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1. 첫 번째 편지(74)
* * *
“그, 그만… 내가 잘못했어.”
굴욕을 곱씹으며, 델핀 선배가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녀로서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겠지.
그럼에도 성에 차지 않아, 나는 여전히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그러한 내 기색을 읽어낸 델핀 선배는 더욱 조급해졌다.
“오, 오늘 일은 내가 실수했어. 그리고, 그 후의 일도 불문에 부칠게…….”
짙은 굴욕감이 배인 목소리였다. 그녀는 입술을 강하게 짓씹었다. 그대로 두다간 핏물이 새어나올 듯했다. 흐릿해지는 말끝에서는 옅은 물기마저 묻어나오고 있었다.
수치를 곱씹는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죽음을 앞둔 공포보다 지금의 상황이 더욱 괴로운 듯했다.
자존심 강한 귀족 영애의 추락이었다.
그 처량한 광경을 지켜보던 내 입에서, 결국 기나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델핀 선배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단지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어깨만이 상처 받은 암사자의 마음을 드러내 주고 있을 뿐이었다.
목숨을 구걸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다. 누군가에겐 자존심이 목숨보다 소중하므로.
그래서 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럼 빨리 끝냅시다. 마지막은, 세리아의 몫입니다.”
내 말에 델핀 선배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금 나를 향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손도끼를 높이 치켜든 내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온몸이 아프다. 마력이 날뛰어서, 혈도란 혈도는 싸그리 과부하 상태였다.
얼른 쉬고 싶었다. 나는 그러한 일념으로 도끼를 치켜든 팔에 힘을 주었다.
팔 근육이 꿈틀거리며, 손도끼를 내리친다.
도끼날이 빛살을 그었다. 그 목적지는 델핀 선배, 오직 하나뿐이었다.
델핀 선배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울부짖었다.
“자, 잠깐. 사, 사과했… 그, 그만! 흐이이이익?!”
델핀 선배가 어울리지 않게도 귀여운 비명을 내지르던 그때.
“……이안 선배.”
툭, 하고 내뱉어진 말이 또 다시 도끼날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내 눈이 절로 그 목소리의 진원지를 향했다.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해 주세요.”
“세리아…….”
하지만 나는 도무지 팔에서 힘을 뺄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집착이었다. 어떠한 강박관념이 내 대뇌를 손가락처럼 파고들어 있었다.
물론 나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박살을 내놓을 생각이었다.
다시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빨을 드러낼 수 없도록.
나는 이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세리아가 안타까워서,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세리아는 말 없이 내게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내 눈에 망설임이 어리기 시작하는데, 느닷없이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 이, 이안 오빠. 미쳤어?!”
핏물이 배어 나오는 어깨를 감싸 쥐고, 종종걸음으로 뛰어오는 그녀.
고통스러울 텐데도 그녀의 황갈색 눈동자에는 그러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운신조자 힘들 텐데, 그녀는 비틀거리면서도 내게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내 시선이 의아함을 담아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를 향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 눈빛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단지 내 곁으로 다급히 다가오자마자, 내 등짝을 강하게 후려쳤을 뿐이었다.
“아야?! 야, 셀린! 내가 그거 아프다고 예전부터…….”
나는 본능적으로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으나, 셀린은 곧바로 내 멱살을 쥘 뿐이었다.
그녀의 황갈빛 눈동자에 옅은 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만큼 놀랐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울먹임이 섞여 들었다.
“귀, 귀, 귀족 살해라니 진짜 미쳤어?! 얼른 그만둬, 사과해! 큰일 난다고!”
그리고.그 셀린의 울먹이는 눈동자를 본 순간.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마치 꿈을 꾸다가 현실로 되돌아오는 감각, 몽롱하고 흐릿하던 세계가 단숨에 뚜렷해지더니 나를 튕겨냈다.
막혀 있던 혈관이 뚫리듯, 달구어진 머리에 냉각수가 돌았다. 지금껏 나를 지배하고 있던 강박관념이 하나둘씩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어라, 라고 멍하니 델핀 선배를 내려다본 순간.
델핀 선배는, 나를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머리를 감싼 채 파르르 떨리는 팔과, 옅은 물기가 어린 눈동자.
도도하고 광오하던 유르디나 가문의 새로운 태양은 보이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는 그녀도 고작 한 명의 소녀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혈관에 잔류하던 모든 적의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온몸에 힘이 탁 풀렸다.
그저, 나는 이를 악물었다. 최후의 힘을 짜내 손도끼를 던졌다.
“꺄아아아악!”
푹, 하고 도끼날이 틀어박히는 소리.
델핀 선배의 바로 옆이었다.
비명을 내지르던 델핀 그녀는, 얼떨떨한 눈으로 지반을 파고든 손도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게로 향하는 그 핏빛 눈동자.
“델핀 선배,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고 그랬죠.”
흐으, 흐으으. 거친 숨을 가다듬고 있는 델핀 선배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상반신을 굽히고,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선배의 목숨, 이제부터 제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조심하세요… 언제든, 수틀리면 가지러 올지도 모르니까.”
델핀 선배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만 떨리는 눈빛과 숨결이 한 가지 사실을 내게 진술하고 있었다.
최소한 내 말이 그녀의 뇌리에 깊이 박혔을 터였다. 남은 것은, 그녀가 귀족의 명예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칼도 주워야 하고, 마수의 목덜미에 박힌 손도끼도 회수해야 했다. 오늘따라 무장을 흘리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지칠 대로 지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눈물이 방울방울 맺힌 셀린의 눈이었다.
“거, 걱정했잖아! 이, 이안 오빠가… 흐윽, 이상해진 줄 알고오…….”
그만큼이나 달라 보였나.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반추해 보아도 어떤 점이 이상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직 정신을 덜 차린 탓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셀린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내가 뭘 이상해져? 조금, 흥분한 것뿐이지.”
그럼에도 셀린은 뚝뚝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세리아도 내심은 불안했던 듯했다.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제 이복언니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가족이라고 조금쯤은 불쌍한 모양이었다. 손도끼를 치켜들 때까지만 해도, 세리아가 나 대신 결정타를 박아 넣어 승리를 안겨 주면 어떨까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굉장히 잔혹한 생각이었다. 내가 왜 그딴 발상을 떠올렸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면서 슬슬 무장들을 회수하려는데, 저 멀리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꺄하하하핫! 잘했어, 잘했어!”
폴짝폴짝 뛰면서 다가오는 자그마한 몸체, 나는 단박에 그 정체를 짐작해 냈다.
엘시 선배였다. 이제야 마법을 쓸 수 있게 됐는지, 그녀는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델핀 선배를 깔보듯 내려다보았다.
“조금만 더하지 그래! 아주 박살을 내야지, 우리만 보면 다시는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으으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되네… 신경에 전류를 흘려서 칼 맞은 생선처럼 파르르 떨게 만들어볼까?”
천사 같은 외모와 달리 엘시 선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그 말이 이어질수록 머리룰 감싸쥔 채 넋이 나간 듯 떨고 있는 델핀 선배는 둘째치고, 세리아의 표정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니면 뇌에 전기 신호를 각인시켜서 우리만 보면 오줌을 지리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흐흐흐, 기대되… 히이이익?! 자, 잘못했어요!”
그새 주워든 손도끼를 보여주자, 엘시 선배는 곧바로 입을 다물고 고깔모자를 꾹 눌러썼다. 그녀의 웅크려진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튼 엘시 선배는 그 잔혹한 성정이 문제였다.
한동안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던 나는, 엘시 선배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내 손이 부드럽게 엘시 선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오줌싸개는 엘시 선배만의 개성이잖아요. 그렇게 간단히 포기하지 마세요.”
“……아, 아니라고!! 그, 그래도 뭐. 머리 쓰다듬는 건 계속 하고.”
반항하던 엘시 선배는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듯, 몽롱한 표정으로 헤, 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마다 점점 더 반응이 좋아지고 있었다.
만약 그녀에게 꼬리가 있다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을 듯했다. 물론 그녀의 자존심을 고려해 굳이 그 감상을 언어로 옮기진 않았다.
그렇게 몇 가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남은 것은 오직 사냥감을 운반하는 일뿐이었다.
**
새하얀 수염이 허리 부근까지 내려오는 노마법사, 델레모어 총장은 외눈안경을 고쳐 썼다.
아카데미 남쪽의 위치한 숲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수렵제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학생회가 기획한 공연도 거의 끝물이었다.
하늘에 먹이 들고 있었다. 곧 해가 내려앉고, 어둠이 찾아오겠지. 그렇다면 올해의 수렵제는 비로소 끝이 난다.
벌써 사냥을 나갔던 조 대부분이 복귀한 뒤였다. 개중에는 놀랄 만한 사냥감을 가져온 조도 존재했다. 고위 마수도 두어 마리, 이변이 없다면 그들 중 하나가 우승을 차지하겠지.
만약 작년이었으면, 이쯤에서 델레모어 총장은 각국의 주요인사들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터였다. 지금 그가 자리한 자리한 귀빈석에는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대륙의 유명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숲이 아무리 넓어도 사냥감은 한정적이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더 강한 사냥감을 사냥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즉, 수렵제를 끝마칠 시간에 가까운 저녁 무렵에는 이미 대부분의 수상자가 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결과가 정해지면 으레 그에 따른 빈 깡통 같은 찬사와 복잡한 정치적 수사를 동원한 조롱이 나누어지기 마련.
그럼에도 지금 귀빈석에는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그 까닭은 하나뿐이었다.
올해의 유력한 우승후보가 아직 복귀하지 않은 탓이었다.
델핀 유르디나, 제국 북부의 맹주인 유르디나 가문의 후계자.
지금껏 유르디나 가문의 후계자가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수렵제에서 우승을 거두지 못한 적은 없었다. 유르디나의 후계자가 4학년이 되면, 으레 그렇듯이 그해 수렵제의 우승은 유르디나 가문의 것이 되곤 했다.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 따라서올해 수렵제의 우승도 델핀 유르디나의 것이 되리란 전망이 지배적이었고, 그만큼이나 각국의 고위 인사들이 걸고 있는 기대도 많았다.
과연 얼마나 멋진 사냥감을 준비해 올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처음으로 유르디나 가문의 실패를 보게 될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기대되는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슬슬 폐회 선언은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델레모어 총장은 초조한 눈빛으로 숲 입구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오지 않았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다. 규정은 공정해야 했고, 겉으로나마 평등을 가장하고 있는 아카데미에서 제국의 유력 가문이라고 특별 취급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노년의 마법사가 하염없이 시계의 초침만을 바라보고 있을 그때였다.
숲의 입구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또 하나의 조가 복귀한 것이다. 그리고 사냥을 나선 조가 복귀하면 으레 그들을 반기는 지인들로 소란이 일어나기 마련이었지만, 지금의 소란은 그 규모가 달랐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삽시간에 군중 사이로 퍼져 나갔다. 학생회가 준비한 공연의 뜨거운 열기마저 단숨에 가라앉을 정도였다. 수백 쌍의 눈동자가 멍하니 숲의 입구를 향했다.
왔구나, 델레모어 총장의 눈동자에 희열이 스쳐지나갔다.
이는 귀빈석에 자리한 이들 모두가 보인 반응이기도 했다. 몇몇은 기대감을 이기지 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정도였다.
이 정도 규모의 소란과 웅성거림, 분명 유력한 우승후보가 복귀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처음에 기대로 반짝이던 그들의 눈빛은, 곧 멍청하게 가라앉고 말았다.
으드득, 하고 땅을 긁는 소리.
어마어마한 무게의 물체를 강제로 땅 위로 질질 끌어당겼을 때 나는 소리였다. 그와 더불어 나무가 흔들리고, 몇몇 자그마한 나무들은 으드득 꺾여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 소리만 들어 보아도거물이었다.
풀숲처럼 나무를 헤치고, 등장한 사냥감의 형체는 모두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너무나 거대한 늑대였다.
살면서 이토록 무시무시한 크기의 늑대를 본 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선 그 크기에 압도당하고, 또 그 이마에 난 뿔에 이목이 집중된다.
파직거리며 마력을 흘리고 있는 그 뿔은, 이 늑대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괴물이다. 고위마수? 아니,그 이상이었다.
이름을 받을 만한 수준의 마수다.
풍부한 인생 경험으로 누구보다 먼저 그 사실을 확신한 델레모어 총장의 솜털이 쭈뼛 곤두섰다. 도대체 어떻게 사냥할 수 있었단 말인가?
우선 남쪽 숲에 네임드급 마수가 존재한다는 점부터가 금시초문이었다. 그만한 마수라면 교수들이 아닌 한 인명피해가 날 것이 분명했다.그런데 그것을 아직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4인조가 사냥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과연 유르디나 가문의 후계자다.
델레모어 총장은 속으로 그렇게 감탄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을 가진 마수를 상대할 인물은 그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처럼 중요한 축제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솜씨에 절로 탄성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유르디나 가문에게는 은혜를 입었다. 델레모어 총장이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때의 일이었다.
“……이안 페르쿠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그의 귓전에 틀어박혔다.
델레모어 총장의 눈이 본능적으로 목소리의 진원지를 쫓았다. 그곳에는 이를 악물고, 마수의 시체를 질질 끌고 온 사내의 그림자가 보였다.
'이안 페르쿠스'라, 델핀 유르디나의 조에 그러한 이름이 있었던가?
델레모어 총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는 귀빈석의 고위직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지, 그들이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숲의 입구에서 동떨어져 있었기에, 그들은 아직 몰랐다.
어째서 구경꾼들이 모조리 싸늘한 침묵에 잠기고 말았는지.
“조장입니다. 복귀 신고하겠습니다.”
찬물을 뿌린 듯, 귀빈석에도 정적이 감돌았다.
그 부릅뜬 눈들이 경악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름을 가진 마수를 사냥한다는 것은, 아무리 아카데미 출신이라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하물며 졸업생도 아니고 재학생이 이를 해내다니, 믿을 수 없는업적이었다.
‘델핀 유르디나’라는 이름값을 고려해 보았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이안 페르쿠스’라니,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 아닌가.
귀빈석에 잔잔히 흐르던 마력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다들다급하게 마력으로 안력을 돋우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 멀리에서,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에 금빛 눈동자.
외모는 귀공자처럼 미려했으나, 그 옷가지는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게 피투성이였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몸 상태.
그럼에도 그는 농이라도 던지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저희보다 더 훌륭한 사냥감을 사냥한 조가 있었나요?”
수렵제의 우승자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