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1. 첫 번째 편지(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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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렉 교수님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일주일간의 훈련은 치열했다.
온갖 상황을 대비해야 했고, 실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이유로 된통 얻어맞기도 했다.
정신이든 육체든 극한으로 몰릴수록 더욱 강해진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훈련 첫날부터 엘시 선배는 중도포기를 선언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출항한 배에서 내릴 수는 없었다.
일단 배를 탔다면 선택지는 오직 둘 뿐이었다. 빠져 죽거나, 끝까지 가거나.
전자를 고를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엘시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결국 내 격려와 손도끼에 힘입어 어떻게든 훈련을 끝마칠 수 있었다.
데렉 교수님의 명성을 알고 있던 셀린과 세리아는 상대적으로 순순히 훈련에 임했다.
마수 사냥을 대비하는 훈련이었다. 전설적인 마수 사냥꾼 출신인 데렉 교수님 이상의 적임자가 없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러한 셀린과 세리아마저 의문을 가지는 부분이 있었다. 이는 데렉 교수님의 잘못이 아니라 내 책임이었다.
나는 데렉 교수님께 훈련을 도와달라 말씀드릴 때, 특별한 부탁을 하나 더 드렸던 것이다.
“강력한 마수 하나를 상대한다는 가정 하에 훈련을 진행해 주시면 안 될까요?”
데렉 교수님은 내 조건이 의외라는 듯, 잠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얼마나 강한 마수를?”
“이름이 붙을 만한 놈으로.”
데렉 교수님은 고민하듯 눈을 감았다가, 이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아무래도 내가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데, 네임드급 마수를 상대해야 하는 것은 내게 당면한 과제이자 곧 찾아올 미래였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네임드급 마수는 상식을 초월한 괴물들이었다. 단순히 육체 능력만 강인할 뿐만 아니라, 온갖 기기묘묘한 특성을 타고나곤 했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한없이 짧았다. 하다못해 시험공부조차도 일주일 전에 시작하면 벼락치기라 부르는 판국이었다. 반복된 훈련으로 본능적인 움직임을 각인시켜야 하는 육체 수련이라면 더더욱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조건을 한정 지은 것이다. 단기간이지만 어떻게든 훈련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상대할 마수의 특성을 내가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편지에 적힌 마수에 대한 정보는 달랑 하나뿐이었다.
‘뿔이 약점이다.’
그 외에 내가 그 마수에 대해 아는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수란 그 특성에 따라 대응방법이 천차만별이므로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세피아’라는 사람한테 회신이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금 더 아는 정보를 말해 달라고.
하지만 7년 뒤의 미래로 편지를 보낼 만한 능력이 내게 있을 턱이 없었다. 그저 그 약간의 정보라도 내게 제공해 주었음에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각국의 고위 인사들이 모인 축제에서 대참사가 벌어질 뻔했으니까.
네임드급 마수가 날뛴다면 수백 명의 학생 중 죽고 다칠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카데미 측이 눈치를 챈다면 몰라, 숲에서 1년 가까이 숨어 지내던 놈이었다.
은밀 행동에 능한 녀석일 것이 분명했다. 기습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미래를 알고 있는 내게 한정되는 이야기였다. 엘시 선배야 손도끼로 설득하면 그만이라지만, 셀린과 세리아는 아니었다.
그녀들은 다대다도 아니고, 유독 일대다에 집중된 훈련에 의문을 표했다. 실전에서는 얼마든지 다양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령 예전에 내가 쓰러트린 마수들이 그랬다. 늑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던 그 마수들은 집단행동에 익숙했다. 엠마의 물약으로 기습을 했다지만, 나도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해야 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상대했던 우두머리 늑대가 바로 고위 마수였다. 사실 통상적으로 수렵제에서 그 정도의 마수를 잡으면 최소 입상, 운만 좋으면 우승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셀린과 세리아의 상상력이 아무리 풍부해도 수렵제에서 네임드 마수를 상대하는 미래를 예상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다양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실전을 대비한 훈련에서 유독 한 가지 경우만 상정하고 있는 이유도.
사실 나도 네임드급 마수가 집단전으로 나올지, 아니면 홀로 싸우려 들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수를 골랐을 따름이었다.
만약 네임드급 마수가 부하들까지 거느리고 있다? 그러면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가 없었다. 가능성이 있다면 오직 하나뿐.
홀로 나선 네임드급 마수를, 조원 모두가 힘을 합해 쓰러트린다. 어디 청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그 결론만이 유일한 해답이었다.
그래도 세리아는 나에 대한 신뢰가 굳건하기에 그럭저럭 수긍하는 모습이었지만, 셀린은 아니었다. 옛날부터 궁금한 점은 참지 못하던 그녀였다.
셀린은 다짜고짜 내게 물었다.
“이안 오빠, 왜 이 훈련만 계속하는 거야?”
훈련의 중간, 휴식시간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이었지만 엘시 선배는 이미 땅바닥에 널브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중이었다.
셀린과 세리아는 그래도 검사라고 사정이 조금 나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듯이 헐떡이더니, 이제는 숨소리가 꽤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그 둘보다 마력량이 많지 않아 회복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땀으로 젖은 머리 위에 수통의 물을 쏟아부으면서, 나는 흘깃 셀린을 바라보았다.
“……뭐?”
“왜 이 훈련만 하냐고. 조금 더 다양한 상황을 대비해야 하지 않겠어?”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어내며, 내게 묻는 셀린은 지친 눈빛이었다. 반복된 훈련이 고되고 지루할 만도 했다. 하지만 일단 셀린이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그래도 의욕이 있다는 뜻이었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일단 참가하기로 했으니 나름 최선을 다할 생각인 듯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마음 같아서는 사실대로 전부 털어놓고 싶었다. 엘시 선배라면 몰라, 셀린과 세리아는 나와 신뢰관계가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었다. 밤새도록 설득한다면 어떻게든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나도 몇 번 시도해 봤지만, 아예 통하지도 않았다. 자꾸 내 말이 왜곡되어 전해지기만 할 뿐, 미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전할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묘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나는 말했다.
“……예지몽을 꿨거든.”
어느 정도 진실이 담긴 말이었다. 물론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셀린의 질문이 신경 쓰였는지, 나를 향하고 있던 엘시 선배와 세리아의 눈빛이 대번에 떨떠름해졌다.
셀린은 물론이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검지로 제 팔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으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내가 그 이상의 발언을 해봐야 어차피 전해지지도 않을 터였다.
“믿어줘, 한 번만.”
내 나지막한 목소리에, 셀린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하여튼 비겁하다니까.”
내가 어떻게 이안 오빠를 믿지 않을 수 있겠어?
그렇게 덧붙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과가 지금 드러나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피 냄새가 짙어졌다. 처음에는 나만이 맡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모두가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를 느꼈다.
분위기가 침전했다. 아직 현장은 보이지도 않은데 혈향이 너무 짙었다. 그만큼이나 많은 피가 흩뿌려졌다는 뜻이었다.
최소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셀린도, 세리아도 조심스레 주위를 경계하며 나아갔다. 엘시 선배의 표정은 더욱 심각했다.
그녀의 자그마한 입에서 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력.”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모두의 이목을 끌기는 충분했다. 지금 이 주위에서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으니까.
풀벌레도, 새조차도 울지 않는 기괴한 정적. 나는 언젠가 이러한 광경을 한 번 목격한 적이 있었다.
남쪽 숲에서 고위 마수를 사냥했을 때, 그때도 숲에는 아무런 생명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숨이 붙어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삶을 갈망한다. 그들은 삶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죽음이 자리한 장소라는 뜻이었다.
“마력의 흔적이 느껴져, 밀도가 높아.”
“마수가 탄생하고 있는 걸까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세리아가 던진 질문이었다.
그녀의 말은 의외로 더듬어지지 않고 매끄러웠다. 그러다간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생각나는 대로 말하라는 지시를 내려둔 덕이었다.
다시 말해, 세리아는 지금 이 상황을 이미 실전이라 여기고 있단 뜻이었다. 눈을 감은 채 마력을 느끼던 엘시 선배의 푸른 눈동자가 다시 날카롭게 빛났다.
“그건 아니야. 그러면 마력의 응집이 급격히 일어나야 하는데, 고요해. 잔잔한 호수 같아, 물이 가득 찬…….”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적이, 마력을 끌어당기고 있다.
마력은 마력을 부른다. ‘마스터’라 불리는 고수들이 한 줌의 마력으로 경천동지할 위력을 낼 수 있는 것 또한 이 때문이었다. 밀도가 높을수록 마력은 더욱 잘 이끌린다. 그리고 이 주위에 마력이 가득 차 있다면, 그만한 마력원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높은 확률로 마수일 터였다. 엘시 선배가 조심스레 허리춤에 매달아 두었던 완드를 꺼냈다.
“……조심해, 강하다.”
우리 중 실전 경험이 가장 풍부한 엘시 선배마저 표정이 딱딱해졌다. 악명 높은 4학년의 실습 파견을 몇 번이고 겪어 온 선배였다. 그러한 그녀마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셀린은 마른침을 한 번 삼키더니, 슬그머니 손을 허리춤으로 가지고 갔다.
언제든 발검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세리아 또한 더욱 예리해진 시선으로 주위를 훑었다.
그러던 우리의 걸음이 멈칫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의 일이었다.
“시체…….”
멍하니, 셀린의 입에서 그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의 시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때 생명이었던 고깃덩어리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피바다였다. 그 외의 표현을 찾을 수 있을까. 모든 시체들이 피를 한 바가지씩 쏟아내서, 그 복부를 연 채 창자를 내보이고 있었다.
사슴이나 토끼 같은 초식동물부터, 오늘 수렵제를 위해 풀어놓았을 마수들까지 그 종류는 다양했다. 그 가지각색의 짐승들이 모조리 목숨을 잃고, 매한가지의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악취미였다. 내 뇌리에 숲에서 사냥했던 고위 마수의 취향이 스쳐지나갔다.
그 녀석도 이렇게 창자를 쏟아내게 하는 것을 즐겼다. 그땐 단순히 마수의 공격성으로부터 발원한 역겨운 취향이라 생각했는데, 혹시 그렇지 않다면?
어딘가에서 배운 것이라면.
그렇다면 부모에게 배웠을 가능성이 컸다. 마수도 짐승이었으니까. 그리고 짐승에게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존재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분노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숨소리마저 죽이고, 기척을 지웠다. 저 멀리에 흐릿한 빛이 비쳤다. 공터였다. 피 냄새도, 마력도 그곳에서 가장 극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지독한 광경에 셀린은 더욱 긴장한 낯빛이었다.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리기에, 나는 조용히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주었다.
조금이지만 겁먹은 황갈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그제야 셀린은 조금씩 진정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실전이었다. 조금의 변수도 없을수록 좋았다. 나를 위시로, 네 명의 사냥꾼들이 서서히 공터를 향했다.
그곳에도 수많은 시체들이 창자를 쏟은 채 구경거리로 전락해 있었다. 다만 공터로 향하는 길목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시체들이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수준으로 보였다는 점이었다.
곰처럼 생긴 마수도 있었고,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로 보이는 마수도 있었다. 최소 고위 마수쯤은 될 터였다. 그럼에도 모조리 당했다.
오직 하나, 저 괴물에게.
경악과 공포가 담긴 시선이 그 거체를 향했다. 하릴없이 앉아 한때는 한 영역을 지배했을 마수의 고기를 뜯고 있던 늑대.
체고만 3m가 훌쩍 넘어 보였다. 저 거체가 어떻게 나무 사이를 돌아다닐 수 있는지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마치 그곳에서만 빛이 지워진 듯 새까만 색을 하고 있는 늑대는, 하품을 하면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눈동자조차 까맣다. 얼핏 비치는 흰자위가 아니었다면, 눈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그 늑대는 아무 말도 없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은신한다고 은신했지만, 저 괴물의 동물적인 직감을 속이기엔 무리였다. 엘시 선배조차 넋을 놓을 정도의 마수였다. 애초에 기습을 한다는 계획 자체가 무용지물이었다.
늑대는 아무 말도 없이, 흐릿한 숨소리를 흘렸다. 그러나 그 눈동자에서 이글거리는 광기를 나는 느꼈다. 그 기대 어린, 가학심에 가득 찬 눈빛.
그제야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외쳤다.
“전투 준비!”
그 늑대의 이마 위에는, 날카로운 뿔이 하나 돋아나 있었다.
후일 ‘창자 수집가’라고 이름 붙여질 마수와의 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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