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9)
* * *
쓰레기더미에 파묻힌 레토의 모습을 보자마자, 내 뇌리를 후끈한 열기가 달구었다.
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는 것과 직접 목도하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존재했다.
한동안 이를 으득으득 갈던 나는 곧바로 땅을 박차려 했다.
“……이 새끼들이, 진짜!”
“아서라.”
그러나 의외로 태연한 레토의 목소리에, 나는 그 자리에서 멈칫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키지 못하던 레토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네가 나서서, 뭐? 종일 내 옆에 붙어서 지켜줄 생각이냐? 오히려 네가 화난 모습을 보일수록 역효과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납득을 할 수가 없어서,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만둬, 이안. 나는 괜찮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끄응, 하고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내가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됐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끝까지 제 힘만으로 몸을 일으켰다.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레토는 담벼락에 등을 기댔다.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나는 머쓱해서 레토의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은 아니긴 했지만, 그럼에도 일단 원인이 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내게 미래의 영혼이 빙의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으니까 말이다.
한참 동안이나 입을 다문 채로 뒷머리를 벅벅 긁던 나는, 조심스레 사죄의 말을 꺼냈다.
“그, 미안…….”
“됐어.”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레토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그렇게 답할 뿐이었다.
그는 툭툭, 하고 제 옷가지를 손바닥으로 털어냈다. 그래도 냄새가 잘 빠지질 않는지 그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
이내 레토의 입에서 다시금 한숨이 새어나왔다. 곧 타이르듯 나를 위로하는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네 잘못 아니잖아. 그리고 이것도 뭐, 그 세계 멸망인지 뭔가를 막기 위해서겠지?”
솔직히 말해서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침묵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레토뿐만 아니라 나와 친분이 있는 이들은 비슷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레토는 내 표정을 보고 대략적인 사정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그는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도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믿고 상담할 상대는 그뿐이라 나는 한탄처럼 고민을 공유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래의 ‘나’는 왜 그랬던 걸까?”
그 질문이 내게 닥친 모든 문제를 관통하고 있었다.
미래의 ‘나’는 황녀를 도발했다. 아무리 황녀 쪽이 먼저 도발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매끄럽지도 않을뿐더러 폭력 행사도 너무 잔혹했다.
황녀와 ‘나’ 사이의 자세한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어도 최소한 대외적으로는 그랬다.
혹시나 단순히 화를 참지 못했을 뿐이라면?
그렇다면 더더욱 답이 없었다. 앞으로 나 혼자만의 힘으로 문제를 헤쳐 나가야 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한 내 불안을 잠재워 주는 것은, 늘 그렇듯 레토의 추론이었다.
그의 고개가 조용히 내저어졌다.
“그러지는 않을 거야. 전례라고 해봐야 두 번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 자식이 능동적으로 행동을 취하면 반드시 이유는 있었어.”
그러면서 그가 딱, 하고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허공에 그려지는 그림들.
푸르스름한 빛의 선들이 이어지며 어떠한 도형을 그려냈다.
늑대의 그림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냥했던 네임드급 마수.
“첫 번째 편지가 도착했을 때, 일주일 동안 미래의 ‘너’는 세리아와 인연을 만들었지. 그것이 비록 폭력적이긴 했어도, 세리아가 없었으면 수렵제에 참가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우승은 불가능했을 거야.”
그건 그랬다.
세리아가 없었다면 엘시 선배나 델핀 선배와 얽히는 일도 없었을 테고, 수렵제에서 우승을 거둘 만한 전력의 조 또한 만들 수 없었을 터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그려지는 그림은, 길포드 고아원의 전경.
“두 번째 편지도 마찬가지야. 그때 성녀에게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면, 네가 길포드 고아원으로 파견을 나갈 일도 없었겠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당연하다는 듯 이어지는 내 질문에 레토는 잠시 턱을 괴고 고민에 잠겼다.
마지막으로 그려지는 그림은 물음표였다.
“그걸 지금부터 알아내야 해. 하지만 최소한 단서는 있지… 그 일주일 동안, 황녀 전하를 도발하기 전에 그 인간이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났는지 찾아봐야 해.”
“통상적인 일정과 다른, 능동적인 행동 말이지…….”
나는 침음을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내가 기억을 잃은 동안 무슨 행동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레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짝, 하고 그가 손바닥을 마주치자 허공의 도형이 안개처럼 흩어져 버렸다. 레토는 진지한 눈빛으로 내게 조언했다.
“일단, 오늘 네가 찾아가야 할 사람은 두 사람이야. 하나는 델핀 선배고, 나머지 하나는 성녀님이지.”
“델핀 선배는 왜?”
성녀님이야 성국 소속으로 제국 황실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지만, 델핀 선배를 왜 찾아가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자 레토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혀를 쯧쯧 찰 뿐이었다.
“야, 제국의 5대 귀족이 장난이냐? 당연히 황실에 대한 정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어떻게든 정보를 캐내서, 견제부터 해. 지금 페르쿠스 영지가 어떤 꼴이 났을 것 같은데?”
다시 말해 델핀 선배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시간을 벌라는 뜻이었다.
델핀 선배에게 너무 민폐가 아닐까, 그러한 생각도 들었지만 민폐고 자시고 일단 내 가족들부터 살려야 했다.
5대 귀족 가문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미 늦었다. 시골 자작에 불과한 페르쿠스 가문은 한두 달도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고민에 빠진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던 레토는, 곧 지나가듯 한 마디를 던졌다.
“그래도 일단은 성녀님을 먼저 찾아가 봐.”
“왜?”
“얼마 전에 유렌이 그러던데? 네가 성녀님을 찾아갔다고.”
당연히 내 기억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미래의 ‘나’와 성녀가 만났다는 뜻이고, 단서 또한 그 만남에 있을 터였다.
어느새 동선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지금 내가 찾아가야 할 장소는 세 곳에 달했다.
신문부, 신전, 그리고 아이달로스 관.
우선 나는 레토의 조언을 받아들여 신전으로 가보기로 했다. 간단한 작별인사와 함께 등을 돌리려던 나는, 머뭇거리며 레토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쓴웃음을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신경 쓰지 말고 가라. 그리고 한동안 나랑 셀린 얼굴은 보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그래.”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아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레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내 등 뒤에 대고 외쳤다.
“그리고 다음에 또 그 자식 돌아오면, 한 대만 패도 되냐?!”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솔직히 황녀의 호위 기사들까지 몇 합만에 박살내는 인간을 팰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러한 생각과 함께 이를 악물었다.
무언가 수를 써야만 했다.
**
기껏 우편국에 도착해 받아온 편지의 내용은 무척 짧았다.
차라리 엽서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무게만큼은 만만치 않아서, 내 입에서는 또 다시 한숨이 새어나왔다.
To. 존경해 마지않는 오라버니께
오라버니의 멋진 지원 덕에, 상단이 망하기 직전입니다. 앞으로의 아카데미 생활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From. 오라버니를 사랑하는 여동생, 리아 페르쿠스로부터.
아무래도 벌써 시작된 듯했다.
제국 황실을 건드린 결과는 이토록 즉각적이었다. 곧바로 전방위적인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가문과 영지는 질식사에 이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제국 황실은 뒷짐을 지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제국 황실은 더욱 두려운 존재였다. 그들의 수족만으로 이럴진대, 그 무시무시한 수족들마저 굴종하는 절대권력이 분노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제국의 기나긴 역사에서 황실이 직접 나선 적은 손에 꼽았다.
하지만 그 결과만큼은 늘 한결같았다.
초토화, 아무리 권세 높은 가문이라도 황실의 역린을 건드리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에 비하자면 여동생에게 편지를 쓸 여유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우울한 낯빛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자꾸 내 등 뒤에서 따라붙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실 그 정체를 눈치 챈 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일부러 무시하고 있던 차였다.
관심조차 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떨어져 나가겠지, 하는 안일한 판단에서였다.
그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눈을 마주치자 움찔, 하고 몸을 굳히며 고개를 푹 숙이는 여인.
고깔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리는 인형 같은 외모의 소녀였다. 굳이 그 추론을 거칠 필요조차 없이, 그녀의 신분은 명확했다.
엘시 라이넬라, 어제 막 이별을 선언한 사이였다.
“엘시 선배, 왜 자꾸 따라다녀요?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한동안 얼굴 보지 말자고.”
그러나 엘시 선배는 주눅이 든 표정으로 흘깃흘깃 내 눈치만을 살필 뿐이었다. 그 애처로운 표정에 내 가슴이 또 다시 답답해졌다.
나는 달래는 듯한 어조로 엘시 선배를 설득하고자 시도했다.
“소문 못 들었어요? 제국 황실이랑 마찰 빚은 사람이랑 함께 다니면, 엘시 선배한테도 불똥이 튈 수 있다니까요.”
“……사, 상관없어.”
우물쭈물하던 엘시 선배는, 굳은 결의가 담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 나는, 너만 있으면 돼… 어, 어차피 먼저 그 년이 잘못한 거지?!”
“쉿!”
나는 화들짝 놀라서 코에 검지를 가져다대는 수밖에 없었다. 내 가슴이 절로 철렁할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황족에게 ‘그 년’이라니.
내 눈동자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길을 지나가는 행인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나는 재빨리 엘시 선배한테 다가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쳤어요?! 아무리 그래도 황족한테 그런 말을……!”
“하, 하지만 주인님을 건드리잖아!”
엘시 선배는 억울하다는 듯 그렇게 항변했으나, 그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내 손이 낯가죽을 한 번 훑었다. 마른세수를 해도 도무지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엘시 선배에게 계속해서 속삭였다.
“아니, 엘시 선배뿐만 아니라 가문까지 문제가 될 수 있다니까요?”
“상관없어! 조, 족보에서 파버리든, 말든…….”
처음에는 대차게 나오던 그녀였으나, 정작 족보에서 파인다고 생각하니 조금 무서운 듯했다. 어느새 엘시 선배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러면서도 애절한 눈빛으로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참 답답했다.
엘시 선배를 위해 내린 결단인데, 정작 엘시 선배는 내게 달라붙으려고 야단이었다. 그래서 내가 한참 동안 할 말을 잊고 있었던 그때.
“누, 누나!”
어디선가, 그러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내 눈이 흘깃 등 뒤를 향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귀티 나는 사내였다.
그래, ‘루핀 라이넬라’였던가.
엘시 선배의 남동생이라는 기억이 얼핏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이를 악문 채 내게 적의가 활활 타오르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슬쩍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엘시 선배의 손목을 잡아채고 질질 끌었다. 당황한 듯 엘시 선배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루핀이 목에 핏대를 올리며 외쳤다.
“누나, 혹시 저 새끼가 뭔 짓 하진 않았어? 내, 내가 말했잖아… 저 새끼 완전 미친놈이라고! 황녀 전하까지 건드렸다니깐?!”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엘시 선배의 눈동자가 멍청해졌다.
그러나 루핀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흘깃흘깃 나를 노려보는 시선에는 원독이 가득했다.
“저, 저 인간이 협박이라도 했어? 이제 괜찮아! 내, 내가 황녀 전하께 진언을 올려볼게… 저 녀석은 역귀 같은 놈이라서, 함께 있으면 큰일나!”
아무리 그래도 역귀라니, 사람 면전에 대고 할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핀잔이라도 줄까 하던 내 머릿속에, 문득 기발한 생각이 하나 스쳐지나갔다.
가만, 이대로 두면 어떨까?
내 설득이라면 몰라도 엘시 선배가 유독 아낀다는 소문이 파다한 남동생 루핀이었다. 가족의 말이라면 더욱 엘시 선배의 가슴에 와 닿을 가능성이 있었다.
가문까지 걸린 문제였으니, 아무리 그래도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기는 힘들겠지.
그러한 계산을 끝마친 나는 곧바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표했다.
“그래, 맞아요. 엘시 선배. 남동생 말 들어요.”
“……?”
루핀은 잠시 의아하다는 눈빛을 내게 보냈으나, 아직 혼란스러운 모양인지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말았다.
그의 설득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 하급 귀족 따위가 우리를 건든 것 자체가 애초에 정상이 아니었어! 저 또라이랑 얽히면 상처만 받을 거라고!”
“안타깝지만, 그 말대로입니다. 선배.”
“저 역도 새끼는 황녀 전하가 알아서 처리해 주실 거야! 그, 그러니까 이제 안심해도 돼… 누나, 이제 가자.”
“그래, 역시 남동생이 믿음직스럽네. 부럽습니다, 엘시 선배.”
루핀의 말과 나의 맞장구가 번갈아 가며 이어졌다. 이쯤 되면 엘시 선배도 알아들었겠지, 하고 엘시 선배에게로 눈길을 돌린 그 순간.
나는 잠시 침묵하고 말았다.
엘시 선배가 고깔모자의 챙을 꾹 눌러쓴 채로,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었다. 그제야 내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러나 루핀은 지난번에도 그랬듯 유독 눈치가 없어 보였다. 그는 침을 튀겨가며 나에 대한 비방을 이어갔다.
“저 살인마 새끼! 분명 모르는 사이 수십 명은 죽여봤을걸?!소문에 따르면 저 도끼에 악마의 혼이 서려 있다고…….”
“아니, 그건 좀.”
터무니없는 모함이었다. 그것만큼은 아무래도 정정할 필요가 있을 듯해서, 내가 조심스레 입을 연 그때.
“……야, 루핀.”
잇새로 새어나오는,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가 엘시 선배에게서 흘러나왔다.
이제 루핀의 눈동자가 멍해질 차례였다. 탁, 하고 루핀의 손을 뿌리친 엘시 선배는 망설임 없이 내 옆에 섰다.
그녀의 블루사파이어를 닮은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파르르 몸을 떨던 엘시 선배는, 강렬한 색채의 감정을 담아 외쳤다.
“너, 너… 지금 주인님께 무슨 말버릇이야!”
쩌적, 하고 루핀의 몸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의 입에서는, 넋이 나간 음성만이 더듬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주, 주인님?”
“그래! 너, 누나가 섬기는 주인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고!”
그렇게 루핀에게 차갑게 쏘아붙인 엘시 선배는, 곧 애처로운 눈빛을 내게 보냈다. 놀라울 정도의 태세전환이었다.
그러더니 이어지는 아양을 떠는 목소리.
“주, 주인님… 루, 루핀도 뭘 알고 하는 말은 아닐 거예요. 부, 부디 용서를… 아직 철이 없어서 그래요. 제, 제가 제대로 교육해 놓을 테니까!”
낑낑거리며 용서를 간원하는 강아지 같은 그 모습에, 루핀의 부릅떠진 눈에서 투둑, 하고 실핏줄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생각했다.
앞으로 엘시 선배를 함부로 떨어트려 놓아서는 안 되겠다고.
엘시 선배는, 폭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