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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138화 (138/649)

〈 138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2)

* * *

기숙사의 학생식당은 새벽녘에도 빛과 열을 뿜었다.

이른 아침부터 수련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식당도 그에 맞춰 좀 더 이른 시간에 아침을 준비해야 했다.

아카데미에 재능만으로 입학할 수 있는 천재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재학생들은 뼈와 살을 깎는 노력으로 그 재능을 갈고닦았기에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은 대개 수련이 습관화되어 있는 법이었다.

나는 북적이는 학생식당에 들어섰다. 그러자 웅성거리던 식당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힐끔힐끔 나를 살피는 눈동자들이 느껴졌다. 흐음, 하고 내 입에서는 시큰둥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황실을 건드렸고, 아픈 기억이 남았으리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시작될 것은 하나뿐이었다.

따돌림, 그리고 전방위적인 압력과 협박이 시작될 터였다.

아무리 황족이라 하더라도 아카데미에서는 일개 학생으로 생활해야 했다.

물론 그 말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일단 그러한 규정이 존재하는 이상 황족을 건드렸다고 아카데미에서 불이익을 줄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것인지, 비공식적으로는 온갖 종류의 응징이 가능했고 또 있어 왔다.

예를 들어 지금 나를 두고 학생들이 보이는 태도가 그랬다.

몇몇은 적의 넘치는 시선을 내게 보내고 있었고, 몇몇은 두려움에 떨며 내 눈을 피했다.

마치 돌림병 환자라도 된 느낌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큰일 나는, 그러한 존재.

제국 황실의 이름값이란 그토록 무시무시했다. 내가 황실을 건드렸다고 하면, 걸리는 이는 단 한 사람밖에 없는데도 그랬다.

제국의 5황녀, 시엔.

마법학부 1학년 수석이자, 아카데미에서 가장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우선 황족답지 않게 붙임성 있는 그 성격이 호평일색이었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에 평민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무엇보다 예쁘기도 하고.

황위계승권과는 거리가 멀지만, 애교도 많고 한 떨기 꽃과 같은 그 외모 덕에 유독 황제의 귀여움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황녀가 나를 찍었다, 최소한 어떠한 계기는 있었을 터였다.

어떻게 하면 사정을 알아볼 수 있을까.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황실에 찍힌 이상 나와 친한 사람들과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폐를 끼치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우선 내 믿을 만한 두뇌인 레토는 제외.

셀린도, 세리아도, 엘시 선배도, 델핀 선배도, 심지어는 엠마도 안 됐다.

그렇게 내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을 무렵의 일이었다.

누군가 툭, 하고 내 어깨를 치며 지나갔다.

그리고 엎어지는 식판과 내 바지에 쏟아지는 음식물들.

내 눈이 힐끔 측면을 향했다. 내 곁에 바짝 붙어, 일부러 부딪친 티를 내는 남학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검술학부 3학년이었다. 동기와 모두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아니, 씨발! 야, 너는 눈깔이 없냐? 왜 거기 서 있고 지랄이야?”

아주 고전적이시군, 나는 속으로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일행의 대처도 뻔했다. 그들은 그 남학생을 말리는 체하며 내게 조롱을 건넸다.

“그만, 그만해라. 지금 쟤가 눈에 보이는 게 있겠냐?”

“인생 좆망했는데.”

키득거리며 떠나가려는 그들의 뒷모습을 말없이 보고 있던 내 발이 슬쩍 들렸다.

그리고 팍, 하고 발목을 앞에서부터 뒤로 밀어버리는 깔끔한 발차기.

느닷없는 기습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검술학부라도 고작해야 중위권, 지금의 내 실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미끄러지듯 하늘에 붕 떴던 사내의 몸이 땅바닥에 철퍽 엎어졌다. 아프기도 아프겠지만, 쏟아놓은 음식물이 엉망진창으로 튀며 옷을 더럽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대응에 남학생도, 그의 일행도 우둑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식당의 학생들조차도.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미안, 실수였어. 그러게 앞 좀 잘 보고 다니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남학생의 표정이 새빨개졌다. 그는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며, 울컥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 이 미친 새끼가……!”

그러나 그것이 한계였다.

내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고 있자, 남학생은 주춤거리더니 이내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남학생의 친구들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질질 끌듯 그를 데리고 떠났다. 그들이 속닥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와, 시발 눈빛 존나 무섭네 진짜…….”

“손도끼 살인마, 살인마 하더니 진짜 몇 명 죽여본 거 아니야?”

무슨 헛소리를, 나처럼 평화를 사랑하는 귀족이 어디 있다고.

나는 헛웃음을 머금으며 슬쩍 시선을 내렸다. 땅바닥에는 아직 식판이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비치는 내 눈동자는, 조금쯤.

피로해 보여서, 나는 무언가 잘못 보았나 싶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직 정신이 맑지 못했다.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내 눈이 떠나는 남학생 패거리의 뒤를 쫓았다.

**

내찌른 검을 단 한 걸음으로 피해냈다.

스치자마자 엉거주춤 따라오는 사내의 팔, 나는 이를 끌어안고 그대로 업어 메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뒷골목에 충격파가 울려 퍼졌다.

“……커헉!”

토막난 신음과 함께, 땅바닥에 처박힌 사내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그리고 내 등 뒤에서 느껴지는 두 사람의 기척.

상반신을 바로 세울 필요조차 없었다.

뽑아 든 손도끼가 휩쓸듯이 뒤에서 다가오던 사내의 다리 관절을 으깨버렸다.

“끄아아아악!”

으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오고, 그가 비틀거리며 옆으로 쓰러지자 내게 다가오던 또 한 사람의 자세가 흔들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검집 채로 뽑혀 나온 칼이, 사내의 옆머리를 강타했다.

비명조차 없었다. 눈동자가 일순 흔들리더니, 그대로 신형 하나가 비틀비틀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진 사람이 네댓 명 정도 됐다. 하나같이 신음을 흘리거나, 기절한 채 아무런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검을 다시 허리춤에 매단 나는 툭툭, 하고 손을 털어냈다.

내 눈이 벽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등을 벽에 기댄 채, 비척비척 다리를 내뻗으며 내게서 어떻게든 도망치려 하는 남학생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 얼굴에는 이미 많은 상흔이 존재했다. 물론, 전부 내가 만들어준 상처였다.

학생식당에서 내게 시비를 건 남학생이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공포에 질려 있었다.

“너, 너… 미쳤어?! 아카데미에서 폭력은 금지되어 있는 거 몰라?!”

“누구 말마따나, 인생 좆망해서 눈에 뵈는 게 없거든. 너도 정수리에 도끼 자국 내기 싫으면 입 다무는 편이 좋을 거야.”

내 평온한 목소리에 남학생은 더더욱 겁에 질려 히이익, 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저벅저벅 걸어 그의 앞에서 살짝 무릎을 굽혀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사실, 나는 폭력을 아주 싫어하거든… 그래서 지금 기분이 아주 나빠. 왜 내가 너희한테 폭력을 써야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만 깔끔하게 들어주고, 서로 털자. 응?”

남학생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고,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효율적이고 빨랐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고작해야 시비 한 번 걸었다고 뒷골목에 끌고 와서 일행을 전부 박살내 버려?

과하지 않나, 엘시 선배와 비교해도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의문을 가질수록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아직 정신이 몽롱했다. 반쯤 꿈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 고개가 휘휘 내저어졌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일단 내 목적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다시금 내 눈동자가 남학생을 향했다. 그는 이제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그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나는 따스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콱, 하는 소리와 함께 남학생의 머리 옆에 틀어박히는 손도끼.

도끼날을 중심으로 낡은 담벼락에 희미한 균열이 일었다. 결국 남학생은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그의 눈에서 고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쯤이면 앞으로 내게 보복하겠다고 설치는 일은 없겠지, 짧은 계산을 끝마친 나는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랑, 황녀. 둘 사이에서 있던 일 아는 대로 불어. 싹 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남학생은 궁금했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

제국의 5황녀 시엔은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었다.

먼 옛날에 멸종했다고 알려진 용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 황실의 자제답게, 그녀가 가진 마도에 대한 재능은 무척 뛰어났다.

1학년 수석임에도 불구하고 2학년 수석이나 3학년 수석과 그 실력을 비교하는 말들이 오르내릴 정도였다. 심지어 그 외모 또한 수려하기 짝이 없었다.

밤하늘처럼 단아한 빛을 품은 암청색 머리카락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옅은 회색 동공이 그랬다.

특히 그녀의 눈동자는 때때로 초점이 맞지 않아 더더욱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을 풍기곤 했다.

황제가 아끼는 딸이자, 미모는 가히 황궁의 숨은 진주라 할 만하고, 그 재능 또한 돋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러한 그녀가 살가운 말씨로 인사를 건네면, 그 누구라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여태껏 시엔은 그 가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쁜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녀였으니까.

적어도 그날 한 사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촤악, 하고 물줄기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시엔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 위로 맑고 투명한 액체가 후두둑 떨어질 때까지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전신이 흠뻑 젖어들었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제복과 망토가 축축히 물기를 빨아들였다. 그때까지도 시엔은 그녀에게 닥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웃는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얼어붙어 버려서.

피로에 젖은 금빛 눈동자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수통이 들려 있었다. 사내가 시엔에게 물을 끼얹은 범인이란 사실은 너무나 명확해 보였다.

그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벼락은 시원하십니까, 황녀 전하?”

그 메마른 말에는 그나마 희미한 웃음기라도 섞여 있어, 황녀는 그제야 그가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알았다.

미소 지은 채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 그것만이 황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순 미친놈 아니야, 이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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