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68화 (68/649)

〈 68화 〉 1. 첫 번째 편지(68)

* * *

두 소녀의 신형이 쇄도했다. 상대는 체고만 3m에 달하는 거체의 늑대였다. 칠흑 같은 털을 가진 마수는 그 눈동자를 새파란 빛으로 물들인 채, 사냥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크르릉, 하는 소리가 늑대의 목울대를 긁고 흘러나왔다. 처음으로 달려든 것은 세리아였다.

새파란 오러가 단숨에 몇 개의 궤적을 그렸다. 좌하단에서 우상단, 우하단에서 좌상단, 그리고 상단에서 하단으로.

순식간에 허공을 칠하고 지나간 새파란 오러는 무엇이 허초인지 실초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신기루처럼 펼쳐지는 그 검술이야말로, 유르디나 가문의 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소문으로나 듣던 ‘금사검(???)’이었다.

사자의 발톱처럼 여러 개의 궤적이 동시에 그려진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었는데, 실초와 허초를 분간할 정보를 최대한 주지 않기 위해 어지간하면 쓰지 않는 검술이었다.

그리고 세리아가 그 가문의 비전 검술을 꺼냈다는 뜻은,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죽음의 위기를 넘길 때조차 사용을 꺼리던 기술이었다. 지금처럼 첫 번째 공방에서 망설임 없이 쓸 만한 기예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금 금사검을 쓰고 있었다.

이제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상대는 물리법칙마저 무시하고 움직이는 괴물이었고, 유일한 희망이던 엘시 선배의 전격 마법마저 무용하다는 사실이 막 밝혀졌다.

‘패배’라는 낱말이 무의식 중에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각오를 대변하듯 세리아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마수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느닷없는 일이었다. 눈앞에 칼이 날아들고 있는데 입을 열다니? 그렇다면 그 연약한 안쪽을 노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세리아가 본능적으로 검의 궤적을 틀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마수의 입에서 웅혼한 울부짖이 터져 나왔다.

아우우, 하는 울부짖임과 함께 새파란 빛을 발하던 마수의 뿔이 빛났다. 그 직후의 일이었다.

전격이 마구잡이로 주위를 휩쓸었다. 창백한 빛살이 지반에 내리꽂힐 때 마다 쾅쾅거리는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당황한 세리아는 곧바로 검을 회수하고 뒤로 도약했다. 그러나 전하의 폭풍은 광범위했다.

파지직, 하고 검을 타고 세리아의 몸에 전류가 흘렀다. 그리고 인체에 전류가 흐르면 근육의 급격한 수축이 동반되는 법이었다. 세리아의 다리가 견디지 못하고 풀썩 무릎을 꿇었다.

세리아의 당혹스러운 눈빛이 마수를 향했다. 이제는 전하도 다루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마법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전격 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능력일 가능성이 컸다.

물론 어느 쪽이든 희소식은 아니었다.

저 전격의 폭풍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섣부르게 접근할 수 없었다. 아무리 세리아의 금사검이 신비한 궤적을 그린다 해도, 애초에 접근이 불가능하다면 의미가 없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마수의 새파랗게 빛나던 눈이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갔단 점이었다.

대규모의 화력을 뿜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마력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마구잡이로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닐 터였다.

그리고 그 마력이 충전되면, 다시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는 식이겠지.

제대로 된 분석을 내리기도 전에 늑대는 곧바로 땅을 박찼다. 또 다시 몸통박치기, 전류에 마비된 세리아는 피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그녀의 눈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쾅, 하고 터져 나오는 충돌음.

“꺄아악!”

공기를 가르며 튕겨나간 것은 세리아가 아니라 셀린이었다. 그녀가 특유의 발검술로 늑대 마수의 돌진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럼에도 그 위력을 모두 중화시킬 수는 없었던지, 셀린은 나무 하나를 박살내고 땅바닥을 굴렀다.

실드도 없는 상태에서 저 정도의 타격이다. 죽지는 않았을 테지만 한동안 운신이 불가능할 터였다. 나는 셀린의 발검에 당한 마수가 비명을 토해내는 사이, 내달려 세리아의 뒷덜미를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후방으로 세리아를 내던졌다. 전격의 위력이 꽤 강력한지 세리아는 몸을 파르르 떨 뿐, 움직임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작해야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정도, 그럴 바에야 후방으로 보내는 편이 더 안전했다.

늑대는 노호성을 터트렸다. 또 다시 하찮은 사냥감에게 일격을 허용했다는 사실이 못내 분한 모양이었다. 셀린과 세리아를 차례로 노려보던 마수의 눈이, 검을 겨누고 있는 나를 향했다.

혹여 그 둘을 노릴까 싶어 나는 일부러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입꼬리를 비틀면서, 눈앞에 선 포식자에게 말했다.

“……덤벼, 이 새끼야.”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최소한 그 뉘앙스까지는 전달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 말을 들은 직후 마수가 다시 사납게 미소를 지었으니까.

인간도 아닌 주제에, 인간을 흉내 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점이 더욱 소름 끼치는 상대였다. 그 누구보다 인간을 증오하면서, 인간을 따라한다.

솜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마수의 앞발이 다시 쭉 늘어나며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내 허리쯤 되는 높이였다. 도약하기도, 주저앉기도 애매한 높이. 본능적으로 적을 까다롭게 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그에 대응하는 내 선택은,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바닥에 몸을 바짝 붙이니 흙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그 위로 훅, 하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직후 하반신을 뛰듯이 당겨 웅크린 자세를 만들었다.

그 다음에 할 일은 뻔했다. 도약, 내 검에 은빛 오러가 맺혀 있었다.

검이 휘둘러지자마자 늑대는 다시 제 신체를 쭉 늘어트렸다. 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아가리가 벌려졌다. 내 검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각도.

그러나 늑대가 간과한 사실은, 내가 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 남은 손이 또 다시 허리춤을 더듬었다.

늑대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 찰나에 나와 늑대의 시선이 교환되었다. 나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내가 아끼는 후배 둘을 괴롭혔으니, 한 방 먹으셔야지.

콱, 하고 다시 손도끼가 늑대의 코를 찍었다. 벌써 두 번째였다. 늑대의 몸이 빠르게 머리를 중심으로 수축되며, 허공에 그 거체가 붕 떴다.

크허헝, 마수가 아가리를 쳐들고 비명을 내질렀다. 소름이 돋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파직거리는 소리.

다시 마수의 뿔에 전하가 감돌고 있었다. 나는 마수가 아가리를 치켜들기도 전에 손도끼를 거둔 채, 새파란 전류를 보고 전력을 다해 땅을 박찼다.

울부짖던 마수의 눈동자에 새파란 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콰쾅, 하는 폭음이 연달아 울려 퍼지며 늑대를 중심으로 벼락이 내리꽂혔다.

마지막 순간 몸을 던졌는데도, 발끝에 벼락이 스쳤다. 그것만으로도 저릿거리며 다리 근육이 극도로 수축되는 그 감각.

“크으, 씁……!”

욕지거리라도 내뱉고 싶은 기분을 애써 참으며, 나는 억지로 다리를 두들기며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엎어져 있는다고 마수가 봐줄 리는 없었다. 내 예상대로 마수가 또 다시 몸통박치기를 준비했다.

쾅, 하는 소리. 벌써 몇 번이고 들은 소리였다.

내가 다시 한 번 몸을 던지고 지나간 자리로 칠흑의 포탄이 쏘아졌다. 공터 구석의 나무를 몇 개나 작살내고 나서야, 늑대는 돌진을 멈추고 사나운 시선을 내게 향했다.

아직 다리가 저렸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쉬고 있을 틈은 없었다.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내게 두 번의 도끼질을 허용한 뒤, 마수는 더욱 악에 받힌 듯했다. 마수는 혀를 낼름 내밀어 코에 흐르는 진득한 피를 핥았다.

피 냄새가 맹수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울음소리가 이전보다 사나웠다.

나는 후우, 하고 거칠어지려던 숨을 진정시켰다. 그러자 내 옆으로 누군가 다가섰다.

회색의 머리카락, 그 얼굴까지 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세리아에게 물었다.

“……셀린은?”

“아직, 일단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있긴 한데…….”

속이 뒤집어지는 그 고통, 나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셀린은 심지어 처음 겪는 고통일 테니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이해했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은 여전히 늑대를 향하고 있었다.

“선배님, 엘시 선배가 준비가 거의 다 끝났다고 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저 늑대가 다시 마력을 모을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세리아에게 말했다.

“세리아, 혹시 저 늑대 한 번만 멈춰 세울 수 있어?”

늑대는 거리를 재고 있었다. 늑대의 반응은 늘 한결같았다. 근접하면 신체를 길쭉이 늘려 변칙적인 공격을 가하고, 멀리 있을 때는 전조조차 없는 몸통박치기로 큰 타격을 노린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시 몸통박치기로 거리를 조절하려 들 터였다. 그러나 그 몸통박치기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라, 실드도 없는 상태에서 그 일격을 받아내면 부상을 얻을 것은 명백했다.

어려운 부탁이었다. 나는 조금 더 내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지만, 그보다 세리아의 대답이 더 빨랐다.

“할게요.”

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는 대답. 내 눈이 멍하니 세리아를 향했다.

그녀의 짙푸른 눈동자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강한 신뢰가 머물러 있었다.

“이안 선배는, 저한테 거짓말하지 않으니까요. 저를 이기게 해준다고 하셨죠?”

델핀 선배로부터 이기게 해주겠다고,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어쩌면 그랬을지도 몰랐다. 우승을 노린다는 말 자체가 델핀 선배 또한 제치겠다는 소리와 다름없었으니까.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나, 보통.

엘시 선배조차도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처음에 나와 함께하자고 했을 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델핀 선배의 실력은 출중했다.

그러나 지금 나를 바라보는 세리아의 눈에는 의심의 티끌마저도 엿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신뢰만을 가득 담은 눈동자.

그래서 나는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기게 해줄게.”

그렇게 말하며 다시 시선을 늑대에게로 향한 순간이었다.

팍, 하고 내 가슴팍을 밀치는 손이 보였다. 세리아의 손이었다. 느닷없는 짓이었지만, 그 이유를 직감한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세리아가 검을 고쳐 쥔 찰나, 시야가 칠흑으로 물들었다.

새까만 광풍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세리아의 지근거리에 도달해 있었다. 그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속도의 돌진.

세리아는 그 돌진을, 검 한 자루로 막아섰다. 그녀도 더는 마력을 아낄 여유가 없는지, 짙은 청색의 오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색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빛과 포탄이 충돌한다. 세계에 파열음이 일어나며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밀린 쪽은 세리아였다. 그녀의 발이 땅을 헤집으며 주르륵 밀려나갔다. 실드가 없어 충격이 중화되지 못한 탓인지, 세리아는 밀려난 자리에서 피를 울컥 토했다. 검을 땅에 박자마자 그녀의 무릎이 굽혀졌다.

아플 텐데도 그녀는 너무나 잘해 주었다. 나는 검을 허리춤에 매달고, 미리 웅크리고 있던 몸의 탄력을 이용해 마수의 앞으로 솟구쳤다.

지난번과 동일한 구도였다. 마수는 이제 당하지 않겠다는 듯, 고통을 애써 참으며 아가리를 쩍 벌렸다.

빛 한 점 새지 않는 흑색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 다음 내 움직임을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당연히 내가 피하리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쇄도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한 팔을 늑대에게 내밀었다.

콱, 하고 이빨이 살과 근육을 찢어발기며 박혔다. 물컹한 과일을 터트리듯 핏물이 팍, 하고 터져나왔다. 그래서 늑대는 오히려 당황한 눈빛이었다.

설마 팔을 내줄 줄은 몰랐다는 듯이. 내 남은 손이 허리춤을 더듬었다.

미치도록 아팠다. 불에 덴 듯 열기가 신경을 태우며 올라왔다. 뒷골이 저릿할 만큼 짜릿한 고통이었다. 이가 절로 악물어지고, 눈에 핏발이 섰다.

그래도 나는 손도끼를 치켜들었다. 늑대는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단단한 근섬유를 파고든 이빨을 당장 빼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봐야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이야말로 내게 제일 필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콱, 하고 다시 손도끼가 늑대의 코에 틀어박힌다.

벌써 세 번째였다. 도를 넘은 고통에 힘이 너무 들어간 탓인지, 도끼는 지난번보다 더욱 깊이 박혀 들어갔다. 그래서좋았다.

크허헝!

늑대는 견디지 못하고 아가리를 치켜들며 비명을 내질렀다. 만신창이가 된 내 팔이 그제야 풀려났고, 나는 그 틈에 손도끼를 쥔 팔에 힘을 주어 도약했다.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마수의 거대한 머리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다리로 최대한 단단히 그 목을 조였다. 물론 그런다고 통나무 같은 두께의 목을 가진 마수가 숨이 막힐 리는 없었다.

내 목적은 오직 내 몸을 고정시키는 것뿐이었다. 그래야만 효율적으로 꽂아 넣을 수 있었으니까.

검이 칼집에서 뽑혀 나왔다. 그야말로 새하얀 벼락이었다.

나는 그대로 검을 높이 치켜들고,칼날을 뿔과 가죽 사이에 난 틈으로 쑤셔 박았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다. 푹, 하고 내리꽂히는 검의 감촉이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언했다.

잠깐의 침묵,늑대는 도를 넘는 고통에 미친듯이 머리를 흔들며 나를 떨쳐냈다. 나는 굳이 반항하지 않았다. 그대로 떨어져, 땅바닥을 뒹굴었다.

이마에 검이 파고든 상황이었다. 당연히 뇌까지 찔렸을 테지, 치명상이었다. 그럼에도 질긴 생명력의 마수는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오히려 더욱 광분했는지 거친 숨결을 흘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동자에 새파란 광채가 되돌아오는 중이었다. 당장이라도 전격을 뿜을 듯 파직거리는 뿔.

그러나 나는, 웃었다.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벼락의 창이 보였으니까.

또 다시 세상이 백열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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