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2. 주께서 함께 하신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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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의 병실은 고요했다.
가난한 고아원에는 기름이 없어 등불조차 제대로 타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방 안으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 흐릿한 조명에 의존해서, 한 여인이 내 등 뒤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성녀였다. 그녀는 가녀린 손가락으로 내 등을 쓸어내렸다. 조심스러운 손길이었으나, 내 입에서는 절로 쓰디쓴 신음이 흘러내렸다.
아팠다. 얼마 전에 원숭이 마수들을 상대하며 얻은 부상이 완치되지 않았던 듯했다. 힐링 포션 한 병을 전부 쏟아부었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침부터 강행군을 반복했으니, 내 몸뚱아리가 무사하지 못할 만도 했다. 다시 터진 상처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살갗이 마른 진흙처럼 갈라져 나간 감각이었다. 알싸한 통증이 뇌리를 콕콕 찔렀다.
“……바보에요? 지난번에 말했잖아요, 이미 당신의 몸은 한계라고. 그런데 고작 힐링 포션 한 병 썼다고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이어지는 성녀의 타박,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담당사제 앞에서 환자는 그저 죄인일 뿐이었다. 제대로 몸을 간수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심지어 내겐 성녀의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일부러 그녀를 찾아가지 않은 죄도 있었다.
퇴원한 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당일날 마수 사냥을 나가 다쳐서 돌아온 나를 보고, 성녀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면목이 없었다.
괜히 멋쩍어진 나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애써 자존심을 세우려 했다.
“얕은 상처라서 괜찮을 줄 알았… 끄아아악!”
물론 내 허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기습적으로 내 상처 부위를 꾸욱, 하고 누르는 손길에 나는 비명을 내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성녀의 한숨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며 파고들었다.
“……흥, 퍽이나.”
등을 돌리고 있는 터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성녀의 표정이 예상이 갔다.
한심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겠지, 그 목소리만 들어도 알 만했다.
나는 그저 통증에 신음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땅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내 잘못이었으니까.
잠시 동안 나를 노려보는 듯하던 성녀는, 이내 코웃음을 치며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따스한 감촉이 내 등 뒤에서 느껴졌다. 상처가 아물어가며 통증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금껏 몇 번이고 체험했지만, 참 놀라운 기적이었다.
이토록 빠른 속도로 상처가 아물 수 있다니.
그야말로 신이 내려준 힘다웠다. 힐링 포션의 효과도 뛰어나긴 했지만, 아무래도 성녀의 신성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내 등 뒤의 상처를 꼼꼼히 살피던 성녀는, 곧 무심한 질문을 던졌다.
“등 말고 또 다친 곳 있죠?”
의문문이었으나 묘한 확신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내가 등만을 다쳐오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이 그대로 느껴졌다.
물론 그 추측은 옳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하나의 부상을 실토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 왼팔도…….”
“……못 살아, 진짜.”
성녀는 투덜거리면서도, 내 정면으로 돌아 팔을 쥐었다. 처음에는 고된 수련으로 인한 근육통인 줄 알았는데, 성녀가 손가락에 힘을 주니 시큰한 통증이 일었다.
성녀는 잠자코 내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확인했다. 다시금 신성력이 일었고, 그녀의 손에 맺힌 새하얀 빛무리가 내 팔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성녀의 눈빛은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공과 사의 구분은 철저하다더니, 과연 그 말대로인 듯했다.
최소한 성녀는 환자에게 진심으로 보였다. 아니라면 일일이 내 부상까지 신경 써가며 잔소리를 하진 않았겠지.
다만 그 정도가 과해 나로서는 조금 곤란할 정도였지만 말이다.
오늘도 새벽까지 시달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처량한 미래를 직감한 내 눈동자에 우울감이 깃들었다.
정 안 되면 내일은 상처 치료를 빌미로 늦잠이라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마인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판이었다.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건 기본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간에, 성녀는 말없이 내 상처만을 살폈을 뿐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물끄러미 내 팔을 응시하기 시작한 지도 한참.
이내 성녀가 천천히 내 팔에서 손을 뗐다. 드디어 치료가 끝난 모양이었다.
물론 아직 안도하긴 일렀다. 성녀의 힐난하는 눈빛이 나를 향했기 때문이었다.
“……당신, 왜 그렇게 몸을 아낄 줄 몰라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델핀 선배가 하필 그때 무력화돼서…….”
“애초에 숲에 가질 말았어야죠. 막 퇴원했는데 마수 사냥을 나가는 인간이 어디 있어요?”
지당한 반론이었다. 그 한 마디에, 어떻게든 변명을 주워섬기려던 내 입이 꾹 다물어졌다.
성녀는 더욱 떨떠름해진 기색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다시 한 번 한숨이 흘러나왔다.
달큰한 숨결이 내 코끝을 스친다.
“아무튼, 한동안은 전투 금지에요. 내일부터는 탐색에서도 빠지세요.”
단호한 어조였다. 조금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 그럼에도 나는 협상이라도 해보겠다고 입술을 달싹였다.
본격적인 탐색은 이제 시작이었다. 마인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를 비롯한 전력 하나하나가 귀중했다.
그러나 내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성녀는 재차 단언했다.
“안 돼요.”
“……제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요?”
“무슨 말로 설득하든, 절대 안 돼요. 미쳤어요? 요즘 들어서만 얼마나 많이 다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 말에 나는 침음을 삼키며 잠시 시선을 피했다. 상세한 횟수는 기억하지 못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성녀를 만났던 기억이 났다.
성녀는 설령 내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곧 그녀의 입에서 준비된 답안이 줄줄이 읊어졌다.
“세리아 자매님과 대련을 하다 한 번, 늑대 마수 열 마리에 혼자 맞서다 한 번, 테안 형제님과 다투다 한 번, 그 이후에는 델핀 자매님에게 손을 꿰뚫려서…….”
“그만, 그만!”
나는 항복의 표시로 그렇게 외쳤다. 성녀의 게슴츠레 뜬 눈이 나를 향하자, 나는 두 손을 들며 잘못을 시인했다.
“좋습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진짜로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사정이라…….”
의외로 내 말이 묘한 감흥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사정’이라는 말을 들은 성녀가 슬쩍 내 시선을 피했다.
동음이의어로 알아들은 것은 아닐 테고, 나로서는 그녀가 왜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무릎을 꿇은 채 내 상처를 살피고 있던 성녀의 몸이 일으켜졌다. 잠시 공회전을 하듯 방 안을 서성거리던 그녀는, 곧 팔짱을 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팔 위에 얹힌 젖가슴에서 묵직한 탄력감이 느껴졌다. 언제 보아도 훌륭한 질감이었다.
“……요즘은 조금 헷갈려요.”
불퉁한 목소리였다. 내 의문을 담은 눈동자가 성녀를 가득 담았다. 그러자 그녀는 더욱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당신 말이에요, 알다시피 쓰레기잖아요?”
“너무한 것 아닙니까?”
나는 곧바로 투덜거렸지만, 성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정보를 빌미로 협박을 해, 폭력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어, 제압까지 끝난 델핀 자매님을 고문했죠…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악당이잖아요.”
“그거야, 뭐…….”
엄밀히 따지면 미래에서 온 인격이 저지른 짓이었지만, 나는 설명할 말이 궁해 말끝을 흐려야 했다.
사실대로 말해봐야 옹색한 변명쯤이라 여길 터였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편이 더 나았다.
성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듯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차였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내가 아무 말도 못하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럼에도 그녀의 연분홍빛 눈동자에서는 미묘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었다. 아직까진 은근한 기색이었지만, 그 감정의 정체는 명확했다.
혼란스러움.
머뭇거리던 성녀의 입술이 다시금 떼어졌다.
“……그런데 왜 자꾸 몸을 사리질 않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녀와 내 시선이 교차하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는 듯한 눈빛으로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충해도 되잖아요. 할 수 있을 만큼만 하고, 몸도 사려 가면서 하면 좋잖아요? 왜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요.”
내 입은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왜 그렇게 무리를 하냐니,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야 무리라도 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를 우연으로 실력이 일취월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약했다. 가진 바 실력에 비해 내 어깨에 지워진 책임은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해내지 못하면 세계가 멸망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어떻게든 해냈다.
해야 할 일이니까,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구구절절 내 사정을 늘어놓기에 오늘 밤은 너무나도 짧았다.
그래서 나는 피식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덕에 마수도 사냥할 수 있었잖습니까. 그 돈으로 고아원의 사정도 나아질 테니, 아무래도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더 이상하다고요!”
그러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은, 의외로 성녀를 크게 자극한 모양이었다.
울컥했는지 성녀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 내게 다가온 그녀는, 곧 검지로 내 가슴을 쿡쿡 찌르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고아들이잖아요? 한둘쯤 죽는다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신경 쓰이던데요.”
담백하지만 허를 찌르는 말이었다.
성녀는 내 단답에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잠시 나를 째려보던 그녀는, 곧 답답하다는 더욱 거칠게 나를 몰아붙이려 들었다.
“그런다고 수백 골드를 희생해요? 당신, 하급 귀족이잖아요. 심지어 몸을 망쳐가면서 사냥한 성과인데!”
“그러니 어디에 쓰든 제 마음입니다.”
하지만 내 명쾌한 대답에 또 다시 침묵.
성녀는 허탈한 듯 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내 이마에 손을 얹더니, 고개를 몇 번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다 입술을 짓씹더니, 다시 시선을 내게로.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혹시 착한 척 하는 거예요? 대외적인 이미지도 중요하니까?”
“성녀님.”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내 신체가 바로 서자 성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시선을 마주 올려야 했다. 나는 내려다보고, 그녀는 올려다보며 나와 성녀의 시선이 비로소 교차했다.
성녀의 눈동자는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눈빛이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는 그녀에게 조언했다.
“너무 계산적으로 생각하지 마시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싶을 때도 있잖습니까.”
“……그러다가 손도끼로 사람도 좀 패고?”
“마수들도 팼죠. 고아원에 기부도 좀 했고.”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던 성녀는, 그제야 한 풀 꺾여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럼에도 아직은 불만이 남아있는 기색이었다.
한동안 우물쭈물하던 그녀가 중얼거림을 흘렸다. 소심한 목소리였다.
“……나도 팼고.”
내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결국 돌고 돌아 그날의 일이었다. 성녀는 여전히 내게 앙금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그날 내게 협박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무력으로도 완패했다. 자존심에 간 상처가 아물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그 적의를 내게 마음껏 투사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내가 보여주는 모습에 성녀는 혼란을 느낀 듯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이안 페르쿠스는 쓰레기여야 하는데,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테지. 그 두 가지 인식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 자리에서 그날의 일을 정식으로 사과해도 좋았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성녀가 마음을 풀어줄지도 몰랐다.
이후에도 틱틱대기야 하겠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드러내지는 않을 터였다. 성녀는 정치적으로 숙련된 사람이니까.
성녀는 흘깃흘깃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나올지 신경 쓰이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사과를 입에 담으려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그만두었다.
그런다고 진정으로 갈등이 해결되지는 않을 터였다. 성녀는 계속해서 가슴 한 구석에 의문을 남기고 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우리는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편이 더 어색한 사이가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까지와 같이 악우(??)로 남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최소한 성녀가 가식의 가면을 벗고 나를 대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한 대 더 패도 됩니까?”
솔직히, 절반쯤은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싸가지 없는 신성력 주머니 년, 언젠가 혼내 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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