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1. 첫 번째 편지(69)
* * *
지상에, 신의 심판이 내리꽂힌다.
쿵, 하고 지반이 흔들렸다. 눈과 귀가 멀어버리고, 흙바닥이 엉망진창으로 터져 나갔다. 그 후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내 몸이 땅을 몇 차례 더 뒹굴었다.
삐이이 하고 울리는 이명. 그러나 그 다음으로 귓전을 때리는 건, 지금껏 듣지 못했던 소리였다.
비명이었다. 무어라 형용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짐승이 죽어가면서 내지르는 비명 소리, 마수는 아가리를 한껏 벌린 채 울부짖고 있었다. 그대로 아가리가 찢어져도 상관없다는 듯이.
고통으로 그 새까만 눈동자가 터질 듯 부풀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마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방금 전까지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마법이었다. 아무리 교활한 짐승이라도 까닭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피식, 하고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거, 크으… 전도체야, 임마.”
‘빛의 심판’이 처음으로 내리꽂혔을 때, 나는 보았다. 내가 땅바닥에 떨군 손도끼에 파직거리며 전하가 어리는 모습을.
아무리 전격 내성이 있더라도, 신체 내부까지 전격이 침투하면 무사할 리가 없었다. 심지어 뿔과 가죽 사이로 난 틈에 꽂힌 검은 그대로 뇌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그 검을 타고 뇌에 벼락이 내리꽂히고, 혈관을 타고 온갖 장기를 불태우며 전류의 폭풍이 지나가고 있을 터였다.
전격 내성?
무의미했다. 그것도 가죽이나, 점막에나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핵심 장기에 전격이 곧바로 틀어박히면 아무리 강한 전격 내성을 지니고 있어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백열하는 검이, 전기를 마수의 내부로 주입시키고 있었다.
마수의 울부짖음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파직거리는 전하가 다시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풀썩 그 거체가 쓰러질 때까지.
괴물의 최후였다.
늑대의 눈은 돌아간 지 오래였다. 크흐, 크흐으 하고 늑대는 죽어가는 신음을 흘렸다. 벌려진 아가리 사이로 징그럽도록 긴 혀가 축 늘어졌다.
전격 마법을 쓴 엘시 선배도, 피를 토하며 주저앉아 있던 세리아도, 이제야 막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공터로 복귀하고 있던 셀린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생명이 꺼져 가는 마수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수조차도 믿지 못했던 죽음이었다.
나 또한 아직 어안이 벙벙했다. 부글거리며 내 의식 위로 온갖 의심거리들이 부상했다.
정말로, 이겼나? 저 교활한 괴물이 혹시 나를 속이려고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엘시 선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녀의 블루사파이어를 담은 눈동자가 불신을 가득 담고 있었다.
“……잡았어, 진짜?”
저 멀리에서 내뱉어진 말이었지만, 침묵에 잠긴 공터를 울리기에는 충분했다. 세리아도, 셀린도 그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상황.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나였다. 나는 피가 줄줄 흐르는 팔을 옷을 찢어 대충 동여매고, 비틀거리며 마수에게로 향했다.
죽기 직전, 마수의 새까만 눈동자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한 가지.
이 마수는 이제 움직일 수 없다. 숨은 붙어있지만, 죽음만을 기다리는 신세였다. 나는 이를 이마에 박힌 검을 서서히 뽑아내며 확신했다.
검이 뽑혀나가며 마수의 몸이 움찔거리며 떨렸지만, 그뿐이었다.
끝이다. 나는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조장으로서, 나는 먼저 선언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다.
“……잡았다.”
그 말이 신호였다.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셀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총총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부상이 심할 텐데도 지금만큼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그녀가 들뜬 기색이 만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 진짜?! 잡았어? 우리가, 저 괴물을?”
“말도 안 돼!”
엘시 선배는 비명처럼 그렇게 외쳤다. 그러나 이는 내 말을 진짜로 부정하고 싶다기보다, 너무나 기뻐 되는 대로 생각을 내지른 것에 가까웠다.
“나, 나… 마수 토벌을 몇 번 가서 알아, 저 정도의 마수는 흔치 않다고! 아마 이름이 붙을 수준일걸? 그런데 우리가 잡았다고?!”
“네, 무난하게 우승하겠네요.”
‘우승’, 그 말에 세리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아무리 델핀 선배의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이 숲을 전부 뒤져 봐야 이름을 가질 만한 마수가 또 나타날 리가 없었다. 애초에 이 정도 수준의 마수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마수는 우리의 손에 쓰러졌고, 숲 안에 서식하고 있었으니 우리의 사냥감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우승이었다. 이 커다란 시체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 정도만이 남았을 뿐, 수렵제의 결과는 확실했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셀린과 세리아가 조금 다치긴 했지만, 성과에 비하자면 사소한 부상에 불과했다.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면 나 정도일까.
내 왼팔은 말 그대로 아작이 나 있었다. 붕대로 동여맨 지금도 머리가 뜨거워질 만큼 신경이 격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나마 출혈을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지고 있는 붕대로는 불가능할 듯해서, 옷을 찢어서 칭칭 동여매야 하긴 했지만 말이다.
죽지는 않을 터였다. 다만 성녀님의 경고가 신경 쓰이긴 했다.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고 그랬지, 나는 조금 암울한 눈빛으로 엉망진창이 된 팔을 내려다보았다.
검을 휘두를 때 중요하지 않은 신체 부위는 없지만, 그중에서도 팔은 특히나 더 중요했다. 그런데 그 팔에 후유증이 남게 생겼으니, 내 검사로서의 인생에 장애물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승리가 간절했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팔을 내주었던 거니까.
그러지 않았다면 저 마수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내 쪽이었을 테지, 사실 나뿐만 아니라 조원 모두의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씁쓸하긴 해도 납득하지 못할 부상은 아니었다. 내 팔을 대가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고, 네임드급 마수도 사냥할 수 있었다.
남는 장사였다.
네임드급 마수의 시체는 최소 수천 골드에서부터 수만 골드까지도 호가하는 귀중한 재료였다. 그 판매 대금만 나눠 가지더라도 한동안은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세리아도 기뻐하고 있고.
그녀는 기대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쭈뼛거리며 그녀의 손이 내 옷자락을 쥐었다.
귀여운 모습이었다. 나는 흐, 하고 되다 만 웃음을 터트렸다.
“믿기지 않아?”
“그… 네, 네. 서, 설마 진짜로 우승을 할 줄이야…….”
꿈만 같다는 눈빛이었다. 감히 쳐다볼 생각도 하지 못하던 상을 받은 것처럼 세리아의 눈동자에는 감격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제야 그녀는 증명해낸 것이다.
천출에 불과한 그녀도 델핀 선배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이 고작 오늘 하루에 불과하더라도 그녀의 가슴에는 영원히 남을 기억이었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결론이었다. 내 팔도 뭐, 성녀님한테 어떻게 빌다 보면 되겠지.
그렇게 안일한 생각을 하던 내 머릿속으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편지에서 마수를 쓰러트린 뒤에도 습격이 한 번 더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느낌이었다. 느슨해지던 감각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시각과 청각, 후각이 예민하게 주위를 훑었다.
내 손이 허리춤을 향했다. 죽어가는 마수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던 조원들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제 알 수 있었다. 느껴졌으니까.
누군가 주위에 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지금껏 눈치 채지 못했던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흡입되듯 한 방향으로 빨려 들어가는 마력.
당장 생각나는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내 입에서 다시금 고함이 터져 나왔다.
“피해!”
당장 근처에 있던 세리아를 밀치고, 나도 몸을 던졌다. 일주일간의 지옥훈련 덕인지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반응만큼은 즉각적이었다.
그리고 새파란 냉기가 하늘에 맺혔다. 얼음송곳들이 마구잡이로 땅 위로 쏟아져 내렸다.
땅을 구르면서 나는 얼음송곳들을 어떻게든 피해냈다. 세리아는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침착하게 검을 들어 송곳을 쳐냈고, 셀린은 나처럼 몸을 굴리고 있었다.
엘시 선배는 처음에 몸을 던지더니, 곧 중얼거리면서 실드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급조한 주문이라 방어력은 형편없었다. 그래서 엘시 선배는 몇 겹이나 더 실드 마법을 겹쳐야 했다.
푹, 푹, 지반에 송곳이 박혀드는 소리가 섬뜩했다. 저 무게와 날카로움이라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의 신체 따위는 간단히 관통해 버릴 듯했다.
문제는, 그 송곳들이 단지 지반에 꽂히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얼음송곳을 중심으로 쩌저적, 하고 땅에 얼음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얼음들은 주위에 닿는 모든 것을 제 색으로 물들였다.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곧 발 하나가 얼음에 붙잡히고 말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발이 빠지지 않았다. 이를 보고 셀린이 깜짝 놀라 다가왔다.
“이안 오빠!”
그리고 그녀의 칼집에서 다시 빛이 폭사되었다. 쿵, 하고 망치로 바위롤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내 발을 감싸고 있던 얼음의 족쇄가 깨져 나갔다.
셀린은 그대로 내게 몸을 던져, 나와 함께 흙바닥을 뒹굴었다. 가까스로 얼음송곳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세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얼음송곳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그녀의 검은, 몇 개의 얼음송곳을 깨부수고 나서야 멈췄다.
조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놀란 사람은, 바로 엘시 선배였다.
“이, 이게 뭐야!”
그녀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흘러나왔다. 실드로 열심히 막아내고 있었지만, 결국 송곳에 관통당하는 참사는 피해도 땅 위로 어리는 서리까지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엘시 선배의 발에 얼음의 족쇄가 생겨났다.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뛰쳐나가려던 그 순간.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려왔다. 일직선을 그리는 비수, 투척이었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비수가 하늘을 핑그르르 돌았다. 가까스로 쳐냈지만 담긴 힘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메마른 사내가 내 앞으로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누구였더라,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래, 델핀 선배의…….
내 사고가 이어지기도 전에, 검과 검이 마주쳤다. 불꽃이 튀기며 서로의 몸이 밀려났다. 그러나 내 팔은 하나뿐이었고, 상대가 검을 쥔 손은 두 개였다.
쾌검이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허공에 실선이 그어졌다. 나는 다급히 막아내려 했지만, 팔 한쪽으로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미 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더는 견디지 못한 팔 근육이 검을 느슨하게 쥐었다. 그 순간이 패착이었다.
팍, 하고 갑작스레 사내가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내 검이 휘둘러지는 와중이었는데, 사내의 손이 검을 들고 있는 내 팔을 쥐었다.
그리고 내 몸이 한 바퀴 회전했다. 그 다음 배후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
쿵, 하고 내장이 뒤흔들렸다. 내 입에서 핏물이 튀었다. 검술도 상당했지만, 체술도 만만찮은 상대였다. 아주 작은 틈새에 불과했는데, 그 안을 파고 들어서 내게 유효타를 먹였다.
“이안 오빠! 이, 이 말라깽이가……!”
메마른 사내에게 달려들려던 셀린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손도끼를 든 거한이었다.
이제야 기억이 되돌아왔다.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나는 그 두 사내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나를 쓰러트린 쪽이 페르민이고, 지금 셀린을 상대하는 쪽이 올마르였다. 그렇다면 처음에 마법을 날린 것은 아이시아.
그렇다면 세리아를 담당하는 선배는?
내 눈이 서서히 세리아를 향했다. 당황해서 나와 셀린에게 합류하려던 세리아는,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두려움에 젖은 시선이 공터의 구석을 향했다. 나는 쿨럭이면서, 흐릿한 시야를 억지로 붙들어 그곳으로 향했다.
찬란한 금빛 머리카락, 그리고 핏빛 눈동자.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 세리아. 설마 저만한 마수를 잡아낼 줄이야…….”
도도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그 태도, 나는 페르민 선배에게 제압당한 상황에서도 흐릿한 목소리를 흘렸다.
“델, 핀 유르디나…….”
유르디나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최악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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