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1. 첫 번째 편지(11)
* * *
엠마의 아버지를 진정시킨 건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성녀가 부재중이었으므로, 나와 레토가 대신 대략적인 상황을 읊어주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이어질 때마다 엠마의 아버지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한 인간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것처럼 산산조각 난 표정을 하고 주저앉는다는 것.
상상 이상으로 감내하기 힘든 일이었다. 결국 나와 레토는 괴로운 낯빛으로 그의 시선을 피해야 했다.
어차피 그는 멍하니 바닥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는 집중치료실에 들어서지도 못했다. 위생 문제 때문이었다.
평민은 귀족처럼 청결을 유지할 수 없다. 몸을 씻고 닦는 일에도 돈이 필요하니까, 지금처럼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데 막무가내로 중환자실에 들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그는 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단지 고위 사제들이 전심전력을 다해 치료하고 있단 말이 그에게 위로가 되길 바랐을 뿐.
본래 평민이라면 얼굴조차 보기 힘든 존재들이었다. 엠마의 아버지는 그들이 천신 아루스의 화신이라도 되리라는 듯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나마 아카데미에 입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도 되지 않아 파발이 가서 엠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알리고, 또 엠마의 아버지가 값비싼 워프 게이트를 타고 단숨에 아카데미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그러나 아카데미가 베풀 수 있는 배려는 그것뿐이었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오직 천신만이 주관할 수 있었다.
엠마의 아버지는, 한탄처럼 딸과의 추억을 읊조렸다.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엠마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슴죠… 저처럼 멍청한 놈에게서 난 아이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랬으니까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을 터다. 나와 레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옅은 신음을 흘렸다.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성녀의 말처럼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겠지만, 당사자들이 느끼는 감상은 별개의 문제였다.
적어도 난 엠마의 부상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말릴 수 있었던 건, 오직 나뿐이었으니까.
내 괴로운 마음과는 별개로, 엠마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한탄을 이어갔다.
“어린 시절 절 따라 약초를 캐겠다고 따라온 어미를 늑대한테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 없이 자란 아이답지 않게 참 해맑고 예의가 발랐어요. 특히 약초의 특징을 어찌나 잘 기억하던지… 혹시나 해서 글자를 배우게 했더니 순식간에 깨치지 않더랍니까?”
“……좋은 딸이었군요.”
무거운 침묵을 견디기 어려웠던지, 레토가 그렇게 맞장구를 쳤다.
누구라도 던질 수 있는 공감의 말이었지만, 촌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요. 착한 딸이었죠. 그때부터 딸의 책값을 대기 위해 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힘들었지만 그 어려운 책을 누구 하나 가르쳐 주지도 않는데 깨치는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어요. 그러더니 어느 날 덜컥 아카데미에 합격하더군요.”
결국 촌부는 훌쩍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털이 덥수룩한 장년의 사내였지만, 애지중지하던 딸의 죽음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끄윽, 끄윽, 하고 속에서 미처 짜내지 못한 울음소리가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내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나는 품속의 물약을 만지작거렸다. 엠마가 남긴, 마지막 유산.
아버지를 위해 만든 물건일 터였다. 나는 그 길고 단단한 감촉이 손바닥을 짓누를 때마다 못내 괴로웠다.
“차라리, 흐으… 차라리 이럴 줄 알았다면, 얌전히 약초꾼으로 키우는 건데… 크흡… 이 아비가, 못난 아비가 욕심을 부려서…….”
“아버님.”
나는 그의 구슬픈 울부짖음이 이어지기 전에,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그렁그렁 눈물이 어린 그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말없이 품속에서 물약을 꺼내 그의 솥뚜껑 같은 손에 쥐어주었다.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나는 그래도 전해야 할 말이라 생각해서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엠마가 어제 제게 자랑하더군요. 기척을 숨기는 물약을 개발했다고… 저야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물약을 만들어 낸다는 건 연금술사로서 대단한 성과입니다.”
약초꾼은, 아무 말도 없이 물약을 내려다보았다. 그 자그마한 물약병에 담긴 엠마의 헌신과 노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듯.
나는 그에게 엠마의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것이 그녀가 아버지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물약이 있으면, 약초꾼이나 사냥꾼들이 죽고 다치는 일을 많이 방지할 수 있을 거라면서… 부디 아버님께서 받으시죠.”
촌부의 눈동자에 다시금 울컥, 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사내의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끝끝내 고개를 저었다.
그가 물약을 내게 되밀었다. 내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고, 엠마의 아버지는 말했다.
“도련님께서 써주십시오… 이 촌것은, 이제 죽든 살든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말하려고 하던 나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가라앉은 눈동자에 절망과 아픔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박혀 있었다.
“도련님께서, 크흑, 부디 도련님께서 써주십시오… 엠마를, 흐윽, 제 딸을 기억해 주십시오… 어차피 이 모자란 놈은 평생 딸을 잊지 못할 테니… 흐어엉…….”
그렇게 한 번 터져 나온 사내의 울음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실신해서, 쓰러지고, 숙소로 옮겨질 때까지.
나는 멍하니 엠마의 물약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어지러웠다. 가슴에 멍울이 진 듯하다.
레토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이안, 슬슬 우리도 돌아가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내 입은 꾹 다물어져 있을 뿐이었다.
레토의 입에서 한숨이 푹 새어나왔다.
“벌써 몇 시간째야, 이러고 있는다고 엠마가 정신을 차리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서 밥 좀 먹고 쉬자. 우리는 우리대로 살아야지.”
그리고 셀린도 걱정하고 있을 테고, 그러나 나는 그가 어떤 말을 덧붙이든 간에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편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구겨서 던져 버렸던 그 편지.
벼락처럼, 어떠한 생각이 내 정수리를 파고들었다.
그제야 내 다물어져 있던 입에서 흐릿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편지.”
“응?”
레토는 무슨 소리냐는 듯, 살짝 미간을 좁히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조차 눈치 채지 못한 채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7년 뒤의 미래에서, 편지가 왔어.”
레토의 낯빛이 더더욱 굳었다. 그가 내 표정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그럼에도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거기에 나와 있었어, 엠마가 마수에게 습격당해서 혼수상태에 빠진다고… 내가 만약 엠마에게 알려줬다면, 아니, 차라리 내가 호위를 서줬다면?”
“……이안.”
레토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리깔렸다. 진중한 목소리, 그가 한없이 진지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몸을 벌컥 일으켰다.
그리고 생각나는 말을 아무렇게나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후회와, 죄의식.
답답했다. 나는 비에 흠뻑 젖은 개가 물을 털어내듯 진절머리를 쳤다.
“그랬다면, 그랬다면 엠마를 구할 수 있었을 거야. 아니, 어쩌면 다치지도 않았을지도 모르지! 내가, 내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이안!”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한 레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의 고함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레토가 저벅저벅 걸어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발, 쉬러 가자… 너 많이 힘들어 보여.”
그렇겠지, 남들이 듣기에는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 편지의 말미에 남은 글귀가 가슴 속에 선명했다.
‘미래를 지키지 못하면, 세계는 멸망한다.’
만약 그 말이 진실이라면?
아니, 세계 멸망 같은 소리는 실감조차 나지 않으니 상관없었다.
다만, 엠마와 같은 피해자가 계속해서 생겨난다면?
나는 홀린 듯이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비틀거리던 걸음걸이는, 어느새 질주가 되었다. 뒤에서 레토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숙소로 가는 길목이었다. 저 멀리에서, 셀린이 보였다.
그녀는 반색하며 손을 흔들려다가,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이내 의아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셀린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녀의 볼에 연분홍빛 꽃이 피었다.
“또, 또, 왜 이러는데에…….”
“셀린.”
헐떡이면서 뱉어진, 거친 목소리에 셀린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이내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셀린도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미래에서, 허억… 미래에서 편지가 왔어. 거기에 엠마가 다친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안 오빠.”
그 나지막한 부름에, 나와 셀린의 눈이 마주쳤다.
셀린의 눈은, 불신을 담고 있었다. 난해한 수수께끼를 마주한 듯한, 낯선 눈빛.
“혹시 취했어?”
그 말을 듣고, 나는 흐, 하고 웃었다.
셀린의 의심은 지당했다. 나 같아도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나 내 직감이, 그 꿈을 전후로 겪었던 이상한 경험들이 내게 증언하고 있었다.
일개 장난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지금 제일 믿을 수 있는 두 사람을 뒤로 하고, 다시 달렸다.
숙소였다. 나는 찬장에 보관해 두었던 위스키 한 병을 꺼내 잔에 따랐다. 독한 알콜의 냄새가 코를 찌르고 뇌를 파고들었다.
상관없었다. 잔에 담긴 술을 곧바로 들이켰다. 식도와 위장을 태우며 독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걸어, 휴지통을 뒤집어엎었다.
벌써 2주나 지난 일이다. 그러나 숙소에 머무는 일이 드물었기에 아직 휴지통을 비우지는 않았을 터였다.
온갖 종이 쓰레기들이 쏟아졌다. 나는 차라리 그날의 경험이 술기운에 비몽사몽해서 겪은 착각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고급스러운 편지지 하나가, 구깃구깃 구겨져 있는 꼴을 보았을 때.
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구겨진 편지를 펼쳤다.
‘To. 사랑하는, 나의 이안 페르쿠스에게’
그러한 첫 줄과 함께, 무수히 이어지는 내용들. 그 정보의 범람 속에서 나는 그토록 염원하던 글귀를 찾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해의 수렵제는 유독 사건사고가 많았네요. 연금학부의 엠마가 재료를 채집하러 갔다가 의문의 마수에게 습격당해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된 것이 시작이었죠.’
있었다. 내가 보았던 그대로였다.
엠마가 재료를 채집하러 갔다가, 마수에게 습격당한다는 이제 실현된 예언.
휘청이며 걸어, 내 눈이 다시 편지를 훑었다.
그 한 자 한 자를 다시 뇌리에 새기겠다는 듯, 책상에 기대 술잔을 들이키며 몇 번이고 읽었다.
미래에서 온 연애 편지였다.
하필이면 왜, 나에게 도착한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만큼은 명확했다.
미래를 지키지 못하면, 세계가 멸망한다고?
솔직히 말해 실감조차 나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좋다.
어디 한 번 이대로 따라가 주겠다.
아직도 이 편지가 미래에서 온 것인지, 누군가의 장난인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한 번쯤은 어울려 주겠다고,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편지를 고이 접어 품에 넣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머지 내용은 알겠는데, 단 하나.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
‘From. 오늘 밤도 당신을 생각하며, 세피아로부터.’
도대체 ‘세피아’가 누구지?
술과 함께 그날 밤은 깊어져만 갔고, 내게는 새로운 과제가 하나 생기게 되었다.
‘세피아’를 찾아서, 그녀와 이어져야 한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연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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