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29화 (29/649)

〈 29화 〉 1. 첫 번째 편지(29)

* * *

마력이란 무엇인가.

혹자에 따라 얼마든지 대답이 달라질 수 있는 질문이었다.

학자들은 세상을 이루는 원초적인 질료라고 할 것이다. 신학자들은 태고에 천신 아루스가 세상을 창조할 때 뿌린 힘의 씨앗이라 할 테고, 마법사들은 가공을 통해 만물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무한한 미달태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검사들에게 마력의 정의는 무척 간단했다.

모든 것.

근력, 순발력, 오러의 강도나 지속시간, 심지어는 신체와 정신의 제어에도 간섭하는 것이 바로 마력이었다.

과장을 조금만 더 보탠다면, 마력은 그야말로 검사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검사에게 필요한 모든 역량이 마력과 연계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력이 만능은 아니었다.

마력을 아무리 많이 보유하고 있어도, 이를 제대로 쓸 줄 모르면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그리고 마력은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따라 그 효율도 천차만별이었다.

예를 들어 수통에 물을 담는다고 생각해 보자. 누군가는 작은 물줄기를 만들어 손실 없이 물을 수통에 옮겨 담을 테고, 누군가는 물을 통째로 뿌려 수통을 채우려 들 것이다.

둘 다 목적을 이룰 수는 있다. 다만 그 효율만큼은 전자가 압도적으로 좋을 수밖에 없었다.

마력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필요한 부분에 적확한 양을 투자하느냐에 따라 마력의 효율이 갈렸다. 그래서 검사들은 마력의 양뿐만 아니라 그 제어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마력을 잘 쓰기 위해선 우선 양이 받쳐줘야 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우수한 마력량을 타고난 검사들은 그 자체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평민조차도 보유하고 있는 마력량이 많으면 종마처럼 귀족 가문에 장가나 시집을 가기도 했다.

그 정도였으니, 테안이 내게 자존심을 내비치는 건 당연했다. 내가 가진 마력의 양은 평균 이하였으니까.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륙 전체로 평균을 내면 나는 상위권에 속할 터였다. 하지만 이곳은 아카데미였다. 당연히 ‘평균’의 기준도 달랐다.

그리고 테안은 그 아카데미를 기준으로 잡아도 마력량이 출중한 편이었다. 검격의 위력이나 지구력 면에서 나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심지어 나는 지금 꽤 지친 상태였다. 테안은 아마도 이 순간을 노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제 패거리 일곱을 홀로 해치운 놈이다. 그러한 상대를 일대일로 쓰러트렸다고 하면, 무리에 대한 장악력도 강화되겠지.

확실히 영리한 놈이었다. 내게는 불행한 소식이었지만.

쿵, 하고 다시 테안의 거구가 짓쳐 들었다. 일직선이었다. 목표로 노리는 상대를 제외하면, 그 어느 것에도 좌고우면하지 않는 테안만의 돌진 방식.

몇 번의 공방을 통해 깨달았다. 정면으로 상대해 봐야 내 손해라는걸.

다행스럽게도 테안은 마력 제어에 능숙한 편은 아니었다. 맞서고자 한다면 몇 번은 맞설 수 있었다. 내 일격이 급소에 꽂힌다면, 테안도 인간인 이상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몇 번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력량이 달리는 내 쪽이 점점 더 지치고 힘들어질 것이 뻔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공방을 나누는 대신 몸을 피하는 편이 맞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테안의 검을 처음 받아냈을 정도의 일격은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일까.

아직도 테안의 검을 처음 받아냈던 그 자리에는, 흙먼지 속에 가려진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움푹 패인 흔적.

그것이 테안의 검격이 가진 위력을 증언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했다.

테안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혔다. 검집 안에 있어 날이 서 있지는 않았지만, 저 무시무시한 파공성을 볼 때 한 대라도 허용하면 치명타였다.

그 검로를 미리 예측하고 있던 내 몸이 비틀어지며 검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테안, 그는 그 거대한 검을 마치 포크처럼 휘둘러 댔다. 묵직한 내리긋기 다음에, 조금의 지체조차 없이 이어지는 수평 베기.

당연히 내가 피할 수는 없었다. 가까스로 검신을 들어 치명타를 피했을 뿐.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하늘로 퉁겨졌다. 세리아와 대련할 때도, 이런 느낌이었는데.

나는 땅바닥을 구르며 그렇게 생각했다. 헐떡이는 숨결 사이로 모래 알갱이가 느껴졌다. 흙먼지를 들이마신 탓이었다.

미친 새끼,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테안은 곧바로 다시 달려들기보다, 휘파람을 불며 감탄하기를 택했다.

“대단한데, 이안. 몸놀림이 정말로 예사롭지 않아. 솔직히 말해서 네가 이 정도로 잘 버틸 줄은 몰랐는데.”

“잘 버티는 수준이 아닐걸? 이따 네 아가리를 한 대 갈겨줄 생각이거든.”

그러자 테안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만약 그러면 남자답게 패배를 받아들이도록 하지. 남부 열왕국의 사나이는 정정당당한 싸움의 결과에는 책임을 지거든.”

뒤에서 음습하게 괴롭힘이나 주도하는 놈이 정정당당함을 개뿔, 나는 그렇게 이를 갈았으나 그만큼 테안이 자신만만할 만하다고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데미란 그렇다. 재능이란 수재까지는 그래도 인간의 상상력으로 가늠할 수 있지만, ‘천재’라 불리는 일부의 인간은 그조차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신이 내린 재능.

아카데미는 온 대륙의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곳에서도 빛나는 자리에 서 있는 애들은, 중위권이나 하위권이 아웅다웅 다투는 수준과는 궤를 달리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세리아가 그렇지 않은가.

그녀가 상대를 박살낼 심산으로 칼을 뽑아들면, 나도 그렇고 테안도 그렇고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러다간 나도 테안도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다분하기에 그러지 못하는 것이지.

테안도 제 주제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리아가 칼을 뽑아들지 못하는 수준에서, 은근슬쩍 그녀를 긁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까지 부추겨가며.

그러한 인간에게, 세리아의 아픈 기억을 들쑤실 자격이 있단 말인가?

그 누구에게도 그딴 자격은 없었다. 하물며 테안 같은 놈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단 일격이면 됐다. 반격을 먹일 수 있으면 충분했다. 그러나 고민을 계속할 시간은 없었다.

테안이, 다시 한 번 다가온다.

몸을 움직여 피하려고 했지만, 얻어맞은 충격이 남은 탓인지 근육이 삐걱이며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다시 검신을 세워 가로막는다.

쿵, 쿵, 쿵, 연달아 내리꽂히는 일격에 내 입에서 절로 억눌린 비명이 새어나왔다. 테안은 마지막으로 검을 수평으로 그었다.

마치 방망이에 맞은 공처럼, 내 몸이 튕겨나간다.

땅바닥을 구르고, 흙먼지를 마시고.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나는 조금 후회했다.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처음에는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뒷수습도 어떻게 해야 할지 문제였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일어나야 하는데, 테안은 이제 달려들지도 않았다. 내게 서서히 걸어올 뿐.

“그때 말이야.”

헐떡이면서,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의문을 담은 내 눈동자가 테안을 향했다.

그는 아직도 방심하지 않았는지, 그러는 내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어떻게 했던 거지?”

“……뭐가?”

“그 싸가지와 처음 대련했던 날.”

나도 몰라,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폐부에 산소를 채워 넣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나는 말없이 테안을 노려보았다.

테안은 대검을 든 손에 다시 힘을 주면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는데… 어느 순간 피해냈단 말이지. 마치 공간이 일그러진 것처럼.”

미친 새끼, 그게 가능하면 내가 아카데미 수석이었겠지.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일은 마법 중에서도 최상위 마법에 속했다. 당연히 일개 검사인 내가 그럴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 정도라면 심상을 기반으로 세계의 법칙을 일그러트리는, ‘마스터(master)’라 불리는 소수의 초인들에게만 허락된 경지였다.

그러나, 피한다.

그 말이 어째서인지 내 뇌리에 깊이 틀어박혔다. 무언가 생각날 듯한, 간지러운 느낌.

그리고 ‘발’, ‘발’이라.

내 눈이 흙투성이인 공터의 어느 한 지점을 향했다. 그 다음 순간 테안의 검이 다시 휘둘러졌다.

나는 사력을 다해 몸을 굴렸다. 내가 떠난 자리로 쿵, 하는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테안이 외쳤다.

“그러다간 금방 지칠 텐데… 이안!”

“좆까!”

나는 그러면서 다시 몸을 날렸다. 테안은 정직할 정도로 직선적으로, 그리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는 듯 검로를 그렸다.

그래, 이제야 테안의 목소리에서 좀 여유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땅바닥을 구르고,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테안과의 거리를 벌렸다.

테안은 느긋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도 이제 내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헐떡이는 내 숨결, 이제는 검조차도 거추장스러웠다. 나는 내 검을 그대로 허리춤에 되돌려 놓았다.

회피에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테안은 그것이 꽤 우습게 여겨진 듯했다.

“그때의 회피를 재현해 보기라도 하겠다고? 좋아, 좋아… 재미있는 구경을 하겠어. 응?!”

그리고 테안은, 반격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땅을 박찼다. 직선적인 도약, 그의 거체를 지탱하는 단단한 다리가 먼저 땅에 도달했다.

그때였다. 그의 자세가 휘청인 것은.

우득, 하고 발목이 비틀리는 소리가 났다. 어라, 하고 테안은 제 발밑을 바라보았다.

흙먼지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곳에는 오목한 홈이 하나 남아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테안의 일격을 받아낸, 그때의 발자국.

얕은 수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주변과는 분명한 고저차가 있었다. 그리고 테안과 같이 거대한 몸이 움직이면, 그에 상응하는 운동량이 발생하는 법.

아주 조금, 휘청여도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무너진다.

그러나 테안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발목이 접질리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이를 악물고 검을 마저 내리찍으려 들었다. 그러면서 균형을 되찾으려는 그 시도.

그래서, 검조차 버린 것이 아닌가.

내 몸이 훅, 하고 아슬아슬하게 테안의 검격을 피했다. 테안의 핏발 선 눈동자가 나를 스쳤다. 내가 이대로 끝낼 리가 없다는 그 눈빛.

멋진 직감이었다. 내 허리춤에서 손도끼가 벼락같이 뽑혀나왔다.

퍽, 하고 시원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내 손도끼가 테안의 턱을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무너져 가던 자세였다. 그 몸뚱아리의 무게와 달려들던 운동량에 더해져, 내 손도끼는 테안의 뇌를 뒤흔들었다.

그럼에도 테안은 버티려고 했다. 괴물 같은 맷집이었다. 그가 두 발로 땅을 딛고 섰다. 그때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에게 몸을 던졌다.

테안이 처음으로 땅을 굴렀다. 뇌가 흔들린 와중에 땅까지 구르니, 정신이 하나도 없을 테지.

그러나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이 땅을 굴러 적응이 끝난 상황이었다. 테안이 허억, 하고 숨을 들이키며 당황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 본 그 순간.

나는 이미 손도끼를 들고, 내 밑에 깔린 테안의 얼굴을 가격할 준비를 마친 뒤였다.

팍, 팍, 팍, 팍. 연달아 손도끼가 테안의 얼굴울 후려쳤고, 그럴 때마다 핏물이 터져 나왔다.

날이 선 부분은 아니었지만, 손도끼는 짧은 만큼 그 속도에서 검과는 비견할 수 없는 속도로 휘둘러졌다. 내가 테안에게 반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검을 포기한 까닭 또한 이 때문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검사라도, 테안은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검 외의 무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판단이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손도끼가 몇 번이고 테안의 머리를 후려쳤으나, 테안은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정신줄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콱, 하고.

손도끼의 끄트머리 부근이 그의 관자놀이를 깊이 찍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테안의 맷집이 부족했다면 즉사에 이르렀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마력으로 강화된 그의 맷집은 상상 이상이었으므로, 아마도 버텨낼 수 있을 터였다.

테안의 고개가 툭, 하고 떨어졌다. 기절한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수많은 타박상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내일 볼 만하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피로가 뒤늦게 몰려왔다.

비틀, 하고 내 몸이 기울었다.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손도끼를 벨트에 다시 매달아 두려다, 나는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나, 나는 제국의 자랑스러운 라이넬라 백작가의 삼남, 루핀이다!”

내 시선이 슬쩍 등 뒤를 향했다. 그곳에는, 어느새 정신을 차린 귀티 나는 사내가 주저앉은 채 내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강한 척 하고 있지만, 느껴졌다. 그 눈에는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테안을 후려치며 튄 피조차 제대로 닦지 않은 상황이었다.

핏물이 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머리와 얼굴, 귀족 도련님으로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을 테지.

“가, 감히 나를 건드려?! 지금이라도 당장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면…….”

“야.”

‘루핀’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사내는, 내 나지막한 부름에 곧바로 흠칫 몸을 떨며 공포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덜덜 떨렸다. 나는 대답 대신, 손도끼를 던졌다.

콱, 하고 루핀의 머리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손도끼가 땅에 처박혔다. 히이이익, 하고 루핀은 뒤늦게 기겁하며 기듯이 자리를 피했다.

곡예에 가까운 투척 솜씨였다. 다시 생각해도 언제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상관 없었다.

나는 피곤했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터벅터벅 걸어 루핀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땅에 박힌 손도끼를 뽑았다. 루핀은 이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요즘 백작가 삼남은 쳐맞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하냐?”

“흐으, 흐으으…….”

루핀은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곧 눈물이라도 흘릴 태세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다음은, 없어. 오늘 알았지? 나 미친놈인 거.”

루핀의 고개가 세차게 끄덕여졌다.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그의 귓가에 속삭이기 위해 구부렸던 상체를 폈다.

공터에는 일곱 명의 신음 흘리는 몸뚱아리와, 오줌을 지릴 듯 두려움에 떠는 사내 하나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광경이 누군가에게 발견될 때까지는, 계속 그랬다.

*

테안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는, 다음날 검술 실습 강의 때 알려졌다.

마침 몇몇 학생들이 들으라는 듯 세리아를 조롱하고 있던 차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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