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10화 (10/649)

〈 10화 〉 1. 첫 번째 편지(10)

* * *

신전은 간절한 절망을 담는 수납함이었다.

문명의 총화로 축조된 건물은 드높고 넓었다. 신성한 상징들과 성화들이 곳곳에 전시된 신전은 경건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이처럼 웅대한 신의 집 앞에서, 한낱 인간이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

지상의 미물들은 마땅히 무릎 꿇고 신에게 기원을 바친다. 그것은 용광로 속에서 빛과 열을 감내하는 모래 알갱이처럼 오랜 단야가 필요한 일이었다.

신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러므로 간절하고, 또 절망적이다. 매달릴 수 있는 곳이라곤 오로지 대답조차 돌아오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뿐.

이는 신전에 위치한 치료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카데미에 자리한 신전은 신학 강의동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고위 사제들이 머무르는 장소였다. 훈련 도중 발생하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훈련 중이라도 실전을 염두에 두고 강의를 진행하는 곳이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부상자가 나오기 일쑤였다.

물론 그중 대다수는 기껏해야 며칠 정도의 치료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대련을 비롯해 부상의 위험이 높은 훈련은 아카데미 교수의 참관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륙에서 이름을 날리는 실력자들 앞에서 감당하지 못할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신전에서조차 감당할 수 없는 환자가 아예 나타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마수 토벌 등의 실습에 파견된 4학년이나, 혹은 아카데미 부지 내의 위험지역을 부주의하게 돌아다니다 불상사를 당한 학생들은 때때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중상을 입기도 한다.

엠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지난 새벽 성국에서 파견된 고위 사제들에 더해 성녀까지 신성력을 퍼부었음에도 차도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창자를 쏟았다고 들었으니까.

그간 신전의 집중치료실 앞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떠났다.

모두 엠마와 관련된 이들이었다. 지도교수나, 인연이 있는 선후배들, 절친한 사이의 동기, 그리고 나와 레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나는 어제 오후의 일을 반추했다. 후회스러웠다. 내 품에는 아직도 엠마가 준 물약이 남아있었다.

그때쯤, 성국의 고위 사제들과 함께 엠마의 치료를 주도하고 있던 성녀가 피로한 기색으로 집중치료실을 나섰다.

멍하니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내 몸이 벌컥 일으켜졌다. 성녀는 이미 이러한 일이 익숙한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임마누엘(immanuel).”

‘신께서 함께 하시길’, 성국에서 인사 대신 전하는 말이었다.

조급해진 내 표정을 본 성녀는 사정을 헤아렸다는 듯 눈을 반쯤 감았다. 신성력을 퍼붓느라 무리한 탓인지, 그러지 않아도 새하얗던 그녀의 낯빛은 이제 창백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빛을 유순히 흘려 넘기는 은빛 머리카락과, 옅은 안타까움으로 물든 연분홍빛 눈동자.

만약 신이 있다면 형편없는 편애꾼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외모였다. 평소였다면 넋을 잃고 감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나와 레토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이 아니라 입술에 고정되어 있었다. 무어라 말이라도 해달라는 듯이.

늘 온화한 미소를 그리고 있던 그녀의 입술은, 오늘따라 꾹 닫힌 채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기적을 애걸하는 두 어린양의 시선을 끝까지 외면하기는 어려웠던지, 성녀는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입이 조심스레 열렸다.

“솔직히 말해서, 상황이 좋지는 않아요.”

그것은 알맹이 없는 위로보다 위협적인 진실이었다. 내 몸이 다시 마른 짚단처럼 의자에 풀썩 쓰러졌다.

후우, 하고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창자를 쏟은 채로 너무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어요. 추측으로는 몇 시간? 이미 내장까지 오염이 퍼진 상태입니다. 그나마 마지막 순간에 엠마 양께서 가사 상태에 이르는 물약을 마셨기에 아직 숨이 붙어있는 거예요.”

연금술사들이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챙기고 다닌다는 물약이었다.

일단 가사 상태에 빠지면, 심장 박동이 극단적으로 느려지고 출혈이 심해져도 목숨을 잃지 않는다. 그에 더해 여러 보조 효과로 생존률을 극대화시키는 데 목표를 둔 물약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가 있었다. 창자를 쏟았다면 중상 중에서도 중상이었다. 신성력은 만능이 아니었고, 그 정도의 부상이라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혹시 또 몰랐다. 가치가 높은 제물을 바친다면 기적이 베풀어질지도.

하지만 약초꾼의 딸에 불과한 엠마가 그러한 제물을 구할 여력이 있을 리는 없었고, 그녀의 부상에 책임을 느끼고 있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이 베푸는 기적조차 평등하지 못한 세상이었다. 내 눈이 암울한 전망을 담아 수그러졌다.

“희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지금으로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편을 좋을 겁니다. 이제 곧 엠마 양의 부모님께서 도착한다고 들었어요.”

성녀는 부드러운 걱정을 담아 나와 레토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자코 우리 둘의 낯빛을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께 엠마 양의 상황을 전하는 건,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견디기 어려우시다면 기숙사에 돌아가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아니요, 기다리겠습니다.”

내 목에서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녀는 지긋이 나를 쳐다보았다. 연분홍빛 시선이 묻고 있었다.

정말로 괜찮겠냐고.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님을 마지막으로 본 것도 저니까요. 친구로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모습쯤은 전해 주어야겠죠.”

그리고 그때 조금 더 엠마를 말렸다면, 편지에 쓰여진 내용을 조금만 더 믿었더라면.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리고 마냥 나만의 책임은 아닐 터였다. 누구라도 7년 뒤의 미래에서 편지가 날아왔고, 그 안에 네가 다친다는 내용이 있다는 말을 하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만약 내가 경고를 전했더라도 엠마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웃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는 죄책감만은 가슴에 남는다.

레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책임은 없지만, 그의 연구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다 발생한 일이었다. 도의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 그는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입에서 하아, 하고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가 이마를 짚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엠마한테 부탁하는 게 아니었어… 제기랄.”

“……누구의 책임도 아닙니다.”

레토의 한탄에, 성녀는 그렇게 단언했다. 여전히 상냥한 목소리였지만, 강한 확신이 담긴 어조였다.

“친인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이야기하죠. 내 잘못이라고, 조금 더 잘했어야 했다고… 하지만 아카데미에서는 매년 몇 명씩 사망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단지, 지금은 그중 하나가 엠마 양이 될지도 모를 뿐.”

말을 이어가던 성녀는 그쯤에서 제 가슴에 성호를 그렸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앞둔 필멸자들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성녀의 그 부피감 있는 젖가슴에 대한 감상을 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도 레토도 그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침묵했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섭리와 우연은 한낱 필멸자의 힘으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형제들이여,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작별인사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잠시 자리를 뜰 생각인 듯했다.

“물론,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다면 누구도 괴로워하지 않겠지만… 부디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기를, 임마누엘.”

스쳐지나가듯 그러한 중얼거림을 남기고, 성녀는 떠났다.

나와 레토는 그녀가 떠난 뒤에도, 한참이나 집중치료실 앞에서 널브러져 있었다.

누군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이러한 상황 자체가 내게는 낯설었다. 지금껏 내가 장례식에 참석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물며 절친한 사이는 아니라지만 친구의 죽음이라니, 그것도 내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죽음.

마음이 복잡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내 텅 빈 눈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허공을 응시했다.

그렇게 후회와 죄책감에 눅눅히 젖어들어 가고 있던 내 정신을 일깨운 것은, 어느 촌부의 울부짖음이었다.

“아이고, 엠마야! 엠마, 내 딸!”

퍼뜩 정신을 차린 나와 레토의 시선이 소리의 진원지를 쫓았다. 그곳에서는, 신전의 복도를 허둥지둥 달려오는 허름한 차림의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수염도, 머리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깔끔한 몰골은 아니었다. 보따리 하나로 대충 짊어진 단출한 짐까지.

그의 정체를 금세 짐작해낸 나와 레토의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이제 희꿋한 머리가 보이는 사내는 집중치료실 앞에서 무너졌다.

감히 그 안에 들어가도 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얼굴. 나는 조심스레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저… 혹시 엠마의 아버님 되십니까?”

“……으잉? 우리 딸을 아십니까?”

확실했다. 그가 엠마의 아버지라는 걸 확신한 나와 레토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친우의 부모를 향해 보여야 하는 당연한 예법이었다.

“엠마의 친구인 이안 페르쿠스입니다.”

“마찬가지로 엠마의 동기인 레토 아인스턴입니다.”

나와 레토의 인사에, 엠마의 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레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끔벅이며 한참이나 침묵했다.

그 다음 순간, 엠마의 아버지가 보인 반응은.

“페, 페르쿠스? 아인스턴……? 귀, 귀족! 아이고, 죄, 죄송합니다! 이 촌것이 배움이 짧아 도련님들을 알아 뵙지 못하고…….”

넙죽 엎드려, 우리에게 용서를 간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레토는 난감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안타까움과 슬픔을 담아 그를 내려다보았다.

삶의 문제란, 이토록 잔인했다.

딸의 죽음을 앞두고도 귀족을 알아보지 못해 용서를 구해야 할 만큼.

그것이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