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1. 첫 번째 편지(4)
* * *
세리아 유르디나는 그날도 이른 아침부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녀의 하루는 늘 그렇게 시작됐다. 여섯 살 때 처음으로 검을 잡았을 때부터, 그녀가 수련을 거르는 날은 없었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그녀의 검은 언제나 몇 가지의 궤적을 그렸다.
혹자들은 그녀를 검의 천재라 불렀다. 그럴 만도 했다. 10대가 되었을 무렵부터 마수 토벌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명성을 쌓기도 했다.
열여덟 살이 되었을 무렵엔 아카데미에서 정식으로 초대장이 날아왔다. 대륙 최고의 교육기관인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치러 보라는, 속이 뻔히 보이는 제안이었다. 물론 세리아는 기꺼이 그 초대에 응해 주었다.
날고 기는 천재들이 모였다는 아카데미에서도 그녀의 적수가 될 만한 사람은 드물었다. 최소한 그녀의 동기들 중에서는 하나나 둘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여태껏 검술학부의 수석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녀에게 붙은 ‘천재’라는 수식어는 과장이나 아첨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천재였다.
다만, ‘노력하는’ 천재였을 뿐이지.
남모르게 흘리는 피땀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만큼 세리아는 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종종 결과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고 이러한 생각을 품곤 했다.
그들도 나처럼 간절하게 검을 휘둘러 본 적이 있을까?
아버지가 그녀를 낳은 어미를 쫓아낸 이후로, 유르디나 가문에서 그녀가 보낸 나날들은 매일매일이 생존 경쟁과 같았다.
쫓겨나지 않기 위해 그 가치를 증명해야 했고, 검술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후에야 비로소 ‘유르디나’의 성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강제로 이은 유르디나의 핏줄조차 그녀 스스로의 쓰임새가 다하면 없어질 터였다.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잘라낸다.
남부 열왕국에 자리한 밀림에는 신비한 리자드맨이 산다고 들었다. 독충과 독초가 들끓는 그곳에서 리자드맨은 살아남기 위해 특이한 습성을 발달시켰다.
바로 팔이나 다리, 꼬리 중 어느 곳이 중독되면 그곳을 잘라낸다는 것이다. 전신에 독이 퍼지기 전에 목숨이라도 보전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지나면 팔도, 다리도, 꼬리도 다시 나지만 목숨은 사라지면 다시 얻을 수 없다. 누군가는 굴욕적인 삶이라고 욕할지도 모르나, 어린 시절의 세리아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오래 전부터 필요한 것을 제한 모든 것을 잘라냈다.
취미 생활, 필요 이상의 수면, 인간관계, 그리고 욕망과 애정까지.
그 모든 잡철들을 녹여내고 털어내어 만들어진 것이 ‘세리아 유르디나’라는 한 자루의 명검이었다. 당연히 여타의 검사들과는 질적으로 달랐고, 또 그래야만 했다.
물론 아무리 잘라내고 싶더라도, 도무지 털어낼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었다.
때때로 그녀는 외롭다는 생각에 종일 우울해 하기도 했고, 조건 없는 애정과 인정을 갈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그녀에게 인간관계란 너무나도 난해한 문제였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더 칼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검을 휘두를 때면, 최소한 바깥의 문제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그녀 자신조차 잊을 수 있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이었으니, 당연히 아침 또한 검을 휘두르며 시작하는 것이 순리였다. 새벽녘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검을 휘두르는 이 순간, 세리아의 마음은 그.어느 때보다도 고요했다.
그날, 그 사내가 느닷없이 그녀의 수련 공간에 들어서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수련에 집중하던 세리아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흠칫 놀랐다. 그녀의 당혹스러운 눈이 등 뒤를 향했다.
이곳은 아카데미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한 숲이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터.
최소한 그녀가 매일 같이 이곳을 드나들 때 아침부터 인기척이 느껴진 적은 드물었다. 고작해야 캠핑 동아리가 한두 번 찾아와서 그녀가 수련 장소를 옮겼던 정도일까.
그리고 세리아가 더욱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 인기척이 생각보다 너무 가까운 곳에서 났기 때문이었다.
세리아는 검술뿐만 아니라 마력량 또한 출중하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여러 실전을 거치며 그 제어에도 능숙한 상태였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감각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예민해지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늘 옅은 마력의 감시망을 펼쳐 주위의 위험요소를 감지한다.
그런데 지금 세리아는 누군가가 그녀의 지근거리에 올 때까지 그 존재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이는 둘 중 하나를 뜻했다.
상대가 세리아보다 월등히 강하거나, 작정하고 기척을 숨겼거나.
그래서 그녀는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만약 암습이라면, 먼저 손을 쓰는 편이 좋을까?
그러나 그러한 세리아의 걱정은 곧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터벅터벅 걸어 공터에 들어선 사내는, 세리아는 흘깃 보더니 곧 무심한 눈으로 다시 공터 한가운데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검을 뽑아들었다. 그 누구를 향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허공을 향해서.
그 또한 검을 휘두르려고 온 모양이었다. 세리아는 여전히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는 않았으나, 곧 상대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함을 깨달았다.
검은 머리카락에, 금빛 눈동자. 함께 강의를 듣는 선배 중 하나였다.
이름이, 이안이었던가? 그녀의 기억에는 조금 더 부드러운 인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늘의 그는 무언가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짙은 피로가 머무르는 눈동자.
그 강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눈동자는, 섬찟한 느낌을 줄 정도였다. 세리아는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고양이 앞의 쥐처럼 피가 얼어붙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살인자의 눈이었다. 그것도 수도 없이 생명을 해쳐 본, 누군가의 삶을 빼앗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이들만이 가지는 눈동자.
세리아의 몸이 움찔했다. 검극을 그에게 향하고 싶은 본능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오래 전부터 단련된 생존 본능이 알리는 경고였다.
그러나 사내는, 세리아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단지 검을 몇 번 휘둘렀을 뿐.
훅, 하고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검이 기기묘묘한 궤적을 그렸다.
처음에는 단순하고 직선적인 궤적이었다. 그런데 그 궤적과 궤적이 겹쳐질수록 점점 더 난해한 검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법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세리아는 넋을 놓고, 그 몇 분간의 검술 시연을 감상했다.
그녀도 검사였다. 당연히 상대의 실력을 알아볼 만한 안목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저 검로 앞에 그녀가 서 있다고 가정하면, 몇 수만에 그녀가 패배할 것인지.
10수? 아니,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었다.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건 찰나의 묘수풀이와 같았다. 지금처럼 멀리서 지켜보더라도 활로가 잘 보이지 않는 검로였다. 실전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녀도 강의를 들으며 그의 검술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의 검술은 기본에 충실하지만, 그뿐.
착각인가, 그녀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을 때였다.
“……세리아 유르디나.”
“네, 네헷?!”
그녀는 나지막이 그녀를 부르는 사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대답하다가 혀를 씹고 말았다.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곧 그녀의 고개가 숙여졌다.
너무 오랜만에 나누는 대화라서 그런지도 몰랐다. 요즘에는 하루에 말 한두 마디 하는 일조차 드물었으니까.
그러나 사내는 그녀의 실수를 탓하거나 놀릴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단지, 그는 피로한 기색을 지우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서 검을 휘두르는 건 한계가 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면, 결국 부러지거든.”
그는 그렇게 한탄하듯 중얼거리고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공터를 떠나갔다. 그때까지도 세리아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다만 사내가 그녀를 스쳐 지나갈 때, 그녀는 훅, 하고 올라오는 불쾌한 냄새를 맡았다.
술 냄새? 그녀의 시선이 사내의 뒤를 쫓았다. 그러고 보면 그 비척이는 걸음걸이부터가 정상은 아니었다.
아직 술에서 덜 깬 걸까. 그러한 생각이 든 순간 세리아는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혼자서 검을 휘두르는 건 한계가 있다고?
전날 밤에 술을 진탕 마시고 운동 삼아 검이나 휘두르는 인간이 내게 할 말이란 말인가?
그녀의 검은, 그보다 더 간절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을 생각도 없었기에 홀로 걸어왔던 길이었다.
바보 같았다. 순간적이나마 저딴 사내의 검에 홀린 자기자신이, 함량 미달의 검사처럼 여겨져 수치스러웠다.
그러고 보면, 저런 사람을 부르는 말이 따로 있었던 것 같은데.
한참을 꽁해져 끙끙거리던 그녀는, 곧 떠올리고자 했던 단어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그래, ‘꼰대’였지. 이안 선배는 ‘꼰대’였구나!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이 기분 나쁜 조언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꼰대’라고 불렀던 기억이 났다. 그러니 이안 선배는 꼰대일 터였다.
남의 노력을 그렇게 평가절하 하다니, 세리아는 이를 으득으득 갈면서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날 세리아와 사내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검술 실습 시간, 수강생들을 모아놓은 검술학부의 데렉 교수는 늠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오늘은 선후배간의 교류를 위해 페어링을 실시하겠다!”
그 말에 단번에 학생들의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아카데미가 실력이 전부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학교는 학교였다. 낯선 선배를 어려워하지 않는 후배는 없었다.
물론 이는 세리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인간관계를 내다놓은 그녀였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짝을 짓는다는 건 어색하고 괴로운 시간이 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온갖 험지를 누비며 이름 있는 마수들을 사냥했다는 전설적인 모험가, 데렉 교수는 동료애에 각별한 가치를 두고 있는 사내였다. 나이가 쉰이 넘었음에도 그 우락부락한 몸에 새겨진 상흔들을 볼 때마다 죽어간 동료들을 떠올린다던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학생들이 반대하더라도 그 결정을 철회할 것 같지는 않았다. 세리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페어링을 하더라도, 상대를 무시하고 혼자 훈련하면 그만일 터였다. 그렇게 가까스로 스스로를 위로하던 그녀는, 곧 더욱 난감한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하필 그녀와 페어링 된 상대가 바로 아침의 그 사내였기 때문이었다.
‘이안 페르쿠스’. 그녀는 그제야 그의 이름을 전부 알 수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의 관심은 아니었다. 오늘 아침부터 세리아의 기분은 꽁한 그대로였으니까.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아도 ‘유르디나의 싸가지’라고 불리는 그녀가, 더욱더 싸가지 없는 대응을 하고 만 것은.
“선배와 훈련하고 싶지 않습니다.”
툭, 하고 그녀는 내던지듯이 그렇게 말했다. 무척이나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는 듯이.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요. 선배의 실력으로는, 아무래도.”
그녀의 말에, 일순 주위의 분위기가 굳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차는 소리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세리아도 말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고 싶었는데, 인간관계에 미숙한 그녀는 종종 지나치게 솔직한 말을 내뱉곤 했다.
물론, 이번에는 '꼰대 선배'에 대한 반감도 한몫 했을 테지만.
역시나 유르디나의 싸가지, 당연하다는 듯 조롱조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세리아는 애써 무시했다.
어차피 검술을 제외하면, 그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그러나 정작 그 폭언의 당사자인 이안은 아무 말도 없이 세리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충격을 받은 걸까, 누군가가 나서 이안을 위로하려던 그 순간.
“나와.”
그의 입에서, 그 한 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오히려 그 한 마디야말로 세리아의 폭언보다 더욱 큰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사내는 검술 훈련장 중앙에 위치한 대련장을 눈짓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어디 한 번 시험해 보게.”
누가 누구를 시험한단 말인가. 세리아가 이안을? 혹은, 이안이 세리아를?
드러난 실력만 보자면 전자가 맞겠지만, 지금 이안의 눈을 마주한 세리아는 도무지 그러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속을 읽을 수 없는, 단지 피로만이 가득한 금빛 눈동자.
그것이, 마치 그녀를 깔보는 듯 느껴져서.
“……좋아요.”
세리아는 이를 악물고,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아카데미를 뒤흔들 사건의 시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