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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89화 (18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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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케이네스!”

진실을 말해줬음에도 바르토시스는 공격 대상을 바꾸지 않았다. 그 육중한 몸이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머금은 채로 케이네스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도망치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라 케이네스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대신 그림자 괴물들이 그를 가로막고 서더니 몸을 변형시켜 저들끼리 반구의 형태를 이루었다.

마치 보호막처럼 변해버린 그림자 괴물 위로 바르토시스의 몸이 직격했다. 굉음과 함께 모두의 시야가 희게 물들었다.

“다들 뒤로 물러나!”

자아를 되찾은 바르토시스는 케이네스를 죽이는 걸 우선시할 뿐, 딱히 요정 군대의 안위를 생각하진 않아서 가만히 있다가는 공격에 휘말려 무의미한 희생자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티샬레는 얼른 자신의 부하들을 후퇴시키는 동시에 마법을 통해 보호막을 만들게 했다. 물론 바르토시스가 만들어낸 충격이 워낙 거대해서 그 정도론 충분하지 않았다.

“다들 괜찮나!”

“저희는 괜찮습니다!”

“부상자 없습니다!”

요정 군대가 부상자 없이 공격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김용걸 덕분이었다. 바르토시스의 몸 위에서 뛰어내린 그는 곧장 요정 군대에 합류해 거대한 보호막을 만들었다.

원탁에서 가장 강한 흑마법사답게 그 보호막은 강철처럼 단단해서 요정 군대를 거대한 충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했다.

덕분에 그들은 아무런 부상자 없이 병력을 온존할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케이네스의 상태다.

저쪽도 그림자 괴물들로 만든 보호막으로 몸을 보호했다지만 과연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할 것인가?

먼지구름이 차츰 걷히며 케이네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

애석하게도 케이네스는 멀쩡했다. 그를 보호하고 있던 그림자 괴물의 벽이 질척한 살점 덩어리로 변했음에도, 그리고 그 주변의 건물이 전부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렸음에도, 그는 여전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상태였다.

“결국 김창한테 복수할 용기가 없어서 나한테 들이받은 주제에 뭘 정의로운 척이지? 하여튼 웃기는 놈이야.”

몸에 묻은 그림자 괴물의 살점을 툭툭 털어내던 케이네스가 티샬레를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왜, 내가 생각보다 멀쩡해서 당황했나? 뭘 그런 걸 가지고.”

“···방금 공격으로 병력을 상당수 잃었음에도 당당한 척하는 게 참 우습군요.”

“병력?”

케이네스가 흥 하고 코웃음쳤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이 땅에선 승천할 자요, 또한 멀고 먼 잿빛의 땅에선 그림자 신의 사도니라. 그런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랴?”

케이네스가 가볍게 손짓하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살점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강력한 자석이 주변의 철물을 끌어당기듯 살점들이 이리저리 뭉쳐 어떤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그걸 본 티샬레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방금 바르토시스의 공격으로 희생됐던 그림자 괴물들이 부활하고 있다.

“내가 겁쟁이라 부하들의 목숨을 쓰레기 버리듯 내버린 줄 아나? 그럴 리가. 이놈들은 내가 죽기 전까지 몇 번이고 부활한다. 그러니 너희는 이 불사의 군단과 끝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소리지.”

케이네스가 스산하게 웃자 티샬레가 입술을 깨물었다. 바르토시스 덕분에 싸움이 한결 수월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면 그의 죽음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게 되지 않나.

“정말 구구절절 말이 많군. 너는 입으로 싸우냐?”

그 목소리는 김창의 것이었다. 줄곧 자신만만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케이네스가 눈에 띄게 동요하는 것이 보였다.

“···싸움을 원하나? 오냐, 그런 거라면 내 얼마든지 받아주지.”

“그런 것치고 먼저 덤비진 않는군. 설마 네게 선수를 양보하려고 그러는 건 아닐 테고.”

“이 건방진 놈!”

김창이 픽 웃으며 얼른 덤비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케이네스는 몸을 부들거리면서 오른손의 칼날로 김창을 겨누었다.

당장이라도 전투가 벌어질 듯한 상황 속에서 티샬레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잔챙이들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케이네스를······.”

“잠깐 기다려라. 올 사람 하나 더 있으니.”

“올 사람이요?”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또 온단 말인가? 티샬레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창이 말했다.

“안 느껴지나? 바닥이 떨리고 있잖아.”

티샬레가 얼른 바닥을 내려다보니 작은 돌멩이가 달달 떨리고 있긴 했다. 지진이라도 나려는 걸까? 하지만 이 정도 진동을 가지고 지진이라고 하기엔······.

“오늘 아는 얼굴들 죄 보는군. 티샬레, 부하들 데리고 뒤로 물러나라.”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티샬레는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케이네스는 요정 군대가 뒤로 물러나는 걸 보고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김창, 이 건방진 놈! 너 혼자서 그림자 괴물은 물론이고 나까지 상대할 수 있다는 거냐! 만약 그런 거라면 잘못 생각해도 단단히 잘못······.”

케이네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레 바닥에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림자 괴물들은 반사적으로 케이네스의 몸을 보호하려 들었지만 그들이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닥이 박살 나고 거대한 구멍 속에서 뭔가 튀어나오긴 했지만 어쨌건 케이네스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진 않았던 것이다.

김창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갑작스레 나타난 구멍의 정체를 두고 웅성거렸다. 그리고 그들의 의문은 너무나 쉽게 해소됐다.

“지옥의 왕이 친히 행차했노라!”

지하, 정확히 말해서 그보다 더 멀고 먼 곳에 위치한 또 다른 세상. 그 이름은 지옥이며 죄인의 안식처이자 온갖 괴물과 악마가 우글거리는 곳이다.

그리고 그 땅에서 지옥의 군세를 이끌고 온 자가 있었다.

“개, 개눈깔?”

“개눈깔이 아니다! 지옥의 왕이다!”

악마들을 이끌고 지상으로 올라온 개눈깔이 티샬레를 향해 하나 남은 눈을 부라렸다. 전에는 외눈의 마왕이었는데 이제는 지옥의 왕인가?

영전인지 아닌지 모를 호칭 변경이다. 티샬레는 물론이고 케이네스까지 아연해 있는데 오직 김창만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개눈깔, 따까리들 맡아라.”

“내가 왜!”

“그럼 저 친구랑 싸울 거냐?”

개눈깔이 케이네스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대체 뭔가 저 흉측하게 생긴 생물은?

생긴 것도 이상한데 저 몸 안에서 느껴지는 신성의 양은······.

“···나만 믿어라, 김창! 따까리들은 우리가 맡지.”

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올 사람도 다 왔으니 한 번 붙어볼까.”

티샬레는 요정 군대가 지옥의 군세와 힘을 합쳐 그림자 괴물들과 싸워야 한다는 상황이 몹시 혼란스러웠지만 곧 아무래도 상관없나 하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적만 죽이면 될 일 아닌가? 김창이 있는 이상 개눈깔이 헛짓거리를 할 것 같지도 않고.

“···그래, 이제야 이 싸움의 끝을 볼 수 있겠군.”

케이네스가 머리 위로 오른손의 칼을 들었다가 휙 하고 내리쳤다. 그건 개전의 신호였다.

그림자 괴물들은 아무런 함성조차 없이 재빠르게 움직였고 반대로 요정 군대와 지옥의 군세는 요란한 함성과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 나갔다.

두 무리가 부딪쳤고 격렬한 싸움이 시작됐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적을 죽이기 위해 있는 힘껏 무기를 휘두르고, 팔이 떨어져 나가면 다른 손으로 무기를 쥐고 휘두르는 장면은 이 전투가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애석하게도 그들의 전투는 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림자 괴물이 이기더라도, 반대로 연합군이 이기더라도, 그들의 승패는 이 땅의 명운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했다.

왜 그러한가?

결국 이 모든 것은 단 두 사람의 결투에 의해 끝나기 때문이다.

“서로 알 거 다 아는 사이고 구구절절한 사연 팔이 할 사이도 아니니 바로 간다.”

케이네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꽈르릉!

시작부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벼락을 보며 케이네스가 김창을 향해 뛰었다. 방금 그가 있던 자리가 벼락을 맞고 박살 났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이미 벼락의 화신으로 변해 있는 김창 역시 케이네스를 향해 뛰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무기를 휘둘렀고 단 몇 초 사이에 수십 번 부딪쳤다가 뒤로 물러났다.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다시 서로에게 달려들어 목숨을 빼앗기 위한 혈투를 시작했다.

범인의 눈으로는 감히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부딪쳤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칼날은 허공에 무수히 많은 빛줄기를 남겼다.

김창이 휘두르는 것은 창백한 백색, 케이네스가 휘두르는 것은 새까만 흑색.

마치 일부러 정한 것처럼 상반된 색을 가진 두 개의 칼날이 사나운 뱀처럼 상대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이게 다냐?”

무심한 김창의 목소리를 듣고서 케이네스는 흥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저건 고작 도발이다. 일부러 내 평정심을 흩트려서 빈틈을 만들려는 도발.

그딴 얕은수에 당해줄 이유 따윈 없다. 케이네스는 김창의 칼날을 세게 후려쳐서 뒤로 밀어낸 뒤에 주변에서 싸우고 있던 그림자 괴물의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드득!

그림자 괴물의 팔을 붙잡고 힘껏 당기자 그대로 뽑혀 나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걸 한 바퀴 빙그르르 돌리자 곧 창의 형태로 변했다.

그걸 본 김창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케이네스는 당당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다냐고? 설마! 나는 원래 창잡이라서 말이야. 칼도 그럭저럭 쓰지만 익숙하지 않은 무기로 싸우려니 제 실력이 안 나오는군! 그럼 이제 제대로 붙어볼까!”

뭐가 어찌 됐든 저쪽에서 전력을 낸다면 이쪽도 거부할 이유는 없다. 김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달려들었다.

무기를 바꾼 케이네스는 자신이 허세를 부린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창과 칼에는 길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공격에 있어서 유리한 건 케이네스였다. 그가 물 만난 고기처럼 현란하게 창을 찌르고 휘두르는 걸 본 김창이 흠 소리를 내며 뒤로 한 발걸음 물러났다.

겨우 잡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는 케이네스가 자신의 우위를 굳히기 위해 재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챙! 창과 칼이 부딪쳤다가 다시 멀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서 케이네스가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아까의 그 기세는 전부 다 어디로 간 거냐! 왜 이제는 벙어리가 된 것처럼 아무런 말이 없······.”

꽈르릉!

갑작스레 들려온 우렛소리에 케이네스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그는 머리 위에서 벼락이 떨어지리라 생각하며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어째서인지 하늘은 잠잠했다.

그럼 방금은? 케이네스가 다시 김창을 향해 고개를 돌릴 때였다.

뭔가 휙 하고 날아와서 창으로 쳐내니 줄에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뭔가 하고 가만히 보니 정말 줄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벼락으로 만들어진 끈. 올가미 부분이 창날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고 멋대로 움직일 수 없도록 고정했다.

단지 거기서 끝났다면 케이네스도 힘으로 끊어내려 했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파지직! 벼락의 끈이 빛나며 창대를 타고 이쪽으로 전류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케이네스가 얼른 창을 집어던지는 것과 동시에 창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검은색 오물을 흩뿌렸다.

까딱 잘못했으면 방금 터지는 건 창이 아니라 자신의 오른손일 뻔했다. 케이네스는 멍하니 있다가 이번에는 머리 위로 떨어진 벼락에 맞고서 바닥을 기었다.

“끄아아악!”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다. 그가 비틀거리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벼락에 맞은 충격 때문인지 김창이 두 개로 보였다가 세 개로 보이길 반복했다.

고작 벼락 좀 맞았다고 죽진 않겠지만 타격이 크다. 케이네스는 할 수만 있다면 입에서 피를 한 움큼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씨발, 칼잡이면 칼 가지고 싸워······.”

돌아오는 건 김창의 비웃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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