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143화 (143/649)

〈 143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7)

* * *

남학생으로부터 기나긴 이야기를 전해들은 내 감상은, 단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와, 미친놈이네.”

무심코 탄성을 내지르자 남학생은 히이익, 하고 더욱 몸을 웅크렸다.

그의 눈동자가 공포로 가득 차올랐다. 일렁이는 물기가 그의 정신 상태를 증언하고 있었다.

마치 정신병자를 보는 듯한 눈이었다.

그러든 말든,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미래에서 온 ‘나’라면 몰라, 내게는 황실을 건드리고 생존할 수단이 전무했다. 그것도 3개월의 말미를 주겠다는 것을 한 달 내로 처리하라고 했다니.

지금쯤 페르쿠스 영지가 어떤 꼴을 당하고 있을지 두려울 정도였다.

혹시 그 인간에게는 가족애라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나?

하기야, 과거의 자신조차 학대하는 인간이었다. 자기애도 없는 인간이 가족애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의문점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너희는 그걸 듣고도 나한테 깝친 거야?”

“화, 황실이 뒤를 봐준다고 했다고요! 게다가 그때는 호위 기사들이 진검을 뽑아들었으니 정당방위라 쳤지만,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학생을 폭행하면… 커억!”

더 듣기 싫어서, 나는 손도끼의 뒷면으로 그의 옆머리를 후려쳤다.

동공이 풀리더니 남학생의 몸이 힘없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혀를 쯧, 하고 찼다.

“너희는 더 맞아도 싸.”

아카데미에 신고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퇴학보다 나와 내 가문이 고사하는 쪽이 더 빠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렇게 몸을 일으키고 걸어가던 내 눈에, 문득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쓰러진 학생들 중 하나의 뒷주머니에서 삐죽 튀어나온 물건이었다. 어딘가 익숙한 외형이라 나는 무심코 그 종이를 펼쳐 보았다.

아카데미 내에 도는 신문이었다. 그곳의 1면에는 내 용모파기가 대문짝만하게 그려져 있었다.

[손도끼 살인마, 이안 페르쿠스. 그에게는 정도라는 것이 없나? ‘황녀 피벼락 사건’의 진실!]

살인마는 무슨, 지금껏 사람이라고는 마인 하나만 죽여 봤을 뿐이었다.

게다가 ‘황녀 피벼락 사건’이라니, 오늘따라 유독 구리게 느껴지는 명명이었다.

그러한 감상과 함께 나는 신문을 구깃구깃 뭉쳤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던져버렸다.

툭, 하고 쓰러진 남학생 중 하나의 머리에 튕기며 신문지 공은 데굴데굴 굴렀다.

핏물을 머금으면서.

내가 떠난 자리에는,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신음하거나 기절해 있었다.

**

폭력은 효율적인 수단이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바로 지금과 같은 경우가 그랬다. 강의를 들으러 이동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피해가려고 움직이면 또 다시 내 앞으로, 다시 되돌아가면 똑같이.

내 눈동자에 짜증스러운 기색이 어리자 여학생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래요, 이안 선배? 설마 우리도 손도끼로 내려치려고?”

“에이, 우리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키득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내가 그들을 폭행하지 않으리라 믿는 얼굴들이었다.

물론 이대로 땅을 박차면 이들쯤은 간단히 따돌릴 수 있었다. 후배들 따위한테 뒤쳐질 만큼 나는 약해빠지지 않았고, 심지어 발재간은 그 이전부터 내 전문 분야였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 내게는 도망칠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제국 황실을 건드렸는데 아카데미 퇴학?

설마 진심으로 내가 그런 걸 신경 쓰리라 생각하는 건가?

그러지 않아도 골치가 아파 죽겠는데, 앞에서 알짱대며 도발을 해오니 절로 짜증이 일었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다리에 칼자국을 남겨줘? 아니지, 그래도 앞에서 얼쩡거렸을 뿐인데 골절 정도로 충분했다.

내 손이 은근슬쩍 허리춤으로 향하던 그 순간.

“……야.”

여학생들의 뒤에서,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리둥절한 여학생들이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고깔모자를 쓴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블루사파이어를 닮은 눈동자, 인형과도 같이 사랑스러운 외모였다.

그러나 그녀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는 여학생들의 얼굴이 헬쑥해졌다.

“지금 너희 뭐하냐?”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봐도 엘시 선배의 기분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여학생 중 하나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그, 그러니까… 저, 저희가 지나가려고 하는데 이안 선배가 자꾸 길을 막아서… 어어아아아아아악!”

그러자 변명을 주워섬기던 여학생 하나가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았다. 어떠한 전조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여학생들은 공포에 젖은 눈빛으로 엘시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엘시 선배는 뻔뻔스럽게도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왜 주저앉아? 다리에 쥐라도 났어? 이 씨발년이 진짜… 야, 너 선배가 우습냐?”

“아, 아닙니다… 아아아아아아악!”

헐레벌떡 몸을 일으키려던 여학생은, 또 다시 비명을 내지르며 땅바닥에 엎어졌다. 그녀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감전의 증상이었다.

엘시 선배가 범인임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명확한 물증이 없어서, 여학생들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일어서, 어쭈? 계속 주저앉아 있을 거야? 이대로 뒷골목에서 티타임이라도 가져볼까? 응?”

여학생은 다급히 고개를 내저으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 아닙… 꺄아아아아아악!”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들이 엘시 선배를 향했다. 그러나 엘시 선배는 도무지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입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오랜만에 보는 미소였다.

“이야, 요즘 세상 많이 좋아졌다. 선배가 일어나라고 하는데 끝까지 버티네, 이 썅년이 진짜… 야, 너희도 엎드려.”

여학생들의 공포에 젖은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아무리 그래도 대낮의 대로에서 기합을 받는 것은 좀 아니지 않느냐는 얼굴, 그러자 엘시 선배는 이내 노호성을 내질렀다.

“엎드리라고, 씹새끼들아! 내 말 안 들려?!”

그러자 정신이 바짝 들었는지 여학생들은 곧바로 땅바닥에 엎드리려 들었다. 그 다음 순간.

파지지직, 하고 새하얀 전하가 튀며 비명이 울려퍼졌다. 감전된 근육이 제멋대로 수축하며 땅바닥에 여학생들의 얼굴이 쳐박혔다.

경련이 이는 신체들, 누가 봐도 기합을 받을 상태가 아니었다.

잠시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행인들이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엘시 라이넬라와 관련되어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선 듯했다.

후우, 하고 엘시 선배는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분노로 달구어진 숨결이었다.

“엎드리라는데, 자꾸 엎어져? 야, 나랑 한 번 해보자는 거지?”

“아, 아닙… 흐끄으으으윽!”

이를 악물고 버티려고 해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여학생들은 땅을 굴렀고 어느새 지반에서는 탄 냄새가 났다.

울먹이며 침을 흘리는 여학생들은 더는 일어날 기력도 없어 보였다. 엘시 선배가 다시 한 번 수작을 부리려던 그 순간.

“……엘시 선배.”

내 제지에, 엘시 선배가 멈칫했다.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됐다는 뜻이었다.

엘시 선배는 잠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여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꺼져.”

여학생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듯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근육의 힘을 전부 소진한 것인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 뒷모습을 한동안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던 엘시 선배는, 그들이 떠나자마자 곧 총총이며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우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포상을 바라는 강아지와 같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에헤헤… 나 잘했지.”

그러면서 은근슬쩍 풀어진 얼굴로 엘시 선배는 내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얼른 쓰다듬어 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한참을 고민해도,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스윽, 하고 나는 손바닥으로 엘시 선배의 머리를 밀어냈다. 일순 의문으로 가득 찬 엘시 선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어째서 내가 그녀를 밀어내는지, 그 까닭조차 짐작도 할 수 없는 듯했다. 엘시 선배는 내가 무언가 잘못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최선이었다. 내게는 소중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어느덧 엘시 선배 또한 내 '소중한 사람' 중 하나가 된 지 오래였다.

전우였고, 친구였고, 그리고 또.

음, 애완동물?

나는 무심코 떠올린 불민한 생각을 고개를 저어 흩어냈다.

선배를 두고 애완동물이라니, 무례한 것도 정도가 있었다. 하물며 엘시 선배는 고위 귀족이 아닌가.

내 이상행동에 엘시 선배의 고개가 갸웃 기울었다. 나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엘시 선배.”

벌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자 엘시 선배는 곧바로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약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엘시 선배를 위해서도 단호하게 끊어낼 필요가 있었다.

내 엄숙한 선언이 이어졌다.

“한동안 저 볼 생각 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들은 엘시 선배의 표정은, 그래.

마치 유기당한 강아지와 같아서, 괜히 가슴이 쓰라렸다.

울먹이지는 말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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