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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109화 (109/649)

〈 109화 〉 2. 주께서 함께 하신다(30)

* * *

고아원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공터, 그곳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를 비롯한 고아원의 어른들이었다. 길포드 씨를 위시로 해서, 성녀와 유렌, 델핀 선배와 엘시 선배, 그리고 나의 절친한 친구 세리아, 셀린, 레토까지.

나까지 더하면 무려 아홉 명에 이르는 일행이었다. 그것도 길포드 씨를 제외하면 전원이 실력을 검증 받은 아카데미의 재학생이었다.

심지어 길포드 씨조차 한때 이름을 날렸던 용병 출신이었으니, 고작해야 고아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인원이라기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혹여 이 자리에 아카데미의 대외총괄부 직원이 있었다면 기겁을 할지도 몰랐다. 쓸데없이 인력을 낭비한다고 말이다.

대륙에는 사건사고가 많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 또한 당연히 많았다. 고아원 하나에 이만한 인원을 투입하기에는, 속이 쓰리겠지.

그럼에도 나는 일말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편지에 나온 내용대로라면, 이만한 인원이 모이더라도 목숨을 걸어야 할 사건이 발생할지도 몰랐다. 정체불명의 우두머리 마수부터, 알 수 없는 원숭이 마수들의 이상행동까지.

수수께끼가 한둘이 아니었다. 내 심정이 마냥 편안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나와 비슷한 불안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다들 조금쯤은 들뜬 표정이었다. 셀린은 내게 다가오더니,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 얼굴에는 생글거리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안 오빠, 진짜 오빠가 다 잡은 거야? 이 많은 마수를?”

“……그렇다니까.”

벌써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를 말이었다. 감탄 섞인 셀린의 시선이 다시금 어느 지점을 향했고, 내 시야 또한 자연스레 그 뒤를 따라붙었다.

그곳에는 짐마차가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그 뒤에 산더미처럼 쌓인 마수의 시체를 얹은 채로.

원숭이 마수들이었다. 간밤에 내가 사냥한 열세 마리의 마수들을 오전 중에 회수한 차였다.

시체를 회수하는 도중에 습격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그러한 불상사는 없었다. 덕분에 마수의 시체를 수습하는 일은 꽤 순탄했다.

남은 것은 도시로 나가 마수의 시체를 판매하는 것뿐이었다. 못해도 수백 골드는 받을 수 있을 테니, 그 일부만 고아원 운영비로 쓰더라도 한동안은 버틸 수 있으리라.

이제야 그 희멀건 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모두의 표정이 밝았다.

사실 델핀 선배나 엘시 선배의 재력을 동원하면 진작 해결될 문제였지만, 안타깝게도 의뢰 도중 사비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랬다간 용병 수십을 고용해서 의뢰를 마쳐도 점수를 부여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한 편법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조항이었다.

다만 의뢰 도중에 스스로 벌어들인 금액에 한정해서는 사용이 가능했다. 다시 말해 내가 어젯밤 사냥한 열세 마리의 마수를 판매한 대금은, 얼마든지 써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식생활은 삶의 질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두뇌 활동이든 신체 활동이든 활발한 20대의 청춘남녀라면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셀린은 벌써부터 무얼 먹을지를 두고 레토와 토론 중이었다. 셀린은 레토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력히 설파했다.

“그럼 이 돈으로 마수 고기를 사오자!”

“아니, 너 진짜 미각 괜찮냐? 뭔 씹… 그딴 걸 쳐먹어?”

레토의 어이가 없다는 반응에도 셀린은 꾸준했다. ‘마수 고기’는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별미로, 독특한 풍미와 식감으로 일부 미식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물론 그 이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이기도 했다. 마수의 고기라니, 이름만 들어도 일단 끔찍하지 않은가.

“흥, 레토 오빠가 뭘 알아? 마수 고기는 요즘 귀족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고!”

“사교계에서 괴식 취향을 씹어대는 거야 흔한 일이지.”

“아, 아니라고! 일단 한 번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니깐?”

그러나 셀린의 강변에서 레토는 여전히 시큰둥한 기색이었다.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얼굴,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어차피 내 돈인데 너희가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야.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셀린과 레토는 내 또 다른 가족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셀린은 결국 울상을 지으며 내 소매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이, 이안 오빠도 뭐라고 해봐! 같은 마수 고기단으로서!”

“난 그런 수상쩍은 단체에 가입한 적이 없는데.”

결국 내 무덤덤한 반응에 셀린은 격추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풀이 죽었는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수 고기는 비쌌다. 당장 저 마수 시체들이 얼마에 팔리는지만 생각해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수백 골드를 다 쓰더라도 구매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고아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입은 수백에 달했다. 최대한 싸고 좋은 식재료만 사모아도 힘에 벅찰 판이었다.

애초에 셀린도 진지하게 한 소리는 아닐 터였다.

단지 그만큼 내 성과에 들떴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겠지, 때때로 인간관계에서 어떤 말은 그 의도만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의외로 풀 죽은 셀린을 위로해 준 사람은 길포드 씨였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덥수룩한 흰 수염을 쓰다듬었다.

“마수 고기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군요. 저도 한때는 마수 고기를 먹은 적이 있었죠.”

“……엥? 유행한 지는 얼마 안 되지 않았어요?”

“용병이니까요. 굶어죽기 싫으면, 무엇이든 먹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말에 셀린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의외로 진지한 이야기였다. 셀린은 다소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먹었을 고기인데, 누구는 먹고 싶다고 떼를 쓰고 있으니 철없다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 말이 진담이었든, 농담이었든 말이다.

그러나 길포드 씨는 조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마수 고기가 의외로 맛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배고플 때 먹어서 그랬나 싶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마수 고기 레스토랑을 열 걸 그랬나요?”

“……그랬다간 이곳의 아이들이 너무 슬퍼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렇네요. 하하, 어릴 때부터 제 꿈은 고아원 원장이었으니까요.”

쓴웃음을 지으며 레토가 내뱉은 말에, 길포드 씨는 그에 호응하듯 맞장구를 쳐주었다.

몇 번을 보아도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고아들을 그토록 진심으로 아끼다니, 성녀에게 듣기로는 길포드 씨도 고아원 출신이라고 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고아 신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고아들에게 애착이 가는지도 몰랐다.

아이들도 길포드 씨를 잘 따르고 있고, 여러모로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러한 감상과 함께 다시 시선을 돌렸다. 짐마차를 향해서였다.

그곳에서는 유렌이 마수의 시체를 살피는 중이었다. 대략적으로 얼마 정도에 처분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의외로 유렌은 그러한 문제에 빠삭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온갖 잡무를 처리해 와서 그렇다나.

하기야 그 성격 나쁜 여자를 보필하려면 고생도 많을 수밖에 없을 테지, 유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동자에 옅은 연민이 맺혔다.

한참을 유심히 마수를 살피던 유렌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좋아! 못해도 삼백 골드는 나오겠는데? 대단해, 이안. 이 수준이라면 성기사단이 나서야 할 정도야.”

휘유, 하고 휘파람 소리가 새어나왔다. 길포드 씨와 한담을 나누고 있던 레토의 입에서부터였다. 아무래도 원숭이 마수의 등급이 예상보다 높았던 듯했다.

지난번 고위 마수를 포함해 늑대 마수 10마리를 토벌한 뒤 받은 돈이 70골드였다.

그런데 어제 사냥한 원숭이 마수 열세 마리는 300골드, 얼추 계산해 보아도 그 네 배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손톱과 순발력을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또 다시 툭, 하고 걸리는 사고의 돌부리가 하나 남아있었다.

마수는 강할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서는 경향이 있었다.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원숭이 마수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다른 마수들에 비해 소극적인 편에 속했다.

원숭이 마수들은 오직 특정 영역을 침범한 사람들만을 습격할 뿐이었다. 그보다 넓은 영역을 확보할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그 의문점이, 못내 내 뇌리에 남았다.

그러든 말든 유렌은 벌써 운전석에 앉은 뒤였다. 그가 고삐를 쥐기 시작했다. 마수의 시체 처분을 맡은 그는 홀로 도시로 떠날 예정이었다.

최소 하루나 이틀은 도시에 머물러야 할 터였다. 마수의 시체를 판매하고, 또 그 대금으로 생필품을 사서 돌아오기로 했으니까.

사실 화술이나 협상에 능통한 사람은 유렌 말고도 한 명 더 있긴 했다.

바로 레토였는데, 그는 다음과 같은 사유로 유렌과의 동행을 거절했다.

“내가 왜 사내놈이랑 단 둘이 떠나야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라서 나는 곧바로 납득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레토 혼자 보내기엔 호위가 없으니, 유렌이 홀로 떠나는 것이 최선이었다.

유렌은 마지막으로 성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유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기 위해 다가온 나에게, 은근슬쩍 말했다.

“……누님을 잘 부탁해, 이안.”

내가 유렌에게 돌려줄 반응은 헛웃음밖에 없었다.

황당한 말이었다. 저 성격 나쁜 여자를 내가 돌봐줘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성녀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흥, 도리어 나한테 저 인간을 잘 부탁… 이 아니라, 이안 형제님을 비롯한 형제자매님이 계시니 너무 걱정 마세요, 유렌. 천신께서 우리를 굽어 살피실 겁니다. 임마누엘.”

어찌나 어이가 없었던지 잠시나마 가식마저 벗어던졌을 뿐이었다. 물론 누군가 눈치 채기 전에 다급히 수습하긴 했지만 말이다.

내 떨떠름한 눈동자가 성녀를 향했다. 그러자 성녀도 마찬가지로 앙칼진 눈빛을 내게 되돌려 주었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였다. 예외가 있다면, 그 죄 많은 육체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 눈동자가 무심코 성녀의 흉부 굴곡을 향했다.

“……어딜 봐요?”

“신성력 주머니요.”

나와 성녀 사이에서 그러한 속삭임이 오고갔다. 그리고 곧이어 꾸욱, 하고 성녀가 내 옆구리 살을 꼬집는 느낌.

나는 그대로 비명을 내지를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잠시 부들부들 떨며 고통을 인내하던 내 입에서, 고통에 젖은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소리 지를 뻔했잖아요……!”

“누, 누가 그딴 말 하래요? 서, 성희롱이야 진짜!”

그렇게 나와 성녀 둘이서 투닥거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문득 나와 성녀의 입이 다물어졌다. 묘한 시선이 주위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모두의 눈동자가 나와 성녀를 향해 있었다. 그 눈동자에는 가지각색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떨떠름함, 어이없음, 의심스러움, 그리고 못마땅함.

그 모든 감정을 뒤로 하고, 유렌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럼 난 이만 간다. 임마누엘!”

유렌은 그렇게 말하며 떠나갔다. 그리고 당황한 눈빛으로 시선을 교환하고 있던 나와 성녀에게, 싱긋 미소를 지은 여인이 눈에 띄었다.

세리아였다. 그 아쿠아마린빛을 닮은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심연의 빛깔처럼.

“……두 분,사이가 무척 좋아 보여요.”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러나 원인을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져서, 나와 성녀는 다시 눈을 마주쳐야 했다.

성녀도, 나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억울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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