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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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부상을 수습한 몇몇이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나마 제국 첩보부라고 결기는 있는 듯했다.
하지만 어깨가 박살나거나, 척추가 꺾인 상태로 내게 대항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멀쩡한 채로도 내 상대는 아니었던 이들이었다.
최후의 저항을 시도하는 신문부원들을 제압할 때까지는 단 몇 분이면 충분했다.
계단을 앞두고, 나란히 널브러진 육신이 차곡차곡 포개졌다. 대략 여덟 명, 상주하는 인원은 이 정도에 불과한 듯했다.
총 인원은 아마 수십에 달할 터였다. 그들을 전부 상대했다면 내게도 승산은 희박했다.
그래서 기습을 택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는 팔뚝을 주물렀다.
단검에 찔린 상처였다. 마취액이 발라져 있었는지, 마력으로 억누르고 있는데도 벌써 팔의 감각이 흐릿했다. 체력도 꽤 소진되었는지 숨이 살짝 거칠었다.
최대한 빠른 결착을 지어야 했다.
아직 감정의 잔향이 남아있었다. 무심코 몸이 몇 번 비틀비틀 기울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마취의 효과로 몽롱해진 정신으로 묘한 꿈을 꾸었다.
호화로운 침실이었다. 기침하고 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병색이 완연했지만, 그 눈빛만큼은 선연했다. 타오르는 푸른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무어라 그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덧 2층이었다. 신문부가 점유하고 있는 건물은 천장이 높긴 했지만, 그래봐야 계단은 계단이었다.
이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얼마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2층에 자리하고 있는 방이라고는 단 하나뿐이었다.
‘부장실’, 나는 그 명패를 보자마자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널따란 방 안에는 양옆 모서리를 두고 책장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서류가 꽂혀 있었고, 아늑한 분위기의 가구들이 이곳저곳에서 시야를 파고들었다.
느긋한 자세로 서류를 읽고 있던 여인은,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단정히 쳐낸 갈색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덮고 내려가 있었다. 앞머리에 꽂힌 머리핀이 유독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리따운 소녀에 불과했다. 오히려 귀엽다는 인상마저 받을 정도였다.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슬쩍 나를 향했다. 그녀는 싱긋, 매력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어서 와, 손도끼 공자… 아래가 시끄럽더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신문부의 환대가 대단하더군요.”
키득거리면서, 여인은 내 말에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장난스러운 태도는 마치 친숙한 친구를 대하는 듯했다.
기묘한 풍경이었다. 물론 ‘무도회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인간관계가 넓고 붙임성 있는 그녀였다. 누구든 친숙하게 대한다고 이상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상대를 상대할 때의 이야기였다.
적어도 제복과 망토 곳곳에 핏자국이 묻어 있고, 손에 쥔 도끼날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사내를 상대할 때 보일 태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인은 그 여유로운 태도를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인의 눈꼬리가 옅은 호선을 그렸다.
눈웃음이었다. 서류가 탁, 하고 책상 위로 내던져졌다.
“까다로운 취재원이네… 너무 저돌적인 거 아니야?”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으니까요.”
내 뼈 있는 말에, 그녀는 동의한다는 듯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즐거운 시간이었어. 오랜만에 흥미로운 기삿거리를 잔뜩 찾아낼 수 있었거든.”
그러더니 여인은 하아암, 하고 하품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뒷짐을 진 채, 저벅저벅 걸어 책상 앞으로 향하는 그녀의 몸.
태양을 등진 그녀의 연녹빛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빛났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뱀과 같은 눈이었다. 그녀의 분위기가 단숨에 일변했다.
진득한 마력이 독연(??)처럼 피어올랐다. 커튼을 치지 않았는데도 주위가 어둑어둑해질 지경이었다.
통상적인 마력은 이토록 강한 색채를 띨 수 없었다. 이 또한 그녀의 오러 특성 중 하나라는 소리였다.
‘네리스’, 무도회의 여왕.
아카데미 검술학부의 4학년이자, 평민이었다.
실력보다는 정보력이나 인맥으로 유명인사의 반열에 오른 학생이었다. 최소한 익스퍼트에 이를 만큼 뛰어난 실력자는 아니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방 안을 흐릿한 안개처럼 물들인 이 오러는 무엇이란 말인가.
본능적으로 손도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느낌이 불길했다.
단기전으로 끝낼 수 있을까?
내가 고민에 빠지든 말든, 네리스 선배는 살짝 상반신을 기울이며 내게 물어왔다.
“……그래서, 내게 볼일은?”
“앞으로 제 주변 사람들은 건들지 마시죠.”
담백한 대답이었다.
흐응, 하고 여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굳이 덧붙여 말했다.
“쳐맞기 싫으면.”
나름 진심을 담은 경고였다.
네리스 선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곧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나마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풋,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소리에 불과했지만, 그 맑은 웃음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를 높여갔다. 그렇게 여인은 한참 동안이나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나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여인은 제 눈가에 살짝 맺힌 물기를 가녀린 손가락으로 털어냈다.
그녀는 아직도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싫은데?”
새파란 조소가 맺힌 얼굴이 둥실 떠오른 그 순간.
팍, 하고 천장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내가 있던 자리에 검은 오러가 맺힌 단검이 꽂혀 있었다. 내 눈이 부릅떠졌다.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데 저토록 선명한 오러를 담고 있다니, 이토록 괴상한 오러 특성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파바박, 하고 마치 비가 내리듯 허공에서 단검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곧장 몸을 굴리며 단검을 피해냈다.
그리고 응접용 테이블 아래로 도착하자, 책상 위로 단검이 꽂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못해도 열 자루는 넘었다. 스무 자루, 혹은 그 이상.
어떻게 그만큼 많은 단검을 소지하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한 의문에 잠긴 내 의식을 일깨우는 것은, 네리스 선배의 나긋한 목소리였다.
“숨어도 소용없어, 어차피 이미 늦었으니까.”
여전히 뒷짐을 진 채로, 그녀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서서히 내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자리를 피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이내 그 가능성을 폐기해 버렸다. 지금도 마취 독이 올라 슬슬 정신이 흐릿해지고 있던 차였다.
도망치기만 해서는 답이 없었다. 오히려 기회를 노려야 할 때였다.
나는 숨을 죽인 채로, 손도끼를 품에 품었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걸음이 차분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
팍, 하고 고개를 숙인 채 몸을 일으키자 응접실 테이블이 단번에 뒤집어졌다. 찰나나마 네리스 선배의 시야를 가리기에는 충분한 한 수였다.
나는 곧장 테이블을 발로 차버렸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되길 바랐지만, 테이블에는 이미 칠흑의 빗금들이 그어진 뒤였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속 연격이었다.
저 일격에 당한다면 뼈도 추리지 못하리라.
그 전에 승부를 내야만 했다. 이를 악문 채 휘둘러진 내 손도끼가, 테이블째로 네리스 선배를 찍어 내렸다.
캉, 하고 허공에서 충돌음이 울려 퍼진다.
칼날과 칼날이 마주치는 소음, 이는 단 한 가지 사실만을 의미하고 있었다.
시야를 가렸는데도, 내 검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막아냈다는 뜻이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대응이었다.
내가 당황한 사이, 새까만 찌르기가 내 품을 파고들었다.
나는 몸을 비틀어 아슬아슬하게 그 검을 피해냈다. 쭉 내뻗어진 팔이 유려했다. 내게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손도끼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두 손이 내 앞에 나타난 팔을 쥐려고 시도했다.
검으로는 밀릴지 몰라도, 성국의 비전 유술이면 그녀를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뱀처럼 내 팔이 얽혀 들어갔다. 하지만 네리스 선배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의 팔이 역으로 내 품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가슴으로 다가온 손이 나를 팍, 하고 밀쳐내려 들었다.
물론 이대로 물러날 내가 아니었다.
나는 팔 하나를 탁, 하고 털어내서 네리스 선배의 팔을 뿌리쳤다. 남은 팔 하나는 더욱 네리스 선배의 품을 파고들었다. 네리스 선배도 내 팔을 뿌리치려 들었다.
얽히고, 설키고, 그렇게 서로의 팔을 뿌리치기를 몇 번.
결국 포기한 쪽은 네리스 선배였다. 그녀는 끝까지 쥐고 있던 단검을 툭, 하고 떨구었다.
그러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단검,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능력이었다.
그래도 기회였다. 네리스 선배가 멈칫한 사이에,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푹, 하고 내 어깨 위로 단검이 떨어져 내렸다.
또 다시 전조조차 없었다. 내 눈이 흘깃 네리스 선배를 향하자,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말했잖아, 이미 끝났다고.”
그렇구나, 나는 그제야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원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네리스 선배는 이 공간을 관리 하에 두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오러 특성일지도 몰랐다. 오러란 심상으로 현실을 왜곡하며, 때때로 특수한 능력을 발현시키기도 했다.
이토록 독특한 능력을 가진 예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오러보다는 마법에 가까운 힘이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속임수가 있을 듯한데, 지금으로서 그러한 고민은 무의미했다.
다만 멈춘 시간 속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네요.”
그리고 나는 네리스 선배의 팔을 쭉 잡아당겼고, 설마 단검을 맞은 직후에도 움직일 줄 몰랐던 네리스 선배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고통 때문이라도 잠시나마 경직이 일어야 정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네리스 선배의 단검이 내리꽂힌 팔은 마취액을 바른 단검에 찔린 부위였고 통증 따위는 흐릿하기만 했다.
내 몸이 네리스 선배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내 그녀의 팔이 내 어깨 위로 얹혔다.
그 다음으로 들어갈 기술은 단 하나뿐이었다.
성국 비전 유술, 달 뒤집기.
전력을 다한 메치기가, 네리스 선배를 빛살처럼 메다꽂았다.
쿵, 하는 충격파와 함께 목재 파편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네리스 선배의 입에서 울컥, 하고 소량의 혈흔이 튀어 올랐다.
우선 일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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