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1. 첫 번째 편지(72)
* * *
“올마르를 쓰러트린 그 체술, 성국의 비전 유술이지?”
“글쎄요.”
“그리고 아이시아에게 던진 도끼가 그리던 그 기묘한 궤적… 혹시 소드 서클(sword circle)에서 사사받은 적이 있나?”
“모르겠는데요.”
무성의한 대답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지금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나도 몰랐다. 도대체 이 기술들을 내가 왜 알고 있는 것인지, 단지 내 몸이 어느새 이 기술들을 당연하다는 듯 내 실전 박투의 일부로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뒤죽박죽 얽힌 기억들은 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끈거리며 두통이 찾아왔다. 내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내가 그러든 말든, 델핀 선배의 눈동자에 차오른 의혹의 기색은 더욱 짙어졌다. 그녀가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농담 아니야, 손도끼 공자. 그 기술들은 외인들에게 유출이 금지되어 있어. 심지어 오랜 수련까지 필요하고… 그런데 모르겠다고?”
델핀 선배의 말은 구구절절 정론이었다. 성국의 비전 유술은 물론이고, ‘소드 서클’이라 불리는 검사들의 모임은 그 폐쇄성으로 유명했다. 천검산(??山)이란 곳에서 세속과 연을 끊고 살아가는 그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검만을 수련한다.
다양한 까닭으로 세태에 질려 버린 검사들이 가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온갖 재주들이 개발되고 또 전수된다고 전해지지만, 소드 서클에 입문하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찾아가 본 적조차 없는 곳이었다. 만약 내가 소드 서클에 입문했다면 이미 속세와 연을 끊었을 테고, 이 자리에 서 있는 일도 없었겠지.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는 추론이었다. 나는 흐,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델핀 선배가 착각한 거 아닙니까?”
“……말할 생각이 없단 말이지, 좋아.”
델핀 선배의 검극이 나를 향했다. 찬란한 금빛과 같은 오러가 피어올랐다. 강렬한 열기가 주위의 풍경을 일그러트렸다.
“그렇다면, 조금 더 강압적인 수단을 쓰는 수밖에.”
세리아의 금사검을 일격에 박살냈던 그녀였다. 상대할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최소한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말했을 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기묘할 정도로 마력이 넘치는 상태였다. 그리고 멋대로 내 본능에 명령을 내리는, 어떠한 직감.
나는 숨을 고르며, 델핀 선배를 고요히 응시했다. 델핀 선배 또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교착 상태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동시였다. 나와 델핀 선배의 발이 동시에 땅을 박차고 내달렸다.
텅, 하고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델핀 선배였다. 땅을 박차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가속을 받은 그녀는, 눈치 챈 순간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충돌, 검과 검이 맞부딪힌다. 쾅, 하고 내 검이 휘어지듯 튕겨나갔다. 무시무시한 충격파였다.
마력이 넘쳐도 검을 쥘 수 있는 팔은 하나뿐이었다. 그 탓에 검격의 위력이 너무 약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급히 상반신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 그 위로 스쳐지나가는 뜨거운 열기.
마치 달구어진 쇳물이 흘러넘치는 듯했다. 찰나에 불과한 시간임에도 살이 익어버릴 듯 뜨거웠다. 나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에 검과 검을 맞부딪히면 안 되는 상대였다. 저 수준의 열기라면 내 검은 엿가락처럼 휘어버릴 테고, 화상도 각오해야 했다. 까다로운 적이었다.
나는 튕겨 오르듯 상반신을 일으키며 회수한 검을 내질렀다. 델핀 선배의 검격 또한 어느덧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날붙이의 본목적에 충실한 검로였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기 위한, 날카로운 궤적.
아무리 수렵제라 해도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용서받지 못한다. 그러나 치료가 가능한 수준까지는 얼마든지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수렵제를 만든 정복황제 아이달로스의 성향 때문이었다. 수렵제는 마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을 사냥하는 축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델핀 선배와 나는 숲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만날 것을 염두에 두고 나누기도 했다. 수렵제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일은 드물지만 언제나 있어 왔으니까.
다만 그 확률이 낮을 뿐이었다. 아무리 수백 명이 참가하는 축제라지만 숲은 넓었고,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상대를 습격할 바에야 마수를 사냥하는 쪽이 더 유리했다. 시간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우승이 확정적인 사냥감을 발견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숲의 입구 부근에서는 충돌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곳까지만 주위를 경계하면 들키지 않고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델핀 선배를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괴물 같은 선배가 지금 진심을 내고 있었다. 제압이 아니라 살해가 목적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델핀 선배가 그럴 리는 없었다.
단지 그녀는 자신감이 넘칠 뿐이었다. 언제든지 검을 멈출 수 있다는, 만약의 가능성조차 고려하지 않는 광오함.
그것이 델핀 유르디나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다소 비겁하더라도 살 길을 찾는 편이었다.
캉, 하고 델핀 선배와 내 검이 맞부딪혔다. 다만 이 충돌은 조금 달랐다. 날을 세워 검을 휘두른 델핀 선배와 달리, 나는 검면으로 그 칼날을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밀치듯 델핀 선배와 거리를 벌렸다. 그제야 내 의도를 깨달은 델핀 선배는, 오히려 걸음을 내딛으며 나와 거리를 좁혔다.
몇 차례의 검격이 오고 간다. 그럴 때마다 완력의 부족으로 내 검이 튕겨 나가고,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는 일의 반복이었다. 델핀 선배는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숨을 죽이고 델핀 선배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느껴졌다. 어떠한 굴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애매한 감각.
기억들이 헝클어진다. 낯선 추억의 실이 마구잡이로 풀어헤쳐졌다.
흐릿한 풍경 속에서, 여인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중동(?中?).”
“……뭐?”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묻는 목소리. 그럼에도 여인은 우쭐거리거나 비웃는 기색조차 없었다. 단지 담백한 진실을 이야기하듯 조언할 뿐이었다.
“간단히 말해,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이 하나가 된 상태에요. 소드 서클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죠.”
“그딴 게 어떻게 가능해?”
“왜 불가능하겠어요? 모든 동(?)은 정(?)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여인은 우울한 눈빛이었다. 그 지친 낯빛이 유독 안타까웠다. 묵묵히, 검을 드는 사내.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세요.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사내의 검로를 따라, 다시 한 번 풍경이 찢어진다.
“이를 구분할 수 없게 되어야, 비로소 ‘정중동’의 첫 단계에 입문할 수 있습니다.”
퍼뜩 정신을 차린 것은 그 목소리의 잔향이 가시지 않았을 때였다. 델핀 선배의 맹공은 점점 더 매서워지고 있었다.
캉, 하고 또 다시 칼이 튕겨 나간다. 한계까지 혹사한 팔 근육이 뻐근했다.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억지로 팔에 힘을 주었다.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을 치는 사이, 델핀 선배의 검이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그녀는 먹잇감을 앞둔 맹수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도 한 눈 팔 여유는 있나 보네, 손도끼 공자?”
그렇다면, 델핀 선배가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솟구치듯 쇄도했다.
갑작스러운 가속이었다. 그녀에게는 아직 여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검이 하단으로 떨어졌다.
익숙한 자세였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준비 자세였다.
내 뇌리에 세리아의 모습이 스쳤다. 그녀가 오늘만 두 번이나 보여주었던, 유르디나 가문의 비전 검술.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나는 곧바로 몸을 뒤로 던졌다. 자존심이고 뭐고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내 판단이 옳았다는 증거는 곧 드러났다.
동시에 허공에 그어지는 다섯 개의 금빛 실선.
그야말로 사자의 발톱이 긁고 지나간 듯했다. 일순 세상이 상처에서 금빛 피를 뚝뚝 흘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도무지 실초와 허초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나는 땅바닥을 구르면서, 숨을 헐떡였다.
‘금사검(???)’이었다. 지금 델핀 선배의 검격 하나하나를 받아내기도 버거운 내게는, 저 기술을 받아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접근할 수 없다면, 끝을 낼 수도 없다. 이대로 밀리다가는 기회를 노리고 쇄도한 델핀 선배에게 당할 뿐이었다. 체력의 열위에 있는 쪽은 나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다가섰다간 저 무시무시한 검술에 당하고 말 터였다. 실초와 허초를 구분할 수 없는 다섯 개의 검격이라, 벌써부터 오금이 저렸다.
대응할 수단은 없나, 나는 헐떡이면서도 사력을 다해 기억을 반추했다.
그러고 보면, 세리아의 금사검에 마수는 어떻게 대응했지.
그래, 피했다.
내가 몸을 던졌듯이 아무리 기기묘묘한 검술이라도 그 범위 안에만 들지 않는다면 그만이었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피해낸다면 반격도 가능했다.
하지만 저 검격은 무려 다섯 개가 동시에 그어진다. 결코 피할 수 없는 궤적, 그것이 북부의 맹주 유르디나가 자랑하는 비기 금사검의 진정한 두려움이었다.
포기해야 하나, 라는 나약한 결론이 내려지려는 그 순간.
직감처럼, 어느 기억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테안이 했던 이야기, 레토가 했던 말.
‘공간’과, ‘굴절’. 그리고 ‘위상수학’.
온갖 도형들과 좌표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그러지고, 구부려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라면.
오래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땅을 한 번 더 굴렀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파고드는 금빛의 오러.
치지지직, 하고 미친 듯이 흙이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실망인데, 손도끼 공자? 고작해야 시간만 끌 생각이야?”
싱긋, 미소를 짓는 델핀 선배는 온전히 여유를 되찾은 듯 보였다. 그에 반해 나는 팔 하나를 쓸 수 없고, 지친 상태.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품속에 넣어두었던 단검을 날렸다.
델핀 선배가 내게 준 단검이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단검을 쳐냈다. 핑그르르, 허공을 나는 단검.
그 틈으로 내가 쇄도한다. 빈틈이 보였음에도, 델핀 선배의 압도적인 신체 능력은 그 틈새를 강제로 메꿔버렸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이어지는, 검의 하단 자세.
마수는 제 몸을 휘게 만들어서 이를 피해냈다. 그러나 나는 마수가 아니라 인간에 불과했다. 몸을 휘게 만드는 재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다른 것을 휘게 만드는 수밖에.
낯선 기억 속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움직이지 않는 것과, 움직이는 것.
가속과 가속을 연달아 거치며 시간은 점점 더 느려진다. 그리고 델핀 선배의 검이 비로소 금빛 점을 찍어 올리려는 찰나.
비로소 시간이 정지한다. 잡히지 않을 듯하던 감각이 재생한다. 이제야 보인다.
시각이 공간을 도해하고 있었다. 찰나와 찰나를 쪼개는 그 시간.
여인의 말이 맞았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공간이 선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점으로, 또 다시 무(無)로.
나는 그 선을 잡아뜯듯이 당겼다. 위상수학 문제집의 난해한 좌표 도해를 찢어버리듯이.
기묘한 감각이었다. 다섯 개의 금빛 실선들이, 일그러지고 무너진다. 그 틈을 스치듯 내가 파고들었다.
델핀 선배의 경악을 담은 핏빛 눈동자가 우선 눈에 띄었다. 내 검이 휘둘러진 것은 그때였다.
그러나 델핀 선배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 짧은 순간, 마력을 폭발시키듯 근력을 강화시켜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솟구치듯 올려 베기.
쾅, 하는 폭음과 함께 내 검이 하늘을 날았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근육이 너무나 갑작스러운 충격을 견디지 못한 탓이었다.
내 자세가 무너지고, 승부가 나기 직전.
나는 마지막까지 믿고 있었던, 단기간 내에 전투 복귀가 가능한 동료의 이름을 불렀다.
“세리아!”
델핀 선배의 눈동자가 다급히 뒤를 향했다. 그곳에는 내가 단검을 던져 델핀 선배의 시선을 분산시킨 순간부터, 나를 향해 달려오던 세리아가 어느덧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 그어지는 세 개의 청색 흠집.
느려진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또 다시 세리아가 그은 검로들이 모조리 박살났다. 단 한 번의 횡베기로 인해.
세리아는 일전의 공방과 같이 또 다시 비명과 함께 튕겨나갔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델핀 선배도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내 손이 허리춤을 향했다. 손도끼를 뽑아 올리려던 그 순간, 델핀 선배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때 직감했다.
늦는다. 단검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고, 공간을 굴절시켜 빈틈을 만들고, 세리아가 후방을 노렸는데도 손도끼를 뽑으면 늦었다.
이것이 아카데미 최고학년 중에서도 수석을 차지한 자의 실력이었다. 교수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은 솜씨, 그 명예로운 수식어에 걸맞은 수준이었다.
손도끼를 뽑지 않는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미 뽑은 무장을 쓰는 것이다. 허공을 핑그르르 회전하던 단검이 급작스레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델핀 선배는 연달은 기습에 단검의 존재를 잊어버렸던 듯, 뒷걸음질을 쳤다. 그만큼 나는 앞서 나갔다. 손은 이미 허리춤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늦지 않는 방법은 오직 하나.
내 입이, 떨어지는 단검을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짜내 파고들듯 델핀 선배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단검의 날이, 델핀 선배의 목덜미를 찍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준다면 살을 파고들어갈 것이다. 서로의 숨소리가 섞이고, 체향이 코를 찌르는 거리.
델핀 선배의 몸이 굳었다. 멍하니, 핏빛 눈동자에 헐떡이는 사내의 얼굴이 차올랐다.
내 승리였다. 델핀 선배의 검이 휘둘러지기엔 이미 내가 너무 깊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만 턱에 힘을 주면, 델핀 선배의 목숨은 없는 상황.
나는 물었다.
“파혀흔?(판정은?)”
뭉개진 목소리라 웃긴 광경이 연출되고 말았다. 입에 단검을 물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뚝, 하고 내 이마를 타고 흐르던 땀이 턱 끝에서 떨어졌다
델핀 선배는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여러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불신, 굴욕, 분노, 부정, 그리고 한참이 지난 마지막에야 체념.
그녀의 입에서 달콤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씹어뱉듯이 한 마디.
“……내, 패배야.”
그러면서 델핀 선배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땅에 내동댕이쳤다. 항복의 표시였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설마, 내 첫 패배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사내에게… 믿을 수 없네.”
그러면서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말해봐야 추해질 뿐이라는 듯, 그녀는 팔짱을 끼며 내게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 도도하고 당당한 태도였다.
“유르디나 가문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얌전히 떠날게. 흥,우승 축… 꺄아아악?!”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맺어지기도 전에, 은빛 섬광이 델핀 선배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내 손이 손도끼를 뽑아올린 것이다.
그리고 으드득, 하고 연골이 박살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델핀 선배의 어깨에 틀어박히는 도끼날.
핏물이 터져 나왔다. 델핀 선배는 그야말로 상상도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새어나왔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델핀 선배는 어깨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그리고 의문과 두려움을 반씩 섞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퉤, 하고 나는 그제야 단검을 뱉어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왜 멋대로 끝냅니까? 이제 시작인데.”
그러면서, 나는 델핀 선배의 말버릇을 한 번만 빌리기로 했다.
“옛말로… 약육강식(???)이라 하던가요?”
델핀 선배의 핏빛 눈동자에, 처음으로 보는 감정이 맺혔다.
흔들리는 동공, 그것은 선연한 공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