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2. 주께서 함께 하신다(33)
* * *
바닥에 엎어진 선배들을 진정시킬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오들오들 떨고 있던 엘시 선배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델핀 선배는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난감하던 차였다.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델핀 선배가 내게 말했다.
“……사, 상처 내줘.”
처음에 나는 델핀 선배가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어이가 없다는 심정을 담은 시선이 델핀 선배를 향했다. 하지만 세차게 흔들리는 그 핏빛 눈동자가, 델핀 선배가 농담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었다.
내가 당황해서 멈칫한 사이, 델핀 선배는 내게 재차 부탁했다.
“부, 부탁이야… 제발, 어디든…….”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델핀 선배의 뺨에 다시 한 번 상처를 내주었다.
아주 얕은 상처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나을 정도의 자상.
그것만으로도 델핀 선배는 안심했다는 듯, 빠르게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떨떠름한 눈빛으로 지켜봐야 했다.
나쁜 버릇이 든 것 같은데, 큰일이었다.
그렇게 어찌저찌 수습을 하고, 무너진 식탁을 치운 뒤에는 삼자대면의 기회를 갖기로 했다.
물론 한동안 우리 셋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엘시 선배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로 우물쭈물하고 있는 중이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내 시선을 피해보겠다는 듯 고깔모자를 꾹 눌러썼다.
그런다고 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델핀 선배는 살짝 얼굴을 붉힌 채로,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엘시 선배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부끄러워 하는 기색이었다.
하기야 부끄러울 만도 했다. 후배 앞에서 그런 꼴을 보인 것이 아닌가.
그것도 하녀니, 노예니, 개니, 고양이니. 온갖 수치스러운 말들을 입에 담은 뒤였다. 나라도 면목이 없을 터였다.
우선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 나라도 대화를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둘 다 왜 그렇게 쓸데없는 일로 싸워요?”
엘시 선배는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가냘픈 목소리로 호소했다.
“아, 아니이…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저 년이 자꾸 꼴 받게 하잖아!”
내 눈이 델핀 선배에게 향했다. 그러나 그녀는 답변할 가치도 없다는 듯 흥, 하고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여전히 사이가 나쁜 둘이었다. 일단 조장은 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를 개선시키는 것 또한 내 몫이었다.
나는 일단 두 선배의 착각을 정정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왜 제 하녀입니까? 굳이 따지자면 제가 후배인데, 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그, 그래도.”
엘시 선배는 무언가 불만스러운지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이 귀엽긴 했지만, 내 의지는 단호했다.
“하지 마세요. 최소한 입에 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여러모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컸다.
그러지 않아도 아카데미에서 내 이미지는 왜곡된 지 오래였다. 근거 없는 낭설과 흥미 위주의 언론 문화 탓에, 나는 ‘손도끼를 들고 설치는 미친개’쯤으로 통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한 마당에 엘시 선배나 델핀 선배가 내 하녀를 자처하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가문 간의 마찰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문제였다. 최소한 이러한 갈등이 표면화 되어서는 안 됐다.
그러나 엘시 선배는 내 말을 조금 다른 뜻으로 이해한 듯했다.
“그, 그래! 입으로 담지는 않을게, 에헤헤…….”
나는 엘시 선배에게 한 마디 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말해봐야 들을 사람도 아니었다. 엘시 선배 또한 스스로의 세계관이 확고한 인물이었다. 앞으로 차차 관계를 재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오늘의 싸움은 이대로 일단락 될 듯 싶었다. 나는 최소한 ‘하녀’라는 표현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최근 들어 내 일상이 너무나 급격히 변한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이러한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이 모든 것이 편지 탓이었다. 나는 품속에 남은 연애편지를 떠올리며, 슬픈 눈빛을 했다.
마인이 올지도 모르는 판에 우리끼리 싸우고 있을 틈은 없었다. 나는 한껏 내리깔은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고아원을 습격하는 마수, 그리 간단한 문제로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마인이 끼어들었을지도 몰라요.”
“……마인?”
여태껏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던 델핀 선배가 낸 소리였다. 의문이 가득 찬 목소리, 그녀의 미간은 어느새 살짝 좁혀져 있었다.
엘시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느닷없이 마인이 나타난다니, 내가 생각해도 못 믿을 이야기긴 했다. 내 입에서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이 새어나왔다.
“네, 명확한 물증은 없지만 가능성이 있어요. 마수들의 이상행동을 설명하려면 마인의 존재밖에 없다고, 길포드 씨께서 말씀하셨거든요.”
“……마, 만약 진짜 마인을 마주치면 어떡하려고?”
엘시 선배는 살짝 겁먹은 기색이었다. 사실은 겁이 많은 그녀였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나도 무서웠으니까.
아카데미 재학 중에 마인을 상대한다니, 그 업적만으로도 향후 몇십 년은 후배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선배로 이름이 오르내리리라.
나는 잠시 침묵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생존을 우선시 해야죠.”
내가 억지로 데려온 사람들이었다. 혹은 자의로 따라왔다고 해도, 목숨을 걸 각오까지는 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함부로 목숨을 걸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정 안 되면 나 혼자 힘으로라도 어떻게든 해야 했다.
조금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 사실을 모두와 공유해야 했다. 그렇게 바삐 걸음을 옮기려던 나를 붙잡는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대로 식당을 떠났을 터였다.
“……그래서 판정은?”
내 눈이 멀뚱히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했다. 델핀 선배였다.
그녀는 살짝 볼을 붉히면서 시야를 슬쩍 내리깔았다. 그녀는 멋쩍은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나랑 라이넬라 중에서, 누가 더 쓸 만한데?”
“……그게 그렇게 신경 쓰여요?”
“물론이지, 나는 델핀 유르디나니까. 승패가 정해질 때까지 승부는 끝나지 않아.”
숫제 질렸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델핀 선배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기대를 담은 눈빛을 내게 보내올 정도였다.
엘시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관심 없는 척 하면서도, 흘깃흘깃 내 눈치를 살폈다.
기대와 걱정이 반반씩 섞인 눈빛이었다. 나는 끄응, 하고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건, 실습 끝나고 이야기 합시다.”
지금은 당장 마인의 존재만으로도 머리가 꽉 차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말과 함께 엘시 선배와 델핀 선배의 눈이 허공에서 다시금 맞붙었고, 이후 두 선배는 군말 없이 허드렛일에 임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중요한 걸까, 하녀 자리.
참 아리송한 세상이었다.
**
그날 밤은 조금 특별한 훈련이 있었다.
칼과 칼이 맞부딪혔다. 새파란 불꽃이 허공에 튀기며 어둠에 잠긴 시야 속에서 깜박였다. 날카로운 충돌음이 귓가를 쟁쟁히 울렸다.
내 상대는 노검사였다. 흰머리가 인상적인 그의 이름은 길포드, 고아원의 원장이자 한때 소드 익스퍼트에 올랐던 용병이었다.
당연히 나보다 강했다. 몇 번 칼을 부딪혀 봤음에도 알 수 있었다.
노련미가 달랐고, 기술이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기묘한 검술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한 발자국 물러선 나는, 심호흡과 함께 검을 내질렀다.
빛살과도 같은 선공이었다. 길포드 씨가 쇄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 눈앞에 그려지는 가상의 궤적이 증언하고 있었다.
예민해진 감각은 내게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내가 먼저 검을 내질렀음에도 어느덧 내 목젖에 길포드 씨의 검이 닿아있었을 뿐.
그 움직임이 환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검을 내지르고 있는데, 당연하다는 듯 몸을 회전시키며 선공을 흘려내고 내 품을 파고드는 그 기술.
“회절(回?)이라고 합니다.”
길포드 씨는 준비해 온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헐떡이다 수통의 뚜껑을 열었다.
시원한 물이 식도로 쏟아져 내리니 그나마 기분이 괜찮아졌다. 내 눈길이 다시금 길포드 씨를 향했다.
“젊은 시절에 짧은 인연이 있어 배운 기술이죠. 숙달되기가 꽤 어렵습니다.”
“……그래 보이네요.”
까딱하면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 저승길을 건널 기술이었다. 이를 실전에서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수준으로 사용하려면, 어마어마한 연습량이 뒷받침되어야 할 터였다.
아니, 연습량의 문제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 이상으로 정신력이 중요했다.
찔려 죽어도 괜찮다는 각오, 생명체가 품을 수 있는 종류의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본래 아무나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닙니다. 저 또한 죽음을 앞둔 다음에야 이 기술의 묘리를 조금 알겠더군요. 그냥,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겁니다.”
“……스스로를 놓아버려요?”
“네, 그래야만 본능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하… 말로 하려니 어렵네요. 관심 있다면 조금 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의외의 제안에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오늘 밤의 대련은, 길포드 씨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의 도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가 내 수련을 봐주기로 한 것이다.
길포드 씨는 경지도 나보다 높지만 경험도 많았다. 당연히 나로서는 거절할 까닭이 없었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에 더해 기술까지 알려주려 하다니, 너무 과했다. 내 고개가 금세 내저어졌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것까지는…….”
“수백 골드면, 아이 수십 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길포드 씨의 침착한 목소리였다. 수백 골드라면 내가 쓰러트린 마수 시체의 대금을 말하는 듯했다.
“그 목숨값입니다. 부디 받아주시죠.”
그렇게까지 말하니 더는 거부할 재간이 없었다. 나는 결국 쓴웃음을 지으며 길포드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단지 간과하고 있던 점은, 길포드 씨가 의외로 엄격한 선생이었단 점이었다.
“다시!”
“그 자세가 아닙니다. 그러다가 머리라도 꿰뚫리면, 저승에서 저를 원망할 거 아닙니까?”
“원숭이도 그보다는 잘 하겠군요, 도련님.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습니까?”
과연 용병 출신은 용병 출신이었다. 나는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연습을 반복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피로로 몸이 축축 늘어졌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숙소로 향했다.
레토는 이미 자고 있을 테고, 유렌은 도시로 떠났으니 아직도 잠들지 못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참 처량한 신세였다.
최근 무리한 탓인지 등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힐링 포션으로 완치됐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모자랐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문득 내 시야에 어느 풍경이 새겨졌다.
고아원 마당 구석에 위치한 신상이었다. 성국의 지원을 받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싸구려 석상.
그 앞에서, 성녀가 기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성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달빛을 받아 은은한 빛을 발하는 은빛 머리카락과, 신상보다도 더욱 예술품 같은 찬연한 이목구비가 눈에 띄었다.
풍광을 압도하는 존재감이었다.
단번에 풍경화가 인물화로 전환된다. 나는 한동안 언어를 잊고 말았다.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를 한참.
여인의 눈이 서서히 뜨였다. 가슴을 간질이는 연분홍색 물감이 인물화에 찍어졌다.
“……드문 일이네요. 당신 같은 사람도 기도를 할 줄 아나요?”
그 샐쭉한 목소리에 단번에 감상이 산산조각 났지만 말이다.
나는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는 듯 흐, 하고 웃으며 고개를 내저였다.
“새벽에 기도할 만큼 신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성녀는 성녀였군요.”
“그럼 아닌 줄 알았어요?”
퉁명스런 어조였다. 최근 그녀와 내 관계는 늘 이랬으니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손을 살랑이며 떠나가기로 했다. 그리고성녀도 코웃음을 치며 내게서 눈을 돌리려 했다.
문득 내 등에서 뜨겁고 축축한 감촉이 느껴지지만 않았더라면.
어라, 왜 이러지.
그러한 생각이 든 순간 성녀의 눈은 이미 부릅떠진 뒤였다. 그녀가 더듬거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피, 피, 피……!”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등뒤로 팔을 돌렸다. 그러자 손에 끈적하게 묻어나오는 핏물.
당혹감에 내 입이 침묵을 지켰다. 이내성녀의 맑은 목소리가 야밤의 고아원을 뒤흔들기 전까지.
“……피 나잖아요!!”
큰일났다. 가장 들키고 싶은 상대한테 들켜 버렸다.
얼마나 잔소리를 들을지, 나는 그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밤은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