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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90화 (19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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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가지고 싸우라고? 내가 왜 그래야 하나.”

“너는 칼잡이니까!”

케이네스가 짜증스럽게 외치며 김창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방금 공격으로 부러진 창 대신에 다른 부하의 양팔을 잡아 뜯었다.

영문도 모른 채 두 팔을 잃게 된 그림자 괴물은 어리둥절하고 있다가 요정 기사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누구는 그런 걸 못 해서 창 들고 싸우는 줄 알아!”

화르륵!

케이네스가 신경질적으로 창을 휘두르자 그 궤적을 따라 불길이 일었다.

용의 불꽃, 케이네스가 지금껏 수많은 용을 학살하고 얻어낸 힘.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은 그의 손에 죽은 용의 분노를 대변하듯 위협적으로 날뛰었다.

김창 역시 바르토시스를 죽이고 용의 불꽃을 다룰 수 있게 되긴 했지만 화력으로 따지자면 저쪽이 확실히 한 수 위였다.

그래서 굳이 같은 기술로 맞받아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김창은 자신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불꽃의 창을 피해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면서 케이네스를 향해 벼락을 날렸다.

“말했지!”

쾅! 불꽃과 벼락이 부딪쳐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을 만들어냈다. 서로 상쇄된 힘이 산지사방으로 날뛰다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케이네스의 몸에서 불길한 기운이 샘솟았다.

“칼잡이면 칼 들고 싸우라고!”

김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벼락의 화신답게 재빠르게 움직이며 케이네스의 빈틈을 찾을 뿐이었다.

벼락과 불꽃, 칼과 창이 부딪치며 사방으로 불씨를 흩뿌렸다. 주변에서 싸우고 있던 요정 군대와 지옥의 악마들은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림자 괴물들은 자신의 목숨 따윈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것처럼 적을 죽이는 데만 집중했다.

두려움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인지 모를 행동이었다.

“뭘 좀 착각하는 모양인데.”

김창이 벼락의 끈으로 케이네스의 창을 붙잡았다. 자신 쪽으로 창을 잡아끄는 동시에 강렬한 전류를 방출하여 육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려 했다.

그러나 케이네스는 바보가 아니었고 한 번 당했던 수에 또 당하지 않았다. 그는 창 따윈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것처럼 냅다 창을 던졌고 바닥에 쓰러진 그림자 괴물의 팔이며 다리를 뽑았다.

파지직 소리가 나며 공중에서 폭발한 검은 창이 재로 변해 후두둑 떨어졌다. 김창은 쏟아지는 재 속에서 케이네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칼 안 쓰는 건 그냥 네가 너무 좆밥이라 칼 뽑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야.”

“···내가 약해서 칼을 안 뽑는다고?”

케이네스가 허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저놈이 칼을 쓰지 않는 이유야 뻔하다. 그냥 칼 휘두르는 것보다 벼락 날리는 게 더 강하고 위협적이니까.

그런 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케이네스는 저 밉살스러운 놈의 입을 찢고 혀를 뽑아버려야겠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

“참 잘났군! 항상 자기 혼자만 잘났어! 너는 늘 남을 깔보지! 네가 뭐라도 되나? 네가 신이라도 된 줄 아느냐고! 너도 결국 나와 같은 필멸자일 뿐이면서!”

창날의 불꽃이 강하게 타올랐다.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그 열기에 화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김창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케이네스를 가만히 보면서 백색의 벼락을 휘둘렀다. 창백하게 반짝이는 빛이 어지럽게 질주하는데 그 반대쪽에는 직선으로 곧게 달리는 불꽃이 있었다.

오직 김창의 목숨을 끊어버리겠다는 열망 하나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나아가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덩치를 키웠다.

처음에는 창이었지만 질주를 마쳤을 때는 용이었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거대한 용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벼락을 삼켰다.

꽈르릉!

크게 들려오는 굉음은 벼락의 함성인지 아니면 용의 울부짖음인지 알 수 없었다. 벼락과 용은 격렬히 반응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렸다.

미련하게도 제 주인을 지키겠답시고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던 일부 그림자 괴물이 그 공격에 휩쓸려 재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다.

김창은 강렬한 빛 속에서 차츰 선명해지는 케이네스의 모습을 보며 흠 소리를 냈다. 그가 어떤 동작을 취하고 있는지 정확히 보였다.

“이래도 내가 우습나!”

창 자루를 쥐고 있는 손은 단단하고 뒤로 뺀 어깨는 탄력적이다. 그림자 괴물로 변하면서 육체의 성질까지 변해버린 것인지 관절과 근육이 인간이었다면 움직일 수 없는 범위까지 젖혀져 있다.

힘껏 젖혀진 근육이 제자리로 돌아가며 위협적인 투창을 쏘아냈다. 김창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꽃의 창을 가만히 바라봤다.

아무리 반신이라도 이건 맞으면 죽는다. 의식보다 본능이 먼저 반응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 손으로는 벼락을 날리고 다른 손으로는 칼을 휘두른 후였다.

타오르는 창은 벼락을 찢어버리면서 속도가 한 번 죽었을 텐데도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칼로 창을 튕겨내자 손목이 저리다 못해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도 내가 우스우냐고!”

버럭 성을 낸 케이네스가 등 뒤에서 날개를 꺼냈다. 또 뭘 하려고? 케이네스는 김창이 붙잡을 새도 없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설마 도망이라도 치려는 건 아니겠지. 김창이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케이네스가 양손을 휘두르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림자 괴물들의 시체가 위로 떠올랐다.

그러는 과정에서 몸이 분해됐고 시체 하나가 열 자루의 창으로 변했다. 김창은 문득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그림자 괴물이 죽었나 생각해봤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백은 더 죽은 것 같은데.

“이런 씹.”

김창이 욕설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셀 수 없이 많은 창이 천공을 점령했다. 그는 문득 비가 쏟아지는 날을 떠올렸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땅이 흠뻑 젖는 모습. 이번에도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땅이 젖을 것이다.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진짜 비가 아니라 비처럼 쏟아지는 창이라는 것이고 땅을 적실 액체가 물이 아니라 요정 군대의 피라는 사실이다.

“티샬레! 개눈깔!”

그 이름을 외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자기 부하들을 후퇴시켰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싸움에 끼어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네스는 도망치는 적들을 보면서 흥 하고 비웃음을 날렸다. 그러나 굳이 쫓으려 들진 않았다. 지금 그의 목적은 김창을 죽이는 것이고 일단 그것만 달성하면 그 뒤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김창을 죽인다.

“죽어라.”

간략한 명령에 하늘을 뒤덮은 창이 일시에 쏟아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귓가에 쏴아아 하고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김창은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수많은 창을 보다가 칼자루를 꽉 쥐었다.

“인정하지.”

벼락이 번쩍였다. 하늘이 아니라 김창의 손아귀에서.

“이건 칼 안 쓰면 내가 뒈지겠다.”

케이네스가 억눌린 웃음을 흘렸다. 처음에는 끅끅 소리를 내며 웃던 그가 점차 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드디어······.”

드디어 김창을 죽일 수 있다. 아무리 반신이라고 해도 이런 공격에선 살아남을 수가······.

“···없어야 하는데.”

불꽃처럼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던 웃음은 빠르게 식었다. 케이네스는 저도 모르게 인간 시절에 하던 대로 손으로 눈을 비볐다.

이젠 그림자 괴물이 되어 안구라고 할 게 없지만 너무나 어이없는 광경을 봐서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쳐내? 그 많은 창을?”

벼락이다. 본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김창은 지금 벼락 그 자체다. 아무리 빠른 존재라고 해도 벼락을 상대로는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빠르게 날아오는 창도 벼락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케이네스는 김창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다. 그는 과정을 인식할 수 없다.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결과뿐.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수십 자루의 창이 부러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고 또 몇 초가 지나면 그 수가 배로 늘어나 있다.

김창이 그 많은 창을 모두 쳐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 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

케이네스는 멍하니 김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토록 격렬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얼굴에는 땀 한 방울 흐르고 있지 않다.

아니, 정확히는 흐르지 않은 게 아니라 벼락의 열기 때문에 그대로 증발해버린 것이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가 바로 그 증거다.

케이네스는 허탈하게 웃음을 흘리며 땅으로 내려왔다. 자신은 포기했나? 저 무시무시한 반신을 상대로 지레 겁을 먹어버린 것인가?

“···그럴 리가.”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고 나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는 이곳이 오늘 자신이 죽을 전장임을 알았다.

화르륵. 불길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몸에 불이 붙었다. 그건 그가 생명을 태워 피워올린 마지막 불꽃이었다.

그것은 시리도록 푸른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각성이라도 한 거냐? 멋있네.”

김창이 픽 웃더니 칼자루에 칼을 꽂았다. 그건 더는 싸우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젠 정말 끝을 내겠다는 뜻이었다.

케이네스는 아무런 말 없이 창 한 자루를 손에 쥐었고 전투 자세를 잡았다.

그걸로 모든 준비는 끝이었다. 이제 말은 더 필요치 않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시점이었다.

두 사람은 전투 개시의 신호를 정하지 않았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뛰었다.

칼이 울고 창이 날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직선의 질주가 한 점에서 끝났고 승부는 단 합에 갈렸다.

지금껏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싸웠던 게 거짓말처럼 너무나도 조용한 승부였다. 싸움을 지켜보던 티샬레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저들이 베고 찌른 것은 서로의 몸뿐만이 아니다. 빛과 열, 그리고 소리까지 전부 죽여버렸다.

때문에 어느 것도 빛나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남는 것은 오직 결과뿐이다.

승자는 살고 패자는 죽는다. 너무나 간단하지만 그보다 명확한 것도 없다. 티샬레는 승부가 끝난 후에야 참았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결국······.”

목소리는 우울했다. 그게 승자의 목소리였다면 거듭된 승리로부터 권태를 느끼는 오만함처럼 들렸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패자의 목소리였다.

“난 뭘 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군. 신이 되고 싶었나? 아니면 이 세상을 부수고 싶었나? 그도 아니면 그저 널 죽이고 싶었던 건가······.”

케이네스의 몸은 반으로 잘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상반신은 그나마 멀쩡했지만 하반신은 마치 늑대한테 물어뜯긴 것처럼 엉망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김창은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등신아.”

“······그런가. 너한테 물을 일은 아니긴 하군. 하기야 답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겠어. 나는 졌고 또 죽어가는데. 이제 내가 뭘 하려고 했던 건지는 중요하지 않아.”

쩌저적. 가면이 깨지듯 검은색 조각이 떨어져 내리고 그 안에서 케이네스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강박적인 속박에서 벗어난 후련함일까? 그게 아니라는 걸 김창은 알았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건 그 셋 전부였거든. 이제 하나는 이루지 못하겠지만 나머지 둘은 이룰 수 있겠어.”

케이네스의 몸이 발작적으로 흔들렸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그림자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며 그 몸이 불길한 색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뭔가 하려 한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야 지금 케이네스의 입이 쩍 벌어지고 그 안에서 뭔가 튀어나오려 하고 있으니까.

“막아야 해요! 지금 다른 세상의 신을 이쪽으로 불러오려는 겁니다!”

티샬레가 크게 외치자 김창이 그녀를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친 티샬레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저 녀석을 죽여야 합니다! 지금 당장!”

“죽여야 한다고?”

김창은 늘 그렇듯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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