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1. 첫 번째 편지(18)
* * *
마수들은 소리 없이 움직였다. 그래서 숲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숲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건 이상했다. 숲에는 새를 비롯한 온갖 야생동물들이 살아간다. 당연히 어떠한 소리라도 나야 정상이었다.
지금처럼 숲의 심부가 조용하다는 것은, 그 온갖 생명들을 숨죽이게끔 하는 포식자가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내달리던 나는 숲의 공터에서 멈춰 섰다. 그나마 검을 휘두를 공간이 충분했다. 그러나 정정당당히 마수들을 맞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마수와의 전투는 규칙도 예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죽이느냐, 그렇지 않으면 죽느냐의 싸움.
나는 품속에서 물약을 하나 꺼냈다. 은은한 회색빛이 감도는 물약이었다.
엠마가 마지막 만남에서 선물해 주었던 물건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극구 사양하기에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온, 엠마의 걸작.
물약 병의 뚜껑을 따자 알싸한 향기가 풍겼다. 냄새만 맡아도 맛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반찬투정을 부리기에 나는 이미 너무 자라 있었다.
망설임 없이 물약을 식도에 퍼부었다. 독주를 삼키듯 뜨거운 열감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열기는 혈관을 타고 점차 몸으로.
심장 박동이 서서히 그 빈도를 줄여나갔다. 갓 죽음을 맞이한 시체처럼 숨결이 잦아든다. 내 존재가 붕 뜬 느낌, 나 스스로도 내 존재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대가로 움직임이 조금 굼떠졌지만,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이 무렵에 엠마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엠마는 채집할 재료들의 냄새가 독특해서 이 물약이 소용없으리라 예측했다. 그 말인즉슨 이 물약이 외부의 냄새까지 지워주지는 못한다는 뜻이었다.
내 손이 눅눅한 흙을 퍼 담았다. 제복 곳곳에 흙을 뿌리고 풀을 짓이겨 즙을 몸에 발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풀이 스치는 감각만으로도 진절머리를 치던 내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더럽히고 있다니.
귀족 도련님답지 않은 짓이었다. 옅은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족했다.
검을 나무에 처박고, 단번에 몸을 날려 가지 위로 올라섰다. 나뭇잎에 가려져 내 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심지어 체취도, 숨소리도, 심장박동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이상적인 은신 상태.
물때를 기다리는 어부처럼 내 눈이 가라앉았다. 제 숨결마저 느껴지지 않는 세상은 한없이 고요했다. 자그마한 기척마저 천둥처럼 느껴질 정도로.
바스락, 하는 미세한 소리가 정적에 잠긴 숲을 찌르르 울렸다. 내 손끝이 긴장감으로 뻣뻣이 굳었다.
숨을 죽이고, 나뭇잎의 틈새로 공터를 관찰했다. 그곳에서는 잿빛 털을 가진 거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늑대였다. 다만 그 크기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도 커 보였다. 그리고 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나지 않을 듯한, 그 새까만 눈동자.
그 몸뚱아리에서 빛을 반사하는 부위라고는 기괴할 정도로 발달한 어금니밖에 없었다. 내 기억에 어떠한 생물군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마수가 분명했다.
그러한 깨달음이 뇌리를 스친 순간, 동력을 잃었던 내 심장이 다시 두근거렸다. 숨결에 열기가 담긴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근육을 팽팽히 당겼다.
검을 역수로 쥐고, 때를 기다렸다.
잿빛 늑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코를 땅에 처박았다. 내 체향이 아직 남아있을 터였다. 그런데 도무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할 테지.
킁킁거리는 소리가 바로 아래까지 이어졌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그리고 내가 결심하고 걸음을 내딛는 순간.
바스락, 하고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잿빛 늑대의 칠흑 같은 눈이 곧바로 치켜들어졌다.
그러나 그 눈동자에는, 이미 떨어지고 있는 은빛 실선이 비치고 있었으므로.
팍, 하고 뇌수가 튄다.
마력을 덧씌운 칼날은 추락하는 힘을 곧이곧대로 마수의 두개골에 전달했다. 오러의 밀도가 부족해 두개골을 관통하지는 못했으나, 비스듬히 틀어박힌 칼날은 두개골에 균열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크허헝, 하는 울부짖음과 함께 비릿한 핏물이 울컥울컥 쏟아져 내렸다. 뇌를 강타당한 거체가 몸부림을 쳤다. 강하고, 파도와도 같은 경련.
그 단말마와 같이 몸부림도 짧았다. 마수의 눈동자에서 점차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갔다.
움찔거리는 고깃덩어리가 마수가 남긴 마지막 삶의 흔적이었다. 나는 그 떨림이 진정될 때까지, 이를 악물고 칼을 박은 채 버텼다.
마수의 몸에서 미동조차 사라진 뒤에야 나는 기나긴 날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던 수통을 꺼냈다.
목이 탔다. 나는 수통을 탈탈 털어 수분을 보충하려 했으나, 떨어지는 것은 몇 방울의 물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아껴 마셨어야 했는데. 나는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좆같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내 품에서 하나의 생명이 경련하고, 점차 목숨을 잃어간다는 것.
수통을 든 손이 살짝 떨렸다. 수통의 뚜껑을 닫는데 몇 번 뚜껑을 흘릴 뻔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 첫 사냥의 감상을 되새김질 할 여유는 없었다. 벌써부터 마수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제 동료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을 터였다. 그 단말마가 곳곳에 울려 퍼지기에 숲은 충분히 고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를 찌르는 이 피비린내.
그러지 않아도 습기로 축축해져 있던 흙은 핏물을 잔뜩 머금어 걸을 때마다 철퍽거렸다.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내 몸 또한 이미 마수의 피로 흠뻑 젖었으니까. 늑대들은 다시 내 냄새를 분간할 수 없을 터였다.
지금으로서 생존 확률이 가장 높은 선택지는, 이대로 숨어 버리는 것이었다.
물약의 약효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데렉 교수님이 이상을 눈치 챌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터였다. 기껏해야 몇 시간 남짓.
하지만 그랬다가는 늑대들이 더 이상의 추격을 포기하는 수가 있었다. 동료의 복수를 뒤로 하고 마수 중 한 마리라도 세리아의 뒤를 쫓는 순간, 세리아의 목숨이 위험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핏물에 젖은 진흙 사이를 굴러 다시금 몸을 더럽혔다. 그리고 마수의 시체를 질질 끌어 근처의 풀숲에 던져놓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옆의 풀숲에 몸을 웅크렸다. 다시 짧은 인내의 시간.
단 몇 분만에, 어슬렁거리며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 녀석이 마지막은 아닐 터였다. 벌써 주위에서는 몇 마리의 마수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최소 다섯 마리였다. 늑대는 본래부터 떼를 지어 살아가는 짐승이다. 마수가 되었어도 그 근본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마수가 되기 위해서는 높은 밀도의 마력이 필요하니, 아무리 규모가 큰 이리떼라도 수십 마리에 이르지는 않을 듯했다. 그러나 열 마리 남짓은 각오해야 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마수를 눈앞에 두자 다시 한 번 심장이 가라앉았다는 점이었다.
첫 사냥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내게는 사냥을 앞둔 사냥꾼만의 은은한 긴장감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째서, 라는 질문은 불필요했다.
내 눈이 경로를 짜 맞추었다. 늑대들이 좀 더 다가오기 전에, 저 한 마리를 처리해야 했다.
공터에 나타난 늑대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피가 흥건히 묻어있으면 그럴 만도 하겠지. 녀석은 제 동료가 그랬듯 땅에 코를 처박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핏자국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천천히 다가온다. 내 곁으로 다가올수록 내 숨소리는 점점 더 옅어졌다.
늑대가 제 동료의 시체를 발견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높이 자란 풀숲에 던져놓긴 했지만, 마수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온전히 가려지지가 않았다.
조심스레 늑대가 제 동료의 사체로 다가섰다. 주위를 경계하는 그 모습은 신중한 척후병과 같았다.
훌륭한 자세였지만, 상대가 나빴다. 아무리 경계해도 물약까지 마신 나를 눈치 챌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검 손잡이를 두 손으로 쥐었다. 마수의 가죽은 질긴 편이니 찌르기가 더 유리했다. 좁은 면적에 최대한의 힘을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늑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개과 특유의 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아직 나를 눈치 채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찌르기, 섬광처럼 내쏘아진 일격이었다.
웅크린 자세에서 찔러 넣었기에 온전한 위력을 담진 못했다. 그러나 늑대의 무방비한 옆구리를 관통할 정도의 힘은 충분했다.
컹컹거리는 비명 소리가 높이 울려 퍼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마수의 질긴 가죽을 힘주어 절단했다.
촤악, 하고 피와 함께 창자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내장의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후각이 마비될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콱, 하는 소리와 함께 팔뚝에서 느껴지는 고통.
“크으, 큭……!”
터져 나오는 비명을 억지로 삼킨다. 늑대들의 위치가 발각되는 건 상관없지만, 내 존재를 알려서는 안 됐다.
나는 어디까지나 미지의 적으로 남아있어야 했다. 팔뚝에 가해지는 늑대의 치악력을 애써 무시하고, 칼을 끝까지 내리그었다.
주르륵, 창자가 쏟아져 나오며 늑대의 생명도 끝이 났다. 마지막까지 몸을 억지로 웅크리며 내 팔뚝을 문 마수의 눈에는 원독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눈을 보고 어이가 없어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그러게 왜 먼저 시비를 걸어? 개새끼가…….”
팍, 하고 검 손잡이로 코를 강타하자 늑대의 아가리가 힘없이 벌려졌다. 그 새까만 눈은 이미 몽롱하게 풀린 지 오래였다.
죽었다. 늑대에게서는 일말의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물린 팔뚝을 꾹 쥐었다.
아프다. 그 기괴한 어금니에 근육을 관통당했는지 뼈까지 시큰거렸다. 나는 품속을 더듬거리며 무명천을 찾았다. 그리고 그대로 상처 부위를 감아 출혈을 방지했다.
상처 부위를 제대로 소독하지 못하면 2차 감염의 위험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처치를 할 시간마저 부족했다.
이미 피를 꽤 흘린 탓인지 정신이 몽롱했다. 어지러운 느낌, 그럴수록 내 몸에 도는 마력은 점점 더 생기를 더해갔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머리가 제대로 돌지 않음에도 본능처럼 몸을 숨기고, 늑대들을 기다렸다.
마치 숙련된 사냥꾼처럼.
그러기를 몇 번, 공터에 늑대의 시체가 즐비해서 운신의 폭조차 좁아졌을 때.
내 검이 또 하나의 희생양을 찾았다. 목덜미를 관통당한 늑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 몰랐겠지, 설마 죽어있는 동료들의 시체 속에 숨어있을 줄이야.
또 하나의 거체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허억, 허억, 하고 거친 숨을 골라야 했다.
몸이 뻣뻣하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팔뚝의 피는 멎었지만, 늑대들을 상대하며 부상이 누적되고 있었다.
세리아는, 세리아는 어디에 있지?
이제 데렉 교수님께 도착했을까? 설마 마수를 놓치진 않았겠지, 이토록 강렬한 혈향을 풍기고 있는데 이곳을 지나칠 녀석은 없었을 것이다.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 이것만이 나의 최선이었으니까.
가파른 숨에서는 단내가 느껴졌다.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공터로 두 마리의 늑대가 걸어들어 오고 있었다. 집단행동을 하는 짐승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나는 각개격파를 시도했다는 점.
두 마리 이상이 온 적이 있긴 했으나, 그때는 내가 은신을 하고 있었다는 점.
그러나 지금은 은신도 하지 못했고, 육체도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
괜히 나섰나. 나는 검을 지팡이 삼아 헐떡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일러도 늦은 법.
내 금빛 눈동자가 적의를 담아 늑대들을 노려보았다. 피에 젖은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지만 상관없었다.
두 마리의 늑대는, 내 시선을 마주하자 움찔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공터에 늘어진 늑대의 시체는 무려 여덟 마리에 달한다.
나 혼자 이루어 낸 일이었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내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을 터였다.
후우, 하고 숨을 고른다. 정신이 흐릿해질수록,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마력이 맥동하며 몸 구석구석을 누빈다.
그렇게 내 몸이 활기를 조금이나마 되찾았을 때.
“……덤벼, 이 새끼들아.”
검극을 겨누며, 나는 허세를 담아 미소 지었고.
곧 두 마리의 늑대가 벼락같이 짓쳐들어왔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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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아가 절뚝거리며 데렉 교수에게 도착한 것은, 그녀가 출발한 지 약 1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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