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61화 (61/649)

〈 61화 〉 1 첫 번째 편지(61)

* * *

눈을 뜨니 이제는 익숙한 천장이었다.

새하얀 대리석은 아늑한 햇빛을 조명 삼아 은은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화려한 장식품은 없었지만, 값비싼 가구를 배치한 병실은 쓸데없이 고급스러웠다.

시골 자작가의 차남이 누릴 만한 호사는 아니었다. 오로지 아카데미니까 가능한 일이지.

일어나자마자 팔뚝에서 뻐근한 통증이 전해졌다. 쓰라린 고통에 손이 마비라도 된 듯 먹먹해졌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쓴웃음을 머금는 수밖에 없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근래 들어서는 이틀이 멀다 하고 신전을 찾아온 느낌이었다. 비단 내가 입원한 날뿐만이 아니라, 지인의 병문안까지 포함하면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엠마의 병실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찾아가는 편이었으니까. 오늘도 나가는 길에 엠마를 만나러 가야겠다 싶었다.

눈을 뜬 김에 상반신을 일으키려니, 귓가를 간질이는 숨소리가 들렸다.

쌕쌕거리는 소리를 쫓아 눈동자를 옮겼다. 그곳에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담한 체형의 소녀가,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잠들어 있었다.

셀린이었다. 어젯밤에 급히 지혈만 끝마치고 신전으로 향했는데, 그 이후로 출혈이 심해 기절하듯 잠들고 말았다. 그런데 셀린은 내가 곯아떨어진 다음에도 기숙사에 돌아가지 않고 밤새 곁을 지킨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입원한 까닭은 셀린과 진검 대련을 벌이다 얻은 부상이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큰 상처는 아니었다. 물론 뼈까지 칼날이 틀어박혀 골수까지 오염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지만, 아카데미의 신전에는 언제나 고위 사제가 상주 중이었다. 부상 자체는 금세 치료할 수 있었다. 오염을 걷어내기 위한 소독을 할 때는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긴 했지만.

그러나 아무리 신성력이 만능이더라도 인체에 누적된 피로까지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몇 번에 걸친 부상으로 내 몸은 한계에 이른 상태였다. 치료와는 별개로 며칠간의 정양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난밤 내 치료를 담당한 신학부의 안드레이 교수님은, 괜찮다는 나를 억지로 입원시켜 버렸다. 최근 강의 결석이 너무 많아 성적이 걱정된다는 내 말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안드레이 교수님은, 오늘 내 강의를 담당할 교수님께 따로 언질까지 넣어두시겠다고 하실 만큼 강경한 자세로 나섰다. 그럼에도 못마땅한 눈빛을 하고 있는 나를 위해 담당사제를 성녀님으로 바꾸며 쐐기까지 박아버릴 정도였다.

그러지 않아도 성녀님께 꾸지람을 듣는 요즘이었다. 또 팔이 잘릴 뻔한 중상을 당했다고 하면, 성녀님에게 얼마나 오랜 시간 설교를 들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절망에 빠진 나는 그대로 반항의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셀린은 내 암울한 눈빛을 보고 못내 신경이 쓰였는지 자꾸 내 눈치를 살폈다.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도 셀린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새벽녘에는 돌아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죄책감 때문인지 셀린도 함께 밤을 샌 듯했다.

새근새근 잠든 셀린은 어딜 보아도 사랑스러운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활달하고, 입이 험하고, 그리고 세리아와 칼부림까지 벌일 여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귀여운 외모였다.

예쁘기는 예뻤다. 1학년 때부터 고위 귀족들이 꾸준히 추파를 던졌다고 들었는데,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학년 검술학부에서는 세리아와 함께 쌍벽을 이룬다고 했던가?

내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나한테 셀린은 언제나 셀린일 뿐이었다. 아카데미에 와서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소꿉친구 셀린은 오로지 한 사람뿐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상반신을 일으켰다. 혹여 셀린이 깰까 싶어서였다.

걱정과는 달리, 셀린은 곤히 잠들었는지 잠에서 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음냐, 하고 입맛을 다시기에 나는 짓궂은 생각이 들고 말았다.

언제까지 잠들어 있을 수 있나 볼까?

내 검지가 셀린의 보드라운 볼을 콕, 하고 찔렀다. 탄력 있는 살집을 파고드는 손가락, 셀린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그럼에도 아직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어지간히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 내 손이 다시 한 번 셀린의 볼을 찔렀다.

꾸욱, 그래도 셀린은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손가락으로 셀린의 볼을 찌르려던 찰나.

셀린은 짜증이 났는지 살짝 거칠어진 숨소리를 뱉더니, 제 볼을 찌르려던 내 검지를 그대로 입으로 물어버렸다.

그리고 오물거리며 내 손가락을 빨 듯이 핥기 시작했다.

섬찟거리며 척추를 간질이는 묘한 느낌, 꼬리뼈부터 쾌감인지 전류인지 모를 감각이 척수를 자근자근 밟으며 올라왔다.

뭐지,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내 몸이 생경한 감각에 멈칫한 사이, 셀린은 정성스레 내 검지를 핥아 올렸다. 오물거리는 입술의 감촉이 탱글거리며 손가락을 압박했다. 셀린의 표정은 이상하게 편안해 보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젖을 빠는 아이의 얼굴이 이랬을까, 곤란한 점이 있다면 나는 남자였고 셀린에게 젖도 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손가락에는 무슨 짓을 해도 액체가 나오지 않는다. 또 다른 부위라면 몰라.

그렇게 멍하니 셀린의 애무를 받아들이고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묘한 감촉에 잠시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셀린의 입에 들어갔던 손가락을 뺐다. 헤, 하고 바보 같은 얼굴로 내 손가락을 빨고 있던 셀린의 얼굴이 단번에 불만스러워졌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이처럼 순수한 아이에게 내가 무슨 상상을 했단 말인가. 나는 검지로 성호를 그으며, 성녀님을 따라 중얼거렸다.

임마누엘, 천신이시여 이 불행한 영혼을 죄로부터 구하소서.

그리고 나는 다시 음심이 치밀까 싶어 얼른 셀린의 머리에 딱밤을 먹였다. 곤히 잠든 와중에도 감히 나를 유혹한 대가였다.

“아, 아얏!”

이번만큼은 셀린도 깨어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지, 그렇게 비명을 내지르며 셀린이 눈을 떴다. 그녀의 손이 절로 이마를 향했다.

우씨, 하고 불만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셀린은, 이내 퍼뜩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다급하게 내게 물어왔다.

“이, 일어난 거야? 모, 몸은? 몸은 괜찮고?”

“고작 그 정도 가지고 무슨, 내가 마수도 열 마리를 해치운 사람인데.”

그땐 진지하게 죽을 뻔했다. 솔직히 말해, 다시 한 번 그 짓거리를 하라면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제의 상처도 경상은 아니었지만 마수를 상대했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내 너스레에도 셀린은 여전히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눈물이라도 뚝뚝 떨굴 기세였다. 그녀가 곧바로 사죄의 뜻을 밝혔다.

“미, 미안해… 내, 내가 괜히 마지막에 이상한 짓만 안했어도…….”

“의도하고 저지른 일은 아니잖아? 너무 신경 쓰지 마, 다칠 각오도 없이 진검을 든 적은 없으니까.”

나는 셀린을 최대한 안심시키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렇게 말했다. 정확히 말해 팔뿐만 아니라 심장까지 베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이를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래봐야 셀린이 울상을 짓는 것 외에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인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것대로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지금 셀린은 툭 건드리면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마치 눈물로 부풀어 오른 물풍선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애써 못된 생각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다친다면 내가 다쳤어야 하는데…….”

셀린은 후회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이 말없이 땅바닥을 향했다. 풀이 죽은 기색이었다.

언제나 활기가 넘쳤던 황갈색 눈동자에는 죄책감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아무 말도 없이 셀린의 볼을 쓰다듬었다.

흠칫, 하고 내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란 듯 셀린이 몸을 떨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한숨 섞인 미소를 지었다. 쓰디쓴 미소였다.

“내가 선택한 일이야.”

“……응?”

“내가 선택한 일이라고, 네가 아니라 내가 다친 거 말이야.”

내 말을 들은 셀린의 눈동자가 멍해졌다. 나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를 다치게 할 수는 없더라. 그래서 대신 내가 다친 거야… 내 선택이니, 내가 책임지는 게 맞겠지.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조금 부끄러워 셀린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할 순 없었지만, 그 마음만큼은 진짜였다.

셀린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어젯밤의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내 말을 듣고도 셀린은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단지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더니, 이내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이 순식간에 그녀의 눈망울에 차올랐다. 셀린은 흐느끼면서, 그녀의 볼을 쓰다듬고 있던 내 손을 두 손으로 쥐었다.

“미안, 흐으윽… 미안해, 이안 오빠. 다시는, 흑,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에… 흐어엉…….”

그녀를 울리지 않으려고 한 말이었는데, 결국 울려 버리고 말았다. 나는 난감한 기분으로 셀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울음은 한동안 그치지 않을 듯했다.

나는 최대한 따스한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

“울긴 왜 울어, 또. 이러다 울보라고 소문나겠다.”

“흐윽, 하지마안… 진짜, 진짜로 말 잘 들을게, 흑, 이안 오빠아… 흐으윽…….”

내가 등을 토닥이며 셀린을 달래기를 얼마쯤, 결국 셀린은 눈물을 그쳤다. 그럼에도 아직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고, 눈망울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것대로 예뻐서 보기는 좋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나를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이라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들어줄 듯 보일 정도였다.

마침 잘 됐다. 나는 조심스레 셀린에게 말을 꺼냈다.

“그, 셀린. 그러고 보니 기억해?”

“……응? 뭐가?”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진 사람이.”

셀린은 그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듯했다. 그녀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상냥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쥔 내 손에 제 볼을 부비적거렸다. 순종적인 애완동물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응, 그래. 무엇이든 들어줄게.”

“……무엇이든?”

그 미묘한 어감에 나는 그렇게 되묻는 수밖에 없었다. 셀린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눈웃음.

그러나 내 손바닥에 닿는 그 뜨겁고 습한 숨결은, 진심으로 느껴져서.

“응, 무엇이든… 내 전부를 달라고 해도, 줄게.”

그러면서 셀린은 내 손을 살짝 아래로 가져갔다. 목덜미, 쇄골, 그리고 폭신한 감촉이 느껴지는 그 아래로.

내 정신이 멍해졌다. 그러고 보면 병실에서는 달콤한 향이 나고 있었다. 여체만이 흘릴 수 있는 그 특유의 살내음이, 내 정신을 뒤흔들었다.

셀린이 살짝 상반신을 기울여,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

“……어떻게 할래?”

“나는, 셀린… 그러니까 나는…….”

서서히,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셀린의 두 손에서 벗어나, 내 손이 셀린의 어깨를 단단히 붙들었다. 셀린과 내 얼굴이 지척에서 마주했다. 셀린은 조금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서로의 맥동이 일치했다. 나는 그대로, 셀린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랑 조 짜자, 수렵제.”

퍽, 하고 가죽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필이면 팔뚝이었다.

내 비명 소리가 병실에 가득 울려 퍼졌다.

**

셀린은 다시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쓰라린 팔뚝을 쓰다듬으며 불퉁한 시선을 그녀에게 보내야 했다.

그녀가 하필 내 부상 부위를 때렸던 탓이었다. 아무리 신성력으로 봉합되어 있다곤 해도, 부상은 부상이었다. 팔이 반쯤 잘린 상태였는데 안까지 멀쩡할 리는 없었다.

셀린은 으으, 하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이내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괘, 괜찮아?”

“아니, 아픈데. 무척이나.”

“그, 그렇긴 하겠지만…….”

허둥지둥 하며 눈을 이리저리 돌리던 셀린은, 결국 뻔뻔해지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빽 소리를 내질렀다.

“그, 그러니까 누가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래?! 누, 눈치 없어. 진짜!”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 적반하장으로 화내기, 마침 그녀는 얼굴도 반반하다 보니 대다수의 남성들은 이 무렵에서 고개를 꺾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나였다. 셀린을 상대한 경력만 10년이 넘는 숙련자.

나는 곧바로 팔뚝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아이고, 큰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팔뚝이 또……!”

“지, 진짜?! 미, 미안해… 어, 어떡하지. 사제, 사제님을 불러야…….”

셀린은 내 엄살에 와들와들 떨며 혼란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울상을 짓는 것은 덤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귀엽기는, 아무리 그래도 너는 나한테 안 되지.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 순간 병실의 문이 열렸단 점이었다. 마침 발을 동동 구르던 셀린이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문 너머로 비치는 것은, 회색의 머리카락.

아쿠아마린빛 눈동자를 마주한 셀린의 몸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아침부터 병문안을 온 그녀, 세리아는 잠시 당황한 듯 몸을 흠칫 떨었다.

그래봐야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세리아가 셀린을 대단히 곤혹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세리아는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결심을 굳혔는지 결연한 눈빛으로 내게 발걸음을 옮겼다.

셀린은 잠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세리아를 바라보았으나, 셀린의 시선이 따라붙어도 세리아는 묵묵부답이었다. 의도적으로 셀린과의 대화를 피하는 듯 보였다.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 무시한다. 오래 전에 셀린이 세리아에게 취한 전법이었다. 이를 셀린이 그대로 돌려받는 날이 올 줄이야.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세리아는 셀린을 지나쳐, 자연스레 내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부드러운 손이었다. 말랑한 감촉이 기분 좋았다.

셀린의 눈빛이 더더욱 묘해졌다. 그녀의 눈썹이 움찔, 하고 떨렸다.

“저, 이안 선배. 몸은 좀 괜찮으세요?”

“아니, 네가 어떻게 알고…….”

셀린이 그러든 말든 내게 온화한 목소리로 묻는 세리아를 향해, 나는 당황해서 그렇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병실에 입원한 것은 어젯밤의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른 아침부터 세리아에게 소식이 닿았단 말인가.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안드레이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오늘 새벽 수련은 선배님께서 입원하셔서 힘들 거라고…….”

“아, 그래?”

그러고 보니 안드레이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긴 했다. 오늘 내 일정을 담당하는 교수님께 전언을 남기시겠다고, 그러는 중에 세리아에게도 소식을 전해 주신 모양이었다.

어젯밤에 내 오늘 일정을 읊으며 세리아의 새벽 수련까지도 말해 버렸나 보지,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며 내 손을 꼭 쥔 세리아를 바라보았다.

그 걱정스러운 표정은 침울해 보이기도, 초조해 보이기도 했다. 내 앞에서만 이토록 노골적인 감정 변화를 보이는 그녀였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다지 심한 상처는 아니야. 단지 안드레이 교수님께서 정양을 해야 한다고 하도…….”

그때였다.

“……이안 형제님.”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실의 바깥에서 새어 들어온, 맑고 청명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기묘한 마력이 있어서, 병실에 있던 우리 셋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고 말았다. 모두의 시선이 문 밖을 향했다.

그곳에는, 다소 못마땅한 얼굴을 한 여인이 서 있었다.

흐응, 하고 병실의 내부를 둘러보는 그 연분홍빛 눈동자. 차라리 예술품을 연상시키는 그 외모와, 뇌쇄적인 몸의 곡선까지.

성녀님이었다. 그 눈동자가 나, 세리아, 셀린을 차례대로 담더니.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좋아 보이시네요.”

나는 남은 손으로 이마를 짚는 수밖에 없었다. 부상을 당한 팔 쪽이라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절묘한 시점에 병문안을 올 수 있단 말인가.

세 여인이 방 하나에 모이는 순간이었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