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2. 주께서 함께 하신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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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숲은 한적했다.
외진 고아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곳이었다. 때때로 주변 마을의 약초꾼들이 찾아오긴 했지만, 밤에 숲을 들락날락하는 간 큰 촌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숲에는 마물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루스의 은혜가 지상을 비추는 낮보다, 오메로스의 속삭임이 강해지는 밤에 마수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진다.
다시 말해 마물을 마주칠 가능성이 커진다는 소리기도 했다.
낮에 숲을 탐색하는 것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굳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밤에 숲을 들리는 사람은 드물었다.
만약 그러한 법칙에 예외가 존재한다면, 그 방문목적 또한 예외적이어야 할 터였다.
예를 들어, 나라든가.
내 목표는 채집이나 수렵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말하자면, 나는 마수들을 만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숲에 방문한 차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바로 복수, 내 몸에 새로운 구멍을 뚫어준 우두머리 마수에게 받은 만큼 돌려줄 예정이었다.
우두머리 마수는 고작해야 한 달에 한 번만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숲에서 마주친 적조차 없다는 이야기를, 길포드 씨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따라서 오늘 숲에서 당장 우두머리 마수를 발견할 확률은 낮았다.
하지만 마수화의 특징은 동종의 생물이 마수로 한꺼번에 변이한다는 점이었다.
숲의 마수들 또한 원숭이를 원본으로 하고 있는 이상, 우두머리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나는 그 점에 관해 조사해 보고자 이 숲에 방문했다. 그러다 보면 단서도 잡을 수 있을 테고, 결국 엘시 선배를 습격했던 그 원숭이 마수와 마주칠 수 있을 테니까.
이처럼 내 목적의식은 명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탐색은 꽤 지지부진했다.
내 동행인이 딱히 의욕적이지 못한 탓이었다. 애초에 강제로 끌고 나오다시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비치는 화려한 금빛 머리카락.
오똑한 콧날과 갸름한 턱선, 새하얀 피부가 차례로 시야에 들어왔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북방계 미녀였다. 도도한 눈동자에는 핏빛 동공이 보석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델핀 선배였다. 제국의 5대 귀족 가문 중 북부를 수호하는 유르디나 가문의 후계자이자, 아카데미 검술학부 4학년 수석.
무력으로나, 권력으로나, 재력으로나 모자람이 없는 그녀였다.
사실 본래라면 그녀의 급에 맞는 의뢰가 아니긴 했다. 고아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숲에서 원숭이 마수나 쫓는 임무라니.
그래서인지 델핀 선배는 유독 의욕이 없어 보였다. 지금 나와 함께 숲을 거니는 와중에도, 주위를 경계하는 대신 내 눈치만 흘깃흘깃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묘하게 긴장한 기색이었다.
결국 나는 한숨과 함께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델핀 선배의 몸이 흠칫 떨렸다.
내 몸이 뒤를 향하자, 그녀의 진홍빛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기 시작했다. 파르르 떨리던 시선이 곧장 내리깔렸다.
더듬거리면서, 델핀 선배의 청아한 목소리가 숲의 정적을 깨트렸다.
“왜, 왜, 왜… 다, 단 둘이, 보자 한 건데… 요?”
어울리지도 않은 존댓말이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델핀 선배를 응시했다. 그것만으로도 델핀 선배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아직도 공포심이 남아있는 듯했다. 얼마나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당하던 델핀 선배가 이러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못해도 어깨에 도끼질 두어 번은 더 당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적당한 공포심은 델핀 선배 같은 막무가내를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곤란했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마수 잡으러요.”
그러나 내가 내놓은 명쾌한 해답에도, 델핀 선배는 여전히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다.
그 두려움에 젖은 핏빛 시선이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잡으러 왔다는 그 마수가 설마 나는 아니겠지?’
터무니없는 누명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내저어야 했다.
“……진짜에요. 아니, 그럼 뭐 제가 손도끼라도 들고 싸우자 할 줄 알았습니까? 무슨 ‘손도끼 살인마’도 아니고.”
히끅, 하고 델핀 선배의 안색이 단번에 탈색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새하얀 피부였는데, 핏기가 가시니 더욱 창백했다. 동공이 흔들리는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듯했다. 델핀 선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조금 억울한 심정이었다. 지난번에 델핀 선배의 어깨를 찍은 것은 그렇다 치자, 그때는 습격을 당한 뒤였으니까.
그 이후의 일은 나도 아는 바가 없었다. 미래의 ‘나’라는 인간이 델핀 선배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든 간에, 수습은 왜 내가 해야 한단 말인가.
한탄이 절로 흘러나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유일한 위안이라고는 그 덕에 델핀 선배라는 강력한 전력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다시 몸을 돌리려 했다.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는 덤이었다. 어차피 더 이야기해 봐야, 델핀 선배의 공포심만 자극할 것 같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적의도 없는, 자연스러운 행동.
그럼에도 델핀 선배가 주저앉으며 비명을 내지른 것은 그때였다.
“꺄아아아악! 자, 잘못했어요! 제, 제발 다진 고기만큼은……!”
고작해야 등을 돌리려 했을 뿐인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델핀 선배는 팔로 제 머리를 당기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내게 도끼질이라도 당하리라 생각했다는 듯.
그럼에도 한동안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델핀 선배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나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뭐하십니까?”
황당한 감정을 담고 내뱉어진 내 질문에, 오히려 델핀 선배의 눈빛이 멍청해졌다.
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픽,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혹시 마수라도 유인하려고 그래요?”
“……으, 응! 그, 그래. 그런 거지, 응.”
차마 후배에게 겁을 먹었다고는 할 수 없는지, 델핀 선배는 그렇게 어색한 변명을 주워섬기며 몸을 일으켰다.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그러면서도 델핀 선배는 자꾸만 내 눈치를 흘깃흘깃 살폈다.
아직도 내 순수한 의도가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살다 보면 나처럼 폭력을 싫어하는 귀족도 없는데, 델핀 선배도 참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다.
저벅거리며 내 걸음걸이가 다시 시작됐다. 잠시 머뭇거리던 델핀 선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뒤를 졸졸 따랐다.
“숲에서 원숭이 마수를 마주친 곳이 어디쯤이었어요?”
“이, 이보다 조금 더 가면 되긴 하는데…….”
델핀 선배는 그렇게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불안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마수만 잡으러 온 거야?”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왜 하필 단 둘이서?”
“셀린이나 세리아는 몸조리부터 하라고 난리일 테고, 레토는 전투에 도움이 안 되잖아요. 성녀님도 또 싸우러 나간다고 바가지 긁을 게 뻔하고… 남는 게 델핀 선배밖에 더 있습니까?”
내 막힘없는 대답에 델핀 선배는 그제야 내 말을 믿는 듯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한 줌의 불신을 버리지 못하는 점이, 참 델핀 선배다웠다.
“……엘시는?”
“델핀 선배가 싫어할 테니까.”
침묵, 델핀 선배는 반론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달빛이 쏟아지는 숲은 고요했다. 풀벌레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이처럼 기묘한 침묵이 버거웠지만, 어느 날부터 알게 되었다.
마수가 다가오고 있다는 조짐이었다. 내 손이 허리춤 근방을 향했다.
델핀 선배는 아직 마음이 가라앉지 못한 듯했다. 복잡한 감정이 그녀의 핏빛 눈동자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가, 이내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렇게 엘시 선배를 싫어해요? 딱히 둘이 다툴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엘시 선배의 이야기가 나오자 델핀 선배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어느덧 그녀는 평소의 도도함과 오만함을 되찾은 뒤였다.
“……엘시 라이넬라? 하, 그 성격 나쁜 꼬맹이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성격 나쁜 건 델핀 선배도 똑같은데, 나는 그러한 말을 꺼내려다가 삼켰다.
“애초에 내게 대드는 사람을 좋아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나는 그렇게 승부욕이 강한 인간이 질색이거든. 어떻게든 나를 이겨 보려고…….”
잘 됐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가던 델핀 선배는, 이내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핏빛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검 손잡이를 쥐었고, 델핀 선배 또한 마찬가지였다.
“몇 마리입니까?”
“……열세 마리.”
조짐 자체는 내가 먼저 느꼈지만, 상세한 기척을 파악하는 능력은 아무래도 델핀 선배가 더 뛰어났다.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하니 과연 델핀 선배의 말이 맞았다.
하나둘씩, 소리 없는 나무타기를 시작하는 그림자들.
어느덧 주위의 나뭇가지 위에는 희번득 빛나는 청색의 동공이 드러나고 있었다.
기척이 희미했다.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눈치 채지도 못했을 터였다. 지난 우두머리 원숭이 마수가 보여주었던 특징이기도 했다.
숲의 마수들과 우두머리 마수가 관련을 맺고 있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델핀 선배에게 물었다.
“혹시 지난번에 원숭이 마수가 나타난 곳도 이쯤이었습니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아직 원숭이들은 단지 나와 델핀 선배를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본래 마수들이라면 인간을 보는 순간 그 포악성을 숨길 수 없는데, 드문 일이었다.
잠시 고민에 잠겨 있던 나는, 혹시나 싶어 발걸음을 한 번 더 옮겼다.
그러자마자 빛살처럼 쏘아지는 두 개의 신형.
내 주위에 숨어들어 있던 원숭이 마수였다. 날카로운 손톱이 달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그야말로 찰나, 반응속도의 한계를 실험하듯 원숭이 마수들은 제 근육의 탄성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몰랐다. 속도만큼은 어지간한 고위 마수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랐다.
‘용의 정혈’을 섭취한 뒤, 내 마력량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늘어난 뒤였다.
벼락같이 검이 허공을 그었다.
은빛 실선은 곧바로 전방에서 달려들던 원숭이 마수를 양단했다. 벼락과 빛살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정지한 듯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아직 내 측면에서 날아드는 원숭이 마수가 남아있었다. 나는 곧바로 검로를 이어가려 했지만, 상상 이상의 저항감이 느껴져 내 눈이 흘깃 전방을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허리째로 양단당한 원숭이 마수가 징그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입에서 핏물을 토할 듯하면서도, 제 몸을 잘라낸 칼날을 두 팔로 꼭 쥐고 있는 그 모습.
기묘했다. 마수를 포함해서, 통상적인 생명체가 보일 반응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게 생각에 잠길 틈은 없었다.
측면의 원숭이 마수는 어느새 지척이었다. 내 허점을 찔렀다고 생각했는지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빠각, 하고 골통이 깨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핏물과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원숭이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러나 제 뇌를 짓뭉갠 물건의 정체조차 깨닫지 못한 채, 마수는 그대로 절명했다.
손도끼였다. 검이 붙잡힌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버리고, 손도끼를 들었다.
두개골을 으깨는 호쾌한 타격감에 숨이 절로 달아올랐다. 내 입가가 절로 비틀어졌다.
“……앞으로 열하나.”
그 말을 신호로 열한 개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그들이 노리는 대상은 오직 하나, 제 동료 둘의 목숨을 단숨에 빼앗아 간 범인.
바로 나였다.
아무리 나라도 열한 마리는 조금 버거웠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내게는 지금 든든한 지원군이 하나 버티고 있었으니까.
기대감을 품은 내 눈길이 델핀 선배를 향했고,
“꺄아아아악! 그, 그만! 자, 잘못했어요… 사, 살려주세요… 거, 검만큼은 놓치기 싫어요… 다, 다시는 반항 안 할 테니까! 꿇으라는 대로 꿇고, 발에 입 맟추라는 대로 맞출 테니까……!”
곧 얼떨떨해졌다.
델핀 선배는 땅바닥에 엎드린 채, 덜덜 떨면서 아무 소리나 지껄이는 중이었다.
누가 봐도 전투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태였다. 그래서 내 입에서는 무심코 한 마디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이런 씨발.”
나는 다급히 몸을 던져, 떨어트렸던 내 검을 손에 쥐었다. 날카로운 손톱들이 일으킨 서늘한 파공성의 틈새였다.
그리고 내 살갗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는 예기(??)들.
전투가 끝나면 반드시 델핀 선배에게 벌을 주리라, 나는 이를 으득으득 갈며 그렇게 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 싸움은 쉽게 가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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