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146화 (146/649)

〈 146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10)

* * *

루핀은 누나 엘시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라이넬라 가문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유독 유약했다. 건장한 체격의 형제자매 사이에서 왜소한 체구를 가진 것은 엘시와 그뿐이었다.

계속되는 무시와 괴롭힘에도 루핀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나약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취급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내심 그렇게 반쯤 포기한 채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한 루핀에게 한 줄기 빛이 있었다면, 바로 누나 엘시의 존재였다.

“야, 너 또 내 동생 괴롭혔어?”

루핀과 마찬가지로 왜소한, 심지어는 더 자그맣기까지 한 엘시는 늘 당돌했다. 어차피 덤벼봐야 승산이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텐데도 그랬다.

이를 악물고 달려들어, 어떻게든 루핀을 지키려고 애쓰는 그녀를 보며 루핀은 덜덜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끝이야 늘 뻔했다. 엘시는 엉망진창으로 당하고, 루핀은 울먹이며 제 누나에게 다가갔다. 그럴 때마다 엘시는 옅은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그 앙증맞은 손을 루핀의 머리 위에 얹은 채.

“루핀, 왜 그리 울상이야? 잘 들어… 어차피 마지막에 웃는 놈이 강한 거야. 저 돌대가리들이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말이었다.

심약한데다 마른 체구를 가지고 있는 루핀이었다. 그는 감히 형제자매들을 이기겠다는 생각조차 품지 못했다.

하물며 그보다 더욱 작고 가녀린 외형의 엘시가 하는 말이었다. 루핀은 엘시에게 의지하면서도, 그녀가 헛된 꿈을 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엘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의 말을 증명해냈다.

이를 악물고 마도에 몰두한 그녀는 곧 라이넬라 가문의 수재로 떠올랐다. 높은 성적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은 물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러자 엘시를 향한 주위의 대접도 달라졌다.

그 전까지 엘시를 괴롭히던 형제자매들은 그녀를 볼 때마다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자존심을 세워봐야 뒤뜰의 전기구이 신세가 될 뿐이었다.

독하고, 잔혹하고, 강하다.

루핀은 그래서 누나를 존경했다. 그 등 뒤를 쫓아 루핀은 열심히 마도를 공부했고, 엘시에 이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물론 입문 시기도 늦었고, 엘시만큼 독하지도 않은 그였다.

아카데미에서도 드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는 엘시의 곁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루핀은 만족했다.

애초에 누나를 이길 생각은 없었으니까. 적어도 루핀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는 엘시였다.

다만 동등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해도, 엘시를 동경하는 만큼 그 모습을 닮고 싶긴 했다.

루핀이 일부러 약자들을 조롱하고 괴롭히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엘시처럼 잔혹하고, 냉정하게 저항할 수 없는 약자들을 짓밟는다.

세간의 경멸을 사는 행동이라도 상관없었다. 그에게 있어 정의의 기준은 누나였다.

당신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약자를 비웃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인간들의 검은 속내쯤은 수없이 들여다본 루핀이었다. 그에 반해 한때 약자였으나 꺾이지 않은 엘시라는 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루핀은 평소와 같이 괴롭힐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마침 친구 하나가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다는 듯 그에게 말했다.

“야, 그거 들었냐? 그 ‘유르디나의 싸가지’ 말이야, 요즘 왕따 당하고 있다던데?”

무슨 소리냐는 듯 루핀의 의아한 시선이 친구를 향했다. 그러더니 곧 그의 인상이 살짝 인상 찌푸려졌다.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 소리가 이어졌다.

“미쳤어? 그러다가 델핀 선배가 알기라도 하면…….”

그러나 루핀의 친구는 혀를 쯧쯧 찰 뿐이었다. 그의 팔이 루핀의 어깨에 둘러졌다. 그는 속삭이며 루핀을 설득했다.

“그 델핀 선배가 묵인하고 있댄다. 그러지 않으면, 그 미천한 하급 귀족들이 감히 그 싸가지를 건드릴 수나 있었겠어?”

델핀 선배가 도대체 왜, 라고 질문하려던 루핀은 입을 다물었다.

하기야 고위 귀족들의 세계가 그랬다.

형제애가 있기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잠재적인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경향이 더욱 강했다. 무엇보다 하급귀족들이 반쪽짜리라지만 감히 유르디나의 핏줄을 건드리는 것만 봐도 확실했다.

델핀 유르디나, 그녀가 제 이복동생을 버렸다.

그렇게 루핀은 아무 생각 없이 폭력의 대열에 합류했다. 평소에는 건드릴 생각조차 못하던 유르디나의 천것을 괴롭히는 느낌은 각별했다.

적어도 손도끼를 든 웬 미친놈이 그의 앞에 등장하기 전까진 그랬다.

그의 주먹이 느닷없이 루핀의 안면을 강타하는 순간,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코뼈가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 가죽이 타격점을 중심으로 구겨지며 그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정신이 드니 주위에는 이미 널브러진 이들이 수두룩했다.

무서웠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며 위기를 알렸다. 그러나 루핀은 그때 엘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럴 때, 누나는 어떻게 했더라.

루핀의 주먹이 꼬옥 쥐어졌다. 그는 결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 나는 라이넬라 백작가의 삼남 루핀이다!”

황금빛 시선이 흘깃 그를 향했다. 루핀은 너무나 무서웠지만, 누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애써 떨리는 가슴을 달랬다.

“가, 감히 나를 건드려?! 지금이라도 당장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면…….”

“야.”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콱, 하고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손도끼.

무리였다. 루핀은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요즘 백작가 삼남은 쳐맞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하냐?”

그것이 끝이었다. 루핀은 절대로 이 사내만큼은 건드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그를 노려보는 황금빛 눈동자가 너무나 진지해 보였으므로.

“다음은, 없어. 오늘 알았지? 나 미친놈인 거.”

루핀은 사내의 경고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기억은 커다란 상처로 남았지만, 더는 사내와 얽히기 싫었던 루핀은 그날의 일을 재론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엘시의 반응은 달랐다. 그녀는 인상을 팍 구기면서 말했다.

“뭐? 미쳤어? 그 하급귀족 새끼가 내 동생을 건드렸는데,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누, 누나… 그, 그 새끼 완전 미친놈이라니깐!”

“하, 꼴값하네.”

엘시는 별 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야, 네 누나는 라이넬라 가문의 엘시야. 그깟 하급 귀족 따위한테 당할 것 같아? 기다려, 그 미친 새끼 내가 조져버리고 올 테니까.”

그럼에도 루핀은 여전히 조금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엘시는 늘 그랬듯 까치발을 들어, 엉거주춤 상반신을 숙인 루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하지 마, 내 동생 지킬 힘쯤은 있으니까.”

그 배시시 웃는 얼굴을 보며, 루핀은 말로는 걱정하면서도 내심 안도하고 말았다.

그래, 누나라면 괜찮을 거야.

그 누구보다 강하니까.

하지만 다음날, 엘시는 처참하게 깨져버렸다.

수십 명이 지켜보는 와중이었다. 단번에 선배 몇 명의 무릎이 꿇려지고, 엘시의 실드 위에 올라탄 사내는 손도끼를 연달아 내리쳤다.

비명과 함께 비산하는 빛의 입자들, 그렇게 엘시는 사내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오줌싸개’라는 멸칭까지 생겼다. 엘시는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그러다 밖으로 나선 루핀의 누나는, 그 악마 같은 놈에게 걸려 수렵제로 끌려가야 했다.

그때 말렸어야 했다.

아니, 수렵제에서 우승한 뒤 은근히 뽐내는 표정으로 총총 뛰어다닐 때까지만 해도 기회가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다음 실습 파견을 사내와 함께 가기로 했다며, 짜증난다는 얼굴을 한 엘시의 얼굴에는 옅은 기쁨의 기색이 어려 있었다.

돌아온 뒤는 더욱 가관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짓질 않나, 그러다 몽롱한 눈빛으로 헤, 하고 입을 벌리고 웃고 있질 않나.

엘시의 변모를 보며 루핀은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그 감정에서 애써 눈 돌리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던 차였다.

그랬던 그 앞에 놓인 현실은 너무나도 잔혹했다.

“주, 주인님… 요, 용서해 주실 거죠? 엘시 안 버리실 거죠? 네?”

투둑, 하고 툭 튀어나올 듯 부릅떠진 루핀의 눈동자에서 또 다시 실핏줄이 터져 나갔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엘시는 제 머리를 이안의 팔에 부비대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려 그 ‘하급 귀족 따위’에게 말이다.

엘시의 표정은 다소 조급해 보이기까지 했다. 버림받기 싫은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얼굴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무척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루핀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주는 광경이었다.

심지어 열심히 아양을 떠는 엘시의 눈동자에서는 은근한 애정마저 엿보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평생을 함께 자라온 루핀은 알았다. 그 애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달콤한 눈빛으로 이안을 올려다보던 엘시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울상을 지었다.

“호, 혹시 화나셨어요? 루, 루핀 때문에……? 야, 루핀!”

짖으라면 짖고, 배를 까뒤집고 애교를 부리라면 부릴 듯하던 엘시의 순종적인 태도는 곧바로 반전되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루핀을 향했을 때였다.

언제나 그렇듯 엄격한 표정으로, 엘시는 루핀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루핀, 얼른 주인님께 용서를 빌지 못해?! 화, 화나셨잖아!”

그러면서도 안절부절 하지 못하며 흘깃흘깃 이안을 살피는 엘시를 보고, 루핀은 결국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거짓말이다.

이딴 게 현실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그의 심장에 느껴지는 생생한 고통이 이곳이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울컥, 하고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독하고 강인하던 ‘엘시 라이넬라’라는 꽃은 이제 없다.

오로지 제 주인의 애정만을 갈구하는 한 마리의 암컷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눈꺼풀을 굳게 닫아도 그의 눈앞에는 방금 전 보았던 광경이 재생되고 있었다.

달콤한 눈빛을 한 채, 이안의 얼굴을 몽롱하게 올려다보는 여인의 모습이.

루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감정의 격류가 멋대로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닥친 현실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 루핀은 제 눈가를 훔치며 흘러넘칠 듯한 눈물을 닦아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이 기분, 루핀은 답답해서 제 가슴을 쥐어뜯어 버리고만 싶었다.

분하고 분했다. 더더욱 그를 비참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안의 태도였다.

그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루핀의 뇌리가 단번에 달구어졌다.

그토록 강인하고 영악하던 누나를 사랑에 눈 먼 소녀로 만들어 놓고, 어떻게든 마음에 들어보려고 아양과 애교를 떨어대는 그녀를 앞에 두고.

어떻게 그토록 냉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됐다.

부르르 몸을 떨던 루핀은, 곧 이를 악문 채 눈을 떴다.

핏밫이 선 눈동자에는 분노와 적의가 선연했다.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때까지도 엘시는 울상을 지은 채 이안에게 애원하는 중이었다.

“제, 제발 버리지 말아주세요… 주,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게요! 지,짖기라도 할까요? 멍, 멍멍!”

루핀이 제 누나의 팔을 붙잡은 것은 그 무렵이었다.

자진해서 인간의 존엄을 버리려던 엘시는, 팔에서 느껴지는갑작스러운 완력에 멍청한 눈빛으로 루핀을 바라보았다.

마치 지금 뭐하냐는 듯한 눈빛.

도리어 루핀이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엘시를 질질 끌었다.

그러자 엘시는 화들짝 놀라 루핀의 팔을 쳐내려고 했다.

“루, 루핀! 너 뭐하는 거야! 주인님이 이러다 날 버리기라도 하면……!”

“누나는 자존심도 없어?!”

도리어 노호성을 터트린 것은 루핀이었다. 엘시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평소라면 ‘동생이… 말대꾸?!’ 같은 소리를 하며 루핀을 반죽을 때까지 팼을 엘시였지만, 지금은 워낙 혼란스러운 모양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엘시는 엘시였다. 더듬거리며, 부글부글 끓던그녀가 폭발하기 직전.

“왜 자존심 상하게 누나가 매달려야 하는데! 매, 매달려도 저 하급 귀족 새끼가 매달려야 할 것 아니야!”

우뚝, 하고 엘시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녀의 고개가 일순 갸웃, 하고 기울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루핀은 너무 답답해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따라오기나 해! 야, 그리고 하급 귀족!”

사내의 금빛 눈동자가 우두커니 루핀을 향했다. 예전의 악몽이 생각난 루핀의 몸이 움찔 떨렸지만, 그는 누나를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는 당장이라도 피눈물을 쏟을 듯한 눈으로 이안을 노려보며 외쳤다.

“……가, 각오해! 언젠가 오늘 일을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흔해빠진 악역의 대사를 날리며, 루핀은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엘시의 팔을 질질 끌며 퇴장했다.

그는 으득으득 이를 갈면서 생각했다.

복수할 테다.

우리 누나를 그렇게 냉대한 그 죗값, 나중에 울고불며 후회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었다. 지금도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느낌이었지만, 복수의 수단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이안이 엘시에게 푹 빠지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때가 되면 오히려 이안이 엘시에게 무릎 꿇고 구혼을 하게 되리라.

루핀의 머리는 어떻게든 그러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욕구로 가득 찼다.

엘시는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무언가 루핀이 도와줄 생각인 것 같긴 한데,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이안에게 매달려 봐야 ‘주인님’께서 자신을 버리겠다는 ‘말씀’을 거두실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돌파구는 이제 루핀밖에 없었다.

모자란 동생이지만, 주인님과 그녀를 이어주기만 한다면 기꺼이 조언을 받아주리라.

그렇게 루핀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엘시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이안에게 말했다.

“다, 다음에 봬요. 주인님!”

이안은 라이넬라 남매가 떠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더는 라이넬라 남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게 될 무렵에야 그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뭐야, 저 남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둘이서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더니 떠나버렸다. 이안으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던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 성녀를 찾아가 볼 차례였다.

미래에서 온 ‘그’를 만났다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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