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1. 첫 번째 편지(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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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제는 위험했다. 굳이 미래에서 온 편지의 내용을 따져보지 않아도 그랬다. 애초에 마수를 사냥하는 축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숲에는 자생하고 있던 마수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생포한 마수들까지 풀어진다. 그리고 마수들은 기본적으로 인류를 적대하는 생물이었다.
당연히 아카데미 재학생이라고 마수들이 특별취급을 해줄 리는 없었다. 까딱하면 부상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몇 년에 한 번씩은 사망자도 나올 만큼 수렵제는 위험한 축제였다.
그럼에도 매년 수렵제는 참가자들로 붐빈다. 그 드넓은 숲에 수백 명이 퍼져 봐야 티도 나지 않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축제치고는 꽤 많은 숫자였다.
심지어 참가자들은 대다수의 전투 관련 학부, 상학부나 인문학부는 참가조차 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아카데미 재학생 중 절반 남짓을 제외해도 매년 수백 명의 참가자가 나타난단 뜻이었다. 이는 수렵제의 상품이 화려한 덕도 있지만, 아카데미의 특성으로부터 기인하는 현상이기도 했다.
아카데미는 교육기관이자 훈련기관이다. 검술학부든 마법학부든 강도 높은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3학년부터는 실전에 파견되기도 한다.
비단 수렵제가 아니더라도 아카데미를 졸업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은 많았다. 오히려 말하자면, 아카데미 부지 내에서 적절한 감시 하에 치러지는 축제가 더 안전했다. 여러모로 거부감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수렵제에 참가할 조원을 모으는 일이 어렵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세리아는 우수한 검사였고, 셀린이나 레토처럼 목숨을 믿고 맡길 만한 친구들도 존재했다. 고작해야 4명이 아닌가.
그처럼 단순히 생각했던 여정이 어느새 여러 고난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어떻게든 넷을 모으긴 했다.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았을 뿐이지.
우선 셀린과 세리아, 그 둘은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다.
물론 셀린은 내 눈치를 보았기 때문인지, 세리아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
“……미안.”
세리아는 조금 의외라는 눈빛으로 셀린을 바라보았다. 셀린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너에 대해 나쁜 말을 했던 적이 있어. 그래서 내 친구들이 더 너를 싫어했을 수도 있고, 전부 내 잘못이야. 사과할게.”
셀린으로서는 입술을 짓씹을 만큼 굴욕적인 일일 터였다. 그녀는 자존심이 강했지만, 특히나 고위 귀족을 상대로는 굽히는 법이 없었다.
그녀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고위 귀족에게는 다소 유약한 태도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는 일만큼은 결단코 거부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 셀린이, 유르디나 가문의 일원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셀린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내린 결정이리라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셀린을 변호해 주지 않았다.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였다. 내게 간섭할 권리는 없었다. 단지 물끄러미 세리아를 바라보았을 뿐.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고개 숙인 셀린을 잠자코 바라보던 세리아는,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러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만큼은, 달랐다.
“……됐어요.”
셀린의 몸이 움찔, 떨렸다. 말만 들어서는 오해를 할 수도 있었다. 세리아가 용서를 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 목소리에 은근한 온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아니라면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여간 저 오해 사기 쉬운 말버릇도 고쳐야 하는데, 세리아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 일쯤은. 언제나 있던 일이고, 또 그런다고 해서 무조건 당신만의 잘못은 아니겠죠. 제가 오해를 살 만한 말을 자주 하는 건 사실이니까요.”
셀린의 고개가 살짝 들렸다. 그 황갈색 눈동자에서는, 당황과 기대가 반씩 섞여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 유르디나의 싸가지가 왜 이래?’라는 눈빛, 그러나 지금 세리아가 보이는 모습이야말로 진짜 ‘세리아’에 더 가까웠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어지간한 잘못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원한을 품는 일도 드물었고, 남을 미워하거나 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미움을 사는 일쯤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리아는 셀린의 사과에도 별 것 아니라는 듯 대응할 수 있었다.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는 조원으로서, 그… 하, 함께 노력해요.”
마지막 말은 조금 쑥쓰러웠는지, 세리아는 살짝 볼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셀린은,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굽혔던 상체를 펴고, 손을 내밀었다. 누가 보아도 화해를 하는 그림이었다.
그래, 이게 바로 아카데미지. 화해와, 우정. 그리고 청춘!
그동안 너무 조마조마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다. 본래 수많은 청춘들이 뒤섞이는 아카데미란 이래야만 했다. 살벌한 말이 오고가고, 칼부림이 나고, 그래서는 안 됐다.
셀린이 손을 내밀자, 세리아는 난생 처음 받아보는 악수 요청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셀린을 바라보았다. 셀린은 그럼에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
“잘 부탁해, 세리아. 최소한 수렵제까지는 말이야.”
“그… 네, 넷…….”
훈훈한 광경이었다. 내가 따스한 눈으로 셀린과 세리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새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예상하던 대로의 인물이 서 있었다. 커다란 고깔모자에,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블루사파이어를 닮은 푸른 눈동자.
그 자그마한 체구와 더불어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이 소녀를 살아 움직이는 인형처럼 착각하게끔 만들었다. 그만큼이나 아름다운 소녀였다.
2학년 검술학부에 두 꽃이 있다면, 4학년에도 그에 못지않은 명성을 구가하는 아리따운 여인들이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독을 품은 꽃’이라면 이 소녀밖에 없었다.
엘시 라이넬라, 제국의 마도명문 라이넬라 백작가의 영애였다.
뇌전 마법을 다루는 전투 마법사인 그녀는 이미 수많은 실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 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녀의 심장을 둘러싼 서클만 무려 다섯 개, 아직 졸업도 하지 않았는데 고위 마법사라 불리는 5서클에 등극한 천재였다.
심장을 둘러싼 서클은 각각이 하나의 술식 도구나 다름없었다. 다시 말해 이 자그마한 소녀는 다섯 개의 술식을 중첩시킬 수 있단 소리였다.
그리고 술식은 중첩되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공명 현상을 일으켜 파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엘시 선배가 전력을 다해 마법을 영창한다면 아무리 네임드급 마수라 하더라도 무사할 수 없을 터였다.
말하자면 내가 준비한 비장의 병기인 셈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레토를 데려올 생각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여러모로 엘시 선배와 함께하는 편이 맞았다.
마법사의 주된 역할은 전위의 보호를 받으며 강력한 화력을 퍼붓는 것이다. 실전 경험도 풍부하고 실력 또한 출중한 엘시 선배라면, 네임드급 마수를 상대할 때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렇게 뿌듯한 눈으로 엘시 선배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사랑스러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미소가 문득 눈에 띄었다. 앙증맞은 입술이 달싹이며 열린 건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지랄을 해라, 지랄을 해. 에휴, 고작해야 뒷담화 좀 깐 거 가지고 무슨… 괴롭힘이라고 하면, 응? 확 그냥 머리채도 뜯어버리고, 그래서 다음날부터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해야지. 아니면, 뭐. 몰려다니며 어디 공터 구석에 처박아 놓고 구타라도 하던가. 쯧쯧.”
셀린과 세리아가 하는 양이 영 못마땅한지 엘시 선배는 혀를 찼다. 그 외모와 입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의 격차가 어마어마했다. 나조차도 일순 멍해질 정도였다.
엘시 선배는 그에 그치지 않고, 내게 동의를 구해 오기까지 했다.
“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솔직히 뒷담화는 사과할 일도 아… 히이이익?! 자, 잘못했어요!”
나는 대답 대신 슬쩍 허리춤의 손도끼를 보여주었다.
더는 엘시 선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견딜 수 없었던 탓이다. 그 귀여운 외모로 험한 말을 내뱉는 꼴을 보니, 절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엘시 선배는 곧바로 고깔모자를 푹 눌러쓰며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다, 다시는 건방지게 굴지 않을게요…….”
애처로울 만큼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짐짓 근엄한 목소리를 연기하며 물었다.
“……약속할 수 있겠습니까?”
“네, 네헷… 히, 히끅!”
나는 그제야 다시 망토로 허리춤을 가렸다. 그리고 그녀의 고깔모자 위로 손을 턱, 하고 얹었다.
엘시 선배는 순간적으로 흠칫 몸을 굳혔으나, 이내 내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곧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볼에 희미한 홍조가 감돌았다.
내 상반신이 살짝 숙여졌다. 엘시 선배의 귓가에 내 속삭임이 닿을 만한 거리까지.
“앞으로도 말 잘 들어요.”
“……으, 으응.”
엘시 선배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내 손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더욱 쓰다듬어주기를 원하는지, 머리를 은근히 손에 부비기까지 했다.
좋아, 엘시 선배는 이만하면 충분했다. 이제 남은 것은 셀린과 세리아뿐이었다. 그 둘은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소 쑥쓰러운 화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내가 시선을 돌리니 셀린은 세리아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고 있었고, 그 직후 세리아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셀린은 도발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세리아는 아직 셀린의 손을 놓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한층 냉랭해졌다는 것은 명확해 보였다.
그 속삭임의 내용을 듣지 못한 내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셀린이 당당히 선언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잘 지내보자.”
“……그러시죠, 어차피 제 목표는 수렵제 우승이니까요.”
싸늘한 분위기였다. 세리아에게 두 번째 친구가 생기나 싶었던 나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었다. 혹시 셀린과 세리아는 체질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 걸까?
나는 쯧, 하고 혀를 차는 수밖에 없었다. 엘시 선배를 쓰다듬던 내 손길도 그 무렵에 거두어졌다.
엘시 선배는, 장난감을 쫓는 강아지의 표정이 되어 안타까운 눈으로 내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미 떠난 손을 다시 붙들기에는 아직 자존심이 남아 있었던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내 주의를 끌었다.
내 눈이 자연스레 엘시 선배를 향했다. 볼의 홍조가 마저 가시지 않은 채로, 엘시 선배는 내게 물었다.
“그런데, 방법은 있어?”
“무슨 방법이요?”
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묻자, 엘시 선배는 단박에 답답한 얼굴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다.
“훈련해야 할 거 아니야! 수렵제는 실전인데, 우승까지 하려면 당연히 서로 합을 맞춰야지! 델핀 그 년은 평소부터 합을 맞춰 온 애들이랑 나올 텐데!”
아, 나는 자그마한 탄성을 터트렸다. 과연 엘시 선배의 지적은 적확한 지점이 있었다.
이제 고작 일주일 남짓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수렵제에 참가하기 전까지 손발을 맞추는 훈련은 필수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차라리 함께하지 않느니만 못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도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둔 바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걱정 말라는 듯, 엘시 선배에게 답했다.
“그래서 특별한 분을 모셔 왔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특별한 분? 흥, 하급 귀족에 제대로 된 연줄도 없는 녀석이 무슨…….”
엘시 선배는 내 호언장담에도 못미덥다는 듯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 모습이 조금 시건방져서, 손도끼를 한 번 더 보여줄까 싶을 무렵이었다.
쿵, 하고 충격파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폭발하듯 솟구치는 모래먼지.
지반이 흔들리는 충격이었다. 엘시 선배가 꺄악, 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내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면서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손에는 전하가 맺히는 것이, 확실히 실전 경험이 무섭긴 했다.
셀린이나 세리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흔들리는 지축 위에서 둘은 휘청이는 듯하다가, 곧바로 자세를 잡고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치솟는 모래먼지 사이를 노려보았다.
넷 중 놀라지 않은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야, 내가 부른 사람이었으니까.
설마 이렇게 등장할 줄은 몰랐는데, 사실 어떻게 등장하더라도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모래먼지가 서서히 가라앉고, 그 안에서 강철과 같은 근육을 자랑하는 장년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셀린과 세리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녀들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이냐? 이안이 말한, 그 마수 사냥꾼의 길을 잇고 싶다던 건방진 놈들이.”
타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과 수염, 은퇴한 지 오래됐음에도 조금도 꺾이지 않은 눈빛이 그의 실력이 아직 건재함을 증언하고 있었다.
데렉, 전설적인 마수 사냥꾼.
검술학부의 교수이기도 한 그에게, 나는 특별히 부탁을 남겼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나를 주목하고 있던 데렉 교수님은 기꺼이 훈련을 도와주시기로 했고.
마수를 염두에 둔 훈련이었다. 데렉 교수님 이상의 전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데렉 교수님의 명성을 잘 접하지 못한 엘시 선배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한 뿐이었다. 나는 그러든 말든 고개를 숙였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데렉 교수님.”
“흠, 좋아. 마수 사냥꾼이 될지도 모르는 제자들이라니, 내 특별히 시간을 투자해 주마.”
물론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수 사냥꾼’이라는 단어에 엘시 선배는 곧바로 발끈하며 외쳤다.
“마수 사냥꾼?! 그 근본도 없는 하루살이 인생을, 이 라이넬라 가문의 엘시가… 히이익?! 하, 할게요! 마수 사냥꾼 할게요! 그러니까 제, 제발 살려줘!”
그래봐야 손도끼를 살짝 보여주는 것으로 진압 완료였지만.
그후 일주일 동안, 지옥 같은 훈련이 이어졌다.
그래, 말 그대로 지옥 같은 훈련.
오죽하면 그 세리아가 나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볼 정도였다.
아니, 나도 마수의 분뇨를 몸에 바르고 훈련을 할 줄은 몰랐지.
참고로 그 훈련을 끝마친 엘시 선배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차라리 죽여 달라는 눈빛이었다.
**
수렵제 당일, 축제의 열기가 한껏 전해지는 아침이었다. 새벽녘임에도 인파가 바글거렸고, 사람들의 온기로 대기는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말없이 준비물을 점검했다. 내 곁에는 함께 수렵제를 참가하기로 한 동료들이 서 있었다. 그중 하나인 엘시 선배는, 아직도 영혼이 빠져나간 듯 눈동자에 빛이 사라진 채였다.
흐어어, 하고 생기 없는 소리를 흘리는 엘시 선배를 두고, 나는 세리아와 셀린에게 물었다.
“준비는 끝났어?”
“응, 어떻게든…….”
셀린은 그렇게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고, 세리아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둘 다 지친 기색이었다.
일주일 동안의 훈련이 많이 고됐던 모양이었다. 솔직히 아직도 되짚으면 끔찍한 훈련이 많았다. 나도 으슬으슬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네임드 마수를 상대해야 할 상황이었다. 훈련은 차라리 힘든 편이 나았다. 그럴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데렉 교수님께 오히려 더 높은 강도의 훈련을 요구하는 나를 보고, 셀린과 세리아가 지었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했다.
미친놈을 바라보는 눈빛.
엘시 선배에 이르러서는 거의 발작을 일으킬 뻔했다. 내가 그때 허리춤에서 손도끼를 뽑아들지 않았다면 대참사가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도끼날에 반사되는 찬란한 햇빛을 보고, 엘시 선배는 그제야 제정신을 되찾았는지 곧바로 그 자리에 웅크려 앉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수의 분뇨를 바르고 있어 냄새로 구분은 힘들었지만, 아무튼 엘시 선배가 극렬히 부정하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좋은 시절이었지, 데렉 교수님은 내 의지에 감탄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훈련을 봐주시고.
그 눈물 젖은 여정의 결실이 오늘 맺어질 예정이었다. 나는 단단히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고 보니 레토가 인사를 온다고 했는데.
내 몸이 흠칫 굳은 것은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신경은 곧바로 가상의 궤적을 눈앞에 그렸다. 내 손이 허리춤을 향했다. 검으로? 아니, 좀 더 짧아야 했다.
그만큼이나 빠른 기습이었다. 손도끼가, 곧바로 허공에 은빛 실선을 죽 그으며 솟구쳤다.
그리고 캉, 하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단검이었다. 그럼에도 실린 힘이 무시무시했다. 이를 쳐내는 내 손도끼가 살짝 밀리는 감이 있을 정도였다. 아슬아슬하게 내 앞을 스쳐지나가며, 허공에서 핑그르르 회전하는 그 비수.
그 칼날에는, 금빛 오러가 맺혀 있었다. 나는 이를 보자마자 단박에 깨달았다.
이 단검을 던진 이가 누구인지를.
놀라서 굳어 있는 일행들보다도 먼저 내 시선이 단검이 날아온 방향을 향했다.
타는 듯한 금빛 머리카락, 그리고 꿀처럼 권태가 뚝뚝 떨어지던 진홍색 눈동자.
새하얀 피부, 누구나 감탄을 터트릴 법한 얼굴, 무엇보다 그 광오한 자신감을 드러내듯 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갑옷까지.
스스로의 몸을 ‘예술품’이라칭하는 여자였다. 당연히 갑옷으로 가리더라도 그 몸의 굴곡을 드러내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그 태양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인은, 내 눈동자를 마주하자마자미소를 머금었다.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
“오랜만이야, 손도끼 공자.”
델핀 유르디나,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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