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1. 첫 번째 편지(6)
* * *
강의가 시작되었다.
데렉 교수님이 지도하는 ‘검술 실습’은 훈련에 가까운 수업이었다. 주로 하는 일은 검 휘두르기, 대련하기, 아니면 날을 잡아 낮은 등급의 마수 토벌에 참가하기.
굳이 강의가 아니더라도 검술학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검술 실습 강의는 늘 인기가 많았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학점도 딸 수 있으면 좋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육체파가 대부분인 검술학부가 아닌가. 강의실에서 머리에 쥐가 나도록 이론을 배우는 것보단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는 편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오늘의 강의에서는 평소와 같은 활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훈련에 집중해야 할 학생들의 이목이, 누군가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군가’는 말할 것도 없이 바로 나였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들 기대 어린 시선을 내게 보내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세리아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지난주의 내가 무슨 수를 썼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실마리는 있었다. ‘마수만 상대하다 보니 근육이 솔직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공방 사이에서 상대의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란 말인가?
설령 그 정도의 관찰력이 있더라도, 옷으로 가려진 부분까지는 알 수 없을 터였다. 그야말로 난제였다.
한참을 끙끙거려도 해답을 찾을 수 없던 나는, 이제 반쯤 포기한 채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몸에서 힘이 빠진 덕인지 검로가 깔끔했다. 그러고 보면 마력량도 조금 는 것 같고, 혈도도 꽤 넓어진 것 같은데.
지난 일주일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다시 한 번 의문이 고개를 치켜들었으나, 나는 곧 그 호기심을 누그러트렸다.
그래봐야 세리아 유르디나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하늘이 내린 재능을 일생 동안 연마한 상대였다. 일주일 안에 그 격차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멍하니 검을 휘두르고 있는데, 어느새 내 곁에는 데렉 교수님이 다가와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얼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흉터, 그리고 우락부락한 구릿빛 몸까지.
이제 곧 노년에 접어든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든든한 체격을 자랑하는 분이셨다. 한때 마수를 쫓아 온갖 금역을 쏘다녔다는 사내다운, 강인한 신체였다.
그는 내가 검을 휘두르는 양을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다가, 이내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기를 뺐군.”
“……네?”
나는 느닷없는 칭찬에 그렇게 반문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내 시선에도 데렉 교수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의 손이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었다.
“살기를 뺐다고, 아주 잘했다. 지난번에 봤던 네 검은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목적에 잡아먹혀 있었거든. 물론 경지를 이루면 무시무시한 살검이 탄생하겠지만, 생명을 죽일 때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돼버려선 의미가 없지.”
나이든 검사들이 맹신하는 ‘정신론’을 말하는 듯했다. 물론 검술에 있어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나 다름없었다.
마력을 제어하는 것은 신체가 아니라 정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상을 이루어야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아카데미에서 검사들을 강제로 붙들어 이론을 주입하고 명상을 시키는 건,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정신론’은 다양한 도전을 받고 있기도 했다. 왜냐하면 일부 검사들이 ‘정신론’을 일종의 ‘정신만능론’으로 생각하곤 했는데, 이는 다소 비과학적인 생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련은 어디까지나 적당한 휴식과 영양 섭취를 병행해야만 최고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검사들은 정신론에 입각하여 한계까지 검을 휘두르곤 했다. 그래야만 정신까지 단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최소한 젊은 세대의 검사들은 더는 그러한 수련법을 따르지 않았다. 힐링 포션을 물 쓰듯 쓸 수 있는 고위 귀족의 자제가 아니라면 말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검로가 달라진 것 또한 그러한 정신론을 맹신하는 검사들의 특징 중 하나였다. 심상을 검로로 구현하는 경지가 아님에야, 검이란 단지 휘두르는 대로 휘둘러질 뿐이다.
내 떨떠름한 시선을 마주한 데렉 교수님은 곧 혀를 쯧쯧, 하고 찼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내 말이 틀린 것 같냐? 하지만 목숨을 건 싸움에서 정신력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내가 아주 잘 알고 있지. 위기에 몰리면, 무언가 잠재능력이 억지로 일깨워진다고 할까?”
큰일 났다. 이대로 가다간 데렉 교수님의 무용담만 수십 분이고 들어야 할 판이었다. 내가 그의 옛날이야기 지옥에서 빠져나갈 적당한 핑계를 구상하고 있는 사이, 데렉 교수님은 더욱 우쭐해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과 정신의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빈틈을 노출하기 십상이지. 예를 들어 머리로는 활로는 찾았는데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든가, 의도를 숨기는 법이 미숙해서 몸에 그대로 그 징조가 드러난다든가…….”
“네, 알겠습니다. 데렉 교… 아니, 잠깐만요. 의도를 숨기는 법이 미숙하다고요?”
공손한 말투로 적당히 맞장구나 쳐주려던 나는, 이어지는 데렉 교수님의 말에 화들짝 놀라 되묻는 수밖에 없었다.
의도를 숨기는 법이 미숙하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뉘앙스였다.
데렉 교수님은 젊은 사람이 자신의 말에 관심을 가져준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는 더욱 신나서 경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 넌 아직 지능이 높은 적을 상대한 경험이 부족하지? 대련으로는 알 수 없어, 삶과 죽음이 오가는 곳에서만 깨달을 수 있는 직감이 있지… 수준이 낮은 적을 상대할 때는 상관없지만, 수준이 높은 적을 상대할 때는 느낌이 와. 아, 저 녀석이 내 행동을 다 꿰고 있구나…….”
“아니, 그런 게 가능해요?”
끝없이 이어지던 말을 끊고 들어간 내 질문에, 데렉 교수님은 입을 다물고 멀뚱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감이 온다니?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상대와 합을 겨루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 와중에 상대가 무슨 행동을 할지 낌새까지 눈치 챈다고요?”
내 질문이 꽤 재미있다고 느꼈는지, 데렉 교수님은 다시 한 번 수염을 쓰다듬으며 끌끌거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래, 된다. 물론 나도 한때 너처럼 생각한 적이 있었지, ‘그거 다 허세 아니야?’ 이렇게. 그런데 고수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너도 언젠가 알게 될 거야.”
그러면서 데렉 교수는 그 솥뚜껑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리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가, 그가 더 멀어지기 전에 물었다.
“데렉 교수님.”
흘깃, 그의 깊고 푸른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의 흥미가 식기 전에 얼른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우리 중에 그 정도 수준에 이른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러자 데렉 교수님은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재미있는 질문을 들었다는 듯이.
“너희들로는 안 돼! 적어도 수석이나 차석쯤은 돼야지, 그것도 3학년 이상?”
즉, 세리아도 그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수를 숨기고, 낌새를 눈치 채는 경지.
그렇다면 아무래도 실마리는 이쪽을 향하는 듯한데,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나도 아직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답이 흐릿하게 잡히는데, 정작 능력이 부족해서 답을 고르지 못한다니.
처량한 신세였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슬쩍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추상같은 눈빛을 한 세리아 유르디나가 서 있었다.
그래, 죽자.
나는 마음속으로 부모님과 형, 여동생, 그리고 레토와 셀린에게 유언을 남겼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길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
“그, 이안 선배님.”
강의가 끝마쳐질 무렵이었다. 다들 검을 손질하고, 슬슬 다음 강의를 준비하거나 잠깐의 여유를 즐길 시간.
나는 셀린과 노닥거리면서 오늘 하루가 제발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주신 아루스께서는 평소 내 신앙생활에 불만이 많으셨던지, 내 소망을 무참히 짓밟고 말았다.
세리아 유르디나가, 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외모였다. 회색의 머리카락은 칙칙하다기보다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고, 늘 굳어 있는 표정조차도 그녀의 미모와 어우러지니 얼음 공예품과 같은 아름다움을 강조시켰다.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인데, 지금의 내게는 저승에서 찾아온 사신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다니.
불행한 일이었다. 세리아의 느닷없는 등장에 나와 노닥거리고 있던 셀린 또한 낯빛을 단번에 굳혔다.
그야 세리아가 나를 찾아올 용건은 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수강생 전원의 시선이 집중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기대로 반짝이는, 구경꾼들의 시선.
“하, 한 수 부탁드려호… 읏! 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복수였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혀를 한 번 씹긴 했지만, 아무튼 그녀의 목적은 그런 듯했다.
세리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모습이 꽤 귀여웠다. 좀 더 싹싹하기만 했어도 선배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을 텐데.
그러나 그녀의 그 귀여움조차 지금의 내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더더욱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선배에게 가르침을 청하는데, 도망쳐?
그것도 오늘 강의가 시작되기 전, 테안에게 자신만만한 말을 한 전적까지 있었다. 이따 한 판 할 것 같으니, 슬슬 몸을 풀고 싶어?
그 정도로 심각한 사태인 줄 알았다면 그딴 말을 내뱉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때 백기사를 자처한 것은 셀린이었다. 그녀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쩔쩔 매다가, 곧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아! 그러고 보니 이안 오빠는 이후에 나랑 약속이…….”
“됐어.”
그러나 그녀가 내민 동아줄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나는 체념한 말투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셀린은 울상을 짓고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겠다더니, 빈말이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러한 셀린의 반응을 위안 삼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어떻게든 한 판 하고 싶을 거 아니야?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라도.”
“……네.”
세리아는 조용히, 그러나 확고한 의사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금 자리를 피해봤자였다.
하루나 이틀 가지고 뾰족한 수가 생길 리는 없었다. 오히려 쫓기는 기분이 들어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시간을 보낸다면 몰라.
매를 맞더라도 일찍 맞는 편이 좋았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좋아, 그럼 한 판 하자고.”
내 허락이 떨어지자 기뻤던지, 세리아의 차가운 얼굴에 순간적으로 화색이 돌았다. 그녀의 머리 위에 느낌표 하나가 뜨는 듯한 환각이 보일 정도였다. 한 떨기 꽃과 같은 미소였다.
그러든 말든, 나는 쯧, 하고 혀를 차면서 검술 훈련장 중앙에 위치한 대련장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오늘 하루는 공 쳤다. 그래도 병결이니까 최소한 감점은 당하지 않겠지, 그러한 생각이나 하면서.
웅성거리는 소음, 데렉 교수님의 허가, 그리고 목검을 쥐고 대련장의 양극단으로.
아쿠아마린을 닮은 차가운 눈동자를 응시했으나 그 속을 읽을 수는 없었다. 나는 속으로 데렉 교수님을 괜히 한 번 씹었다.
낌새는 개뿔, 아무것도 모르겠구만.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대련 개시를 알리는 데렉 교수님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그럼, 시작!”
훅, 하고 내 눈앞까지 쇄도한 세리아를 목도해야 했다.
그 다음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몸이 허공을 날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