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130화 (130/649)

〈 130화 〉 2. 주께서 함께 하신다(51)

* * *

팍, 하고 내게 달려들던 살점 씨앗 하나의 골통이 으깨졌다.

피와 뇌수를 뿜으며 비틀비틀 쓰러지는 살점 씨앗, 그러나 아직도 내게 달려드는 살점 씨앗은 수도 없이 많았다.

좌측에서 하나, 우측에서 둘.

내 손도끼가 벼락같이 쏘아졌다. 퍽, 하고 우측에서 달려들던 살점 씨앗 하나의 옆머리를 쪼개고, 또 다시 궤도를 틀어 나머지 하나의 정수리를 찍는다.

좌측에서 달려들던 살점 씨앗에게는 내뻗은 팔을 그대로 붙잡아, 온힘을 다해 땅바닥으로 업어메치는 것으로 대응했다.

쿵, 하는 충격파와 함께 토해지는 비명.

내 손이 칼집에 수납되어 있던 검을 벼락같이 뽑아들었다. 은빛 오러를 덧씌운 칼날이 살점 씨앗 하나의 뇌를 쑤시고 들어갔다.

파르르, 떨리던 살점 씨앗의 경련이 곧 멎었다. 무조건 머리만을 노려야 하니 상대하기가 영 까다로웠다.

잠깐 여유가 생긴 나는 헐떡이면서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서는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금빛 발톱이 허공을 할퀸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금빛의 오러가 전투의 열기로 달아오른 온도를 더욱 높였다. 다섯 개의 검로, 그중 실초에 당한 살점 씨앗 세 마리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곧 살점 씨앗 세 마리가 새까맣게 타서 풀썩 쓰러졌다.

셀린과 세리아는 연수 합격 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둘이 양면을 맡고 있다 보니 기습을 당할 염려는 적었다.

쾅, 쾅!

셀린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어김없이 폭음이 터져 나왔다. 마력을 전부 때려 박은 일격이었다. 과부하를 일으킨 마력이 폭발하며 사방에 피와 육편을 흩뿌렸다.

그에 반해 세리아는 보다 세련된 검술로 살점 씨앗과 대적하고 있었다.

한 걸음, 귀신같은 내려베기가 살점 씨앗의 팔 한 짝을 날려버렸다.

두 걸음, 횡으로 그려진 푸른 실선이 살점 씨앗의 두 다리를 절단시켰고,

마지막 세 걸음, 땅바닥에서 허우적거리던 살점 씨앗의 머리가 쪼개졌다.

의외로 다들 잘 대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살점 씨앗은 끝도 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심지어 구덩이 속에서는 계속해서 살점 씨앗이 충원되는 중이었다.

전황을 뒤엎기 위해서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그때, 내 귓전을 때리는 비명 소리.

“꺄, 꺄아아아악! 도, 도와줘! 이, 이안 님!”

화들짝 정신을 차린 나는, 몸을 날려 살점 씨앗의 정수리에 틀어박혀 있던 손도끼를 회수했다. 그리고 소리의 진원지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손도끼를 채가듯 날렸다.

파공성과 함께 쏘아지는 궤적, 그 끝에는 엘시 선배를 노리고 달려들던 살점 씨앗이 자리하고 있었다.

팍, 하고 늙은 호박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핏물과 뇌수가 쏟아져 내렸다.

엘시 선배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덜덜 떨고 있었다. 창백한 낯빛이 그녀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마치 파도처럼 덮쳐드는 살점 씨앗들을 상대하느라, 엘시 선배까지 보호할 방진을 짤 틈조차 없었다. 설령 짜더라도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적들을 어떻게 막아낸다는 말인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내게 달려들던 살점 씨앗의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내 검이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살점 씨앗의 머리가 낙하 운동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또 다시 그어지는 실금들.

고속으로 이어진 연격에 살점 씨앗 하나의 머리가 또 다시 터져 나갔다. 나는 그 핏물을 뒤로 하고 내달렸다.

내 손이 들리자, 미리 정해두었던 궤도대로 손도끼가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투척, 엘시 선배를 노리던 또 하나의 살점 씨앗의 머리가 피 분수를 뿜었다.

나는 재빨리 엘시 선배의 뺨을 툭툭 두드렸다. 엘시 선배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엘시 선배, 엘시 선배!”

그러나 히끅이며 딸꾹질을 하는 엘시 선배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 손도끼까지 날아드니 넋이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핏물을 잔뜩 뒤집어 쓴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중얼중얼대고만 있었다.

“자, 잘못했어요… 에, 엘시가 잘할 테니까… 이, 이안 님. 나 버리지 마…….”

“……엘시 라이넬라!”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흠칫, 엘시 선배의 몸이 떨리더니 본능적인 대답이 흘러나왔다.

“네, 넷!”

나는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엘시 선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피에 젖어 질척거렸지만 상관없었다. 떨리던 엘시 선배의 몸이 점차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

상반신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영창 시작하세요.”

그러자 엘시 선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하, 하지만 이안 님… 지금은 적들이 너무 많… 우, 꺄아아앗?!”

나는 전조조차 없이 한 팔로 엘시 선배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팔에는 손도끼를 든 채로, 종횡무진 전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달려드는 살점 씨앗이 있으면 도끼를 던져 골통을 박살냈다. 정중동의 묘리에 의해 되돌아 온 손도끼가 기어드는 살점 씨앗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팍, 하고 튀기는 핏물과 살점.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라, 아무런 감흥조차 일지 않았다.

처음에 넋을 놓고 있던 엘시 선배는, 내가 한 번 더 외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영창!”

“하, 할게요!”

엘시 선배가 다급히 비밀스러운 신비의 언어를 읊기 시작했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반복될 때마다 나와 엘시 선배 주위로 새파란 전하가 모여들었다.

심상치 않은 마력의 유동에, 살점 씨앗들의 눈이 대번에 나를 향했다. 그리고 곧 미친듯이 달려드는 괴물들.

도끼를 던져 한 마리, 골통을 박살내서 두 마리. 그러고도 아직 몇 마리가 더 달려들고 있었다. 엘시 선배는 눈을 꼭 감은 채 어떻게든 영창에만 집중하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델핀 선배!”

“……알고 있어!”

델핀 선배는 이를 악물고, 품에서 단검을 꺼내 던졌다.

금빛 오러가 맹렬히 타오르는 단검이 내 측면에서 달려들던 살점 씨앗 하나의 이마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주춤주춤 괴물이 물러나자, 이내 화륵, 하고 타오르며 불길을 일으키는 오러.

살점 씨앗의 발버둥에, 주변에서 달려들던 살점 씨앗에게로 불길이 옮겨 붙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그러고도 달려드는 살점 씨앗이 너무 많아, 나는 땅바닥으로 몸을 던져야 했다. 그 과정에서 결국 살점 씨앗 하나에게 등을 내주고 말았다.

핏물이 흘러내렸다. 강산성의 독이 상처 부위를 파고들며 살갗과 혈관을 지져버렸다. 마력으로 보호하고 있는데도 독이 천천히 핏물을 타고 피부를 녹이고 있었다.

끔찍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엘시 선배를 어떻게든 껴안아 충격을 최소화했다.

그러한 필사적인 노력 덕인지, 엘시 선배의 마법은 곧 완성되었다.

“……별과, 달과, 해로 이어지는 천뢰의 이치! 떠도는 빛과 불꽃이여, 오라! 뭇 바람이 그대들을 부르고 있나니!”

파직거리며 끓어오르는 전하들이 점차 백열하고 있었다.

시야가 새하얘지고,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피부에 열기가 전해졌다.

이어질 마법의 위력을 짐작한 나는 일행에게 외쳤다.

“다들 눈 감고 엎드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질풍신뢰(?風?雪)!”

폭음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두 귀를 틀어먹은 손을 타넘고 전신을 울렸다. 새하얗게 명멸하는 빛이 눈꺼풀을 파고들어 주홍빛 잔상을 새겼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살점 씨앗들이 내지르는 단말마였다. 마구잡이로 몸부림치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엘시 선배를 품에 껴안은 채로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새까맣게 탄 시체들이 매캐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쏟아진 뇌우의 양을 증명하듯 동굴의 바닥 곳곳이 패여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마법사의 위력이었다. 어느덧 구덩이 위쪽에 남은 살점 씨앗들은 전멸한 뒤였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구덩이를 타넘으려는 살점 씨앗들의 발버둥이 느껴졌다. 몇 마리는 기어이 구덩이 밖을 빠져나와, 또 다시 천장 위로 기어 올라가겠지.

끝을 맺으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살점 둥지를 파괴하는 것.

나는 이를 악물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세리아가 내 등에 남은 상흔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다급히 달려와, 떨리는 손으로 제 품에서 힐링 포션을 꺼냈다. 나는 그녀를 제지했다.

“안 돼, 어차피 독에 당한 거야. 힐링 포션으로는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어.”

하물며 내 몸은 이미 수없이 많은 부상을 당한 뒤였다. 혈정으로 부상이 완치되었다곤 하지만, 이제 힐링 포션 정도로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었다.

아직 비틀거리는 수준으로 운신이 가능했다. 독은 계속해서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승부를 봐야 했다.

나는 대신 델핀 선배를 바라보며 외쳤다.

“델핀 선배, 구덩이로 진입하겠습니다!”

델핀 선배도 결국 살점 둥지를 파괴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마리의 살점 씨앗이 바글거리는 곳이었다. 당연히 실전에서 가장 강한 나와 델핀 선배가 내려가야 했다.

“셀린, 세리아! 구덩이 위로 기어올라오는 살점 씨앗들을 견제하면서 엘시 선배를 보조해!”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땅을 박찼다. 그리고 구덩이를 앞에 둔 도약이 이어졌다.

살점 씨앗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불청객이 된 나는 준비한 선물을 보여주기로 했다.

공중에서 손도끼가 쏘아지듯 던져졌다.

콱, 하고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던 살점 씨앗 하나의 이마에 도끼가 틀어박혔다. 이를 본 나머지 살점 씨앗들이 곧 괴성을 토해내며 적의를 표했다.

그러나 손도끼는 한 번 더 궤적을 꺾어 또 하나의 살점 씨앗을 절명시켰다. 정수리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핏물, 그리고 쿵, 하고 내가 구덩이에 내려섰다.

저벅저벅 걸어, 나는 손도끼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델핀 선배의 금빛 오러가 나와 살점 씨앗들 사이에 빗금을 그었다.

화르륵, 일어나는 불길에 살점 씨앗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났다. 개중 몇몇은 몸에 불이 옮겨 붙어 바둥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다.

수십 쌍의 눈동자들이 나와 델핀 선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살점 둥지가 기괴한 소리를 터트리자, 살점 씨앗들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불이 붙어 괴로워하던 살점 씨앗조차 우리를 응시할 정도였다.

마치 고통을 잊어버린 듯했다.

나는 흐, 하고 웃었다. 델핀 선배와 내 눈이 마주쳤다.

“좆된 것 같은데요?”

그러자 델핀 선배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하, 언제는 이기게 해준다더니…….”

그리고 교차하듯, 나와 델핀 선배가 한 걸음씩을 내딛었다.

서로의 등 뒤를 노리던 살점 씨앗이 반 토막이 나서 쓰러졌다. 괴물이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 이상, 이제는 일격에 죽여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와 델핀 선배라면 가능했다. 다만 언제까지 가능할지 알 수 없을 뿐이지.

“……조금만 더 믿어보겠어.”

델핀 선배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의 발이 땅을 박찼다. 수십 마리의 살점 씨앗들은 기다렸다는 듯 도약을 시도했다.

이길 수 있을까. 나는 흐트러진 호흡을 억지로 정돈하며, 흐릿한 불안을 담아 정면을 노려보았다.

그 끝, 살점 둥지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치 비웃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동굴 안에 음산하게 내리깔리는 괴기한 음성.

그 크기만 보더라도 압도적이었다. 성인 남성 둘의 키를 아득히 상회하는 높이, 대략 6m는 넘어 보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나는 손으로 품속을 더듬었다.

양피지의 꺼끌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이제 기나긴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었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