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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97화 (19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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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멍하니 있나. 하던 거 이어서 하자고.”

김창이 손을 움직이자 도플갱어의 칼이 뒤로 밀려났다. 처음엔 착각인가 했는데 정말로 보이지 않는 칼이 존재하고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영문 모를 일이었지만 도플갱어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건 당황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김창이 뭔 수를 썼는지 몰라도 그의 손엔 보이지 않는 칼이 들려 있다. 하지만 그게 뭐? 결국 달라진 건 그가 다시금 무기를 들었다는 것뿐이고 그건 승부의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학습을 통해 두 사람 사이의 실력 격차는 크게 벌어졌으니까.

단순히 무기를 다시 쥐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실력 격차를 메울 수는 없다.

그러니 이 싸움의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도플갱어는 강한 확신을 느끼며 칼자루를 고쳐 쥐었다.

그의 눈이 뱀처럼 스산하게 빛나며 김창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 시선의 방향, 미세하게 떨리는 호흡.

그 모든 걸 보면 김창이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지 쉽사리 알아낼 수 있다. 그것은 확정이다. 애매한 추측 따위가 아니라.

분명 저놈은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칼을 내지를 것이다. 그다음엔 곧장 대각선으로 칼을 올려 쳤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칠 것이고.

뻔한 일이다. 생각을 마친 도플갱어가 김창의 공격에 대비했다. 역시나 첫 공격은 강력한 찌르기다.

칼을 비스듬히 눕혀 공격을 막아내고는 눈알을 굴려 김창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관절의 움직임만 봐도 뭘 하려는지 뻔히 보인다.

팔꿈치가 굽었다가 다시 확 펴지면서 칼이 공기를 갈랐다. 이번 공격 역시 너무나 쉽게 막아냈다.

도플갱어는 슬며시 비웃음을 흘리며 마지막 공격을 기다렸다. 대각선으로 칼을 올려 쳤으니 다음 공격은 당연히 다시 아래로 내려치는 공격일 것이다.

공격이 날아오는 것보다 조금 이르게 머리 위로 칼을 들었다.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듯 강하게 내려치는 공격이 곧 머리 위를 강타할 것이다.

아마도 1초 내로······.

“큭!”

도플갱어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과연 생각했던 대로 공격이 강타하긴 했다.

문제는 그게 머리 위로 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일 뿐.

“이게 뭔 개짓거리냐는 얼굴이군.”

김창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플갱어는 왈칵 피를 뱉어냈다. 방금 얻어맞은 배가 욱신거리다 못해 쓰라렸다.

분명 머리 위로 칼이 떨어져야 할 때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김창은 자세를 바꿔 자신의 배를 후려갈겼다.

어떤 공격을 할 것처럼 했으면서 다른 공격으로 상대를 속이는 건 흔히 있는 전법이지만 지금 상황을 얼른 이해하긴 어려웠다.

칼을 휘두르는 척하면서 주먹으로 배를 때리는 게 가능한가? 손에 칼을 들고 있잖아? 차라리 칼 손잡이 끝으로 배를 때렸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방금 그건 분명 주먹이었는데······.

“왜, 넌 이런 거 못 하나?”

도플갱어는 퉤 하고 핏물을 뱉어내고선 김창을 쳐다봤다. 그는 지금 주먹을 오므려 칼자루를 쥐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어째서인지 칼이 보였다. 그 순간 도플갱어는 방금 김창이 뭘 했는지 깨달았다.

그의 무기는 보이지 않는 칼.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일반적인 칼과 다르게 김창의 심상 속에서 뽑아낸 흉기다.

달리 말해서 그건 김창이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아까의 공격은 칼을 휘두르는 척하면서 그냥 주먹으로 후려갈긴 셈이다. 진실에 대해서 알게 된 도플갱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 없군. 칼잡이인데 왜 그런?”

“케이네스도 그랬지. 칼잡이면 칼 들고 싸우라고.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 줄 아나?”

도플갱어가 입을 우물거렸다.

“···좆밥이라서 안 뽑는다고.”

“그래, 이 좆밥아.”

그 말을 하고서 김창이 다시 자세를 바꿨다. 정말 칼을 뽑지 않겠다는 듯 두 주먹을 꽉 쥐고 있는데 아까 보였던 무형의 칼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칼 없이 싸우려고? 이건 아무리 인격자인 나라도 못 참겠는데. 도플갱어가 전에 없이 강한 분노를 느끼며 김창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칼을 휘두르자 김창이 오른쪽 주먹을 내질렀다. 처음엔 주먹으로 칼을 쳐내려는 줄 알았는데 갑작스레 몸이 떨릴 만큼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뭐?”

칼이 있다. 분명 아까까진 맨손이었는데? 도플갱어의 공격은 갑자기 나타난 보이지 않는 칼 때문에 무위로 돌아갔다.

단지 공격이 막힌 것뿐이라면 당황스러울 것도 없지만 문제는 김창의 칼이 역으로 자신의 몸을 찔렀다는 것이다.

도플갱어는 큭 하고 신음을 흘리며 비척비척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하지만 피 냄새를 맡은 맹수가 으레 그러하듯 김창은 상처 입은 먹잇감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한차례 폭풍 같은 공격이 몰아치고 도플갱어는 너덜너덜한 꼴이 되어 바닥에 피를 흩뿌렸다. 그가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칼 안 뽑는다며.”

“그걸 믿냐, 등신아.”

도플갱어의 얼굴이 다시 무감정하게 변했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뛰었다.

김창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도플갱어를 가만히 보다가 왼쪽으로 뛰었다.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에 강력한 일격이 떨어졌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도플갱어는 곧바로 몸을 돌려 추격을 시작했다.

공격은 쉴 새 없이 이어졌고 이 공간을 부술 듯 격렬하게 휘몰아쳤다. 아무것도 없는 흰색 공간의 곳곳에 작은 금이 생겨났고 바닥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김창은 한동안 도플갱어와 쫓고 쫓기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몸을 돌렸다.

도망만 치던 놈이 갑작스레 몸을 돌리면 순간적으로 깜짝 놀랄 법도 하건만 도플갱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김창의 모든 생각과 움직임을 이해하고 있다. 그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리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면 당황할 이유가 없다. 정답을 알고 있다면 문제를 틀릴 리가 없다. 그저 행동하기만 하면 될 뿐.

도플갱어는 이번에야말로 김창을 끝장내기로 했다. 호흡을 가다듬자 근육이 팽창했다. 부풀 대로 부푼 근육은 폭발적인 속력을 만들어냈고 그건 곧 강력한 일격으로 변했다.

대각선 위로 한 번, 다시 아래로 휘두르며 한 번.

두 번의 공격이 순간적으로 한 시점에 겹쳐 하나의 공격으로 변했다. 한 번에 칼을 두 개 휘두른 게 아닌 이상은 불가능한 공격이지만 도플갱어는 해냈다.

그는 김창과의 싸움에서 성장하고 또 성장했다. 자신은 이미 원본을 넘어섰다.

원본과 복제본의 차이는 무엇인가? 무엇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가?

답은 하나다.

죽이는 쪽이 진짜며 죽는 쪽이 가짜다. 오로지 힘만이 모든 걸 결정하며 그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러니 자신은 지금 여기서 김창을 죽이고 진짜가 된다.

“누구 베껴서 만든 놈인지 몰라도 참 잘 났군.”

도플갱어는 이죽거리는 목소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일격에 더해진 일격. 하나를 막으면 다른 하나가 그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저 공격에 대항하려면 어디 하나를 내줄 각오를 하던가 아니면 똑같은 공격으로 받아쳐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전자. 도플갱어는 김창이 팔 하나를 내주고서 이쪽을 향해 역으로 반격해오리라 생각했다.

승기를 잡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굳히는 것이다. 도플갱어는 방심 따위는 전부 내버리고 전력으로 김창의 반격에 대비했다.

오라, 대적자여. 오늘 여기서 누가 진짜인지 결판을 내자.

“그런데 뭘 좀 착각한 거 아니냐.”

김창이 보이지 않는 칼을 휘둘렀다. 그걸 본 도플갱어는 언제든 공격할 수 있도록 근육을 긴장시켰다.

챙! 칼과 칼이 부딪쳐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하나의 공격은 막아냈지만 다른 하나의 공격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팔 하나가 날아갈 테고 김창은 고통을 참으며 이쪽으로 달려들겠지.

생각대로라면 그랬어야 할 텐데.

김창은 멀쩡하다. 어째서인지 상처 하나 없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한 번의 공격은 막았다쳐도 다른 한 번의 공격은?

그건 대체 어디로 갔나? 도플갱어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김창이 칼을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칼을 들어 공격을 막고 곧장 반격하려 할 때였다.

서걱!

“···뭐?”

팔이 잘려 나갔다. 아까까지 상상하고 있던 장면이 어째서인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어째서? 이건 나의······.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나도 할 수 있지, 등신아.”

김창의 무심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도플갱어는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는 자신의 팔 때문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결국 가짜는 가짜일 뿐이었다. 복제본은 원본을 넘어설 수 없다.

자신은 무형의 칼을 만들어낼 수 없지만 김창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모두 해낼 수 있지 않은가?

어느 쪽이 진짜고 어느 쪽이 가짜인지, 어느 쪽이 훨씬 더 우월한지에 대한 의문은 방금의 일격으로 이미 판가름이 났다.

그러니 이 이상의 탐구는 무의미할 뿐이다. 그럼 여기서 끝인가?

“···김창!”

도플갱어는 아직 자신의 오른손이 멀쩡하다는 걸 안다. 그 손에 칼이 들려 있다는 것도 알고.

그럼 거기서 뭐가 더 필요한가?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있는 것은 오로지 서로의 목숨을 건 싸움일 뿐.

자신이 진짜 김창이 될 수 없다면 뭐 어떤가? 지금만큼은 김창의 복제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칼잡이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을.

“뭐 인마.”

김창이 자세를 낮췄다. 한 손으로는 칼집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칼자루를 잡은 듯한 자세.

그게 뭘 뜻하는지는 도플갱어도 잘 알고 있다. 어쨌거나 자신은 김창을 복제한 무언가니까.

저쪽이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고 있다면 자신도 받아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럼 같은 기술로 대항할 것인가?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도플갱어는 사소한 자손심을 부렸다. 그는 칼을 머리 위로 들고 칼끝으로 김창을 겨누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전투 개시의 신호 따윈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언제 싸워야 할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으니까.

탁. 거의 동시에 울린 발걸음 소리는 하나로 합쳐져 소음 속에 묻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동작까지 일시에 행해졌던 건 아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물리적 법칙을 무시하고 일순간에 다섯 번이 겹쳐진 필살의 일격.

그 공격이 어찌나 빠르게 행해졌는지 공기가 떨리고 소름 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공격은 이미 행해졌고 관측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결과뿐. 눈으로는 결코 쫓을 수 없는 찰나의 순간 속에서 또 하나의 공격이 발호했다.

늑대가 아무리 날뛰어도 범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시끄럽게 공기를 흔들던 필살의 일격은 용이 울부짖는 듯한 굉음에 묻혔다.

공기를 가르고 공간을 가르며 더 나아가 신조차 갈라 버릴 일격이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다섯 번의 일격과 하나의 칼날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바쁘게 연산에 연산을 거듭하던 신의 두뇌가 잠시간 멈췄다.

“······결국.”

하나는 서고 하나는 쓰러졌다. 두 사람의 생김새는 똑같았기에 얼굴만 보고선 누가 이겼는지 얼른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영영 모를 일은 아니었다. 허리가 잘린 도플갱어가 피를 한 움큼 뱉어내며 웃었다.

“결국··· 헛짓거리였군······.”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김창이 상처가 벌어져 내장이 쏟아지려는 배를 손으로 꽉 붙잡았다. 이거 낫긴 하나? 아무리 그래도 신이라 그런지 당장 죽진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김창은 바닥에 쓰러져 숨이 끊어진 도플갱어를 가만히 보다가 손으로 눈을 감겨주었다. 새삼 느끼는 일이지만 자기가 죽은 모습을 보는 건 참 꺼림칙한 일이었다.

그는 쿨럭 기침을 한 번 하고서 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분명 그 역시 크게 다쳤는데도 약해 보이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하나의 경지를 넘어 아득한 저곳까지 올라버린 듯한 모양새에 그 덩치가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보였다.

아무리 고철덩어리인 신이라고 해도 그걸 몰랐을 리는 없다. 신은 피를 줄줄 흘리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김창을 보고서 위험이라는 감정을 학습했다.

다시 없을 일이었다. 마음이 없는 신에게 마음이 뭔지 알게 했으니.

“우리 아직 셈할 거 남았지.”

김창의 무심한 목소리를 들은 신이 잠깐 침묵했다가 말했다.

“···적대적 대상에게 대화를 요청.”

김창이 웃었다.

“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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