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1. 첫 번째 편지(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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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가 된 몸은 휴식을 간원하고 있었다.
납처럼 굳은 근육이 무거웠다. 온갖 핏물로 내 옷은 흠뻑 젖어버린 지 오래였다. 내 피거나,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피거나.
지금 내 상의를 장식하고 있는 핏자국 중에는 막 쓰러진 여인의 피도 새겨져 있었다. 델핀 유르디나, 제국의 5대 명문가이자 북부의 맹주인 유르디나 가문의 후계자.
그녀는 주저앉은 채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는 나머지도 다르지 않았다.
싸늘한 정적이 공터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복수해야 한다. 셀린의, 세리아의, 엘시 선배의 몫을 돌려주리라.
델핀 선배가 반항할 수 없도록,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친 그녀에게 내 손도끼가 내던져졌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피가 튀겼다. 시원할 정도로 간단히 틀어박힌 손도끼였다. 어깨를 반쯤 가르고 들어간 도끼날 사이로 울컥 핏물이 배어 나왔다.
“꺄흐윽?! 아아아아아아악!”
또 다시 엄습하는 느닷없는 통증에 델핀 선배가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이것으로 두 어깨는 쓸 수 없다. 델핀 선배가 만약이라도 다시 검을 들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후우, 하고 내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셀린의 몫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투항했잖아!”
발작처럼, 델핀 선배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굴욕과 분노가 뒤섞여 비쳤다. 그리고 공포.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옅게 떨리고 있었다.
“귀족은 저항 의사가 없는 상대를 공격하지 않아! 제국의 귀족이라면 너도… 끄으으윽?!”
그러나 그녀의 저항은 오래 가지 못했다. 땅바닥을 구르고 있던 델핀 선배의 검을 주워, 그녀의 허벅지에 꽂아 넣었기 때문이었다.
살갗을 뚫고 들어간 칼날은 단숨에 뼈로 추정되는 부분까지 파고들었다. 단단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 이상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었다.
델핀 선배는 입술을 짓씹으며 비명을 참아냈지만,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나는 꽂아 넣은 칼을 다시 횡으로 그었다.
살결이 찢어지며 핏물이 철철 넘쳤다. 델핀 선배는 다리를 끌어안고 신음을 흘리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어깨 관절에 이상이 생긴 탓인지 팔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꿈틀거리면서 고귀한 여인의 입에서 애절한 소리가 새어나온다. 델핀 선배의 부릅뜬 눈이 나를 향했다. 그럼에도 내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거친 숨을 고르면서, 내 사냥감을 노려볼 뿐.
“그건, 엘시 선배의 몫.”
한동안 신음하며 땅바닥을 구르던 델핀 선배는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무어라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손도끼 공자, 후환이… 카흑?!”
그녀의 어깨에 박혀 있던 손도끼를 빼내서, 날이 서 있지 않은 쪽으로 델핀 선배의 관자놀이를 후려갈겼다.
퍽, 하고 시원스러운 타격음과 함께 델핀 선배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녀의 몸이 옅게 경련했다. 제대로 들어간 듯했다.
전두엽이 흔들릴 때 보이는 반응이었으니까. 나는 잠시 그 몰골을 지켜보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건 제 몫입니다. 마지막으로…….”
“크흐, 흐… 흐으, 아하하하하!”
머리가 웅웅 울려 구토라도 하고 싶은 기분일 텐데도, 델핀 선배는 그렇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말을 멈추고 델핀 선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핏빛 눈동자가, 강렬한 증오를 품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감탄하는 목소리.
적의를 숨기지 못하면서도, 그녀는 내 자세에 경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위에 서는 자들만의 특권이다.
델핀 선배는 아직도 무너지지 않았다. 도리어 헐떡이면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기까지 했다.
“멋져, 대단해… 훌륭하네, 손도끼 공자. 이게 패배의 맛인가?”
“당신이 해왔던 짓이기도 하죠. 어떻습니까?”
“비린데, 씁쓸하고… 또 더럽게 매워.”
고통스러울 터였다. 무섭기도 할 테고, 내 손에 들린 손도끼를 보는 델핀 선배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잘게 떨리는 어깨가 그녀의 상태를 증언했다. 참기 힘들 만큼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울 것이다.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이란 그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델핀 선배는 최소한 당당함을 가장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진심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그렇게 외치는 델핀 선배의 모습은 평소와 같이 도도하고 자신만만했다.
그녀다웠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여자였다. 승리를 위한 집념과 끈기,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신념.
감탄스러웠고, 또 그만큼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시선이 슬쩍 옆을 향했다. 고민에 빠진 눈빛이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겠어?”
델핀 선배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질였다. 힘겨운 듯 숨결을 내뱉으면서도, 목소리만큼은 더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뜻이겠지.
잠시 측면을 향했던 내 동공이 흘깃 델핀 선배에게로 돌아섰다. 그녀는 여전히 당당한 태도였다. 위협이나 협박 따위가 아니라, 순수한 의문이 담긴 목소리였다.
“귀족은 투항자를 건드리지 않아. 그리고 나는 유르디나 가문의 후계자고, 그런데 지금 네 행동은…….”
“투항하면 그만입니까?”
내 담담한 목소리에 델핀 선배는 다시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녀의 의아하다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내 눈동자는, 목소리만큼이나 가라앉아 있었다.
“목숨 걸고 사냥한 사냥감을 뺏길 뻔하고, 셀린은 도끼에 어깨를 찍히고, 세리아는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급소를 맞고 땅을 굴러야 했잖아요. 엘시 선배는 얼음에 발목을 잡히고, 동상에 걸리지 않았으면 다행일 텐데.”
“그거야 승패를 가르기 위해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
“델핀 선배는 졌잖습니까?”
그렇게 내뱉어진 내 목소리는 싸늘했다. 나는 손도끼의 뒷면으로 툭, 하고 내 손바닥을 두드렸다.
“그렇다면 대가를 치러야죠. 승리하지 못했으니까.”
후후, 하고 델핀 선배는 옅은 웃음을 터트렸다. 핏빛 눈동자에 내 그림자가 가득 차올랐다.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분하겠지, 알고 있어. 이해는 하니까. 하지만 귀족 사회에는 귀족의 법도란 게 있는 거야. 나는 유르디나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고…….”
“그래서요?”
너무나 평탄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델핀 선배는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웃는 표정 그대로 우뚝 멎었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몰이해가 담긴 표정이었다. 신대륙에 처음 들어선 모험가를 본 원주민들이 이러한 표정을 지었으리라.
“아무래도 착각하고 계신 듯한데… 이곳은 귀족 사회가 아니라 숲입니다. 마수들이 돌아다니는 곳이고, 누가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죠. 특히 이름을 받을 수준의 마수가 상대라면 말입니다.”
멍하니, 홍옥을 닮은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시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섰다.
내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목소리도 담백하기 그지없었으며, 내딛는 발걸음에도 감정의 약동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듯, 사형집행인이 걸음을 내딛었다. 델핀 선배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소리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손도끼로 손바닥을 몇 번 툭툭 두드리며 내가 그녀의 지근거리에 섰다. 델핀 선배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제, 제국에는 유능한 수사관들이 있어! 하물며 유르디나 가문의 후계자가 죽은 사건을 분석하지 않을 리가…….”
“마침 주위에 마수도 많은데, 쪼개진 고깃덩어리에 얼마나 군침을 흘릴지 궁금하네요.”
나는 말없이 손도끼를 치켜들었다. 시선을 떨군 델핀 선배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죽음을 앞두면 누구라도 그렇다.
하물며 상상도 하지 않았던 죽음이라면 더더욱.
델핀 선배의 눈동자에 번민이 어렸다. 이대로 당당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설득을 해야 하는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과로할 대로 과로한 내 팔 근육이 이제 마지막이라는 듯 팽팽히 당겨졌다.
나는 단지, 얼른 끝내고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자, 잠깐!”
델핀 선배가 비명처럼 그렇게 외쳤다. 그녀의 눈동자뿐만 아니라 전신이 옅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맹렬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곧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싶은데, 왼팔은 엉망진창이라 움직이지도 않게 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나는 피로한 눈빛으로 델핀 선배를 내려다보았다. 혹시라도 내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델핀 선배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 그만… 내가 잘못했어.”
굴욕을 곱씹으며, 델핀 선배가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위풍당당하던 북부의 금사자가, 무너지며 내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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