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6)
* * *
“으, 꺄아아아아악!”
소름 끼치는 비명이 핏물과 함께 터져 나왔다.
솟구친 생명의 흔적이 세상에 자국을 남기려 흩뿌려졌다. 땅 위에, 옷 위에, 그리고 머리카락 위에.
황녀는 눈을 부릅뜬 채로, 조심스레 제 뺨에 손을 가져다댔다.
핏방울이 묻어 나왔다. 일순 그녀의 연회색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비명을 내지른 여인은 황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측면에 쓰러져 있다가,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이안을 기습하려 들었던 아이린이었다.
제 주군을 위해 다시 검을 쥐려던 그 순간, 아이린의 어깨에는 도끼날이 박혀 버렸다.
내던져진 도끼의 운동량은 무시무시했다. 단번에 아이린의 어깨뼈를 반절이나 파고들었을 정도였다. 못해도 골수까지 타격이 미쳤을 터였다.
그러지 않아도 누적된 충격이 가장 컸던 아이린이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아이린은 결국 단말마와 같은 비명과 함께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깊이 틀어박힌 도끼가 신경까지 건든 탓인지, 널브러진 여기사의 몸은 옅은 경련을 반복하고 있었다.
흐으, 흐으으. 악물어진 잇새로 새어나오는 거친 숨소리가 그녀의 고통을 대변했다. 어깨에 꽂힌 도끼조차도 뽑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린의 몸이 움찔움찔 떨리며, 꿈틀거린다.
자의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도를 넘어선 고통과 경각에 달한 생명이 원인이었다. 육체가 발악처럼 살려달라며 경련하고 있었다.
무력하고도, 잔혹한 광경이었다.
시엔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이 맺혔다.
제 뺨에 묻은 핏물의 온기와 비린내가, 지독히도 역겹게 느껴졌다. 시엔의 눈이 황급히 사내를 향했다.
이안은 아이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그까짓 처량한 비명 따위는 몇 번이고 들었다는 듯이.
대신 그는 진중한 목소리로 시엔에게 물었다.
“황녀 전하, 그러한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시엔은 주눅이 들고 말았다.
오랜만에 드는 감정이었다. 그녀는 무심코 고개를 내저으려다가, 가까스로 참아냈다.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도무지 당돌한 태도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녀의 뺨과 머리카락을 적신 핏물이 물방울과 뒤섞여 분홍색 결정을 떨구었다.
미친놈, 황녀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상대는 미친놈이었다. 폭력을 행사하는 데 아무런 주저가 없었다.
진짜로 황족이고 뭐고 저 도끼로 찍어버릴지도 몰랐다. 황녀는 처음으로 본능적인 공포라는 감정을 이해했다.
황녀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곧 그녀의 시선이 내리깔렸다.
무서웠지만, 동시에 비참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을 때마다 쓴맛이 느껴졌다. 진정하면, 진정만 한다면 다시 한 번 당당하게 쏘아붙이리라.
시엔은 그렇게 몇 번이고 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정작 고개를 치켜들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러든 말든, 사내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제국 황실이든, 성국의 교황청이든, 남부 열왕국의 원탁이든 그 모든 통치 체제가 의미가 없어지는 미래 말입니다… 돈? 권력? 여자?”
우스운 소리를 들었다는 듯, 사내의 입에서 텅 빈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가 최초로 보인 감정 변화였다.
그리고 이내 표정이 가라앉는다. 싸늘하고 무감정한 눈빛.
금빛 눈동자에 이글거리는 분노가 맺혀 있었다. 농축된 살의와 원독이 맹렬히 타오르며 시엔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 순간 황녀의 연회색 동공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흐릿하지만, 보인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 강렬한 감정의 잔향에, 시엔은 숨을 헐떡였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제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하잘 것 없습니다.”
이안의 손 하나가 자연스레 들려졌다. 그러자 훅, 하고 시엔의 뺨을 스치며 돌아오는 손도끼.
“흐, 흐읏……!”
시엔은 놀란 듯 신음을 흘리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동그랗게 뜨인 그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비쳤다.
이안의 손에 들린 도끼에서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린의 어깨를 박살냈다는 증거였다.
이제 구도는 정반대였다.
이전까지는 시엔이 이안을 몰아붙였다면, 지금은 시엔이 이안에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치 엄격한 스승을 앞에 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흘깃거리며 시엔은 이안의 눈치를 살폈다. 남의 눈치를 살펴보기는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이안은 황녀가 어떤 감상을 품든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몇 번이고 시엔의 말을 되뇌였다.
“……세 달, 세 달이라.”
우습다는 표정으로 그 말을 곱씹던 이안은, 이내 흐, 하고 되다 만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고개가 내저어졌다.
시엔에게는 그것이 마치 협박처럼 느껴졌다.
‘나한테는 3초면 충분한데.’
그녀의 목숨을 끊을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이안은 시엔에게 새로운 조건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너무 길군요. 가능하면 한 달 이내로 해보시죠.”
그와 동시에 사내의 손이 다시 한 번 팍, 하고 허공을 후려쳤다.
파공성이 일어나며 시야가 흔들렸다. 반발력으로 이는 충격파조차 웅혼한 울림을 터트렸다.
시엔은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또 다시 핏물이 뿜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비명과 함께였다. 시엔은 제발 그것이 끝이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비명과 핏물의 연회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아이린과 호위 기사들이 번갈아 가며 비명을 내질렀다. 시엔은 도살장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도축되는 가축이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측근들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훅, 하고 이안의 손에 손도끼가 돌아온 것은 비명조차 들려오지 않을 때였다. 철퍽이며 살점을 파헤치는 소리와, 옅은 신음만이 울려 퍼질 뿐.
이안은 한동안 그가 만든 처참한 풍경을 감상했다. 그러더니 황녀에게로 시선을 옮겨 물었다.
“……몇 초 걸렸습니까?”
시엔은 눈을 감은 채 부들부들 떨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몇 초라니, 영겁 같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이안은 말없이 손도끼에 묻은 핏물을 털어냈다. 그 도끼날에는 샛노란 골수까지 묻어 있었다.
그는 떠나려는 듯 걸음을 옮기려다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다시 호위기사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모두 헐떡이며 넋을 놓고 있었다. 벌려진 입에서는 침이 질질 새어나오고 있었고, 파르르 경련하는 몸뚱아리는 그들이 겪은 폭력의 참상을 구현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이는 아이린뿐이었다.
그녀는 신음조차 하지 못하고, 흐릿해진 눈빛으로 이안을 응시했다. 공포와 불신이 담긴 눈동자.
처참히 꺾인 여인의 말로였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머금었다.
황금빛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호위라는 자들이, 주군을 뒤에 두고 망설이기까지 해?”
여실한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연하의 사내가 주제 넘게 훈계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마치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자가 그들을 책망하는 듯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아이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떨구었다.
기사 실격이었다. 부정하기가 힘들었다.
“네 주군이 당해야 했던 몫이다. 기쁘게 받아들여.”
시엔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만약 호위 기사들이라도 없었다면, 저 도끼날에 묻어있는 피는 그녀의 몫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다행스럽게도,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사내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저벅저벅 걸어 제 갈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반파된 중앙대로와, 널브러진 근위기사단 따위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였다.
눈을 감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던 시엔은, 그제야 용기를 되찾았다.
“……감당!”
우뚝, 하고 사내의 걸음이 멎었다. 뒤이어 흘깃 뒤를 돌아보는 금빛 눈동자.
황녀는 그 눈길에 화들짝 놀라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럼에도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는지, 반복해서 내뱉어지는 말이 하나 있었다.
“가, 가, 가…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녀의 볼에 옅은 홍조가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권력을 가지고 위협하는 자의 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말하자면 궁지에 물린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는 모양새였다.
지금까지는 스스로가 맹수라 생각했는데, 이안이라는 진짜 맹수를 마주하니 알 수 있었다.
시엔은 고작해야 한 마리의 고양이에 불과했다. 진정한 괴물에게는 혀와 금화와 권력이 필요없었다.
시엔이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사내의 눈이 잠시 측면을 향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기색을 보이던 그의 입이 열린 것은, 잠시 후.
“어차피, 감당은 제가 안 합니다.”
옅은 웃음기마저 띤 대답이었다.
그 뜻을 알 수 없어 시엔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사내는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녀에게는 그를 붙잡고 자세한 사정을 캐물을 용기가 없었다.
그것이 ‘황녀 피벼락 사건’의 전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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