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5)
* * *
폭음과 충격파가 뒤섞이며 파열음을 일으킨다.
곧이어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길을 가던 행인들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폭심으로부터 터져 나온 공기는 파열음을 일으키며 주위를 휩쓸었다. 옷가지와 머리카락 따위가 마구잡이로 펄럭였다.
고작 여인 하나가 땅바닥에 처박힌 결과라기에는 믿을 수 없는 위력이었다.
웅웅거리는 이명이 지나간 뒤에야 흙먼지가 차츰 가라앉았다. 그제야 폭음의 진원지를 살피는 시야가 조금 맑아졌다.
그곳에 서 있는 그림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무심한 금빛 눈동자가 흐릿한 안개 사이로 홀로 떠올랐다.
이안 페르쿠스,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심드렁하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지도 몰랐다. 마치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가 피로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얼어붙어 있었다.
시엔도, 호위기사들도, 지나가던 행인들조차도 멍하니 이안과 그 뒤에 처박힌 아이린을 번갈아 응시했다.
석재로 이루어진 도로에 균열이 쩍쩍 가 있었다. 그 중심지에 위치한 아이린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그마저도 타격이 너무 큰 탓인지 움찔거리는 정도가 한계였다.
단 일격이었다.
고귀한 핏줄을 수호하는 유능한 근위기사 하나가 전투불능에 빠졌다. 아직 셋이 더 남아있긴 했지만, 아이린이 그들 중 최고의 전력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근위기사들의 눈동자에 뒤늦은 공포가 맺혔다.
아카데미 3학년 수준이 아니었다. 마력의 양은 몰라도, 질이나 제어 능력 자체가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혹시 그의 정체가 숨겨진 마스터라도 된단 말인가.
물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마스터란 인류를 초월한 존재들, 그들이 지닌 마력 또한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웅대했다.
그에 비하자면 저 사내가 보여주는 무위는 보잘 것 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처럼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는 점부터가, 사내와 그들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격차를 증명하고 있었다.
불가해한 존재였다. 아이린을 제압한 방식조차 알 수 없었다.
근위기사들은 무심코 뒷걸음질을 쳤다. 단 한 번의 공방만으로 이안의 위험도는 한도 끝도 없이 치솟았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사내는 헛웃음을 삼켰다. 기가 찬다는 기색이었다.
대번에 그의 금빛 눈동자가 사나워졌다.
“근위기사 꼴이 말이 아닌데… 한꺼번에 덤벼, 칼로만 상대해 줄 테니까.”
그리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뽑혀 나오는 검 한 자루.
이안의 도발에도 근위기사들은 한동안 머뭇거렸다. 그러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주군인 시엔을 한 번 바라보았다.
시엔은 여전히 물을 뚝뚝 흘리며,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녀가 하고 있을 몰골이라기엔 지나치게 처량했다.
그제야 근위기사들은 각오가 선 듯했다.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인 그들은, 곧바로 땅을 박찼다.
퉁, 하고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거리가 삭제된다.
세 자루의 검이 동시에 엄습하고 있었다.
조금 비겁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들 중 최강자인 아이린이 당했다. 자존심을 챙겨가며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했다.
기사단의 힘은 개개인의 역량에만 있지 않았다. 그 또한 중요한 요소겠지만, 기사단의 진정한 공포는 합공에서 드러나는 법이었다.
굳이 검을 패용하지 않더라도, 기사들은 하나하나가 인간 흉기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생토록 검도에 매진하여 육체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러한 기사가 자그마치 셋이다. 협동동작을 훈련받은 그들의 화학작용은 단순합산이 아니라 곱연산으로 계산해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동시에 쏘아진 듯하지만, 세 기사의 검은 각각 오묘한 시차와 방위를 점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쏘아진 검은, 횡으로.
두 번째로 쏘아진 검은, 종으로.
마지막으로 쏘아진 검은 앞선 두 궤적의 틈새를 노려 파고드는 찌르기였다. 급소를 염두에 둔 듯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매서웠다.
첫 번째, 두 번째 검격을 넘기더라도 최후의 일격만큼은 허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정밀한 계산이 필요한 작업이었으나, 이들은 반복적인 훈련 경험만으로 이를 대체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이안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단지 그들의 쇄도를 잠자코 지켜보았을 뿐.
그렇게 금빛 눈동자에 새겨지는 세 줄의 실선이 점차 다가올 무렵.
느닷없는 올려차기가, 수평선을 그리던 첫 번째 검격을 강타했다.
캉, 하는 충돌음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 울려 퍼졌다.
살점과 금속이 맞부딪히며 낼 소리는 아니었다. 그 결과 또한 마찬가지였다.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쪽은 도리어 검이었다.
궤적이 급격히 흔들리자, 첫 번째로 쇄도하던 기사의 자세가 엉성해졌다.
뒤이어 따라오던 두 번째 검격 또한 자연히 검로가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틈새를 파고드는 것은, 빛살과 같은 이안의 검.
푹, 하고 두 번째 기사의 어깨에 검이 틀어박혔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기사의 입이 벌려졌다. 비명이라도 내지를 듯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러나 차마 소리는 터져 나오지 못했다. 고수들의 공방은 그보다도 빨라야 했으니까.
한 걸음, 이안이 거리를 좁힌다.
으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안이 찌르던 검을 비스듬히 회수해서, 폼멜로 찔러 들어오는 세 번째 기사의 팔 관절을 박살내 버리는 소리였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분명 빈틈을 점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세 번째 기사의 검은 이안의 옆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공간이 뒤틀린 듯한 광경이었다.
두 걸음, 이안이 더욱 기사들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이안을 향하는 내려베기.
처음에 발차기를 얻어맞은 기사였다. 그는 흔들린 자세에서도 온힘을 다해 검을 그어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이 더 빨랐다.
단지 두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사내는 어느덧 기사의 지척까지 다가서 있었다. 검은 그보다도 빨랐다.
기사의 팔에 은빛 실선이 그어지고, 그 자국은 곧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촤르륵, 하고 터져 나온 핏물이 전투의 종막을 알렸다. 시간은 다시금 정속으로.
하나, 둘, 셋. 마치 정밀시계로 잰 듯 기사 셋의 신형이 사이좋게 포개졌다. 차례대로 풀썩 쓰러지는 그들의 모습은 짚단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때 이안은 이미 기사 셋을 지나친 뒤였다. 그의 검이 칼집에 품어졌다.
“끄아아아아악!”
“크으, 아아악!”
팔을 잘린 기사와 어깨를 관통당한 검사는 당연히 전투속행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팔 관절이 으스러진 기사 하나만큼은, 이를 악물고 몸을 강제로 일으켰다.
그리고 남은 손으로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훅, 하고 그의 신형이 이끌리듯 앞으로 기울어졌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어깨를 쥔 이안의 팔뿐.
그 다음으로 벌어질 일은 뻔했다. 이미 본 적이 있는 광경이었으니까.
기사의 눈이 일순 공포로 물들었다.
쿵, 하고 흙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이안은 귀찮다는 듯 팔을 슥슥 휘저어 흙먼지를 해치고 나왔다. 그가 남은 기사 셋을 해치울 때까지 필요한 시간은, 고작해야 몇 초에 불과했다.
훈련된 시각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어떠한 공방이 오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단지, 행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 결과뿐.
“끄흐, 파, 팔이이이익!”
“크, 으, 아으윽…….”
기사 하나는 팔 하나가 절단되어 피를 쏟으며 울부짖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관통된 어깨를 부여잡고 있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땅바닥에 처박힌 채 혼절한 뒤였다.
모두 한 사내가 만든 참상이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행인들의 등줄기를 타고 섬찟한 한기가 흘렀다.
근위기사단의 합격을 유유히 돌파한 사내는 서슴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기사들의 비명을 등진 채 걷던 그는, 어느 한 지점에서 우뚝 섰다.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시엔의 앞이었다. 어느덧 그녀의 표정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살갑던 첫인상과는 정반대였다.
원초적인 우울함과 차가움이 서린 얼굴이었다. 그조차도 아름다웠지만, 그 입가에 맺힌 조소가 어딘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그 송곳과 같은 미소를 앞두고, 사내는 평탄한 어조로 말할 뿐이었다.
“호위기사들의 수준이 처참하군요. 정신 교육이 필요하겠습니다.”
그 조롱인지 조언일지 모를 말에 흐, 하고 시엔은 웃음소리를 삼켰다. 차갑디 차가운 냉소였다.
암청빛 머리카락 끝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대로 얼어붙지 않을까 싶을 만큼.
“……얕봤네요, 제 실책입니다. 이안 경.”
황녀는 더 이상 ‘선배’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지금 발화하는 주체의 신분을 일부러 각인시키려는 듯했다.
통상적인 하급 귀족이라면 덜덜 떨기 시작해야 정상이었다. 아무리 황위계승서열에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황족은 황족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시골 자작가쯤은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힘이 있었다. 그럴 만한 의지와 시간만 있다면 말이다.
이어지는 시엔의 목소리는 서늘하다 못해 무심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음성이 납작한 운율을 형성했다.
이안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둘의 대화는 마치 밀랍인형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듯 느껴졌다.
“……감당할 수 있나요?”
“무엇을 감당해야 합니까?”
“황실의 분노.”
오가는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차가운 분위기였다.
황녀의 연회색 눈동자가 말없이 이안을 응시했다. 그녀의 암청빛 머리카락에서는 여전히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인간이 언제 제일 무서워지는지 알고 있나요? 적의를 가지고, 괴롭히기 시작할 때야말로 그 인간의 밑바닥을 보게 되죠… 저는 수없이 봐 왔어요, 그리고 인간이 무엇을 제일 원하고 두려워하는지도 잘 알고 있죠.”
이안은 물끄러미 황녀를 응시했다. 그의 다물어진 입은 좀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황족에게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그의 태도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 점이 못내 분했는지, 시엔의 협박이 더욱 가열차게 이어졌다.
“가족과, 주변 사람, 당신이 사랑했던 그 모든 것을 망가트려 줄게요. 그게 제 특기거든요.”
“……얼마나 필요하겠습니까?”
느닷없는 반문이었다.
시엔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 그러나 이안은 여전히 평탄한 어조로 되물을 뿐이었다.
“시간 말입니다. 얼마나 필요하겠습니까, 제 모든 것을 망가트릴 때까지는.”
“……세 달.”
싸늘한 결기가 서린 목소리였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맹수는 그토록 무서웠다.
고작 세 달이면, 한 인간의 모든 것을 망가트릴 수 있다는 자신감.
당사자가 아닌 이들조차 간담이 서늘해지는 협박이었다. 그럼에도 이안에게서는 아무런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말없이 황녀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세 달이면 충분하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당신에게는 기회가 남아있어요.”
한 걸음, 황녀가 사내에게 다가섰다.
여전히 이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연회색빛으로 물든 여인의 동공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두 걸음, 이제 지척이었다. 황녀는 들릴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사내에게 속삭였다.
“지금 이곳에서, 무릎 꿇고 제 발에 입 맞추세요. 그렇게 제 충견이 되는 거예요… 짖으라면 짖고, 죽으라면 죽는.”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죠. 돈? 권력? 여자? 가지고 싶은 대로 고르세요. 황실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습니다.”
그제야 사내의 입에 흐, 하고 되다 만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내 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다.
“그러지 않으면?”
“……말했잖아요?”
황녀의 입가에 다시금 싸늘한 조소가 맺혔다. 그녀가 속삭였다.
“당신, 울고불고 해도 멈추지 않을 거야. 가문부터 시작해서, 당신의 절친한 친구들까지 전부 다 고통스럽게 만들어 줄게… 하급 귀족 따위가, 감히 황실을 건드리고 무사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이제는 경어조차 아니었다. 노골적인 적의와 증오가 응어리진 협박이었다. 사내는 재미있다는 듯 눈을 감았다.
“세 달이라.”
이안의 고개가 선선히 끄덕여졌다. 알겠다는 뜻이었다.
황녀는 이제 결정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표시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렇게 황녀와 이안의 거리가 벌어진, 그 찰나.
이안의 손이 허리춤을 향했다. 눈 뜨고도 반응할 수 없는 속도였다. 눈을 깜박이는 사이, 손도끼가 뽑혀 나왔다.
빛살을 그리며, 쏘아지는 궤적.
황녀의 눈이 부릅떠졌고, 그 다음으로.
“으, 꺄아아아아악!”
핏물과 함께, 여인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