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2. 주께서 함께 하신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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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디나 가문은 척박한 북부를 개척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대륙의 최북단에는 눈과 얼음의 땅이 존재한다. 그보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면 이끼만이 봄마다 땅에 뿌리를 내리는 영구동토가, 그리고 그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야 드넓은 침엽수림이 등장한다.
춥고 메마른 대지에서 살아갈 수 있는 동식물을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인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 어떠한 생물군도 마찬가지겠지만, 인간 또한 오롯이 홀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에 수반하는 수많은 동식물들이 생태계를 구성해야만 안정적인 영양 섭취가 가능했다.
그래서 먼 옛날 유르디나 가문이 북부에 깃발을 꽂았을 때, 그곳은 귀양지였다.
한때 통일제국의 충신이었던 유르디나 가문은 세월이 지나며 버려졌다. 새로운 영지를 부여받는다는 명목으로 북부로 이주하긴 했지만, 그 실상이 토사구팽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마저 유르디나 가문은 살아남았다.
척박한 북부에서 살아남는 생물 중에는 무엇 하나 강인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심지어 이끼를 뜯어먹고 사는 자그마한 쥐조차도, 나름대로의 강인함을 숨기고 있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특화된 생물들.
유르디나 가문은 그 원주민들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했다. 강인함을 숭상하고, 나약한 존재는 도태시켜 버리며 수백 년의 세월을 쌓아왔다.
그렇게 통일제국이 무너지던 분열 전쟁의 필두에는 유르디나 가문이 설 수 있었다.
제국의 건국공신이 된 유르디나 가문은 오랜 시간 북부의 맹주로 군림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신념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승리만이 전부, 패배는 죽음.
통일제국 시절의 기품 있던 가문의 예법은 허례허식이란 이유로 폐한 지 오래였다. 그 시절의 유르디나 가문과, 지금의 유르디나 가문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비전 절기 금사검(???), 사자의 발톱을 본떠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검술이었다.
사실 북부에는 사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한 포식자가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먹잇감이 풍부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런데도 유르디나 가문에 동부 초원 지대에서 살아가는 맹수의 흔적이 남아있는 까닭은, 그들의 뿌리가 북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금사검을 제외한 유르디나 가문의 모든 것이 북부의 생활에 맞춰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델핀 유르디나는 그러한 가문의 적통으로 태어났다.
당시 유르디나 후작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북부에 잔류하고 있던 수많은 이종족 군락을 정벌했으며, 엘프와 오크들을 드넓은 침엽수림 너머로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의 실력은 소드 익스퍼트 중에서도 최상급, 가히 마스터를 앞두었다고 칭해도 모자람이 없는 실력자였다.
다만 그토록 걸출한 인물이었던 만큼 공사가 다망했던 것이 문제였다.
딱히 여성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후계를 만드는 일에도 무관심했다. 오히려 나중에 세리아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왔을 때, 가신들이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그래서 델핀은 오랜 시간 혼자 자라야 했다. 유르디나 가문의 금지옥엽이었으니, 그 위세가 어땠을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본래 엄격한 후계자 교육을 받아야 할 시기에도 그녀는 어리광을 피우며 자라났다. 유르디나 가문의 특징인 금빛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를 모두 타고난 소녀였다.
가문의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다. 어여쁘고 붙임성도 좋은 어린 시절의 델핀을 싫어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신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델핀은 행복한 어린 시절을 지냈다. 그녀는 그 춥고 메마른 북부의 대지마저도 사랑했다.
언젠가 이 북부의 맹주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꽃을 심어 북부를 더욱 예쁘게 치장하리라.
어린 시절에나 꿀 수 있는 헛된 희망을 품으면서 델핀은 자라났다.
단, 여섯 살 때까지만.
델핀은 아직도 그날의 일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유르디나 가문의 우수한 혈통을 계승한 그녀의 두뇌는 명민했고, 기억력 또한 비상하기로 유명했던 그녀였으니까.
영주성의 마굿간에는 핸슨 영감이 있었다. 그는 영락없이 나이든 촌부처럼 생겼지만, 중요한 전략물자인 말을 책임질 만큼 나름 신임 받는 가신이었다.
그는 유독 델핀을 귀여워했다. 머나먼 영지에 그 나이대의 손녀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 까닭마저도 델핀의 기억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당연히 델핀 또한 핸슨 영감을 좋아했다. 그는 마굿간지기답게 기사들의 무용담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델핀은 그녀 자신도 언젠가 정의로운 기사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사를 동경하는 어린아이는 승마에도 묘한 동경을 품는 법이었다.
델핀은 핸슨 영감을 만날 때마다 말을 타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럴 때마다 핸슨 영감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어휴, 아가씨는 아직 말의 힘을 견디지 못해요. 조금 더 자라면 타기 싫어도 마음껏 타시게 될 겁니다. 하하!”
델핀은 그 점이 못내 서운해 치, 하고 삐진 체를 했다. 어린아이는 언제나 자신이 다 자랐다고 생각하므로, 정작 핸슨 영감은 그러는 델핀이 허허 웃어넘길 뿐이었지만 말이다.
사단은 어느 날 밤에 일어났다.
델핀은 몰래 마굿간 안에 들어갔다. 본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지만, 서재의 문을 열겠다는 핑계로 성의 열쇠꾸러미를 손에 쥔 꼬마아이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어설픈 승마 지식으로 델핀은 낑낑거리며 말에 탔고, 그 결과는 뻔했다.
낙상, 다행스럽게도 중상은 아니었지만 어린아이의 연약한 뼈를 부러트리는 데는 충분했다. 가신들의 간담이 대번에 서늘해지는 장난이었다.
병상에서 델핀은 끙끙 앓았다.
아프기도 아팠지만,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핸슨 영감이 곤혹을 치를 예정이라고 했다. 그녀는 핸슨 영감에게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얼른 나으면 핸슨 영감에게 사과해야지, 그리고 핸슨 영감을 지켜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어느 날, 델핀은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가까스로 거동이 가능해졌던 무렵이었다. 델핀은 목발을 짚은 채로, 언제나처럼 보고 싶은 아버지를 보기 위해 해맑은 얼굴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보았다.
검을 든 아버지와, 그 앞에 꿇어앉은 핸슨 영감을.
그의 두 손은 포승줄에 묶여 있었다. 핸슨 영감의 표정에는 적막한 절망감이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델핀의 뇌리가 정지했다.
지금껏 몇 번이고 보았던 풍경이었다. 아버지가 죄인을 처형하는 모습, 이를 깨달은 델핀은 저도 모르게 아버지에게로 내달렸다.
아직 목발로 뛰는 게 어설퍼 넘어지기도 했다. 땅을 구르고, 낫지 않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델핀은 엉금엉금 기어 제 아버지의 발목을 쥐었다.
어느새 델핀은 펑펑 울고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간절하면 절로 애원이 나오고 눈물이 흐른다는 걸.
“아버지, 흐윽… 그, 그러지 마세요. 제, 제 잘못이에요! 흑, 흐윽… 해, 핸슨 영감은 잘못 없어요! 제가 멋대로……!”
그러나 아버지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늘 그렇듯 근엄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델핀, 물러나라.”
“아, 안 돼요! 그러면 핸슨 영감을 죽이실 거잖아요! 차, 차라리 저를 벌하세요… 제 잘못이잖아요! 핸슨 영감은 잘못 없다고요!”
난생 처음으로 델핀은 하늘같은 아버지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 처량한 울음에 주위에 있던 가신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를 한참, 결국 유르디나 후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일어나라.”
그제야 델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새 바뀔 새라, 아픔을 꾹 참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가 환한 얼굴로 고개를 든 그 순간.
핏물이, 부채꼴로 터져 나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실력 있는 검사의 검격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검이 뽑혀 나오는지도 몰랐는데, 어느새 납검이 끝나 있는 그 광경.
델핀의 눈이 서서히 핸슨 영감에게로 향했다. 그는 목에서 피를 뿜으면서, 입으로는 부글부글 끓는 피거품을 흘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뒤늦게 핏물이 대지에 흩뿌려졌다. 제 다리에 핏물이 튀기자 델핀은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았다.
“으, 아, 으… 꺄아아아아아악!”
“일어나라, 델핀.”
유르디나 후작은 미동조차 없었다. 델핀은 핸슨 영감을 죽인 장본인이 그라는 사실조차 까먹고, 제 아버지의 바짓단을 붙잡았다.
“아, 아버지! 해, 핸슨 영감이……!”
“일어나라고 했다, 델핀!”
그리고 차갑게 델핀을 응시하는, 그 핏빛 눈동자.
델핀의 피가 얼어붙었다. 포식자를 마주한 피식자의 본능이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통증을 견디는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럼에도 델핀은 주저앉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르디나 후작은, 이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의 일을 잘 기억해 둬라, 델핀. 우리 같은 인간에게는 벌을 받을 권리조차 없다.”
물기 맺힌 델핀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오들오들 떨리는 그 자그마한 육체를 보고도 사내는 아무런 감흥조차 느끼지 못한 얼굴이었다.
“실수를 해도, 실패를 해도 모든 책임은 네 아랫사람이 진다. 그리고 그때마다 네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씩 줄어들지… 알겠니, 델핀?”
그러나 유르디나 후작도 인간이었는지, 제 딸을 대할 때만큼은 얼음장 같은 가면을 한사코 유지할 수는 없었다.
그의 눈동자에 괴로운 빛이 스쳤다.
델핀은 놀랐다. 그녀의 아버지처럼 강인한 인간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그러니까, 패배하지 마라. 그럴 때마다, 네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야 할 테니.”
너 대신 말이다,
그 덧붙임을 끝으로, 유르디나 후작은 흔한 위로의 말조차 남기지 않고 떠나갔다.
델핀은 한참 동안 석상이라도 된 듯 서 있다가, 이내 울부짖으며 주저앉았다. 그리고 땅바닥을 기어, 핸슨 영감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의 편린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델핀은 더욱 괴로웠다.
그 시체에 얼굴을 파묻으며, 델핀은 피 냄새를 들이켰다. 마치 과호흡이라도 온 듯했다. 이를 악문 채로, 코로 핏물을 들이키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는 귀기마저 서려 있었다.
비리고 따스했다. 이것이 생명의 흔적이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의 몫.
피 웅덩이에서 소녀는 울었다. 유르디나의 가신들은, 그 모습을 안쓰럽다는 듯 지켜보면서도 그녀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것이 유르디나의 후계자가 감당해야 하는 짐이었으므로.
그날 이후 델핀은 변해 버렸다. 표정을 잃어버렸고, 애교가 느껴지던 미소는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버린 지 오래였다.
제 이복동생을 만났을 때도, 그녀의 어머니가 쫓겨났을 때도 델핀은 진지하게 충고했다.
“너도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저렇게 될 거야.”
델핀이 그 어린 나이에 동생에게 건넬 수 있는 조언은, 그뿐이었다.
그렇게 델핀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자라났다. 자연스레 유르디나의 세계관을 체득했고, 어린 시절 그녀가 가슴에 새겼던 교훈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승리가 전부다.
패자는 모든 것을 빼앗긴다. 소중한 것도, 그 무엇도 승패로 그 소유가 달라질 뿐이었다.
하지만 일평생을 지켜온 그 세계관은, 단 한 사내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안 페르쿠스, 바로 그 남자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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