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1. 첫 번째 편지(25)
* * *
세리아는 요즘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부터 그랬다. 주로 이안 선배와 함께할 때, 세리아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타인은 늘 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세리아는 아카데미의 그 난해한 시험 문제들보다도 인간관계가 더 어려웠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감정이나 의견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다. 설령 그러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솔직해서 말실수가 잦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을 아예 꺼내지 않거나, 어쩌다 꺼내더라도 ‘싸가지 없다’라는 평가를 듣곤 했다. 남들이 그녀를 ‘유르디나의 싸가지’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녀를 유르디나로 만들어 주는 것은 오직 검뿐이었으니까.
어느새 세리아는 타인과 함께하는 일이 불편하고 두렵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가 점점 더 고립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러한 상황에 약간의 외로움과 더불어, 미묘한 편안함까지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일상에 한 사내가 성큼 들어섰다. 바로 이안 선배였다.
평소라면 결코 그러한 용기를 내지 않았을 터였다. 그의 첫인상은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었다. 아직도 그날 당했던 무지막지한 폭력을 생각하면 세리아는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를 믿을 수 있었다. 그토록 칼 같고, 또 어느 때는 부드러운 관용의 정신을 보여주는 사내였다. 그라면 그녀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얼마 남지 않은 수렵제, 그녀가 이복언니를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솔직히 말해 이안은 그녀의 기대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는 훌륭한 검사였지만, 아카데미 내에서 보자면 중위권에 불과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한 시간조차도 적었다. 그가 그녀에게 검술에 대해 유효한 조언을 해줄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외의 조언들은 많이 해주었다.
훈련하는 법, 휴식을 취하는 법, 남과 이야기하는 법, 감정을 드러내는 법.
그는 거리낌 없이 그녀를 위해 수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또 그 과정에서 무례한 소리를 하거나 머뭇거려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었다. 화를 내는 일조차 없었다.
세리아는 처음으로 동등한 누군가가 그녀를 이해해 준다고 느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를 신경 쓰게 된 것은, 검술 실습 시간.
그와 함께 조를 이루고, ‘친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다만 세리아를 대신해서 이안이 검을 들고 뛰쳐나갔을 때, 그리고 데렉 교수의 등에 업힌 만신창이의 그를 보았을 때 생각했다.
그것이 아마 ‘친구’일 것이다. 논리와 이지를 초월한 관계.
세리아에게는 그 관계가 다소 낭만적이라 느껴졌다. 최소한 그날 이안이 보여주었던 결기는 그러한 면이 있었다.
제 생사를 신경 쓰지 않고, 그녀를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던 이안의 모습.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단지 그녀를 위해 죽음을 각오한다. 세리아로서는 난생 처음 받아보는 대접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묘하게 이안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검을 휘두를 때도, 그리고 밤에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을 때도.
이따금씩 이안이 떠올랐다. 그는 무사할까. 아프지는 않을까. 그녀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그를 만나는 일이 기대되면서도, 또 무서웠다. 혹시 이안이 화가 났을까 봐.
신전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른 경험도 부지기수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안 선배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누군가를 마주쳐야 했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리따운 외모의 소녀. 이안 선배의 절친한 친구라고 들었다.
이름이 아마도 셀린이었나, 그녀는 하루에 몇 번이고 이안의 병실을 드나들곤 했다.
그리고 그녀가 세리아를 마주칠 때마다 보이는 반응은, 늘 한결같았다.
인상을 팍 구긴 채, 냉랭한 얼굴로 그녀를 스쳐지나가기.
그것이 마치 이안이 그녀에게 보일 반응의 예고편인 것 같아서, 세리아는 괜히 두려워졌다.
그러던 그녀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어느 사내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날도 세리아는 신전 앞을 서성거리다가, 셀린을 마주쳤다. 셀린의 반응은 언제나와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옆에는, 또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초록빛 눈동자가 잘 어울리는 그는, 다소 파리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법학부일까.
그는 셀린과 웃고 떠들다가, 셀린의 표정이 돌변하는 것을 보고 세리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세리아는 무심코 고개 숙여 그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두려웠다. 그도 그녀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까 봐. 아마도, 이안 선배의 또 다른 친구가 아닐까 싶은데.
그러나 갈색 머리의 사내가 보인 반응은, 예상 외로 호의적이었다.
“이봐, 거기 예쁜 아가씨.”
고개를 숙인 채 입술만 짓씹고 있던 세리아는, 그 말이 그녀를 부르는 줄도 몰랐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지고 나서야 그녀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러는 그녀를 보고, 사내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턱을 쓰다듬으면서.
“왜 매일 같이 신전 앞을 서성거려? 내가 본 것만 해도 여덟 번은 넘어 보이는데.”
“레토, 신경 끄고 그냥 가자.
레토, 그것이 그 사내의 이름인 듯했다.
셀린은 그가 세리아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사내의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겼다.
그러나 레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세리아는 우물쭈물거리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 그, 저… 그, 그러니까…….”
하지만 평소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던 말이었다.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응할 능력이, 세리아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창피함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레토는, 그러는 세리아를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슬쩍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그러고 보니, ‘세리아’인가? 이안이 그런 이름의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던데.”
“야, 레토!”
셀린은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레토는 두 손으로 귀를 막는 체를 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세리아는 조금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셀린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가 이를 으득으득 갈면서 말했다.
“너, 이거 배신이야……!”
“배신이고 말고가 어디 있어? 그리고 야, 너랑 이어질 이안이 불쌍하지도 않냐? 걔한테도 선택지는 있어야지.”
“아, 진짜!”
셀린과 레토는 그렇게 투닥거리면서 지나갔지만, 세리아로서는 그 말뜻을 전부 짐작해 낼 수는 없었다. 단지, 그녀의 뇌리에 남은 말은 단 한 가지뿐.
이안 선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이 못내 세리아의 가슴을 부풀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주한 이안 선배는, 늘 그렇듯 상냥했다.
세리아는 어쩐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는, 가슴이 조금씩 두근거려서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다.
몽실몽실 떠오르는 감각. 그래, 이것이 ‘우정’인가?
난생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친구’란, 생각보다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세리아는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이안 선배를 알아서 다행이었다.
물론, 그동안 그녀에게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카데미 재학생 사이로 그녀의 이미지는 그새 더 나빠져 있었다. 그래도 은밀한 편이었던 괴롭힘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향한 괴롭힘은 갑작스러울 정도로 극심해졌다.
마치 미끄럼틀을 타듯이.
“야, 쟤야. 쟤.”
“아, 그 2학년 수석이라던? 그런데 마수 앞에서는 그렇게 꼴사납게 도망쳤다던데.”
“그 이안 선배 있잖아. 그 선배가 목숨 걸고 지켜줬다잖아. 사실 그 선배가 진짜 실력자고, 쟤는 허당이래, 허당.”
마치 들으라는 듯 내뱉어지는 조롱들,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비난이었다.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들이 아무리 깎아내린다고 해서 세리아의 실력이 뒤떨어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내심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안 선배의 실력은 진짜였다. 수련을 할 때는 몰랐지만, 그날 처리한 마수들의 숫자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실전에 훨씬 강했다.
그 점을 본받아야겠다고, 그렇게 세리아는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그녀가 존경하는 이안 선배를 위해서라면 비난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때때로, 그녀조차 견딜 수 없는 모욕이 날아들기도 했다
“야, 저기 싸가지 지나간다.”
“아, 그 애미 없이 자랐다던?”
우뚝, 하고 세리아의 걸음이 멈칫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목소리의 진원지를 향했다. 그곳에는 금색 머리카락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풍채 좋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외의 떨거지들이 떠드는 소리. 세리아의 눈동자가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식당이었다. 세리아가 식판을 들고 자리로 이동하는데, 그가 마치 들으라는 듯 그 옆에서 조롱을 던진 것이다. 그것도 세리아의 가장 아픈 지점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에 대한 부분을.
그녀는 울컥, 하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뚜렷한 적의로 내비쳤다. 그러나 구릿빛 피부의 사내, 그러니까 남부 열왕국 출신의 테안은 조롱하듯 입가를 말아 올릴 뿐이었다.
“왜 그래, 유르디나 양? 우리는 그냥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있는데,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누가 봐도 그녀를 향한 조롱이 확실했으나, 명확한 증거가 없었기에 세리아는 그저 입술을 짓씹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홱, 하고 몸을 돌렸다. 상대해봤자 손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세리아의 어머니는 유르디나 가문에서도 치부로 여기는 존재였다. 이러한 조롱은 유르디나 가문에서 듣더라도 일부러 무시할 것이 뻔했다. 어머니를 아예 없는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 유르디나 가문의 목표였으니까.
그것이 참을 수 없이 비참한 기분을 세리아에게 선사했다. 세리아의 몸이 잘게 떨렸다.
키득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테안이 비꼬듯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 늘 그랬듯이 우리 같은 녀석들은 계속 무시해 달라고, 응? 어이쿠.”
그러면서 그는 툭, 하고 세리아의 어깨를 밀치듯이 치고 지나갔다. 세리아의 식판이 쏟아질 뻔했다.
세리아는 깜짝 놀라 식판을 고쳐 쥐었으나, 테안의 패거리가 하나하나 그녀를 툭툭 밀치듯 치고 지나가니 견딜 재간이 없었다. 결국 식판은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세리아의 앙칼진 눈빛이 테안과 그 패거리를 향했다. 검만 쥔다면, 저까짓 것들은 상대도 안 될 텐데.
하지만 세리아는 혼자였고, 곧 엎어진 식판을 보며 비웃는 소리까지 따라붙었다. 남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최근에는 여자들까지 합세해서 세리아를 조롱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으득, 하고 이를 갈면서 엎어진 식판을 치우는 수밖에 없었다. 대련이 아니라면, 아카데미 내부에서 싸움은 금지되어 있다. 이처럼 ‘실수’로 치부하고 넘어갈지도 모르는 다툼은 자력으로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리아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녀가 할 줄 아는 것은, 오직 검을 휘두르는 일.
이것이 정글과도 같은 아카데미의 생태계였다. 어떤 의미로든 나약한 존재는 도태되고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는 곳.
교육기관의 탈을 쓴 훈련기관이라고 보아도무방했다. 세리아는 그래서 그저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비참한 기분을.
하지만 그마저도, 그와 함께라면 달랐다.
어느 순간, 그녀를 비웃던 소리가 뚝 끊겼다. 그녀를 구경하던 시선들이 재빨리 흩어진다. 세리아가 어리둥절하고 있던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리아, 오랜만이야. 나 이제 퇴원… 뭐야, 너 식판 엎었어?”
검은 머리카락, 금빛 눈동자. 그리고 태연한 목소리까지.
이안 선배였다. 그가 등장하자마자, 모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세리아에게서 신경을 끄고 말았다. 조금 더 정확히는, 이안 선배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안이 숲에서 마수들을 박살낸 일은 ‘남쪽 숲 마수 몰살 사건’이란 이름으로 아카데미 곳곳에 퍼져 나갔다.
그 과정에서 살이 붙으면서, 이안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 하나 찔러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냉혈한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물론 ‘유르디나의 싸가지 반죽음 사건’이란 소문과 화학반응을 일으킨 탓이었지만, 세리아는 그러한 세세한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던 그 비참한 기분마저도, 이안을 만나자마자 스르륵 녹아내렸다.
이안 선배만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가. 그가 있다면 그녀를 향한 조롱도 비난도 일시에 사라지고 만다.
이안은 자연스레 식판을 치우는 세리아에게로 합류했다. 그는 세리아와 함께 엎어진 음식물을 치우면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세리아에게 물었다
“너, 요즘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검사가 어떻게 균형을 그렇게 잃냐.”
“……아니요, 아무 일도 없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안이 와서 그렇게 된 것이지만.
차마 이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세리아는, 단지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요즘 세리아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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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자와 여자가 뒤섞인 무리였다. 그들은 최근 재미있는 건수를 잡았다는 듯, 무척이나 즐거운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야, 그 유르디나의 싸가지가 아무 말도 못하는 거 봤냐?”
“함부로 못 나선다니까, 그 년… 내가 말했잖아, 어차피 서녀라서 걔 엄마 가지고 뭐라 하면 나서지 못할 거라고. 유르디나 가문은 아예 없는 사람으로 치고 싶을걸?”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유르디나 가문인데, 이래도 되나? 그, 4학년의 유르디나 선배가 돌아오기라도 하면…….”
킥킥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어느 사내가 조심스럽게 제기한 의문에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패거리의 대표로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 전까지만 즐기면 되지. 솔직히 유르디나 선배도 은근히 공감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애미도 없이 자란 년이, 천출 주제에 우리와 동급인 양…….”
그러자 여자의 옆에 서 있던, 빼빼 마른 사내가 동의한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그가 낄낄대며 웃었다.
“그래, 차라리 유르디나 선배보다 그 3학년의, 이안 선배? 그 선배한테 알려지는 게 더…….”
“더?”
“더 무섭지! 그 선배, 소문 못 들었어? 귀족이든 평민이든 아주 작살을 내버린다는데, 얼마나 살벌한지 고위 마수 열 마리를 쳐부쉈다고… 히, 히이익!”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사내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신나서 이야기하다 비명을 내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패거리들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그에게 눈짓으로 뒤를 가리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검은 머리카락에 금빛 눈동자를 가진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최근 아카데미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인물이었으니까.
이안 페르쿠스, 아카데미 최고의 미친개 중 하나.
빼빼 마른 사내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자세히 이야기해 봐, 세리아가 뭐 어떻다고?”
“아, 저, 저, 저, 그, 그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즐겁게 떠들고 있던 패거리들은, 저마다 얼굴이 새파래진 채 고개를 돌렸다. 이안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하는 모습.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이안이 추궁을 멈출 리는 없었다. 단지, 그는 팔짱을 낀 채 그 황금색 눈동자를 깊이 가라앉혔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문제가 하나 더 생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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