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18)
* * *
좁다란 복도 위로 날렵한 신형 여럿이 섰다.
일직선으로 이어진 길목의 극단과 극단을 기점으로 나와 적들이 위치해 있었다. 적은 대략 다섯에서 여섯 정도, 그러나 복도 틈틈이 위치한 방문에서 누가 튀어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계단은 저편에 있었다.
흘깃 측면을 바라보니 안내도가 그려져 있었다. 2층 약도의 ‘부장실’이라는 글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다시 말해, 저 계단을 올라야 신문부를 제압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첩보조직의 본거지니 안내도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다만 대략적인 구조는 비슷하리라 추론해 볼 뿐이었다.
애초에 매달려야 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저쪽이었다.
신문부의 진정한 정체가 탄로나면 어느 쪽이 더 곤란해질지는 명약관화했다. 신문부에게는 반드시 나를 제압해야 할 동기가 존재했다.
그렇다면 나는 싸움에 응해 주면 그만이었다. 내 입꼬리가 비틀어 말아 올려졌다.
“……덤벼.”
다시금 흘러나온 도발의 언어에, 그림자가 흩어진다.
내가 드디어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은 동시였다.
첫 번째로 달려든 사람은 어깨에 도끼를 얻어맞은 신문부원이었다. 정문부터 나를 뒤쫓아온 그는, 아직도 모자랐는지 품에서 또 한 자루의 비수를 꺼냈다.
물론 그보다는 내 걸음이 더 빨랐다.
팍, 하고 내 도끼가 사내의 남은 어깨를 찍어 내렸다. 연골을 으스러트리는 으스스한 감촉이 손에 전해졌다.
핏물과 함께, 내게 달려들던 사내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악!”
주저앉는 사내를 뒤로 하고 또 한 걸음, 내게 두 신형이 쇄도하고 있었다.
거리를 꿰뚫는 파공성이 매서웠다.
쐐액, 하고 허공을 가르며 던져진 단검 두 개가 기묘한 각도로 틀어졌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멋진 투검술, 다만 그 속셈은 뻔했다.
단검을 쳐내는 틈에, 내게 칼날을 박아 넣을 생각이겠지.
물론 그 의도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었다. 마침 도끼를 뽑아내느라 내 팔은 높이 치켜들어져 있었으니까.
이를 악물자 내 팔의 근육이 수축했다. 도끼가 파공성을 터트린 것은, 그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차라리 빛살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속력이었다.
마력으로 강화된 근력을 한계까지 때려박은 손도끼의 쇄도는 무시무시했다. 단숨에 새하얀 궤적이 일직선으로 새겨졌다.
캉, 하고 날아들던 단검 하나가 처량한 충돌음과 함께 튕겨나갔다. 아직 단검 하나가 남아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땅을 박차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둔중한 흐름을 보이던 시간이 단숨에 풀려 나갔다.
으득, 하고 도끼날이 팔뚝 뼈를 반쯤 아작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설마 이 상황에서 무장을 버릴 줄은 몰랐는지, 신문부 사내는 눈을 부릅뜬 채였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내가 몸을 비틀어 단검 하나를 피해냈을 즈음에, 손도끼는 멋대로 궤적을 틀었다. 다시금 쏘아진 도끼가 남은 신문부원 하나를 찍어버렸다.
마침 도약을 준비하고 있던 사내였다.
공중에 막 떠오른 그의 몸은 손도끼의 운동량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의 상반신이 기우뚱 무너져 내렸다.
살점과 근육을 으스러트리는 소리는 덤이었다.
그 무렵, 나는 이미 선두로 나선 신문부원의 지척이었다. 그는 멍하니 도끼날이 틀어박혔던 제 팔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내게 반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 몸이 곧바로 신문부원을 들이박아 버렸다.
쿵, 하고 단단한 두 개의 신체가 맞부딪힌다.
“커억!”
어깨부터 들이박은 충돌에, 신문부원의 입에서 숨 막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사내 하나가 쓰러졌고, 나는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신문부원의 어깨에서 도끼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철푸덕 바닥에 떨어진 그의 남은 어깨에 도끼날을 박아 넣었다.
으득, 하고 귓가에 울리는 소리.
“끄아아아아악!”
이제 둘, 내 눈동자가 야수 같이 남은 적을 훑었다.
남은 둘은 벽을 향해 도약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중얼중얼 영창을 하고 있는 듯했다. 언제나 그렇듯 마법사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벽을 박찬 두 여인의 검이 내게 쏘아졌다.
또 다시 단검, 다만 그 끝이 반질거렸다. 독액이 발라져 있으리란 사실은 명백했다.
내 손이 공간을 쥐어뜯었다.
기괴한 궤도로 꺾인 두 여인의 칼날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슬아슬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나도 무사하지 못했을 터였다.
또 한 걸음, 내 손도끼가 무자비한 속력으로 두 여인의 어깨를 하나씩 으스러트렸다.
“꺄아아아악!”
“끄으윽……!”
둘 중 하나는 그나마 훈련이 됐는지 입술을 깨물며 비명을 참아냈다. 그래봐야 땅바닥에 널브러지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그때쯤 이미 마법사의 영창은 끝나가고 있었다. 내게는 선택지가 얼마 없었다.
또 다시 손도끼가 던져졌다.
매서운 파공성을 궤적처럼 이어가며, 빛이 내리꽂혔다. 마법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은 필연이었다.
다시금 땅을 박차던 내 측면을 누군가 덮친 것은 그때였다.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려 옆을 바라보니 문이 으스러져 있었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그림자 사이로 새하얀 칼날이 번뜩였다.
이 습격은 막아낼 수 없었다.
푹, 하고 내 팔에 단검이 내리꽂히며 내 몸이 그 맞은편으로 비틀거렸다. 그나마도 마지막에 팔을 들어 막아내서 다행이었다.
사내는 단검을 뽑아낼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는 곧바로 손을 거두어 제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했다.
숨겨둔 또 다른 무장이겠지, 그대로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내 남은 팔이 사내의 팔을 붙들었다. 그의 눈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맺혔다.
나에 대해 조사했다면 이 다음으로 이어질 동작이 무엇일지는 대략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
온힘을 다해 잡아당긴 팔을 어깨 위로 메쳤다. 벼락 같이 사내의 몸이 복도에 내리꽂혔다.
쿵, 하는 충격파가 목재 마루를 뒤흔들었다.
“크, 케엑……!”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사내의 입에서 우스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복도가 너무 좁은 탓에, 그의 하반신은 벽면에 닫아 직각으로 꺾여 버리고 말았다. 우득, 하는 소리가 들렸으니 척추에 무리가 갔을 터였다.
아프겠군, 나는 그러한 감상을 끝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육신을 일별했다.
손을 들자 손도끼가 팍, 하고 손바닥을 두드렸다. 내 눈이 무심히 정면을 훑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복도 옆으로 나열된 문이 열리고 있었다.
계단까지 남은 방은 두 개, 그곳에 걸어 나온 사람도 둘.
나는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너희가 끝이냐?”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와 거리가 그나마 가까운 여인 하나가 내게 달려들었다. 그 두 손에는 단검이 각 하나씩 자리하고 있었다.
까다로운 상대였다. 나는 마주 한 걸음을 내딛으며 도끼를 내리찍었다.
칵, 하고 교차한 단검 사이로 내 도끼날이 파고들었다. 부르르 떨리는 팔들, 그러나 손도끼는 본질적으로 팔 하나로 휘두르는 무장이었고 두 자루의 단검은 아니었다.
여인이 이를 악물고 도끼를 쳐내자, 자연스레 내게 빈틈이 생겼다. 여인은 곧바로 내 품을 파고들고자 했다.
다만 그녀가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은, 손도끼는 팔 하나로 휘두르는 무기이므로 내 팔도 아직 하나는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대로, 허리춤을 더듬던 손이 빛살을 뿜었다.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뽑혀 나온 검면이 여인의 측면을 강타했다. 팔로 막아내긴 했지만, 불의의 일격에 비틀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내 손도끼가 여인의 팔을 찍어내며, 또 하나의 몸뚱아리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녀가 또 다시 몸을 일으킬까 염려한 나는, 남은 팔의 손목을 짓밟아 분질러버렸다.
“크, 끄으으윽…….”
으득, 으드득,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여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만하면 충분했다.
내 눈이 마지막으로 남은 상대를 향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준비하고 있던 무기를 내던졌다.
와이어(wire)였다.
끝부분에 무게추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제압용뿐만 아니라 타격용으로도 쓸 수 있을 듯했다.
과연 제국 첩보부다운 괴상한 무장이었다.
무게추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멋대로 궤적을 틀었다. 나는 곧바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게추와 내가 맞부딪히기 직전.
상반신이 뒤로 기울어지며 내 몸이 마루 위를 주르륵 미끌어졌다. 나는 그대로 팔을 내뻗어 와이어를 쥐었다.
파직, 하고 이는 전류의 전조가 느껴졌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알고 있던 차였다.
나는 곧바로 몸을 비틀어, 와이어를 메치듯이 잡아당겼다.
훅, 하고 무언가 딸려오는 느낌이 손끝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타닥거리며 흐르는 전류가 내 팔 근육을 타고 흘렀다.
감전, 멋대로 근육이 수축했고 뇌까지 파고든 전류가 푸른 불꽃을 일으켰다.
다만 좋은 점도 없지는 않았다.
강제로 근육이 수축한 탓에, 와이어를 잡아당기는 힘이 더욱 가중된 것이다. 마치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처럼 사내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쿵, 하고 마룻바닥에 부딪힌 그의 몸이 한 차례 튀어 올랐다. 전류가 끊긴 것도 그 무렵이었다.
다시금 힘을 주어 잡아당기니, 사내의 몸이 주르륵 내게 이끌려 왔다. 시시각각 거리가 좁혀질수록 사내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었다.
왜냐하면, 내 손에는 어느새 손도끼가 쥐여져 있었으니까.
그가 내 앞에 도달한 순간이 마지막이었다.
팍, 하고 허공을 핏자국이 날았다.
“으, 끄… 크아아아아악!”
당연하다는 듯 또 다시 터져 나오는 비명에, 나는 남은 한 손으로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그래봐야 나머지 귓속을 파고드는 그 울음소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명 좀 그만 질러라, 응? 너희 첩보요원이잖아. 그렇게 고통을 못 참아서 쓰겠어?”
“크, 큭큭… 미, 미친 새끼…….”
그러나 내 타박에도 사내는 큭큭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그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경고했다.
“가, 감히 제국 첩보부를 건드려? 그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나는 잠시 침묵했다. 내 눈이 슬쩍 측면을 향했다가, 이내 다시금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싱긋, 내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게 왜 날 건드려?”
그리고 사내가 무어라 반박하려는 듯 입을 열기도 전에, 내 손도끼가 다시 한 번 사내의 어깨를 찍어 내렸다.
통증으로 꿈틀거리는 사내의 몸, 그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다시금 터져 나왔다.
여전히 시끄러웠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그의 머리를 힘주어 발로 찼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비명이 끊겼다.
기절한 탓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신문부는 전멸했다. 남은 것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내 눈이 계단 너머를 훑었다. 흐릿하지만 열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마치 초대장을 받은 것처럼, 나는 홀린 듯이 발걸음을 돌렸다.
‘무도회의 여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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