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33화 (33/649)

〈 33화 〉 1. 첫 번째 편지(33)

* * *

신전의 복도는 고요했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이라고는 신전의 성직자들과, 환자의 가족들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퇴원한 사람들이거나.

어느 쪽이든 그다지 시끄러울 까닭은 없었다. 퇴원한 환자를 마중 온 친구들이나 친지들은 조금 소란을 피울 법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신전은 정숙이 요구되는 곳이다.

눈치가 어지간히 없지 않고서야 신전을 나선 다음에 해후를 나누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도 일단 퇴원 수속을 마치긴 했으나, 지금 나를 마중하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셀린이 떠나간 탓이다.

세리아와의 대련이나 마수 토벌 때에 비하자면 내 부상은 경미한 편에 속했다. 그래서 오늘 퇴원 수속을 밟을 예정이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셀린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을 그렇게 끝내 버렸으니, 한동안 셀린과는 냉기류가 흐를 듯했다.

그녀를 떠올리니 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셀린은 마지막까지 내게 억울하다는 듯 호소했다.

“나는, 그냥 뒷담화 좀 했을 뿐이야. 그 정도야 누구나 하잖아! 괴롭히라고 말한 적도 없어, 단지 좀 재수 없다고 한 거지!”

“그게 계기가 됐을 수도…….”

“그럼 아카데미에 따돌림 당하는 사람이 하루에 몇 명씩 나올 것 같아?”

싸늘해진 셀린의 목소리에, 나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셀린은 아직도 분한지 이를 으득으득 갈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여자들의 세계에서 뒷담화는 일상적인 일이었구나. 나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에 친구가 없어서 고립된 건 그 년 잘못이잖아!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고, 그런데 누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괴롭혔어? 아무리 그래도 하급귀족들이 유르디나 가문의 가정사를 들쑤시는 게 말이 돼?”

“……그럼?”

“당연히 고위 귀족이 뒤에 있는 거지, 병­ 신아!”

셀린은 너무나 답답했던지, 씩씩거리며 그렇게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다면 셀린은 아무래도 주동자는 아니었던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한숨을 푹 내쉬는 수밖에 없었다. 주모자가 따로 있다고 해도, 셀린의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세리아의 이미지가 나빠지게 한 건 맞잖아.”

그 말에 셀린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답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린 채.

“그러지 않아도 오해를 사서 미움을 많이 받는 아이야, 너까지 그래서 되겠어?”

흥, 하고 셀린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팔짱을 낀 채 시선을 피하는 걸 보면, 나름대로 후회는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직 이 정도면 늦지 않았다. 가족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니고, 괴롭힘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도 아니다.

단지 뒷담화 좀 하고, 세리아의 이미지를 망쳤다. 그것만으로도 큰 잘못이었지만 용서받지 못할 수준의 무시무시한 죄악은 아니었다.

그러지 않아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세리아의 성미를 생각해 보면, 의외로 마음을 열고 솔직히 사과하면 받아줄 가능성이 컸다. 또, 그녀에게도 동년배의 친구가 필요할 테고.

나는 그러한 아름다운 미래를 속으로 그리면서, 셀린에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셀린, 세리아한테 사과하자.”

셀린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녀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내 어조가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세리아도 알고 보면 꽤 좋은 애거든. 이 기회에 친해지기라도 하면…….”

“……절대로, 싫어.”

단호하고, 차가운 목소리.

의외의 반응에 내 목소리가 뚝 끊겼다. 나는 그토록 셀린이 세리아를 싫어하는 까닭을 알 수 없어,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셀린은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곧 내게 삿대질을 하며 다가섰다.

“오빠 같으면, 내가 찍은 사냥감에 멋대로 화살을 쏘는 년이랑 친해질 수 있겠어?!”

“……뭐라고?”

“아, 진짜!”

느닷없는 셀린의 비유에 내가 멍청한 시선을 보내자, 셀린은 그렇게 짜증을 가득 담은 목소리를 터트렸다.

하스터 가문만의 비유법인가. 하스터 가문의 뿌리는 유명한 사냥꾼 가문이랬으니, 꽤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셀린은 화가 잔뜩 난 듯 그대로 병실을 나서려 했다. 나는 일단 그녀를 불러 세우고자 시도했다.

“어디 가려고, 셀…….”

“몰라, 나 따라오지 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 외침에, 나는 그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셀린은 화가 많이 난 듯 싶었다. 이럴 때는 아무 말도 없이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쪽이 상책이었다.

쾅, 거칠게 병실의 문을 열고 떠났던 셀린은, 어찌된 영문인지 마지막으로 병실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녀가 내게 다시 한 번 경고했다.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

“……? 응, 그럴 생각인데?”

애초에 그럴 생각조차 없었으므로, 내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러나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내 대답에, 셀린은 더더욱 화가 났는지 소리를 빽 내지르고 말았다.

“……꺼져, 병신아!”

그렇게 셀린은 떠나갔다. 나는 아직도 마지막에 셀린이 왜 그토록 화를 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레토의 말을 떠올렸을 뿐이다. 여자의 마음은 우물과 같아서, 그 안의 사물이 굴절되어 보인다고.

그래서 그 안의 풍경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현실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라고 레토가 내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다시 말해, 여자의 마음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셀린의 감정을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외로운 퇴원수속을 마쳤다. 털레털레 걸어가는 내 신세가 처량했다.

그러던 내 걸음이 멎은 곳은, 어느 병실 앞이었다.

이곳은 집중치료실이었다. 중환자들이 머무는 곳, 나도 몇 번이고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더더욱.

그리고 이곳에는, 내 친구 중 하나가 입원해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결국 결심을 굳히고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그곳에는 창백한 낯빛을 한 소녀 하나가 누워 있었다.

붉은 기가 감도는 머리카락이 매력적인 소녀였다. 평민 출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뽀얀 피부와, 늘 상냥한 곡선을 그리고 있던 눈꺼풀.

그랬던 그녀는, 이제 단지 숨만 붙어 있는 시체에 불과했다.

침대를 겸한 의자에 혼곤히 잠들어 있던 장년의 사내는, 인기척을 느끼고 화들짝 눈을 떴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 곧바로 몸을 일으키고 땅에 엎드리려 했다.

“아이고, 도련님…….”

“아니, 아니, 그러지 마세요. 아버님.”

이미 익숙해진 대접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를 만류하고, 아무 말도 없이 침대에 누운 소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곤히 잠들어 있는 그녀의 이름은, 엠마.

연금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자,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는 덥수룩한 사내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어떻게 이토록 산적처럼 생긴 아버지로부터 이처럼 어여쁜 딸이 나올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로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엠마의 아버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였다.

엠마가 얼마나 상냥한 학생이었는지, 친구들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최근 아카데미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을 때마다 엠마의 아버지는 눈가의 눈물을 찍어내야 했다. 그의 딸이 못내 자랑스러우면서도, 이처럼 정신조차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울 테지.

조심스럽게, 나는 엠마의 병세를 물었다.

“그, 엠마는 요즘 어떤지…….”

“목숨에 지장은 없다는군요.”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사내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엠마의 상태가 어떤지.

목숨에 지장은 없으나, 그렇다고 차도가 있지도 않다.

언제 정신을 차릴지 알 수 없는 상태. 그것은 일종의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아카데미가 재학 중 일어난 사고를 철저히 책임진다고 해도, 기약 없이 무료로 병상 하나를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길어봐야 몇 년 후, 아카데미는 엠마의 병실 퇴거를 요청할 것이다.

그렇다면 엠마는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약초꾼에 불과한 엠마의 아버지가 신전에서 집중관리가 필요한 엠마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유예된 죽음, 그 정도인가. 나는 혀가 바짝 말라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엠마의 아버지는 허망한 미소를 지었다.

“이 아비가, 조금만 능력이 있었다면…….”

“아버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흐느낌이 섞이기 시작한 사내의 목소리에, 나는 그렇게 상투적인 위로의 말을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마디의 말이 오고갔을 때였다. 엠마의 아버지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들었습니다. 도련님께서 엠마를 습격한 마수를 처리해 주셨다고…….”

나는 그의 감사에 화들짝 놀라 얼른 손을 내저었다. 따지고 보면, 엠마가 습격당한 사태의 책임은 내게도 있었다. 감사받을 일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내 자기위로에 불과한 일이 아닌가. 내 입에서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요, 아닙니다. 그건 그 자식이…….”

엠마의 피 묻은 옷가지를 물고, 퉤 뱉었다고.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그렇게 말하려던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친구들끼리는 장난스럽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죽음을 짊어지고 사는 이들의 방식이었으니까. 나도, 레토도, 셀린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비극조차도 애써 웃으며 이야기한다. 마치 그 일이 별 거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죽음을 각오한 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예의였다.

엠마의 아버지는 약초꾼이었다. 그에게 엠마가 습격당할 당시의 상황을 상기시킬 만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단지, 짧은 변명만을 남기는 수밖에 없었다.

“……저를 습격하길래, 상대한 것뿐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 적극적으로 복수에 나섰던 건 아니에요. 감사받을 만한 일은 아닙니다.”

엠마의 아버지는 그럼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고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면서, 말했다.

“그래도 이 모자란 놈이 은혜를 입은 건 사실입니다. 아이고, 뭐라도 드려야 할 텐데…….”

“괜찮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렇게 감사받을 만한 일은 아니에요.”

연이은 내 사양에 엠마의 아버지가 굴복한 것은, 그로부터 몇 분이 더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를 흘렸다.

“도련님께서는, 정말로 어른스러우시군요.”

그 말에 난 쓴웃음을 머금었다. 어른스럽다라, 나는 아직도 어린애에 불과한 것 같은데.

그러나 내 감상이 어떻든 간에, 촌부는 계속해서 나에 대한 평가를 이어갔다. 한탄과도 같은, 짙은 회한이 묻어나오는 목소리.

“엠마도 그랬죠. 어릴 때부터,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려고 애를 썼어요. 그리고는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았죠.”

“……그랬군요.”

그러고 보면, 내가 보았던 엠마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언제나 손을 벌리면, 몇 마디 나무라더라도 결국에는 도움을 주곤 했던 그녀.

그럴 때의 그녀는 정말로 어른스러워 보였다. 자식을 잃을지도 모르는 친구의 아버지조차 제대로 위로할 줄 모르는, 나 따위와는 달랐다.

그러나 이어지는 사내의 말은, 나를 흠칫 떨게 만들었다.

“도련님은 그렇게 살지 마십쇼.”

“……네?”

나는 당황해서, 바닥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촌부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심을 담은 눈동자였다.

“도련님께서는, 그렇게 살지 않으셔야 합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나누고,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는 비밀도 털어놓으세요. 그래야, 그래야만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 한 번 촌부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그의 고개가 툭 떨구어졌다.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이제는 소리조차 없는 울음.

“주변 사람이, 흐으윽… 이토록 비참하지는 않지 않겠습니까…….”

그 조언은, 우연이겠지만 지금 내 상황과 어느 정도 들어맞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대답하지 못했다. 진심 어린 조언에 빈말로 응수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으므로.

다만, 오래 생각했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내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짧고 담백했다.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오늘따라 품속에 넣어둔 종이 몇 장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미래에서 온 연애 편지였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내가 가진 최고의 고민거리이자 난제가 아닌가 하고, 나는 몇 번이나 입술을 짓씹으며 번민했다.

지금 내게 당면한 문제는 하나뿐이었다. 이 편지에 적힌 미래를 지키고,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비밀을 공유하는 동료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

그리고 다음날, 내게 당면한 문제가 하나 더 늘어나고 말았다.

세리아가 조금 이상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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