피해를 주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김창은 병사들 몸 곳곳에 뚫려 있는 구멍을 보고서 흠 소리를 냈다.

“내가 돌아온 걸 보고서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군. 이쪽의 병력을 가능한 갉아먹으려는 속셈인 거야.”

전쟁이라는 건 머릿수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케이네스는 알고 있다. 원래라면 그도 대륙 각지의 병력이 제도에 집결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대륙의 전 병력이 한곳에 집결하면 귀찮은 벌레 놈들을 일시에 소탕할 기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무엇이든 단칼에 죽여버리는 칼잡이가 돌아왔으니까.

“일단 아우스트 공을 찾자고. 아마 이 근처에 있을 건데.”

황금성은 발 빠른 병사 몇을 보내서 제국군이 머물고 있는 곳을 찾게 했다. 그의 생각대로 제국군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럴수가, 정말 돌아왔군.”

원래부터 나이가 제법 있었지만 전쟁의 피로 때문에 몇 년은 더 늙어버린 아우스트 공은 김창의 얼굴을 보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이번 전쟁을 끝낼 열쇠가 김창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케이네스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그라는 것도 알고 있고.

“네가 갑자기 없어지는 바람에 제국이 이 모양이 됐다고 책망하는 건 너무 염치없는 짓이겠지. 어쨌건 잘 돌아왔다, 김창.”

아우스트 공은 원래 꼬장꼬장한 늙은이였는데 이젠 오랜 전쟁 때문에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김창은 아우스트 공의 힘없는 농담에 무슨 말이라도 해주려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지금 여기서 뭔 말을 하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 전쟁은 케이네스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 끝날 것이니 자신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면 될 뿐이다.

“아우스트 영감, 보아하니 제도 근처에서 한바탕 한 것 같은데 피해는 어때요? 많이 죽었나?”

황금성은 경박한 외모답게 말하는 것도 조심성이 없었다. 아우스트 공이 그를 한 번 노려봤지만 곧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병력을 좀 잃긴 했지만 싸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식량이야. 너도 알겠지만 이건 제국 전역의 병력을 싹싹 긁어모은 거다. 당연히 숫자가 어마어마하니 하루에 소비하는 식량의 양도 엄청나지. 제국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충분히 감당하겠지만 지금은······.”

제국 전역이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고 제도까지 빼앗긴 상황에서 이 많은 병력을 먹이고 입히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림자 괴물이야 식량이 없으면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만이니 군량 문제에서 자유로울 테지만 이쪽은 그럴 수 없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데요?”

“길어야 사흘.”

“그럼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거군. 우리 말고 다른 애들은 온 거 없어요? 왜 우리가 일등이야?”

황금성이 불만스럽게 툴툴거리는데 김창이 말했다.

“케이네스가 일주일 뒤에 보자고 했던가? 그 건방진 새끼, 제멋대로 약속 잡고 시간 맞춰 오라는 게 영 꼴같잖긴 한데 그래도 죽기 전에 그 정도 부탁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그런데 내 알기로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 시간을 제법 썼으니 이틀 뒤가 딱 일주일 되는 날이거든?”

아우스트 공은 그게 뭔 소리냐는 듯 쳐다봤지만 황금성은 흠 소리를 냈다.

“그래서 이틀 뒤에 싸우자고?”

“어차피 식량도 사흘 뒤에 다 떨어질 거잖아. 내가 봤을 때 전 병력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려봐야 승산 없어. 배 쫄쫄 굶은 채로 싸우라고 해봤자 싸우지도 못할 거 아니야.”

확실히 맞는 말이다. 더 기다린다면 병력은 늘어나겠지만 대신 식량이 다 떨어지고 만다. 군대는 든든히 먹여야 잘 싸우는 법인데 먹은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싸워봤자 개죽음을 당할 뿐이리라.

그러니 승부를 보려면 이틀 뒤가 맞다.

“···일단 이틀까지 기다려보지.”

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우스트 공은 이대로 병력이 충분히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싸워야 하는 걸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틀 사이에 병력은 착실히 모이고 있었다.

“정말 돌아오셨군요!”

첫 번째로 합류한 것은 티샬레가 이끄는 요정 군대였다. 요정 왕국은 인간을 단명종이라 부르며 자신들이 지켜야 할 존재로 여기기에 이번 전쟁에 참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케이네스를 막지 못하면 전부 다 죽을 상황이니 반드시 참여해야 할 테지만.

“어이, 김창! 오랜만이다!”

두 번째로 합류한 것은 의외의 세력이었는데 바로 대륙 북부의 군세였다. 그들은 하나 된 왕국이 없고 여러 귀족이 세력을 다투고 있는 걸로 아는데 한데 뭉쳐 군세를 보낸 건 확실히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김창은 북부군을 이끌고 온 이안을 보고서 작은 미소를 지었다.

“형은 어쩌고 네가 왔냐?”

“아, 형은 다른 귀족이랑 세력 다툼하다 뒈졌다. 그래서 이젠 내가 탈리얀 대공이야.”

농담인지 아닌지 모를 말이었다. 하지만 김창은 에르단보단 이안이 더 마음에 들었으므로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또 보는군, 김창.”

다음으로 도착한 건 만네르헤임의 군대였다. 김창은 느지막이 도착한 그를 보고서 왜 늦게 왔냐고 타박했다.

만네르헤임이 우리가 늦게 온 게 아니라 네가 너무 빨린 간 거라고 항변했지만 괜히 머리만 한 대 얻어맞을 뿐이었다.

“하여튼 씹새, 다른 차원으로 추방할 게 아니라 아예 봉인을 해버려야······.”

“뭐?”

“케이네스를 죽이자!”

만네르헤임이 김창을 피해 도망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김창이 헛웃음을 흘렸다.

“김창!”

“와, 진짜 반갑네!”

그 뒤로도 하오성이나 산자이가 이끄는 병력이 속속 도착했다. 전 병력이 다 모인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대군이라고 할 만큼은 됐다.

마침 시간도 이틀이 전부 지난 후였기 때문에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경력과 나이를 따졌을 때 자연스럽게 연합군의 대장을 맡게 된 아우스트 공이 긴 고심 끝에 진군 명령을 내렸다.

“김창, 너만 믿겠다. 케이네스 그 자식 꼭 좀 죽여주게. 그리고······.”

“황제도 구해달라고? 걱정하지 마라.”

연합군은 제도를 향해 진군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병력이 일시에 움직이는 건 엄청난 박력이 있었고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광경이었다.

원래 이 정도 대군이라면 용도 죽일 수 있을 테지만 지금 그들이 상대해야 할 것은 용보다 더한 존재였다.

용살자 케이네스. 이제는 그림자 군주가 돼버린 그를 상대해야 하기에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다.

“······성문이?”

몇 시간 후에 도착한 제도를 보고서 아우스트 공이 미간을 좁혔다. 원래라면 굳게 닫혀 있어야 할 성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설마 안으로 들어오라는 건가? 아무 의심 없이 성안으로 들어오면 성문을 닫고 일시에 소탕하려는 건가?

이쪽이 바보도 아니고 그런 꾐에 당해줄 리가 없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제도를 탈환할 수 없다.

아우스트 공이 흐음 소리를 내고 있을 때였다.

“왜, 함정인지 아닌지 고민스럽나? 그런 고민이라면 할 필요 없다. 이건 함정도 아니고 뭣도 아니니까.”

성벽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림자 군주가 날갯짓을 하며 아래를 내려보고 있었다.

“저 새끼 저거 이젠 하늘도 나네.”

반신인 나도 못 나는데. 김창이 부러워하고 있는 사이에 케이네스가 이어 말했다.

“병력이 다 모이지도 않았는데 감히 진격을 명하다니 간이 부은 것이냐? 아니면 김창을 믿고 그리 까부는 것인가? 멍청한 것들. 고작 한 명의 존재가 승패를 결정 지을 수 있을 것 같아?”

말하는 케이네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연합군을 비웃고 있지만 실은 그 자신이 김창을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너희는 그 오만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바로 죽음으로!”

케이네스가 크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땅이 울렸다. 지진이라도 났나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건 수많은 숫자의 병력이 일시에 땅을 박차며 뛴 탓이다. 제도의 성문은 넓지만 한꺼번에 뛰쳐나오는 괴물 군단을 뱉어내기엔 부족했다.

연합군의 공기가 딱딱해졌다. 그들은 쉴 새 없이 괴물들을 뱉어내고 있는 성문을 보고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많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다. 분명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울브!”

황금성이 다급히 부르자 울브가 얼른 대답했다.

“크헥, 저 숫자는 말이 안 됩니다요! 제가 알기로 동족 전부를 긁어모아도 저만큼은 안 될 텐데······.”

“그럼 저 새끼들은 다 뭐야? 여기서 우리 기다리는 동안 새끼라도 쳤다는 거냐?”

“어쩌면 저희 쪽 신이 개입한 걸지도······.”

“아오, 운영자가 게임에 개입하는 게 어디 있어? 이거 완전 불량 놀이터 아니야?”

황금성이 짜증스럽게 외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마력 중첩 100 연속이라도 한 번 해야······.

“야, 케이네스.”

김창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전장의 소음은 그 목소리를 묻어버리지 못했다. 케이네스는 잠깐 몸을 움찔했다가 곧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김창, 우리끼리 끝내야 할 싸움이 있지. 황궁으로 와라. 거기서 상대해줄 테니.”

“가오 그만 잡고 내려와.”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케이네스는 김창이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건 자신이 김창을 상대로 유일하게 우위를 점하는 부분인데 그걸 포기해야 할 이유가 있나?

김창이 흠 소리를 내며 케이네스를 올려 보다 들고 있던 칼을 냅다 집어 던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케이네스가 고개를 움직여 칼을 피했고 칼이 애꿎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갈 때였다.

“하하하! 화가 난다고 그런 식으로 무기를 던져서야 쓰나? 그래서 이제 뭘로 싸울······.”

쐐애액!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에 케이네스가 고개를 돌렸다. 날아갔던 칼이 이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유도 기능이라도 있나? 케이네스가 손으로 칼날을 쳐내 바닥으로 칼을 떨어트리는 순간이었다.

탁 하고 바닥을 박차며 뛰어오른 김창이 칼을 밟고 그 위에 섰다. 저걸 밟고 위로 올라올 셈인가? 서커스도 아니고 그게 대체 무슨?

“내려오라고 했지.”

김창이 하는 짓을 보던 케이네스의 눈이 커졌다. 그저 칼을 밟고 위로 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아예 칼을 밟고서 비행하고 있지 않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케이네스의 반응이 늦었다. 그가 손을 방패로 바꿔 공격에 대응하는 것보다 김창의 발차기가 더 빨랐다.

“크억!”

복부에 꽂힌 발차기 때문에 내장이 파열된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케이네스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고는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렸다.

김창은 그대로 칼을 타고 날아가려 했으나 칼이 더는 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 김창이 말했다.

“음, 다음엔 방패라도 하나 들까. 그건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칼잡이니까 그건 못 날려 보내려나?”

저 괴물 같은 놈. 김창이 하는 짓을 뒤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황금성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놈은 방패를 들면 그걸로 공격을 막는 게 아니라 사람을 때려죽일 게 분명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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