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35화 (35/649)

〈 35화 〉 1. 첫 번째 편지(35)

* * *

“제가 곤란해지면, 곤란해야만, 그래야만 이안 선배가…….”

세리아의 혼잣말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눈동자에서 빛이 옅어졌다. 마법에 걸린 인형처럼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아리따운 소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내가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위기감을 느낀 것은 그 무렵의 일이었다.

일종의 직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녀를 멈추어야겠다는, 마음속 깊숙한 곳의 목소리.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어, 어… 뭐 그렇긴 한데, 세리아. 괜찮은 거 맞아?”

“아, 아, 앗! 네, 넷! 제,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죠?”

그제야 세리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실례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우물쭈물하면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녀도 모르게 한 일인 모양이었다. 혹시 명상에서 덜 깬 건가.

그럴 때도 있었다. 명상에 깊이 몰입할수록, 현실로 돌아오기는 힘들어지니까.

나는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뭐. 내가 한 말 따라하던데? 명상에서 아직 덜 깬 거 아니야?”

“……그, 그랬나요.”

세리아는 넋을 놓은 제 과거가 부끄러웠던지 다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오늘따라 감정이 잘 드러났다. 평소에는 자세히 보아야 그녀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만큼 나와 세리아의 사이가 가까워진 덕일 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일단 검이나 좀 휘두르자. 나도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아, 하품이 나오려 하네…….”

그리고 내 입에서는 보란 듯이 하품을 흘러나왔다. 세리아가 조금 덜 부끄러워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러한 내 마음을 깨달았는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리아의 눈에 부드러운 빛이 어렸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따스한 목소리였다. 그래봐야 그녀치고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네, 선배님.”

그 다음에는 평소대로의 세리아였다.

방금 전에 보여주었던 모습이 마치 거짓말이라도 되는 양, 세리아는 늘 그렇듯 진중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수련에 임했다.

언제 보아도 간결하고 기본에 충실한 검로였다. 그만큼 오랜 시간 수련했다는 뜻일 테지, 나도 최근에는 그녀를 본받아 수련 시간을 차차 늘려가고 있었다.

그래봐야 나와 그녀의 스타일은 정반대였지만, 내가 꼼수나 변칙적인 수를 즐긴다면 세리아는 정석 그 자체를 따를 때가 많았다.

혹자는 그 점을 약점으로 짚을지도 모르겠지만, 정석이란 누대에 걸쳐 가장 적합하다고 알려진 검로를 취합한 것이다. 당연히 동급의 검사들 사이에서도 정석에 충실한 검사는 꽤 강한 편에 속했다.

그만큼이나 정석에 충실하기 힘들 뿐이었다. 누구나 가진 바 성향이라는 것이 있는데, 정석을 그대로 따르려면 이를 완전히 억눌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을, 지금 세리아가 보여주고 있었다.

근육이 기억할 때까지, 무의식에 새겨질 때까지 수련해서 검로를 때려 박는 것.

무시무시한 노력이었다. 진지함을 넘어서, 필사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그 결기.

나는 문득 얼마 전 세리아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쫓겨나던 날, 세리아는 그녀의 이복 언니에게 이러한 말을 들었다고 했다.

‘너도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저렇게 될 거야.’

울부짖고, 짓밟히면서도 제 딸에게 손을 뻗던 어머니를 보면서, 비참하게 끌려가는 제 모든 것을 보면서 세리아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날의 기억이 세리아에게 어떠한 감정을 심어준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어쩌면 지금껏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왔던 것도,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때때로 어느 기억은, 저주처럼 인간을 구석에 못 박아둔다.

절대로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도록, 그날부터 삶은 구속되고 행복은 사치가 된다. 나는 다만 기원했다.

그날의 기억이, 세리아에게 그 정도까지 끔찍한 악몽은 아니었기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걱정스럽기만 했다. 어린 시절에 그 정도의 일을 겪는다면 십중팔구는 심각한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세리아는 그 이후로 내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니 나도 마땅히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가 아니라면, 굳이 입을 열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내밀한 기억을 들여다보는 건 그만큼의 책임을 수반한다.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아직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세리아의 이상한 점을 또 하나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세리아가 숨을 죽인 채 검에 오러를 불어넣었는데, 그 색이 이전과 미묘하게 달랐다.

예전에는 깨끗한 청색의 오러가 맺혔다면, 지금은 그 오러가 조금 더 어두운 빛으로 변해 있었다. 조금 밝은 남색의 느낌이라고 할까.

오러는 검사의 심상을 상징한다. 대개의 검사들은 신체에 마나 코어를 만드는 동시에 제 심상을 고정시키므로, 그 색이 변하는 일은 드물었다.

변한다고 해도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변하는 정도였다. 오러의 색은 심상의 구현과도 같았기에 검사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후일 소드 익스퍼트라 불리는 고수의 반열에 들면, 오러마다 특성이 갈리는데 그것이 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검사들 이를 ‘고유색’이라고 불렀다. 수천 명의 소드 익스퍼트가 있다면, 그들의 오러 색도 수천 가지라 보아야 했다. 그래서 오러의 색은 검사의 지문처럼 취급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처럼 중요한 색이 변했으니,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곧바로 세리아를 불렀다.

“……저, 세리아?”

“네, 선배님?”

세리아는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진무구한 얼굴에는 한 점의 의문이나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의아한 감정을 담아 물어야 했다.

“너, 오러의 색이 달라진 것 같은데?”

“아…….”

세리아는 그제야 눈치 챘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제 오러의 색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중대한 변화를 눈치 채고도, 세리아의 반응은 담백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네요.”

“그렇네요, 가 아니지. 그게 얼마나 큰 문제인데!”

나는 끙끙거리면서 세리아의 고유색이 변한 이유를 추론해 보았다.

최근 들어 그녀에게 변화라고 할 것이 있나? 심상이 변할 정도라면 무척이나 결정적인 정신의 변화가 있어야 했다.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의 수준이 아니라, 그 깊숙한 곳에 자리한 무의식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고작해야 색이 조금 어두워진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러한 변화라도 일어나기 위해서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달라지는 수준의 충격이 필요했다.

심상은 높은 경지로 올라갈수록 그 중요도가 더해진다. 세리아도 소드 익스퍼트에 간신히 발을 들여놓은 수준이라 들었으니, 심상의 변화는 그녀의 전투 스타일이나 기존의 검로에 여러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내가 세리아의 반응에 당혹감을 느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녀의 검로는 그대로인데, 오러의 색만 달라지다니?

그러나 내 반응에도 세리아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옅은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당황했다.

처음이었으니까, 그녀가 눈웃음을 짓는 건.

“당장 느껴지는 문제는 없으니 안심하세요, 이안 선배. 이제 막 익스퍼트에 올랐으니 오러의 특성도 아직 개화하기 전이고요.”

그 미모로 눈웃음을 지으니, 나도 남자라 조금 심장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기습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괜히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아, 아무리 그래도 오러의 색이 달라졌는데 좀 더 걱정해야지. 가만, 그러고 보니…….”

내 머릿속에 최근에 있었던 일들이 스쳤다.

울음을 꾹 눌러 참던, 세리아의 모습.

어머니의 기억을 짓밟혔기에, 세리아의 마음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하자 나는 기분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상처를 헤집는 일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조금 망설이던 나는, 결국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세리아, 그… 어머니의 일.”

세리아는 내가 그러한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는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곧 그녀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그녀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쓸쓸하고 고독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되물었다.

“……괜찮아?”

“네, 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세리아는 씁쓸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겠지, 어린 시절에 그토록 쓰라린 상처를 얻었다. 흉터가 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수십 수백의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 자리를 들쑤셨다.

상처가 덧나지 않으면 이상했다. 내 분위기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이안 선배한테는, 거짓말을 해봤자겠죠… 아니요, 사실은 힘들어요.”

“그, 검을 배운 건…….”

“그날 이후의 일입니다.”

역시나, 그렇다면 그녀의 오러 색이 변할 만도 했다. 그녀가 검을 든 근원에 가까운 문제였으니까. 그 상처가 덧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굳이 그 추론을 덧붙이진 않았다. 지금은 세리아가 이야기를 해야 할 때였으니까.

“언니께서 그날 제게 했다던 말, 기억하고 계신가요. 이안 선배.”

“그래.”

나는 막힌 숨을 토해내듯,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지, 무슨 말이었는지.”

“그때 생각한 거예요. ‘아, 나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쓸모를 증명해야겠구나.’ 그 나이에 집에서 쫓겨난다는 건, 그런 느낌이잖아요?”

묵묵히 내 고개가 떨구어졌다. 사실 나는 잘 몰랐다.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긴 했어도, 내 가족은 기본적으로 화목했다.

사랑을 받고 자랐으므로, 사랑 받지 못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상처, 공허함, 그 나이에 홀로 이를 악물고 살아가야 했던 소녀의 모든 몸부림.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그녀의 감정에 최대한 공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세리아는 과거의 기억을 다듬느라 바쁜 듯했다. 그녀의 검이, 서서히 하늘을 향했다. 검극이 햇살을 받아 번뜩였다.

“검으로, 증명해 왔죠. ‘유르디나’라는 성이 없는 저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넌 유르디나가 아니라도 이미 훌륭한 검사잖아.”

“유르디나의 훌륭한 검사보다는 못하지만요.”

나는 그 문답을 통해 비로소 세리아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입이 다시 열렸다. 어느새 꽤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네 언니를 이기고 싶었던 거야? 가문에게 너보다 나은 유르디나가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아니요, 조금 달라요.”

그렇게 말하는, 세리아의 눈동자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엿보이고 있었다.

희미한 공포, 기대, 그리고 결의.

“가문이 아니라, 저한테 증명하고 싶어요.”

나는 그대로 침묵을 지키며 세리아를 바라보았다.

그 강하고 도도해 보이던 소녀가, 어째서 이리도 약하고 불안정해 보이는지.

그야말로 유리 공예품이라는 표현이 알맞았다. 아름답고, 섬세하지만, 툭 건드리면 깨져 버릴 것만 같아서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더는, 그날처럼 울면서 지켜보기만 하던 꼬맹이가 아니라던 것을.”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유독 그녀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말이다.

진심으로, 나는 그녀가 뜻을 이루기를 바랐다.

그날의 수련은 조금 일찍 끝났다. 다만 나와 세리아는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수련이 끝마쳐질 때쯤이 되자 세리아의 눈동자에는 다시 따스한 빛이 돌아와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몰랐다.

그녀의 고유색이 달라진 까닭이, 어머니의 기억 때문이라고 했던 내 잠정적인 결론이 어떠한 오류를 품고 있었는지.

만약 그랬다면, 괴롭힘이 한창일 때 이미 변했을 터였다. 그랬다면 세리아가 오늘 그 사실을 처음 눈치 챈 것처럼 굴 일도 없었을 테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그녀는 그 전날부터 오늘 새벽녘에 이르러, 어떠한 강렬한 감정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 그 이후로도 한참이나.

*

세리아와 숲을 나서니, 화창한 날씨였다.

이제 기지개를 핀 태양은 그 황금빛 축복을 대지에 골고루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맑은 햇살에 눈이 부셔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손바닥으로 차양막을 쳤다.

세리아와 헤어질 시간이었다. 아침 식사는 주로 셀린이나 레토랑 먹는 편이었으니까.

그러나 오늘의 세리아는, 또 다시 우물쭈물하며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꾸욱, 하고 나를 잡아당기는 인력이 느껴졌다.

내 당황한 시선이 세리아를 향했다. 그녀는 어느새 내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의아함을 담은 내 눈동자가 그녀를 담자, 세리아는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 내 옷소매를 놓았다. 그녀의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그, 그… 이, 이안 선배. 이건, 그, 그러히까… 으으… 그러니까…….”

다시 혀까지 씹는 걸 보니 어지간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왜, 더 같이 있자고?”

“그, 그게에…….”

내 직설적인 질문에 당황한 듯 손을 내젓던 세리아는, 결국 포기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입에서 수치심으로 달아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세리아는 의외로 꽤 외로움을 타는 성격인 듯했다. 혼자인 시간이 길어서 좀 더 개인주의이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첫 친구가 생기니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외롭게 느껴지는지도.

하기야 굳이 셀린이나 레토와 아침 식사를 하란 법은 없었다. 암묵적으로 특정 시간에 모이는 우리들이었지만, 숙취가 심하거나 하면 빠지는 일도 잦았으니까.

그렇다면 세리아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녀를 향한 괴롭힘이 제대로 사라지긴 한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했고.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 순간.

“앗, 이안… 아니, 허접 오빠!”

저 멀리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생글거리는 미소와 저 멀리에서부터 느껴지는 활기.

셀린이었다. 그녀는 반가운 얼굴로 내게 손을 흔들다가, 이내 어제 일이 생각났는지 삐진 체를 하며 나를 불렀다.

‘허접 오빠’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나는 황당한 시선으로 셀린을 바라보았다.

세리아의 몸이 움찔, 하고 굳은 건 그때의 일이었다. 그녀는 셀린이 유독 불편한지 어쩔 줄 몰라 하며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했다.

셀린도 마찬가지였다. 특유의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던 셀린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인상을 팍 구겼다.

그리고 곧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가, 늘 그렇듯 세리아를 무시하기로 한 듯 다시 내게 미소를 보냈다.

그 미소는, 조금 화가 난 듯 보였지만 말이다.

그녀가 팍, 팍, 하고 반가움의 표시로 내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그러나 그 완력이 만만치 않아서, 나는 나도 모르게 토막난 숨소리를 터트려야 했다.

“컥, 컥! 야, 야, 셀린……!”

“우연이네, 응? 아주 우연이야, 이안 오빠. 이제 밥 먹으러 갈 거지?”

나는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기는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 세리아에게 막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제의할 참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셀린이 불편하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는 세리아에게 제안을 건네기는 애매했다.

세리아는 긴장한 낯빛이었다. 하기야 셀린이 그렇게 싫다는 기색을 보였으니, 대인관계에 서툰 그녀로서는 거리감각이 애매할 터였다. 무시하고 살기에는, 또 나와 접점이 너무 많은 여자였고.

결국 나는 세리아를 조금 편하게 해주기로 했다. 내가 항복의 표시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 그렇기는 한데.”

“자, 자. 그럼 얼른 가자고~ 이안 오빠의 인생은, 절반쯤 내 거잖아?”

그게 무슨 소리람. 나는 오늘따라 셀린의 이상한 단어 선정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이내 헛웃음을 머금고 질질 끌려가듯 셀린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래, 그러려고 했다.

툭, 하고 다시 한 번 누군가 내 소매를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지지만 않았다면.

그 힘의 근원은, 세리아였다.

셀린도 이를 느꼈는지, 우뚝 멈춰 섰다. 그녀의 황갈색 눈동자가 등 뒤를 향했다. 그곳에는 세리아가, 내 옷소매를 쥔 채 서 있었다.

셀린만 보면 긴장한 듯 몸을 굳히고, 우물쭈물하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새 무슨 감정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시리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고요했다.

비록 몸만큼은 아직도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푸른빛 눈동자와 황갈빛 눈동자가, 오늘 처음으로 충돌했다.

그리고 그 순간, 주위의 온도가 몇 도나 내려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최소한, 내가 느끼기로는 그랬다.

무언가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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