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2. 주께서 함께 하신다(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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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전 중에는 시야를 확보하는 일조차 어려웠다.
사방에서 금속성이 울려 퍼진다. 날붙이와 날붙이가 부딪히며 튀기는 불꽃이 어지러웠다. 그와 더불어 수없이 터져 나오는 핏물과 비명까지.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먹먹해졌다. 그럼에도 단 한 순간이라도 판단을 유예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목숨과 목숨이 오가는 전장이었다. 조금이라도 망설였다간, 적의 칼날이 내 목젖을 꿰뚫을 터였다.
팍, 하고 손도끼가 원숭이 마수 하나의 골통을 내리찍었다. 두개골이 으깨지는 파열음과 함께, 피 분수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망설이고 있을 틈은 없었다. 어느새 빈틈을 노리고 원숭이 마수 하나가 성녀와 엘시 선배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손도끼를 채가듯 뽑아 측면으로 던졌다.
다시 한 번 콱, 하는 소리와 함께 원숭이의 머리 측면에 꽂히는 손도끼. 그것만으로 생명 하나가 또 다시 빛을 잃었다.
한 번, 혹은 두 번의 검격으로 승부를 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물밀듯이 몰려드는 원숭이 마수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어느덧 원숭이 마수들의 시체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중 절반 이상은 원진을 구성하고 있는 검사들이 해치웠지만, 성녀와 엘시 선배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주여, 환난과 고난 가운데 믿음의 방패를 내리소서!”
성녀의 나지막한 부르짖음과 함께 일행의 몸에 새하얀 광채가 덧씌워졌다. 아무리 치명적인 일격이라도 두어 번은 막아줄 수 있는 신성력의 갑옷이었다.
뿐만 아니라 내 몸에는 전에 없던 활력이 넘쳤다. 근력과 순발력이 강화되자 원숭이 마수들을 쓸어버리기 수월해졌다.
엘시 선배는 더욱 노골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도왔다.
“……서른두 별자리, 명멸하는 두 번째 제위(??)의 이치 위에 원소여 정렬하라!”
웅얼거리는 온갖 천문 상징의 향연 속에서, 엘시 선배의 주위로 마력이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며 유형화된 마력은 어느새 우리의 발밑까지 퍼져 있었다. 그리고 파지직, 하는 소음과 함께 새하얗게 일어나기 시작하는 전하들.
“빛이여, 범람하라!”
엘시 선배의 청명한 목소리를 신호로, 대지 위에 전하의 폭풍이 몰아쳤다.
땅을 딛고 선 마수들이라면 단 한 마리의 예외도 없었다. 나무 위에서 몸을 던진 마수들이 비명과 함께 새까만 연기를 피워 올렸다.
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빛이 번쩍거리며 터져 나왔다. 나는 절로 눈을 가리면서도, 기감에 의존해 운 좋게 허공을 날고 있던 원숭이 마수 하나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원숭이 마수가 철퍽 떨어지자마자 들리는 지지직거리는 감전음.
시체가 타며 풍기는 특유의 매캐한 냄새에, 나는 콜록거리며 눈을 닦았다. 그제야 시야가 온전히 돌아왔다.
강력한 마법이 지나간 전장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타버린 마수의 시체가 잿더미처럼 땅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하나같이 혀를 빼물고, 눈조차 감지 못한 상태였다. 그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던 탓이다.
이래서 마법사가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난전에서 다수를 상대할 때 유리할 뿐만 아니라, 수십의 목숨을 단번에 앗아가는 살상 마법은 적들의 기세를 꺾기에도 용이했다.
물론 그 마법사의 실력이 검증되었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였다.
만약 엘시 선배의 마력 제어 능력이 조금만 서툴렀다면, 우리는 저 원숭이들과 함께 땅바닥에서 탄 냄새를 흘리고 있었을 테니까.
상상만 해도 무서운 광경이었다. 나는 으스스 등줄기를 파고드는 소름을 느끼며, 곧바로 달려들던 원숭이 마수 하나를 엎어쳤다.
쿵, 하고 땅에 진동이 일었다. 그러자 잠시 주춤하던 원숭이 마수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튕겨 오르듯 몸을 일으키며 검을 내던졌다. 푹, 하고 틀어박힌 검이 마수의 심장에 명중했다. 그 옆에서 달려들던 마수는 희열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내 손에 무기가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까득, 하고 금속이 뼈를 갈아버리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막 나를 습격하려고 뛰어오르며 팔을 치켜들었던 마수는, 멍하니 제 시선을 가슴팍으로 옮겼다.
측면에서 날아든 칼날이 가슴을 파고들어, 갈비뼈와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원숭이 마수가 땅을 굴렀다.
정중동(?中?)의 묘리를 응용한 기술이었다.
허공을 날던 손도끼가 궤적을 바꾸듯, 직선으로 날렸던 칼날의 궤적을 측면으로 꺾으면 단숨에 둘을 제거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조정은 아직 미숙한 편이라, 갈비뼈 틈새를 가리고 심장까지 직격시키지는 못했다.
나는 손도끼를 회수하고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던 원숭이 마수에게 다가갔다. 죽음을 앞둔 한 생명이 힘겹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고 나는 흐,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뭘 봐, 새끼야.”
당연히, 연민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빠각, 하고 두개골이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손도끼에 핏물과 뇌수가 묻어 나왔다. 손도끼를 내려찍은 내 숨이 거칠었다.
그 마수가 마지막이었다.
그 수십 마리에 달하던 마수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아무리 일곱 명에 달하는 전력이 있었다지만 기록할 만한 성과였다.
그러나 그토록 멋진 승리를 거둔 일행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주르륵, 흘러내리듯 셀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주위에는 유독 패인 땅이 많았다. 그녀의 검이 한 번씩 직격할 때마다 터져나갔다는 뜻이었다.
지친 기색으로, 셀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났다아…….”
지난 수렵제를 제외하면, 그녀로서는 첫 번째 실전이라고 해도 좋은 전투였다. 아무리 델핀 선배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끝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용했다.
델핀 선배도 셀린의 활약에 나름 만족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 하스터.”
“……저야 짐만 됐는데요, 뭘.”
그럼에도 셀린은 울적한 듯했지만 델핀 선배는 더 이상의 위로를 건네지는 않았다.
어차피 홀로 이겨내야 할 과정이라 여긴 모양이었다. 틀린 판단은 아니었으므로, 나도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단지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리깐 목소리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아직 끝 아니야, 동굴이 남았잖아.”
내 말에 안도하고 있던 일행의 분위기가 다시 팽팽히 당겨졌다.
말 그대로였다. 지금의 전투는 고작해야 전초전에 불과했다.
아직 이 수많은 마수들을 동원하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비밀이, 동굴에 남아 있었다.
오늘 우리의 목적은 동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승리의 여운에 잠겨 있을 시간은 없었다.
내 시야가 저 숲의 끄트머리를 향했다. 공터가 보였고, 그곳에서 희끄무레한 형체로 자리 잡은 동굴의 형상이 눈에 띄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이, 이안 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총총 뛰어와 눈을 빛내는 소녀가 내 앞에 섰다.
엘시 선배였다. 그녀의 느닷없는 경어에, 델핀 선배를 제외한 일행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결의에 차 있던 내 얼굴이 단번에 허물어졌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난감함이 듬뿍 담긴 표정이었다.
그러든 말든, 엘시 선배는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꼬리라도 흔들 태세였다. 앙증맞게 두 주먹을 꼭 쥔 그녀의 입에서 경탄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머, 멋져요! 망설임 없이 원숭이 마수의 골통을 으깨버리는 그 잔혹함! 피를 보기 위해서라면 무기까지 내던지는 담력까지! 굉장했…….”
“……엘시 선배.”
내 나지막한 호명에 엘시 선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악에 찬 시선이 그녀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엘시 선배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잠시 후,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귀까지 새빨개진 뒤였지만, 어쨌든 그녀는 위엄을 되찾아 보겠다고 손부채질을 하며 시건방진 미소를 띠웠다.
훗, 하고 우쭐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엘시 선배는 수습을 시도했다.
“무, 물론 이 엘시 라이넬라의 활약이 없었다면 승리는 없었을 테지만 말이야. 그, 그러니까… 나 잘했지? 응?”
그러면서 엘시 선배는 기대를 잔뜩 담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반짝거리는 시선을 거부할 수가 없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엘시 선배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엘시 선배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하자, 그녀는 곧바로 헤실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잘했어요, 엘시 선배.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요.”
“에헤헤… 네!”
충직한 대답이었다.
내 눈이 다시 일행에게 돌아갔을 때는, 델핀 선배를 제외한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델핀 선배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 중이었다.
내 입이 다물어졌다.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도주를 선택했다.
“지금은 일이 바쁘니까,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일행의 눈빛이 대번에 떨떠름해졌다.
그러나 그들이 떨떠름해서 어쩌겠는가? 일행을 이끄는 사람은 나였고, 지금이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결국 일행은 투덜거리거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면서도 다시 떠날 채비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국 동굴에 들어섰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은 아니었다. 어느 자연 동굴이 숲의 공터 한가운데에서 떡하니 지하로 이어진단 말인가.
인공적으로 형성된 곳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위험했다.
무엇을 설치해 두었을지, 어떠한 구조로 만들어 두었을지 조금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나아가야 했다.
실전에 가장 강한 나와 델핀 선배를 필두로, 일행은 서서히 동굴 안으로 나아갔다. 습하고 시린 공기가 텁텁하게 폐부를 적셨다.
동굴 안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의외로 함정도 없었고, 고작해야 십여 분 남짓을 들어갔을 뿐인데도 벌써 끝이 보였다.
애초에 인공 동굴을 만드는 수준의 공사는 쉽지 않았다. 마법을 동원하든, 노동력을 동원하든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이 이상으로 파고들기엔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던 듯했다.
하지만 그 짧은 길목의 끝에 드러난 광경은, 너무나 기괴해서.
하나같이 몸을 굳힌 일행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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