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2. 주께서 함께 하신다(29)
* * *
“……그럼, 돌아가기 전에 벌 좀 받을까요?”
내가 내뱉은 말이었지만, 꽤 살벌한 내용이었다. 사실 입에 담으면서도 피식피식 헛웃음이 새어나오려고 했다.
후배에다가 시골 자작가의 차남에 불과한 내가, 델핀 선배를 혼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일종의 농담이라 받아들여지길 원했지만, 델핀 선배의 반응은 내 예상을 지극히 뛰어넘어 있었다.
우선 홍옥을 닮은 그녀의 눈동자에 절망이 스쳤다.
그리고 이내 선명한 공포가 아로새겨지더니, 이내 체념을 닮은 감정이 떠올랐다.
델핀 선배는 울먹거리면서,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너무 즉각적인 반응에 내가 더욱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델핀 선배의 눈동자에 물기가 방울지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땅에 머리를 박았다.
쿵, 하는 소리가 무척이나 아파 보였다. 그럼에도 델핀 선배는 그 자세를 유지한 채로, 흐느끼는 목소리를 흘렸다.
“거, 건방 떨어저 죄송합니다… 부, 부디 자비를… 흐윽, 베풀어… 흐으윽, 주세요…….”
나로서는 다소 느닷없다고까지 느껴지는 심경 변화였다.
물론 델핀 선배가 손도끼를 들면 나를 무서워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손도끼를 들고 있지도 않았고, ‘벌’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어도 나름 따뜻한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마수 사냥을 끝마치고 무사 귀환을 축하하던 무렵이었다. 아직 반항적인 기색이 남아있었던 델핀 선배가 이러는 까닭이 짐작 가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면 주눅이 들긴 했어도, 여전히 자존심을 세우고 있던 그녀였는데.
내가 고민에 빠지자 델핀 선배는 더욱 애처롭게 몸을 떨었다. 그녀의 흔들리는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제, 제발… 흑,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로, 용서를… 흐윽, 흑… 부, 부탁드립니다…….”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고 있기에 팔이나 다리를 하나 ‘정도’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아무래도 델핀 선배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에는 심각한 괴리가 있는 듯했다.
난감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일단 델핀 선배를 일으키려 했다.
그때 불현듯 어떤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러고 보니, 델핀 선배는 숲에 들어온 직후에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내 목적은 오직 마수 사냥뿐이었다.
그럼에도 델핀 선배는 끝까지 내게 그녀를 폭행하려 한다는 혐의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나를 향한 델핀 선배의 불신은 확고했다. 하물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오해였다고 해봐야 들어먹을 리가 없었다.
곤란한 점은 또 있었다. 내가 손도끼를 들 때마다 델핀 선배가 전투 불능이 된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우리 조의 핵심 전력 중 하나였으니까.
내 사고회로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맹렬히 회전하는 사고의 전하가 팍팍 튀기며 발상을 강요했다
이내 나는 하나의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래, 진짜로 벌을 주자.
지금으로서는 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부러 엄숙한 목소리를 흉내 냈다.
“……델핀 유르디나, 네 잘못은 알고 있겠지?”
“부, 부디… 흐윽, 용서를…….”
델핀 선배는 내 말을 듣자마자 더욱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스스로의 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태도였다.
도대체 그 죄가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였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를 물어보는 것은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대신 나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더욱 가다듬었다.
나는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아, 알고… 흐윽, 있습니다아…….”
델핀 선배는 순순히 내 말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말해 나로서는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델핀 선배의 세계에서는 그녀가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모양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델핀 선배의 세계가 너무 확고했다. 미래에서 온 ‘나’에게 어떤 꼴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일이 악몽으로 자리잡아 델핀 선배의 인지를 왜곡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세계와 충돌하는 사실을 계속 거부하고 의심하려 들었다.
델핀 선배를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말해도, 이는 그녀의 세계에 존재하는 ‘나’에 대한 인식과 충돌하는 사실이므로 믿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델핀 선배가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그녀는 믿지 않으리라.
무슨 짓을 해도 예외는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내 손이 다시금 손도끼를 쥐었다. 반짝이는 예기가 허공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 기척을 느끼자마자 델핀 선배의 호흡이 가빠졌다.
흐으으, 흐으. 내뱉어지는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지고 있었다. 델핀 선배는 살짝 고개를 들어 내 모습을 엿보려다가, 달빛을 반사하는 도끼날을 보자마자 다시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비명이라도 내지르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만큼이나 얼핏 보였던 델핀 선배의 눈동자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몸에 이는 떨림이 더욱 강렬해졌다. 덜덜 떨리는 다리가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듯 움찔거리며 떨렸다. 그럼에도 델핀 선배는 그 욕구를 굳이 참아내는 듯했다.
그래야만 그나마 덜한 벌을 받을 수 있다는 듯이.
델핀 선배가 보는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지, 일순 내 눈빛이 떨떠름해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시작한 김에 끝을 보기로 했다.
“……단번에 끝내겠습니다.”
전조조차 없었다.
그 선언과 함께 운동량이 탄생했다.
곧바로 파공성과 함께 내리찍히는 도끼.
망설임조차 없었다. 델핀 선배는 결국 마지막 순간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제, 제발… 꺄아아아아악! 요, 용서해 주, 세… 요……?”
그러나 아무리 지나도 고통이 찾아오지 않자, 델핀 선배는 어리둥절해서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들려졌다. 그 바로 옆에는, 내려꽂히기 직전의 도끼가 자리하고 있었다.
델핀 선배의 핏빛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흐으, 흐으으…….”
가빠지는 숨결, 나는 그대로 도끼날을 틀어 델핀 선배의 뺨을 향했다.
그리고 델핀 선배가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
스윽, 하고.
도끼의 날이 델핀 선배의 뺨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아슬아슬한 수준의 상처만을 남기도록.
진홍빛 눈동자가 다시 멍청하게 뜨였다. 그리고 제 뺨을 툭 건드리고 지나간 도끼날을 그 시야에 가득 담았다.
델핀 선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뺨에 난 상처에서 살짝 피가 배어 나왔다. 가까스로 피가 날 만큼 얕은 상처였다. 델핀 선배쯤 되는 실력자라면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아물고 말 터였다.
물론 흉터가 남을 일도 없었다.
한동안 숲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든 말든, 나는 손도끼를 다시 허리춤에 패용했다. 호흡조차 잊은 채 우두커니 있던 델핀 선배는, 그제야 서서히 그 눈을 내게로 향했다.
나는 피식, 하고 웃으면서 상반신을 굽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게 벌이에요. 아프죠?”
“그, 아… 으…….”
델핀 선배는 무어라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소리가 언어로 완성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얼떨떨한 눈빛으로 내 손을 맞잡고,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켰을 뿐.
나는 그녀의 요망을 들어주었다.
델핀 선배의 세계에서 그녀가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에 맞춰주면 그만이었다. 대신 그 벌은 받아봐야 무의미한 수준으로, 무척 낮은 강도로.
그러면 점차 델핀 선배에게 ‘벌’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될 테고, 나에 대한 공포심도 조금쯤은 누그러질 터였다.
당장 효과가 있을지는 몰랐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내 손도끼만 봐도 전투불능에 빠지는 불상사쯤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델핀 선배의 세계와 충돌하지도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인식을 덮어쓰는 방식이었다.
무식한 검술학부가 생각해낸 것치고는 꽤 멋진 해결책이라고, 나는 그렇게 자화자찬했다. 그리고 델핀 선배에게 말했다.
“참, 그러고 보니 힐링 포션 있죠? 그것 좀 주세요.”
“아, 응? 어, 어…….”
여전히 멍한 소리를 내며, 델핀 선배는 품속에서 힐링 포션을 꺼냈다. 나는 그 포션을 망설임 없이 등짝에 콸콸 부었다.
그리고 남은 포션은 팔에 부어버리고, 부글부글 끓으며 재생하는 살점을 바라보았다.
또 성녀에게 갔다간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차라리 힐링 포션으로 치료하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델핀 선배의 목숨 값치고는 싼 편이었다. 나는 그러한 생각과 함께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럼 천천히 오세요, 델핀 선배… 참, 그리고 앞으로 엘시 선배와 대놓고 다투진 마시고요.”
내 손이 흔들어졌고, 델핀 선배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오늘은 한 건 했으니까.
일단 레토를 찾아가 봐야 할 듯 싶었다.
**
델핀은 이안이 떠난 뒤에도 한참이나 아무 말이 없었다.
단지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이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어째서일까. 델핀은 그러한 의문을 품었다.
팔다리를 다져놓을 수도 있었다. 그것이 최저선이었고, 이안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 이상의 무엇이든 가능했다.
델핀은 패배자였고, 이안은 승자였다. 그녀는 그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몇 번이나 그 앞에서 애원한 탓인지 이제는 수치심마저 흐릿했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이안이 보여주었던 흐릿한 미소.
뺨에 그어진 자그마한 실선.
델핀은 제 손으로 뺨을 더듬거리다가, 이내 몽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비로우셔라.”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델핀은 그렇게 말하고도 한참 동안이나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화들짝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
이내 스스로가 어떤 말을 내뱉었는지 깨달은 델핀은, 그 자리에서 펄쩍 뛰고 말았다.
“아니, 아니, 아니… 미쳤어! 저 살인마가 무슨 자비…….”
하지만 그녀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마구잡이로 이안의 욕을 주워섬기려던 그녀는, 곧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두려움에 젖은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혹시라도 아직도 이안이 남아서 그녀를 감시하고 있을까 싶었다.
이 또한 이안의 시험일지도 몰랐다. 델핀은 간담이 서늘해져서, 우물쭈물 수습을 시도했다.
“……사, 살인마는 아니지. 응, 자비로우시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안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델핀은, 이안이 남긴 마지막 말에 대해 고민했다.
엘시와는 앞으로 ‘대놓고’ 다투지 말라.
그렇다면, 어떻게 다투란 말인가?
문득 고아원에 처음 도착했던 날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이안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우쭐한 표정을 짓고 그녀를 비웃던 엘시의 모습이.
고위 귀족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자존심은 다시 박살나 버린 직후였고, 지금까지 살며 단 한 번도 승부를 피해온 적이 없는 그녀였다.
지난 싸움에서 엘시가 우쭐거린 것도, 결국 이안이라는 절대적 강자의 총애를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델핀의 사고는 곧 그러한 지점을 거쳐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뭐, 응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안이 델핀의 편이 된다면, 엘시 그 계집애도 더는 델핀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을 터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델핀은 애써 어떠한 감정에서 눈을 돌렸다.
기분 좋았다. 살짝 뺨을 긁힌 순간.
모든 불안과 죄악감이 씻겨내려가는 것만 같아서, 무척이나 좋았는데.
델핀은 일단 이를 경쟁심이라 치부하기로 했다.
흐응,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을 거니는 델핀의 핏빛 눈동자가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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