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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92화 (1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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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정답을 모르니까.

지금껏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티샬레가 방금 일어난 일을 곱씹어 보았다. 하늘에서 웬 빛이 반짝이더니 곧 케이네스의 몸을 일소시켰다.

김창의 비유를 빌리자면 바퀴벌레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 문을 없애버린 셈인데 정작 티샬레는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원래 무슨 일이든 줬다 뺏는 게 제일 악질인 법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안 줬으면 받은 게 없으니 아무 생각도 안 들지만 일단 뭔가를 받고 난 후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엄밀히 말해서 그림자 신이 이쪽으로 넘어오던 중에 문이 닫혀버린 것이니 줬다 빼앗았다는 비유는 옳다고 할 수 없다. 완전히 넘어오지도 못했으니 애초에 주지도 않은 셈 아닌가.

하지만 티샬레는 김창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분명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줬다 뺏는 것도 악질이지만 주지도 않고 뺏어가는 건 더 악질이 아니냐고.

뭔가 말이 되면서도 안 되는 말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한가? 김창이 이번 일로 극심한 짜증을 느끼리라는 사실이다.

‘차라리 내가 문을 부쉈다면 나 하나 죽고 끝낼 수 있다지만 지금 이건······.’

티샬레는 케이네스가 왜 이 전쟁을 일으켰는지 떠올렸다. 그는 신성이 부족해 승천에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끔찍한 전쟁을 일으켰다.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 모든 생명을 멸절시키려 들었다면 정말 신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림자 신의 힘을 빌렸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생명을 죽이더라도 신이 될 수 없다.

케이네스가 그걸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이런 짓을 벌인 건 화가 났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신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단지 화가 났기 때문에 그림자 신을 이쪽으로 불러들이려 했다.

티샬레는 승천할 자가 어떤 족속인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을 강력한 힘을 가졌기에 의무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부당한 권리를 휘두르려 한다.

승천할 자가 휘두르는 막무가내의 권리는 같은 승천할 자가 아니고서야 거부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땅에 남은 승천할 자는 김창 혼자뿐이며 그 어떤 승천할 자도 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백하다. 김창은 지금 이 순간 지상에 강림한 신이며 또한 절대자다. 그가 빼앗긴 먹잇감에 대한 분노를 죄 없는 자들에게 휘두르려 한다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내가 아는 김창은 그런 사람이 아닐 테지만······.’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완벽하게 안다고 자부하는 것은 오만이다.

그러니 티샬레가 김창이 선한 인물이며 질서와 도리를 지킬 줄 아는 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오만이다.

애초에 김창은 자신의 흥미만을 위해서 이 세상을 위험에 빠트리려 하지 않았나? 그는 벌레가 들어오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모두가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 김창은 선하지 않다. 자신의 흥미를 위해 남의 목숨을 위험하게 하는 존재는 결단코 선할 수 없다.

물론 선하지 않다고 모두 악한 것은 아니지만, 원래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오히려 더 무서운 법 아닌가?

이대로 김창이 헤까닥 돌아서 여기 있는 사람들 죄 죽이겠다고 선언하면 어째야 하나?

‘그땐 내가······.’

슬쩍 고개를 돌려 개눈깔을 쳐다보니 그녀가 멍청한 얼굴 그대로 말했다.

“음? 난 왜 봐?”

티샬레가 알기로 개눈깔은 김창에게 한 번 덤빈 적이 있다던데 차라리 이 여자에게 누명을 씌워 제물로 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강한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김창 저 사람 지금은 아무 말도 없긴 한데 조금 있으면 정신을 차릴 겁니다.”

“그래서?”

티샬레는 개눈깔의 멍청한 목소리를 들으며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당신이 아는 김창은 어떤 인간이죠? 자기 먹잇감을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이던가요?”

“글쎄, 대체 누가 내 물건에 손 댔냐고 길길이 날뛸 놈이긴 한데.”

“그래요. 지난번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땐 다행스럽게도 범인이 누구인지 금방 밝혀졌죠. 그런데 내 보기에 이번에는 아니에요. 애초에 범인이 누군지 알아낸다고 해도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개눈깔이 슬쩍 김창을 쳐다봤다. 지금 그는 아주 무감정한 눈으로 그림자 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무런 말도 없으니 오히려 더 무서웠다.

저 미친놈이 화가 난다고 칼이라도 찌르면 어떡하지? 괜한 상상을 했다가 오싹해진 개눈깔이 얼른 말했다.

“무슨 근거로 그리 생각하지? 범인에 대해서 짐작 가는 게 있나?”

“있지요.”

곧장 대답하는 티샬레를 보며 개눈깔이 호오 소리를 냈다. 그녀가 속삭이듯 물었다.

“그게 누군데? 나한테만 말해봐.”

“이건 내 추측인데, 저건 지상의 존재가 한 일이 아니에요. 일단 공격 자체가 하늘에서 이루어졌잖아요.”

타당한 추측이다. 개눈깔은 하늘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강렬한 일격이 케이네스의 몸 위로 떨어졌던 걸 떠올렸다.

“그래서? 하늘을 나는 마법사가 구름 뒤에 숨어 마법이라도 날렸다는 건가?”

“저만한 위력의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는 그리 많지 않아요. 내 알기로 두 명뿐인데 한 명은 여기 있는 김용걸이고 다른 한 명은 한석구죠.”

개눈깔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김용걸을 쳐다봤다. 바르토시스의 몸 위에서 뛰어내린 그는 착지할 때 엉덩이를 잘못 부딪쳤는지 끙끙 소리를 내며 바닥을 쓰러진 상태였다.

마법 실력이라면 한석구보다도 한 수 위지만 저런 몸으로 케이네스를 공격했을 것 같진 않다. 애초에 그는 하늘 위가 아니라 땅에 있지 않나?

“그럼 남은 건 한석구뿐인데, 걔가 그랬으면 당장 모습을 드러냈을 테지.”

개눈깔의 말에 티샬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막 나가는 김창이라도 자기 친구한테 칼 들이밀진 않겠죠. 한석구도 그걸 알 테니 굳이 숨을 이유도 없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모습을 안 드러낸다? 그럼 둘 다 범인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마법사가 마법으로 케이네스를 공격했다는 설은 가능성을 잃었다. 그럼 티샬레가 꺼낼 다음 가능성은 무엇인가?

“뜸 들이지 말고 바로 말해. 그래서 누가 범인인데?”

티샬레는 얼른 대답하지 않고 하늘을 쳐다봤다. 아까 선명하게 반짝이던 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이미 강렬하게 뇌리에 새겨진 광경은 잊히지 않았다. 빛이 떨어졌던 자리, 이젠 아무것도 반짝이지 않건만 그 자리에서 아직도 반짝임이 있는 것만 같다.

“···하늘 위에서 그림자 신의 손을 잘라낼 만큼의 강력한 권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뿐입니다.”

티샬레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좌의 주인.”

개눈깔은 그 대답을 듣고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티샬레는 범인의 이름을 명확하게 지목하지 않았지만 그게 누구를 뜻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신좌의 주인, 멀고 먼 천상에 자리 잡은 승천자. 다른 이름으로는 신.

“신이 그랬다고? 아니, 어떤 정신 나간 신이 반신 무서운 줄 모르고 그런 짓을?”

보통은 완전한 신이 반쪽짜리 신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그 반대겠지만 티샬레는 뭐가 잘못된 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갔다.

“그거야 모르죠. 하지만 왜 그랬는지는 알아요.”

“왜?”

“김창의 말을 빌리자면 그림자 신의 침입은 집 안으로 벌레가 들어오려는 격입니다. 집주인 입장에선 당연히 막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벌레를 잡아야 할 놈이 도리어 벌레를 들어오게 하려 하니 집주인이 직접 나선 거죠.”

그럴듯한 비유다. 개눈깔이 고개를 끄덕이고 뭔가 말하려고 할 때였다.

“그래, 네 생각도 그러냐.”

그 목소리와 말투는 개눈깔의 것이 아니었다. 티샬레와 대화하는데 정신을 쏟고 있던 개눈깔은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난 김창을 보고서 힉 소리를 냈다.

그는 언제나 그러하듯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화가 났다는 인상은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럴 때를 조심해야 했다. 개눈깔은 이 무시무시한 칼잡이가 뭔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기, 김창······.”

“내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말이야, 이런 간 큰 짓거리를 할 놈은 세상에 몇 없어. 승천할 자 중에는 요안니스나 케이네스가 이런 짓을 할 수 있을 텐데, 걔넨 전부 죽고 없으니 범인이 아니야. 그럼 누가 범인인가? 저 위야.”

김창이 손가락으로 머리 위를 가리켰다.

“저 위.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공간 속에서 수천 년 동안 지상을 관음하다 돌아버린 꼴통 놈들. 왜 그랬는지야 알 만해. 걔넨 일상이 몹시 지루하고 즐길 거리라곤 지상을 보는 것뿐이야. 그런데 웬 미친놈이 다른 세상의 신을 불러들여 세상을 멸망시키려 들질 않나, 또 다른 미친놈은 벌레를 쫓아내도 모자랄 상황에 오히려 들어오라고 하질 않나. 그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돌아버릴 지경이었겠지.”

자기가 미친놈이라는 자각은 있었던 건가? 티샬레가 침을 꿀꺽 삼켰다. 원래 자기가 미친 걸 아는 미친놈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그래서 이번 일에 개입했을 거야. 혹시라도 세상이 망하면 안 되니까. 왜 그랬는지는 이해해.”

정말 이해한 거 맞나? 티샬레와 개눈깔이 불안한 듯 김창을 쳐다봤다.

“그런데 걔네가 참 멍청한 게 뭔지 아나?”

“글쎄요······.”

“케이네스 그 좆밥 새낀 신한테 따지러 못 가도 난 멱살 잡으러 갈 수 있다는 걸 몰랐다는 거야.”

그게 뭔? 티샬레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갑자기 개눈깔이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나 하고 있다가 티샬레도 마찬가지로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은 김창을 보고서 또 한 번 소리를 쳤다.

“다, 당신! 몸이!”

김창의 몸이 점차 옅어지더니 재가 흩날리듯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건 차갑게 식은 재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니라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었다.

그럼 어디로? 티샬레가 자신에게 묻다가 곧바로 답을 찾았다. 그거야 뻔한 일 아닌가?

“설마 승천?”

김창은 이 땅에 남은 유일한 승천할 자이고 반신의 격에 오를 만큼 충분한 신성을 지니고 있으니 승천자의 규율에 따라 승천할 자격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너무나 급작스럽게 벌어진 탓에 티샬레와 개눈깔은 당황한 얼굴로 김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는 너무나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찾는 놈들 있으면 잠깐 승천했다고 해.”

승천이 무슨 동네 마실 가는 것도 아니고 잠깐 승천하는 건 뭔가? 티샬레가 바람 빠진 자루처럼 허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김창의 몸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김창! 티샬레! 다들 괜찮냐!”

저 멀리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원탁의 일원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차원문이 닫히고 케이네스까지 죽은 덕에 사실상 승기를 잡은 모양이었다.

모두 김창과 티샬레의 안위를 걱정하며 달려오다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목도하고서 화들짝 놀랐다.

지금껏 온갖 일을 다 경험한 그들 역시 누군가 승천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놀랍다면 놀랍고 당황스럽다면 당황스러운 광경에 모두 말문이 막혀 있는데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김―창!”

누가 이토록 우렁차게 김창의 이름을 외치나 하고 봤더니 만네르헤임이었다. 김창에게 몇 번이나 죽을 뻔했던 그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김창이 승천한다고 하니 섭섭함을 느꼈던 것일까?

다급히 달려와 외치는 만네르헤임의 모습을 보고서 티샬레가 흐뭇하게 웃었다.

“천상으로 꺼져라, 김창! 너 같은 건 다시는 이 땅에 존재해선 안 된다! 만나서 개 같았고 다시는 보지 말자! 카악 퉤!”

주먹을 휘두르며 크게 외치는 만네르헤임의 모습을 보고서 티샬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멍청한 악마 놈, 김창 하는 짓을 보니 신을 죄다 죽이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올 모양이던데 대체 뒷감당을 어쩌려고 저런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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